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산다는 것

천년을 산다는 것

충북 영동에 가면 천태산이라는 빼어난 산이 있는데, 그 천태산 기슭에 영국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영국사 앞마당에는 천년된 은행나무 한 그루(천연기념물 제223호)가 당당히 서 있는데, 그 높이가 30미터가 넘는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그 은행나무는 나라의 큰 일이 생기면 소리 내어 운다고 한다.

그 나무는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을 지켜보며 자랐을 것이고, 이 땅의 희로애락을 모두 견디어내며 천년을 살아냈을 것이다. 천년의 슬픔과 천년의 한과 천년의 고단함이 가지가지마다 켜켜이 쌓여 있다. 그것을 견디고 버티면서 매일매일 새날을 맞이하는 그 모질고 질긴 생명력에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영국사에서 풍겨오는 보리수 꽃향기 속에 오늘도 그 나무는 천년을 하루같이 말없이 고독을 견디고 있다.

주산지의 가뭄

주산지의 가뭄

여름은 아무도 모르게 다가와 스며들었다. 정수리 위의 태양이 연일 뜨거운 볕을 내뿜었다. 지난 2주 동안 한방울의 비도 오지 않았다. 땅이 갈라지고 작물은 메말라 농민들의 속은 타들어갔다. 몇 년 전부터 6월의 장마는 자취를 감췄다. 기상청은 마른장마라고 얘기하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것을 장마라 일컫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삼백 년 동안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던 경북 청송의 주산지도 바닥을 드러냈다. 수백 년을 물 속에 잠겨 있었던 왕버들의 무수한 잔뿌리가 하염없이 말라갔다. 신비롭고 고혹스러웠던 주산지의 풍광이 옛모습을 잃었다.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인간들은 살 수가 없다.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온천지에 비를 내려달라고 빌어볼 요량이다. 그리하면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아 그 마음을 받아주시지 않을까. 주말에는 제법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다. 그 비로 대지의 메마름이 조금이나마 걷히길 빌어본다.

소년들은 쉬이 늙고

소년들은 쉬이 늙고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학문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년들은 쉬이 늙었다. 돌아보니 30년이 흘렀다. 30년 전에는 모두들 까까머리 소년들이었는데 이제는 삶의 무게 앞에 힘겨워하는 장년의 아재들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만 진학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세상은 대체로 비루하였고, 희망 따위는 너무 아득하여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 하루하루를 잘 버티고 견디어 30년을 살아냈으니, 그 소년들이 어찌 대견하다 하지 않겠는가. 소년들이여, 수고 많았다. 그대들의 고단함을 위로하며 박수를 보낸다.

이제 소년들은 그들이 비판했던 기성세대가 되었고, 꼰대가 되었다. 남은 삶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꾸역꾸역 건강하게 살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삶의 무게가 저절로 사라지는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세상에 태어난 이유

간밤에 내린 비로 나무에서 물비린내가 났다. 상쾌하고 촉촉한 6월의 아침, 딸아이가 생일 축하 카드를 보냈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상을 지배하는 궁극의 원리가 사랑임을 깨닫고 이 삶이 다하는 날까지 그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은 아닌지… 딸아이가 보내 준 카드가 문득 그것을 일깨운다.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딸아!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바둑이라는 게임에서 인간이 공식적으로 기계를 이길 수 없음이 증명되자,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한다.

