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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백만의 유시민

일당 백만의 유시민

어용지식인을 자처한 유시민의 유튜브 방송이 연일 화제다. 유시민의 알릴레오 방송을 중계하는 노무현재단의 구독자가 순식간에 50만명을 돌파했고, 그가 올린 알릴레오 영상의 조회 수가 200만을 넘었다.

작년부터 유튜브는 소위 보수라 불리는 세력(소보세)들이 점령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소보세들이 팟캐스트 여론에서 밀리자 유튜브를 선점했던 것이다. 소보세들은 가짜뉴스나 혐오 영상으로 혹세무민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유시민이 드디어 유튜브를 정복하기로 마음먹는다. 방송채널을 열고 겨우 2개의 영상을 올렸을 뿐인데 소보세 전체를 능가한다. 그를 보면 장판교에서 장팔사모로 조조의 백만 대군을 홀로 상대하는 장비가 떠오른다.

유시민은 제갈량의 머리와 장비의 용맹함을 지녔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실패를 염원하는 주류언론 전체와 가짜뉴스를 만들고 전파하는 소보세 전체를 홀로 상대한다. 일당 백이 아니라 일당 백만의 가공할만한 위력이라고 하겠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그의 차기 대선 출마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물론 그는 다시 선거에 나올 생각이 없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그는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 명민하고 재주가 많은 자유주의자다. 백척간두의 위기가 아니라면 그가 선수로 뛰지는 않을 것이다. 유시민의 지지자로서 그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소원대로 그는 낚시나 하면서 책을 쓰는 지식소매상으로 지내도 좋을 것 같다.

노무현을 잃고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그가 문재인을 보호하기 위해 어용지식인을 자처했다. 그리고 홀로 인터넷 여론전에 나섰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그와 같이 똑똑한 사람이 정의롭고 게다가 신의까지 있으니 이 어찌 축복이 아니겠는가. 유시민이 정치를 하든 하지 않든 언제 어디서나 그를 응원한다.

노무현의 유산

노무현의 유산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지 7년. 세월은 살과 같이 흐르고, 그를 죽인 이 나라는 점점 쇠락하고 있다. 사람들은 생기를 잃었고, 희망도 잃었다. 모든 것이 노무현 탓이었는데, 그가 없어지니 세상은 빛을 잃었다. 차라리 그에게는 잘된 일일 수도 있다. 그 하이에나 같은 족속들을 어떻게 견디어낼 수 있었을까.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에게 보물을 남겨 놓았다.

1. 문재인

노무현이가 (대통령) 감이 되겠나? 물으면 ‘감이 된다’ 당당하게 말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친구를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나이는 저보다 적은 아주 믿음직한 친구 문재인이를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통령 감이 됩니다. 나는 문재인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후보 아니겠습니까?

2. 안희정

안희정 씨는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연구소 살림살이를 도맡아서 꾸려 갔어요. 가장 돋보였던 것은 사람 관계였습니다. 그때부터 지도자의 자질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의 오늘이 있게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정치적 동지라고 말할 수 있지요. 대통령을 만들어준 사람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여러 번 곤경에 빠졌었는데, 내 대신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다 했지요. 나는 엄청난 빚을 진 것입니다.

3. 유시민

오늘 제가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어려울 때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랬듯이. 어려울 때 친구가 친구고,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라야 진짜 정치인입니다.

그나마 그가 남겨 놓은 이 보물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는 거다. 결국 노무현 정신이 시궁창에 빠진 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 방법 밖에는 없다. 그렇게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덧.

노무현의 유산에서 안희정은 제외한다. 안희정은 철저한 위선자이자 이중인격자임이 밝혀졌다. 그는 더 이상 노무현의 왼팔도 아니고 친노도 아니다. 다시는 노무현의 이름을 들먹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유시민의 글쓰기

유시민이 쓴 책은 쉽고 유익하다. 그는 엄청난 연구의 산물로 책을 내지 않는다. 그는 이미 나와 있는 많은 이론이나 사실들을 잘 이해하고 요약하여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한다. 그의 책이 쉽다고 해서 결코 깊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책은 쉽고 유익하고 재미있다.

