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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아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1. 너무 빨리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2. 다른 사람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3. 세상이 변해야 내가 안전하거나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4. 나의 삶에 일어나는 일은 좋든 나쁘든, 크든 작든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5. 지금까지 변화시키지 못한 상황을 통제하는 방법에 집중하거나 반응하거나 염려하지 않는다.
  6. 침체되어 있을 때 느끼는 방식을 측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7. 소극적으로 원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8.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9. 즐거운 상태가 되기 전에는 좋은 느낌을 기대하지 않는다.
  10. 이 모든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11. 밸브가 닫힌 상태이거나 문제 가운데 있을 때는 영감이 없는 행동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12.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어도 추하고 어둡고 부패한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13. “이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없어”라고 하면서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삶을 살지 않는다.
  14. 나쁜 느낌이 들어가 밸브가 닫혔을 때 자신을 책망하지 않는다.
  15. 밸브가 닫히게 하는 것에 집중된 생각을 중지한다.
  16. 밸브가 닫혔거나 단절된 존재에 따른 슬픔의 행렬에 동참하지 않는다.
  17. 병에 관한 이야기로 건강을 더 악화시키는 일을 중단한다
  18. 문제 찾는 일을 중단한다.
  19. 갈망하지 않는다.
  20.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자기 밖에 있다는 생각을 중단한다.
  21. 원하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2. 비록 내가 옳더라도 ‘나는 옳고 너는 틀렸어’라는 느낌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23. 후회하지 않는다.
  24. 새로운 사업이나 프로젝트, 모험, 활동, 관계 등을 시작할 때는 반드시 먼저 각본을 쓰고 충분히 오랫동안 열정적인 에너지를 흘려 보낸다.
  25. 생각하지 않고 느낀다.
  26. 나의 반응을 생각하지 않고 느낀다.
  27. 자신을 변명하지 않는다.
  28. 나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나를 허락한다.
  29. 나는 김 씨나 이 씨가 아니다. 목수나 비서도 아니다. 나는 생명력이다.
  30. 포기하지 않는다.

<린 그라본, 여기가 끝이 아니다, 나비 스쿨, 2021, pp. 308-311>

무심재(無心齋)

무심재(無心齋)

무심재는 건축주가 일찍이 지은 이름이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무심은 무분별심을 뜻하는 것으로 ‘분별이 없는 마음, 망상이 없는 깨어있는 마음’을 말한다. 즉, 이해득실로 귀결되는 분별에서 벗어나 거대한 우주의 흐름에 올라타는 맑고 밝은 마음의 상태이다. 하지만 무심한 주거공간을 상상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았다. 긴 논의 과정 끝에, 무심재는 주인이 귀가하여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의 모든 번뇌에서 풀려나 오로지 충만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구현됐다.

조그만 인간 존재 의미를 거대한 자연과 병치시켜 유장한 흐름 속에 삶도 죽음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그런 집. 그것을 이루기 위해 먼저 대지가 위치한 계룡산의 뛰어난 자연경관을 활용하기로 하였다. 이 집의 모든 거주하는 방들은 산을 면하는 쪽에 배치하였다. 거실과 서재에는 바닥부터 시작되는 큰 창으로 넉넉하게 계룡산 능선을 끌여들였다. 특히 2층에 위치한 거실은 창을 향해 점점 열리는 각도의 벽을 이용해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발코니 난간도 최대한 투명하게 디자인 하였다. 안방과 손님방의 창은 가장 오래 머무르는 가구(침대)의 높이를 기준으로 하늘과 산과 숲이 다가오게 하였고, 다락의 천창은 밤하늘의 별을, 계단실 창은 걸어 올라오면서 계룡산 최고봉인 삼불봉을 마주한다.

무심재는 아주 간결하고 소박한 연면적 60평도 안되는 작은 집이다. 조형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대지 고저차에의 대응, 그리고 박공지붕으로 인해 보통의 주택과는 다른 내부 공간 높이를 지닌다. 재료와 색채, 디테일은 검박하게 결정되었지만 공간의 프로파일은 은근 당당하며, 풍부하고 기품 있는 볼륨과 다양한 시점을 제공한다. 모든 것을 더도 덜도 없이 딱 필요한 만큼만 갖추려 했다. 그렇다 해도 무심하고자 하는 건축주의 분별 있는 마음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길 바란다.

<조항만, 건축문화, Vol. 502, March 2023, pp. 38-45.>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놓았습니다.
마히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내 움막은 이엉이 덮이고
방에는 불이 켜졌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스승(부처님)은 대답하셨다.
“나는 성내지 않고
마음의 끈질긴 미혹(迷惑)도 벗어버렸다.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쉬리라.
내 움막은 드러나고
탐욕의 불은 꺼져버렸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

<법정 역, 숫타니파타, 18-19, 이레, 1999>

영원한 순수의식

영원한 순수의식

20세에는 내 몸이 튼튼하고 활력 있음을 안다. 60세에는 내 몸이 약해지고 늙었음을 안다. 나의 생각 역시 20대 때와는 달라졌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몸이 젊거나 늙었다고 아는 마음, 내 생각이 변했다고 아는 맑은 마음에는 변한 것이 없다. 그 맑은 마음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영원이다. 순수의식이다. 형상을 벗어난 ‘한 생명’이다. 나는 그것을 잃을 수 있는가? 아니다. 내가 바로 그것이다.

<에크하르트 톨레, 고요함의 지혜, 김영사, 2004, p. 116>
죄인과 영웅

죄인과 영웅

안중근이 메모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제가 이토의 목숨을 없앤 것은 죄일 수 있겠지만, 이토의 작용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재판에서 이토를 죽인 까닭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복이고, 이토가 살아 있을 때 이토에게 말하지 못한 것은 저의 불운입니다. 신부님.”