데카르트는 이미 380년 전에 그의 책 <방법서설(Discourse on the Method)>에서 기계가 사람처럼 이성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분명히 하려고 했다. 즉 원숭이나 이성이 없는 다른 동물들과 똑같은 기관과 모양을 가진 기계가 있다면, 이 기계가 저 동물과 동일한 본성을 갖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어떠한 수단도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 신체와 비슷하고, 우리 행동을 가능한 한 흉내낼 수 있는 기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인간일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아주 확실한 두 가지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그 기계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우리 생각을 알게 할 때처럼, 말을 사용하거나 다른 기호를 조립하여 사용하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기계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나아가 그 기관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적 작용에 따라 어떤 말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질 수 있다. 가령 어디를 만지면 무슨 일이 일이냐고 묻는다든가, 혹은 다른 곳을 만지면 아픈 소리를 지른다든가 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그 기계는 자기 앞에서 말해지는 모든 의미에 대해 대답할 정도로 말들을 다양하게 정돈할 수 없지만, 아무리 우둔한 사람이라도 그런 것을 할 수 있다. 둘째는, 그 기계가 우리 못지 않게 혹은 종종 더 잘 많은 일을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무언가 다른 일에 있어서는 하지 못하는 일이 있으며, 이로부터 그 기계는 인식이나 이해가 아니라 기관의 배치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것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이성은 모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구인 반면에, 이 기계가 개별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에 필요한 개별적인 배치가 기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우리 이성이 우리에게 행동하게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삶의 모든 상황에서 행동하기에 충분한 다양한 배치가 한 기계 속에 있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I worked especially hard to show that if any such machines had the organs and outward shape of a monkey or of some other animal that doesn’t have reason, we couldn’t tell that they didn’t possess entirely the same nature as these animals; whereas if any such machines bore a resemblance to our bodies and imitated as many of our actions as was practically possible, we would still have two very sure signs that they were nevertheless not real men. (1) The first is that they could never use words or other constructed signs, as we do to declare our thoughts to others. We can easily conceive of a machine so constructed that it utters words, and even utters words that correspond to bodily actions that will cause a change in its organs (touch it in one spot and it asks ‘What do you mean?’, touch it in another and it cries out ‘That hurts!’, and so on); but not that such a machine should produce different sequences of words so as to give an appropriately meaningful answer to whatever is said in its presence—which is something that the dullest of men can do. (2) Secondly, even though such machines might do some things as well as we do them, or perhaps even better, they would be bound to fail in others; and that would show us that they weren’t acting through understanding but only from the disposition of their organs. For whereas reason is a universal instrument that can be used in all kinds of situations, these organs need some particular disposition for each particular action; hence it is practically impossible for a machine to have enough different organs to make it act in all the contingencies of life in the way our reason makes us act.

요즘 기계들은 사람처럼 말을 하고 사람의 말을 알아 듣는(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사람처럼 행동한다 해도 그것은 그렇게 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지, 그것들이 의미를 이해하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알파고가 이세돌이나 커제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램되었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바둑이라는 놀이가 역사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다.

인간의 특정 부분을 흉내낼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는 있지만, 인간과 같은 기계를 만들 수는 없다. 현재까지의 결론은 진정한 의미의 튜링 기계(인공지능)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시민일 뿐입니다

한 사람의 시민일 뿐입니다

I am not a client, a customer, nor a service user. I am not a shirker, a scrounger, a beggar nor a thief.

I am not a national insurance number, nor a blip on a screen. I paid my dues, never a penny short, and was proud to do so.

I don’t tug the forelock but look my neighbour in the eye. I don’t accept or seek charity.

My name is Daniel Blake, I am a man, not a dog. As such I demand my rights. I demand you treat me with respect.

I, Daniel Blake, am a citizen, nothing more, nothing less. Thank you.

<“I, Daniel Blake”, 2016>

개가 아닌 사람으로, 그것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존중받고 살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시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사람 사는 세상”이다. 소박하지만 아직은 원대한 꿈.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다니엘 블레이크일 뿐이다.

노무현입니다

노무현입니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하고 인사하며 악수하는 그의 뒷모습이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다. 그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었고, 그를 열렬히 지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여한은 없지만,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해 가슴 아프다. 영화를 보면서 그는 하늘이 주신 선물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늦게나마 많은 이들이 그를 다시 찾아 주어 마음이 놓인다.

보고 싶은 사람, 그리운 사람, 자랑스런 사람, 노무현. 하늘나라에서는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