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

인면수심

겨울답지 않게 며칠째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니 아니나 다를까 미세먼지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그 먼지들은 서해안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나온 것도 있고, 오래된 경유차의 배기구멍에서 나온 것도 있고, 중국 베이징에서 날아온 것도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찬 바람이 불지 않으면 겨울 하늘은 늘 잿빛이다.

어렸을 때부터 코치에게 폭행을 당하고 커서는 성폭행을 당한 여자 빙상 선수가 폭로를 하자, 유도에서도 몇 년 간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자 선수가 공개적으로 코치를 고발했다. 자신이 십수 년 간 가르쳐온 선수들을 때리고 성폭행을 할 수 있는 그 자들의 인면수심에 구역질이 났다. 세상에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널려 있다.

자유한국당이 5.18 광주민주항쟁 진상조사단에 추천한 조사위원 면면이 공개되었다. 물론 예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진상조사 위원이라기보다는 진상조사 방해 위원이라고 해야할 사람들을 추천해 놓고 희희낙낙하는 그들 역시 인면수심이긴 마찬가지다. 하기야 광주학살 책임자 전두환을 민주주의 아버지로 생각하는 자들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미세먼지 가득한 따뜻한 겨울보다는 차라리 살을 에는 추위라도 좋으니 차갑고 맑은 겨울 날이 훨씬 낫다. 차가운 북서풍이 불면 정신을 좀 차릴 수 있을까? 답답한 월요일이다.

탕수육의 추억

탕수육의 추억

어릴 적 장날이면, 어머니를 따라 장에 가곤 했다. 어머니는 며칠 동안 일용할 양식을 위해 이것저것 식재료를 구입하셨고, 그 뒤를 졸졸 따라 다닌 꼬마의 다리는 몹시도 아팠다.

장을 보고 난 후 어머니는 중국집에 들러 짜장면을 한 그릇 사주곤 하셨는데, 그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당시 짜장면 값이 150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벌써 40년도 더 된 옛날 일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이 이사를 하신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자식을 대처에서 가르치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중국 음식이라면 짜장면과 짬뽕 정도만 먹었던 시골 아이가 도시에 와서 처음으로 탕수육을 먹어 보았다. 그때의 맛을 역시 잊을 수가 없다.

고소하고 바삭하게 튀겨진 돼지고기가 달착지근하면서 시큼하고 끈적하고 느른한 소스에 버무려져 나왔는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른들을 따라 고추가루를 푼 간장에 찍어 먹었다. 달콤하고 시큼하고 짭잘한 돼지고기가 입 속에서 춤을 추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맛이라 당황했는데, 몇 번 먹다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런 음식도 있구나! 그때부터 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늘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었다. 30년도 더 된 옛날 일이다.

결혼하기 전 아내와 만날 때, 우리는 주로 탕수육을 먹었다. 탕수육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회사 근처의 탕수육 잘하는 중국집은 모두 섭렵하고 다녔을 정도였다. 20년도 더 된 옛날 일이다.

일요일 점심, 가족들과 함께 중국음식점에 가서 탕수육을 먹었다. 바삭한 고기와 새콤달콤한 소스가 따로 나왔다.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찍먹 탕수육이었다. 그 탕수육을 먹으면서 옛 기억이 떠올랐다. 세월이 흘러도 탕수육은 크게 변한 게 없었고, 식구들은 여전히 탕수육을 맛있게 먹었다.

진실을 바란다면

진실을 바란다면

“진심으로 진실을 바란다면 권력의 블랙홀을 피하고, 중심에서 떨어진 주변부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며 오랜 시간을 허비할 수 있어야 한다. 혁명적인 지식은 권력의 중심에서 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 왜냐하면 중심은 언제나 존재하는 지식을 토대로 구축되기 때문이다. 구질서의 수호자가 권력의 중심에 다가올 수 있는 자를 결정하는데, 이때 전통에서 벗어난 파괴적 사상을 가진 자는 걸러내는 경향이 있다.”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김영사, 2018, pp. 331-332.>

법 위의 기술자들

법 위의 기술자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평등권을 규정한다. 즉,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어떠한 사회 특권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당연하고 거룩한 가치이건만 이것은 단지 헌법 조항일 뿐이다.

대한민국에는 법 위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법을 만들고 법을 해석하고 법을 적용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 흔히 법조인이라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법조인은 법 위에 있다.

법관들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양심이 일반 국민 평균보다 낫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 계급의 특권을 지키는 데에 온 양심을 다 쏟는다.

전직 대법원장이 사법농단의 주범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 사건에서 일본 전범 기업을 대리한 변호사를 직무실에서 만나 재판을 코치했다. 일본 대법원장이 아니고 대한민국 대법원장이 말이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다.

법은 일반 국민들이나 지키는 것이고, 법 위의 기술자들은 그들의 양심(?)에 따라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법 앞에 있는 것은 국민이고 그들은 법 위에 있다.

한때는 검찰과 언론이 적폐의 끝판왕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해였다. 법관 앞에서 검찰과 언론은 적폐의 명함을 못 내밀고 있다. 적폐청산의 길은 정말 멀고도 험하다.

근거 없는 자신감?

근거 없는 자신감?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성과도 없는 경제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으려는 그 근거 없는 자신감(근자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캐물었다. 사실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아냥에 가까웠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질문을 커녕 두손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는 자들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정권이 바뀌자, 수준 낮은 질문과 비아냥으로 대통령을 조롱한다.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공범이나 앞잡이였던 자들이 민주 정부에서는 언론자유 수호의 첨병으로 변신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민주 정부에서도 머리를 조아려야 되냐며 되레 호통을 친다.