유시민이 쓴 책을 거의 다 사서 읽는 편인데, 이번에 나온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글쓰기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라 하겠다. 그가 밝히는 글쓰기에 관한 영업기밀(취향과 주장의 구별, 주장은 반드시 논증, 주제에 집중)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좋은 글에 대한 기준(짧고 간결하며 군더더기 없는 글) 등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글을 잘 쓰려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유시민이 쓴 책을 거의 다 읽는 사서 이유는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처럼 재주있는 사람이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노무현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노무현을 지키기 위해 홀홀단신 정치에 투신했다. 그와 같이 자유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은 정치를 좋아하지도, 정치를 직업으로 삼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노무현을 지키기 위해 정치인이 되었다. 때문에 그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 그래서 그가 쓴 책은 꼭 사야 한다. (사실 노무현도 글쓰기에 관한 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몇 안 되는 단심을 지닌 정치인이었고, 정계은퇴한 지금은 지식소매상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글쟁이가 되었다. 그는 정치인이었을 때보다 지금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노무현은 떠났지만, 유시민이라도 행복하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의 고군분투는 처연하기까지 하다.)

유시민의 건투를 빈다.

 

노무현 정신을 지키는 방법

노무현 정신을 지키는 방법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주 귀하고 소중한 씨앗을 얻었습니다. 농부는 그 씨앗이 너무나 소중해 몇 백년이라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대를 이어 가보로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농부는 그 씨앗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그 씨앗은 서서히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씨앗은 생기를 잃었습니다. 씨앗은 너무나도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었지만, 생명을 잃은 씨앗은 더 이상 씨앗이라 불릴 수 없었습니다. 농부도 그 씨앗의 존재를 잊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농부도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씨앗을 얻었습니다. 농부는 이듬 해 봄에 그 씨앗을 밭에 뿌렸습니다. 농부는 씨앗이 싹을 틔우도록 온갖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때론 날이 너무 가물었고, 때론 세찬 바람이 불었으며, 때론 억센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농부는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씨앗이 죽지 않고 싹 틔우길 매일매일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씨앗은 온갖 어려움을 뚫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이 되자 그 씨앗은 수천 아니 수만의 씨앗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비록 처음의 그 씨앗은 땅 속에서 사라졌지만, 이제 그 씨앗과 똑같은 수천 수만의 씨앗을 얻게 되었습니다. 농부는 그 귀한 씨앗을 마을 사람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두들 그 귀한 씨앗을 받고 기뻐했고, 새봄이 어서 오길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 씨앗이 바로 “노무현 정신”이란 씨앗입니다.

현역 정치인 중에 유시민과 이정희 만큼 노무현을 닮은 정치인은 없습니다. 그 두 사람은 “노무현 정신”을 누구보다도 더 잘 꽃피울 사람들입니다. 나는 참여당 대표 유시민과 민노당 대표 이정희를 신뢰합니다. 이제 두 사람이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당원들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쉽지만은 않은 길이란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노무현을 꼭 닮은 정치인들이 양당의 대표를 맡을 수 있는 기회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고, 많은 서운함이 있더라도 지금이 함께 할 기회입니다. 그 소중한 씨앗을 최소한 밭에 뿌려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통추 활동을 접고 새정치국민회의 입당을 하는 대목에서 3김청산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원칙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전략적, 전술적 명제는 타협할 수 있다. 나는 ‘3김청산’이라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타협할 수 있는 전략적 명제라고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DJP연합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념과 노선을 100% 순수하게 밀고가기는 어렵다. [중략] 정당에 대해서도 그렇다. 누가 주도하는지를 본다. 주도세력의 색깔이 그 정당의 색깔이다. 대통령 후보가 김대중 총재로 결정된 이상 주도세력 문제는 정리가 된 것이 아닐까? [중략] 주도세력의 성격과 철학이 뚜렷하면 된다.

유시민과 이정희가 주도하는 정당이라면 그 당이 참여당이든, 민노당이든,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든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두 사람이 주도하는 정당이 바로 “노무현 정신”이 살아있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예수가 기독교를 창시하지 않았듯이, 노무현은 참여당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은 참여당원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원이 주인이 되고 당원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정당의 당원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는 것에 대해 그렇게 서운해 했는지도 모릅니다.

