오랫만에 모교를 방문하여 후배들의 졸업식을 보았다. 아들뻘 되는 아이들이 졸업을 하는데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았다. 졸업식은 무척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교장선생님은 축하 말씀을 끝낸 후 모든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일일히 수여하였다. 후배들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고, 선생님들은 졸업하는 아이들을 껴안아 주었다.
모교를 방문하여 인구절벽을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지금 졸업하는 아이들보다 내년에 졸업할 아이들의 숫자가 3분의1이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세월의 흐름과 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
심사와 평가는 늘 주관적이다. 객관적 평가는 관념 속에서나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지 모르지만, 실제 평가는 다 평가자의 가치관과 주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연구 결과를 요약하여 논문을 제출했는데, 그 논문이 과연 출판할 가치가 있는지 평가하려면 그 논문의 기여도를 보게 된다. 이론적 기여가 있는지, 실제 그 결과를 응용할 수 있는지, 기존 연구에 비해 새로운 주장이 있는지 등을 평가하게 되는데, 이런 기여가 없을 경우 논문은 출판되지 못한다.
각종 경연이나 경진 대회의 심사도 마찬가지다. “객관적으로 심사해 주세요.” 이런 주문은 불가능하다. 객관적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정하게 평가해 주세요.” 여기서의 핵심은 “공정”인데, 이건 절차에서의 공정만이 가능할 뿐이다.
법대로 판결한다는 법관도 예외일 수 없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한다지만, 그 양심이란 것에 객관적인 척도는 없다. 따라서 모든 법적 판결도 주관적이다.
모든 판단은 주관적이지만, 그것이 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판단에 대한 비판을 허락해야 한다. 비판을 허락하지 않는 판단은 비합리적인 도그마가 될 확률이 크다.
설 연휴에 부모님을 모시고 당구장에 갔다. 당구는 대학 다닐 때 처음 쳤는데, 졸업한 후에 당구를 친 적은 없다. 더구나 부모님을 모시고 당구장에 간 건 처음이었다. 요즘 아버지가 친구분들과 소일거리로 당구를 치시는데, 어머니는 호기심으로 아버지와 한 번 치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예전에는 당구장에서 담배를 많이 펴 공기가 안 좋았는데, 요즘은 흡연실이 따로 있어 당구장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당구를 치러 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 가족 중에는 아버지가 제일 안정된 기량을 보이셨다. 나머지 사람들은 당구를 처음 하거나 너무 오랫만에 하느 거라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다음에 가족이 모이면 다시 하기로 했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아 큰 부담 없이 한두시간 놀기에는 그만이다.
Through the darkness I can see your light And you will always shine And I can feel your heart in mine Your face I’ve memorized I idolize just you
I look up to Everything you are In my eyes you do no wrong I’ve loved you for so long And after all is said and done You’re still you After all You’re still you
You walk past me I can feel your pain Time changes everything One truth always stays the same You’re still you After all You’re still you
I look up to Everything you are In my eyes you do no wrong And I believe in you Although you never asked me to I will remember you And what life put you through
And in this cruel and lonely world I found one love You’re still you After all You’re still you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있다. 제주 올레에서 시작한 둘레길 열풍으로 우리나라 지자체들은 여기저기 길을 만들었다.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에 좋은 길들을 호젓이 걸을 수 있어서 좋다. 걷는 것 만큼 좋은 것은 없다. 특히 혼자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걷는 것은 명상이 될 수 있다.
북한산 둘레길 수첩(패스포트)를 구입하여 하나의 코스를 끝낼 때마다 도장을 받으면 더욱 즐겁다. 4코스까지 걸었는데 어렵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산 정상에 오르는 것과는 또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다. 서울에 갈 때마다 걷고 싶은데 언제 완주하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나라 부모들(특히 엄마들)이 가진 최고의 욕망은 자식들의 출세이고, 그것의 첫 걸음은 자식들의 명문대 입학이다.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려면 “갑”이 되어야 하니 부모들의 욕망만을 탓할 수는 없겠으나, 그 욕망의 크기가 도를 넘었다. 그 욕망은 아이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고, 학교는 폐허가 되었다. 아이들을 어떤 대학에 보내느냐가 교육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버린 나라에서 아이들은 숨을 쉴 수 없다.