빌렘이 말했다.

“너의 말은 다만 말일 뿐이다. 인간의 행위는 몸과 마음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너의 말은 뉘우치는 자의 마음이 아니다. 너는 너의 마음의 진실을 말하라. 뉘우침의 힘으로 새로워져라.”

안중근이 메모를 들여다보지 않고 말했다.

“제가 이토를 죽인 일을 뉘우친다면, 제가 이토를 죽이는 사업에 성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만일 이 사업에 실패해서 이토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저는 이토를 죽이려는 저의 마음을 뉘우칠 수가 없습니다. 신부님.”

“그것은 세속의 마음이다. 뉘우침이 아니다.”

“그것이 저의 진심입니다.”

“너의 마음의 깊은 곳에 또다른 마음이 있을 것이다. 말하기 힘들어도 그것을 말해라.”

안중근은 눈을 감고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안중근이 말했다.

“이토를 쏠 때, 이토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조준했습니다. 쓰러뜨리고 나서, 신부님께 세례 받던 날의 빛과 평화가 떠올랐습니다.”

<김훈, 하얼빈, 문학동네, 2022, p. 272-278>

고통의 시작

고통의 시작

주어진 상황을 마음속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나쁜 것’으로 명명하고 분류할 때 고통은 시작된다. 당신은 주어진 상황을 원망하고, 원망은 그것을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어 대립하는 ‘나’를 이끌어낸다.

명명과 분류는 습관화된 것이지만 타파할 수도 있다. 먼저 작은 것부터 ‘명명하지 않는’ 연습을 하라. 예를 들어 비행기를 놓치거나 컵을 깼거나 진창에 넘어졌을 때, 그것을 ‘나쁜 것’ ‘고통스러운 것’으로 명명하지 않는 것이다. 그 순간의 ‘그러함’을 즉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을 나쁜 것으로 명명할 때 내면에 정신적 위축이 일어난다. 하지만 아무런 이름을 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순간 놀라운 힘이 내면에 생긴다.

<에크하르트 톨레, 고요함의 지혜, 김영사, 2004, p. 128>

괴로움의 시작은 분별심이다.

참나를 알기 위한 도구

참나를 알기 위한 도구

참나를 깨닫기 위한 단순하지만 강력한 도구.

“지금 잠깐 멈추고 숨쉬기.”

길고 깊게 숨 쉬고, 느리고 부드럽게 숨 쉬어라. 에너지가 가득하고 사랑이 가득한 삶, 그 삶의 부드럽고 달콤한 무(無)를 숨 쉬어라. 너희가 쉬는 숨은 신의 사랑이니, 깊이 숨 쉬어라.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아주아주 깊이 숨 쉬어라. 그 사랑이 너희를 울게 하리니. 기쁨에 겨워 울게 하리니.

<남우현, 죽음 그 이후, 지식과감정, 2022, p. 189>

하염없이

하염없이

국어사전에는 ‘하염없이’라는 말이 ‘시름에 싸여 멍하니 이렇다 할 만한 아무 생각이 없이’ 또는 ‘어떤 행동이나 심리 상태 따위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되는 상태로’라는 뜻으로 풀이되어 있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다가 ‘하염없이’라는 말에 꽂혔다.

“군사독재 정권 밑에서 교련선생이 뭐냐, 교련선생이. 죽은 느그 성이 무덤서 벌떡 일어나겄다.”

속엣말을 감추는 법이 없는 아버지가 만날 때마다 쏘아붙였더니 어느 날 박선생이 느닷없이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상욱아. 너 하염없다는 말이 먼 말인 중 아냐?”

아버지는 말문이 막혔고 박선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먹은 소주가 죄 눈물이 되어 나오는 것 같았다고. 생전 처음 취했던 아버지가 비틀비틀, 내 몸에 기대 걸으며 해준 말이다. 고2 겨울이었다. 자기 손으로 형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을 안고 사는 이에게 하염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열일곱 여린 감수성에 새겨진 무늬는 세월 속에서 더욱 또렷해져 나는 간혹 하염없다는 말을 떠올리곤 했다. 아직도 나는 박선생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하염없이 남은 인생을 견디고 있을, 만난 적 없는 아버지 친구의 하염없는 인생이 불쑥불쑥 내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 2022, pp. 49-50>
청복(淸福)

청복(淸福)

깊은 산중에 살며 삼베옷에 짚신을 신고 맑은 샘물에 발을 씻고, 소나무에 기대 휘파람을 분다. 소박한 살림이지만 집에는 악기와 바둑판을 갖추고 책도 가득하다. 마당에는 백학 한 쌍이 노닐고 신기한 꽃과 나무, 장수에 도움 되는 약초를 심는다. 때로 스님이나 신선 같은 이들과 왕래하며 즐기다 보면 세월이 오감을 모르고, 정치가 잘되는지 엉망인지도 모른다. 이를 청복이라 한다.

<정약용, 다산시문집 13>

명상하는 방법

명상하는 방법

고요히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환히 미소 지으며 인당(눈썹 사이)에 마음과 생각을 모으세요. 또 숨을 고요하고 부드럽게 쉬세요. 그리고 숨에 귀를 기울이세요. 이 명상을 틈틈이 매일매일 계속하면 정신의 빛이 자꾸 더 밝아집니다. 빛의 밀도가 높아져서 눈부시게 응어리집니다.

<자허, 숨 명상 깨달음, 다해, 2004, pp.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