손학규가 대표인 지금의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당이 아닙니다.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년 두 번의 선거에서 그 민주당과 어떻게든 연합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리고 “노무현 정신”을 실현해내야 하기 때문에 지금 통합된 진보정당이 필요합니다. 진보정당들이 통합하면, 민주당이 지금처럼 쉽게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현재의 민주당은 유력한 대권주자가 없는 불임정당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유시민과 이정희가 함께 싹틔우고 꽃피울 통합되고 대중화된 진보 정당, 그 길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그 길이 “노무현 정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고하고 올바른 길이라 믿습니다.

나만 진보다?

나만 진보다?

최근 몇 달 동안 진행되어 온 진보세력들의 통합 논의를 지켜보면 과연 이들을 진보세력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 5월 31일,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 최종합의문에 서명을 하고도 그 합의사항을 보란 듯이 팽개쳐 버리는 이들이 과연 진보세력일까?

진보라는 개념을 이념만을 가지고 재단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이념은 여러 가지 기준 중 단지 하나에 불과하며, 그 이념이라는 것이 고정불변도 아닐 뿐더러, 역사적으로 봤을 때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념을 손쉽게 배신했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열린 마음이고 겸손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다. 이런 덕목들이 결여된 사람들을 오직 이념이 좌편향되었다고 해서 진보세력이라 칭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고, 진보세력이 진보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이른바 노심조) 등으로 대표되는 진보신당의 일부 세력들은 진보통합의 검열자로 나섰다. 노심조가 슈퍼스타K2의 심사위원도 아닌데, 누가 진보인지 아닌지를 심사하고 있다. 특히, 유시민과 참여당에 대한 그들의 비토는 정상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해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보신당이 민노당과 분리되어 나갈 때, 그들은 한때 동지였던 민노당 당원들에게 “종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였었다. 민노당은 노심조가 뛰쳐 나간 뒤 강기갑, 이정희 의원이 대표를 맡으면서 오히려 건강한 진보로 탈바꿈하고 있다. 기존의 민노당의 문제는 종북좌파가 문제가 아니라 노심조로 상징되는 좌파기득권 세력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진보세력이 하나로 뭉치려는 움직임 속에서도 유독 진보신당의 노심조들만 유시민과 참여당을 비토하고 있다. 조직적 반성과 성찰을 하라는 둥, 반성에 진정성이 없다는 둥, 민노당과의 통합에 훼방을 놓지말라는 둥, 도무지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고 있다.

사실 정강정책만으로 진보신당, 민노당, 참여당을 비교하면 적어도 70~80%는 거의 동일하다. 진보신당은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사회주의라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것 같다)를 강조하고, 민노당은 자주를 중요시하며, 참여당은 노무현의 기본 철학인 원칙과 상식을 강조하는 것을 제외하면 세 당의 지향점은 거의 유사하다.

이런 객관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의 노심조들이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는 것은 그들의 열등감에 있다고 보여진다. 노심조는 노무현과 유시민이 인간적으로 싫은 것이다. 노무현의 후계자인 유시민이 싫은 것은 그들이 좌파 속에서 누리고 있던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의 열등감과 질투가 유시민과 참여당을 밀어내는 기본적 동기인 것이다.

이제는 그들의 어깃장을 들어줄 인내심도 바닥이 났고, 현실적으로 시간도 없다. 조만간 버스는 떠나야 한다. 진보신당의 노심조들이 유시민과 참여당과의 통합을 끝내 함께 할 수 없다면, 그들은 5.31 연석회의 합의문부터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결정은 진보신당 대의원 총투표를 통해 5.31 합의문을 부결시키고, 진보대통합의 전선에서 빠져야 한다. 짐작컨데, 진보신당 당원들도 노심조들의 편협함을 그다지 달가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이념만을 가지고 진보를 재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사람을 보아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 기회주의자들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기회주의자들을 솎아내지 않고는 진보가 진보할 수 없다.

지금은 열등감과 질투로 똘똘 뭉친 그리고 좌파 기득권만을 부여잡은 노심조들이 아니라 유연하고 건강한 진보로 거듭나고 있는 이정희와 유시민이 답이다. 이정희와 유시민을 중심으로 진보세력은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

열린 마음과 겸손이 결여된 좌파는 진보가 아니라 그냥 좌파일 뿐이다. 그것도 찌질이 좌파일 뿐이다.