드라마 <SKY 캐슬>이 인기를 끈 이유는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 하기 때문이다. 자식들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일상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이 드라마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바보라도 세상에는 명문대 입학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관념일 뿐, 현실은 오직 무한경쟁이요, 정글이다. 친구들과의 우정은 아름다우나 그들은 결국 경쟁자이자 적일 뿐이다. 욕망은 그렇게 세상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이런 세상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욕망과 그 욕망의 종착역이라는 것이 모두 허상임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은 집단최면에 걸려 있는데, 그 최면에서 깨어나면 된다. 간단하나 쉽지는 않다. 그 욕망의 약속이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을 믿고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다. 부모들의 욕망을 아이들에게 투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들만의 인생이 있다. 그 인생의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면 된다. 그것이 부모가 해야할 유일한 일이다.
드라마 <SKY 캐슬>이 끝났다. 그 드라마 속 부모들은 욕망을 내려놓았고 아이들은 지옥에서 벗어났다. 너무나 착한 결말에 많은 이들이 실망했다. 드라마 밖의 현실은 여전히 입시 지옥이고 부모들의 욕망은 나날이 커져가기 때문이다.
남편들의 선의는 알겠는데, 이 말의 속뜻을 알게 되면 남편은 역시 남의 편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일을 도와준다는 것은 “그 일이 본래 당신 일이지만 마음씨 착한 내가 당신이 힘들지 않도록 협조하겠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일은 바로 그 일은 본래 당신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내의 집안 일을 돕는 남편은 언제나 착하고 좋은 남자들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대개의 남편들은 집안 일을 돕는다고 얘기하지, 그 집안 일이 자기 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내가 전업주부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맞벌이 부부인 경우에도 남편들은 집안 일을 돕는다고 얘기한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6>
이제 곧 설 명절이다. 명절증후군을 앓는 이 땅의 모든 아내와 며느리들을 치유하려면 남편들은 집안 일을 도와줄 것이 아니라 그 일이 바로 자신의 일임을, 자기가 해야할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 생활은 바로 남편들의 정확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번 설에는 진실로 철든 남편들이 되시길 그리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구속되었다. 드루킹이라는 정치브로커와 함께 인터넷 여론 조작에 가담했다는 혐의가 모두 인정되었다. 이 사건의 1심 선고는 여러 가지 의문을 갖게 한다.
특검은 처음부터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드루킹 일당들의 진술은 엇갈렸다. 김경수의 구속영장은 기각되었다. 영장판사는 다툼에 여지가 있고 도주 우려가 없는 현직 도지사 신분임을 감안해 영장을 기각했는데, 1심 판사는 드루킹의 진술을 100% 받아들여 김경수에게 실형을 선고했으며 가차없이 구속했다.
김경수가 받고 있는 컴퓨터 등 장애 업무 방해죄 혐의로는 최초의 실형이고, 형량도 최고 양형 기준인 1년 6개월보다 긴 2년이며, 현직 도지사의 법정 구속도 처음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이례적인데, 이런 이례적인 것이 연속으로 겹쳐 일어났다.
1심 판사는 양승태의 비서실장 출신이고 이번 사법농단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김경수에 대한 선고 기일을 양승태의 구속영장 실질 심사 이후로 갑자기 미뤘다. 양승태는 구속되었고, 양승태 비서 출신의 판사는 김경수를 구속했다.
사법농단과 연루된 자를 이런 중요한 정치 사건의 재판관으로 배정했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적폐들은 꼼꼼하게 언제든지 역습할 수 있다. 방심은 금물이고 조그마한 실수도 치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