슬픈 5월, 노무현을 가슴에 묻다

슬픈 5월, 노무현을 가슴에 묻다

5월은 푸르름이다. 산천초목이 새로운 생기를 얻어 푸르게 피어나는 계절. 5월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가장 슬픈 계절이기도 하다. 지독하게 아름다운 것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꼭 두해가 지났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잊혀지기 마련이라지만, 때로는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사진만 보아도,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글만 읽어보아도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인다. 그를 추모하는 전시회에 가서 울지 않으려 했지만, 때로는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불과 2년 사이에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졌다. 생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욕하고 비난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를 추모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삶과 죽음만큼 큰 간극을 보였다. 노무현을 탄핵으로 몰았던 민주당이 노무현의 맏상주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고, 노무현을 경포대라 비난했던 손학규가 민주당 대표가 되어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부르짖고 있다. 노무현 생전과 사후에 달라지지 않은 것은 여전히 이땅은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이라는 것이고, 노무현이 평가받는 이유는 단지 그가 죽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희망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너무 이른 얘기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쉽지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 노무현의 후계자라 불릴만한 유시민은 요즘 생전의 노무현 만큼 비난을 받고, 욕을 먹는다. 그 이유는 생전의 노무현이 욕을 먹었던 이유와 같다.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지 않고, 상식과 원칙, 정의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무현을 보좌했던 이들도 유시민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 노무현의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가시밭길인가를 알 수 있다. 노무현의 죽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일말의 연민을 느끼게 했지만, 그들의 비열함과 탐욕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유시민도 노무현 만큼 시달릴 것이고, 고통을 받을 것이고, 욕을 먹을 것이다. 하지만 유시민이 끝까지 노무현 정신을 놓지 않는다면, 노무현 지지자들은 유시민을 지켜야 한다.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 한번이면 족하다. 또다시 노무현 정신을 부여잡고 가는 이들을 노무현처럼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해마다 아름다운 5월이면, 광주와 노무현으로 세상은 슬픔에 잠길 것이다. 노무현을 가슴에 묻은 나는 해마다 5월이면, 그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리고 유시민을 통해 노무현의 부활을 꿈꿀 것이다.
울지 마라, 유시민

울지 마라, 유시민

간절함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어차피 가야 할 길, 쉽게 가면 좋으련만 애당초 쉬운 길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그 길은 가시밭이었고 돌밭이었기에 아무도 가려하지 않은 길이었다. 노무현이 그 길을 갔고, 이제 유시민 당신이 그 길을 따르겠다고 한 것 아닌가. 게다가 당신은 노무현이 못다 이룬 꿈까지 짊어지고 가겠다니 그 얼마나 고난의 길이겠는가.

당신은 최선을 다했고,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 뒤돌아 보면 아쉬움이 남을지라도, 당신의 선택 우리의 선택은 최선이었다. 간절함이 사무쳤지만 때가 되지 않은 것일 뿐. 옳은 선택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 길을 포기할 수는 없다. 노무현이 가고자 했던 길을 유시민 당신이 앞장서지 않으면 누가 앞장서겠는가. 운명이라면 운명인 것이다. 그것이 노무현을 따르고자 했던 당신의 운명이고, 노무현을 지지했던 나 같은 이름없는 지지자들의 운명인 것을.

노무현을 지지했고 여전히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잘난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그에게서 제대로 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였다. 모두들 눈 앞에 이익을 쫓아 달려가는 세상에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나선 그이를 보고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을 때 그 옆을 끝까지 지켰던 당신, 유시민. 이제 노무현이 떠난 세상에서 노무현의 부채를 탕감하겠다고 나선 당신.

강금원이 당신을 버리고, 이기명이 당신을 버리고, 이광재가 당신을 버리고, 서프라이즈가 당신을 버리고, 한때 노무현을 지지했다고 하던 이들 모두가 당신을 등진다 해도 나는 당신 곁에 남을 것이다.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당신을 일으켜 세우고, 당신과 비를 맞으면서, 노무현이 가고자 했던 그 길, 당신과 함께 갈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해타산을 따지지만, 오늘 나는 유시민 당신을 위로하고 싶다. 노무현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고 한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당신 곁에는 노무현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수많은 노무현들이 있고, 수많은 유시민들이 있다.

울지 마라, 유시민!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 말고, 미안해 하지도 마라. 오늘은 푹 쉬고, 새날이 밝으면 새날의 길을 가자. 그 길의 끝에서 우리들의 꿈이 영글고 있다. 노무현의 꿈이 영글고 있다.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동영상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동영상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라 자임하던 강금원 회장이 “유시민은 친노가 아니다”라고 독설을 날렸다. 그 이후 친노를 표방하는 인기 정치사이트 서프라이즈에서는 운영자 독고탁에 의해 유시민 지지자들의 글이 삭제당하고, 아이피가 차단되었다. 참 서글픈 일이다.

어떤 노빠(라고 얘기하는 자)들의 주장처럼 노무현 지지자와 유시민 지지자는 분리될 수 있을까? 노무현은 지지하는데, 유시민은 지지할 수 없는 그런 진짜 노빠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런 사람들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기 분열이고, 자기 모순이며, 결국에는 자신들이 진정 노무현 지지자가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강금원은 의리의 사나이였다. 그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후원하고, 노무현이 떠나고 난 뒤 그의 가족을 챙기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것처럼 그는 노무현을 목숨보다 소중히 생각했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런 그가,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라는 그가 노무현의 얼굴에 침을 뱉고 완장질을 시작했다.

그가 유시민에 대해 친노라 하든, 반노라 하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안된다. 개인적으로 유시민에게 서운한 것도 있을 것이고, 안타까워 한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시민을 친노라 하든, 반노라 하든 그것은 강금원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문제는 유시민에 대한 개인적 소회를 얘기할 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노무현 대통령을 끌어 들였다.

친노 정당인 국민참여당이 있는데 따로 연구소를 차린 까닭은 무엇인가?

국민참여당이 친노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친노 아니다. 어떻게 해서 유시민이 친노 핵심으로 분류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희정이도, (이)광재도 유시민을 친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시민이 어떻게 친노가 된 거냐고 물으니까, 노 대통령이 “유시민은 우리 편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 우리 편은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인정한다고 했다. 재임 중에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유시민은 우리와 그 무엇도 상의한 적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 대통령도 그런 면을 싫어했다. 남을 위해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는 곤란하다.

그래도 노 대통령과 유시민 전 장관의 관계는 김근태·정동영 전 장관과는 다르지 않나?

김근태·정동영과의 관계 이하라고 본다.

<“유시민이 친노라고? 이유를 모르겠다”, 시사IN>

여기서 강금원 회장한테 보여주고 싶은 동영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퇴임식이 있던 봉하에서 공개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유시민을 어떻게 대했는지 보여주는 그 동영상 말이다.

강금원이 개인적으로 유시민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알 바 아니다. 그리고 그 의견이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개인 의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마시라. 그건 영원한 친구인 노무현을 겉다르고 속다른 이중인격자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노무현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노무현은 공개적으로 유시민을 인정했다. 유시민은 노무현의 가신이나 부하가 아니라 노무현의 모든 가치를 물려받을, 그리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갈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때문에 유시민은 안희정, 이광재 하고는 다르다. 물론 강금원하고도 다르다.

만약 강금원 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유시민을 김근태나 정동영과의 관계 이하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노무현이 아니다. 나는 겉다르고 속다른 노무현을 알지 못한다. 그는 결벽증이 있을 만큼 수미가 일관된 삶을 산 사람이다.

강금원 회장에게 부탁한다. 자신의 의견을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입하지 마시라. 그것은 영원한 친구가 해야 할 도리는 아니다. 당신이 노무현 대통령의 가족에게 보이는 그 의리는 언제나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노무현을 사유화 하지는 마시라.

유시민이 노무현의 가치를 배신하지 않는 한, 노무현의 유산은 오로지 유시민이 떠안을 것이다. 그는 단심이 있고, 총명하며, 그리고 그 누구보다 노무현을 사랑한다. 유시민은 언제나 노무현을 지지했고, 노무현은 유시민의 손을 들어 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강금원의 의견이 아니고, 노무현의 삶과 의지이다.

죽은 친구의 이름에 침을 뱉는 사람은 영원한 친구가 아니다.

유시민, 기어이 희망을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유시민, 기어이 희망을 보여주겠다는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2000년 총선 때 부산에서 낙선하고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감동적인 말이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도 않아야 하지만, 밭을 잘 알기도 해야 한다. 밭을 잘 알아야 그 밭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계획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은 밭을 알아버렸다.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보름 전쯤에 나는 유시민에 대해 “희망을 주지 마라”라는 글을 썼다. 노무현 대통령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고, 나는 나를 포함하여 우리 국민들이 그런 수준의 정치인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이다. 우리 국민들은 자격이 없다. 유시민은 김진표와의 단일화를 통해 경기도 지사가 되겠다고 했다. 어쩌겠는가. 기어이 희망을 만들어보겠다는데야. 말은 희망을 주지 말라 했지만, 유시민 펀드에 가입하고 경기도에 사는 지인들에게 전화도 했다. 그리고 그는 극적으로 경기도 지사 선거의 야권 후보가 되었다. 물론, 김진표가 성숙하고 합리적이었기에 가능했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노무현, 유시민 같은 정치인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돈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 돈이란 것도 어차피 2% 정도의 강부자들이 가지는 것이지만, 대부분은 그 돈에, 그리고 아파트 값에 목을 매고 있다. 4대강 죽이기로 온 강산이 초토화되어도 이명박의 지지율은 50%가 넘고, 김문수, 오세훈은 유시민, 한명숙의 지지율을 넘어선다. 온갖 거짓이 난무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이 나라는 노무현 보다는 이명박이, 유시민 보다는 김문수가, 그리고 한명숙 보다는 오세훈이 더 어울리는 나라다. 부정할 수 있을까? 노무현을 그렇게 보내고도 부정할 수 있을까? 혹시 모르겠다. 서울시민들이, 경기도민들이 갑자기 정신 못차리고 한명숙, 유시민을 선택할 지도. 하지만, 그런 일이 진정 일어나겠는가? 민주주의가 밥먹여 주냐는 사람들 천지인데,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밭은 여전히 척박하고, 잡초들은 무성하다. 밭을 탓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역사든 국민 수준 만큼 간다. 유시민의 도전은 아름답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유시민, 더 이상 희망을 주지 말라

유시민, 더 이상 희망을 주지 말라

나는 노무현 지지자이다. 그리고 노무현이 거의 공식적으로 인정한 후계자, 유시민을 지지한다. 노무현과 유시민은 정말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훌륭한 정치인이다. 지지자들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그런 정치인이다.

유시민이 경기도 지사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난리가 났다. 수구, 보수, 진보할 것 없이 모두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유시민이 제2의 노무현임을 알고 있다. 그들은 다시는 제2의 노무현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노무현처럼 유시민은 죽어줘야 했다.

민주당은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장에 김민석을 내보냈다. 김민석이 누구인지는 초등학생도 알 것이다. 기회주의자의 대명사. 민주당은 과연 단일화를 하기 위해 김민석 같은 자를 협상장에 내보냈을까.

경기지사 김문수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유시민 밖에 없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그래도 상관없다. 민주당이나 야권은 차라리 김문수가 이기는 꼴은 봐도 유시민이 승리하는 것은 볼 수가 없다. 왜? 제2의 노무현이 나오면 안되니까.

나는 유시민이 출마를 접었으면 한다. 이유는 하나다. 더 이상 이런 나라에 노무현, 유시민 같은 정치인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 이런 국민들은 노무현이나 유시민 같은 정치인을 감당할 수가 없다. 유시민이 주는 희망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고문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제 그 희망을 거둬들여야 할 때이다.

이 나라는 노무현을 죽였다. 나는 그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가 노무현을 죽였다고. 이제 그 댓가를 치루고 있다. 아니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예수를 죽인 이스라엘 민족처럼 한 2천년 정도 고난을 받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유시민, 더 이상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말라. 노무현처럼 하겠다고 말하지 말라. 당신들은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나 대접받을 수 있는 정치인이다. 거짓과 탐욕으로 얼룩진 이 나라에서 당신들은 죽을 수 밖에 없다. 이 나라 국민들은 일말의 기대조차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아직은 절망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유시민이 나서지 않았으면 한다.

희망을 말하지 말라. 기대를 갖게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