세상 좋아진 건 알겠는데, 조금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조금도 반성할 줄도 모르는 기레기들의 근자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국정 농단 당사자들보다 더 질이 좋지 않은 것은 쓰레기 언론이다. 이런 쓰레기 언론을 심판하지 않으면 적폐청산은 불가능하다.

일당 백만의 유시민

일당 백만의 유시민

어용지식인을 자처한 유시민의 유튜브 방송이 연일 화제다. 유시민의 알릴레오 방송을 중계하는 노무현재단의 구독자가 순식간에 50만명을 돌파했고, 그가 올린 알릴레오 영상의 조회 수가 200만을 넘었다.

작년부터 유튜브는 소위 보수라 불리는 세력(소보세)들이 점령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소보세들이 팟캐스트 여론에서 밀리자 유튜브를 선점했던 것이다. 소보세들은 가짜뉴스나 혐오 영상으로 혹세무민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유시민이 드디어 유튜브를 정복하기로 마음먹는다. 방송채널을 열고 겨우 2개의 영상을 올렸을 뿐인데 소보세 전체를 능가한다. 그를 보면 장판교에서 장팔사모로 조조의 백만 대군을 홀로 상대하는 장비가 떠오른다.

유시민은 제갈량의 머리와 장비의 용맹함을 지녔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실패를 염원하는 주류언론 전체와 가짜뉴스를 만들고 전파하는 소보세 전체를 홀로 상대한다. 일당 백이 아니라 일당 백만의 가공할만한 위력이라고 하겠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그의 차기 대선 출마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물론 그는 다시 선거에 나올 생각이 없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그는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 명민하고 재주가 많은 자유주의자다. 백척간두의 위기가 아니라면 그가 선수로 뛰지는 않을 것이다. 유시민의 지지자로서 그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소원대로 그는 낚시나 하면서 책을 쓰는 지식소매상으로 지내도 좋을 것 같다.

노무현을 잃고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그가 문재인을 보호하기 위해 어용지식인을 자처했다. 그리고 홀로 인터넷 여론전에 나섰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그와 같이 똑똑한 사람이 정의롭고 게다가 신의까지 있으니 이 어찌 축복이 아니겠는가. 유시민이 정치를 하든 하지 않든 언제 어디서나 그를 응원한다.

졸업식 풍경

졸업식 풍경

조카의 중학교 졸업식에 갔다가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 있는데,

  • 3학년 담임선생님들이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자선생님이었다. 조카에 말에 따르면, 조카가 다니는 중학교에는 80%가 여자선생님이란다.
  • 졸업장들을 받은 학생들이 모두 담임선생님에게 달려가 안겼다. 어떤 학생들은 졸업장을 수여하는 교장선생님과 셀카를 찍기도 했다.
  •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일일히 졸업장을 수여했다. 상장 수여는 거의 없었고 외부 귀빈들의 축사도 없었다.
  • 여학생들은 하나 같이 화장을 했는데, 입술에 바른 빨간 립스틱의 색깔이 모두 같았다. 남학생들은 거의가 버섯동자 머리를 하고 있는데 마치 붕어빵틀로 찍어낸 듯 비슷하게 보였다. 학생들의 80%는 롱패딩이라 불리는 검정색 긴 점퍼를 입고 있었다.
  • 교복을 찢거나 밀가루나 연탄재를 뿌리는 객기도 사라졌다. 학생들은 대체로 명랑했고 자유분방했다.
  • 예전에 불렀던 졸업식 노래는 사라졌고, 015B의 <이젠 안녕>이란 노래를 졸업생들이 같이 불렀다. 사실 이 노래도 아이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인 1991년 노래인데도 중학생들이 곧잘 따라 불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졸업식 풍경도 많이 변했다. 그 변화가 낯설기도 했지만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 같아 흐뭇했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진보하는 모양이다. 조카를 비롯해 오늘 졸업한 학생들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2019년 첫 산행

2019년 첫 산행

요즘 겨울 날씨는 추위와 미세먼지가 번갈아 나타나는 양상을 띤다. 추위도 한풀 꺽이고 공기도 좋은 날은 매우 드물다. 아침 기온 영하 6도. 날씨는 맑았고 모처럼 공기도 좋았다. 산에 가기 딱 좋은 날이다. 주머니에 물 한 병 찔러 넣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겨울산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아침 9시가 넘었는데도 해는 산 위로 솟아오르지 못했다. 나무들은 잎사귀를 모두 떨군 채 묵묵히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계곡 물은 바짝 얼었는데, 그 얼음 밑으로 졸졸졸 물이 흐른다. 푸른 하늘 위로 까마귀 몇 마리가 까악까악 울면서 날아간다. 이른 아침이라 인적은 드물었는데 저 앞에 노년의 부부가 손을 꼭 잡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당신들은 어쩌면 그렇게 금슬이 좋냐고 묻고 싶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단으로 바뀌어 있었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등산로가 패였고 나무 뿌리가 드러났다. 산을 보호하기 위해 구청에서 계단을 설치한 모양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계단길은 퍽퍽하고 재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산 정상까지 오르는데 한시간이 걸린다. 정상에는 삼국시대에 세워졌다는 성벽의 잔해가 널려 있다. 천 년 전 사람들은 그 산꼭대기에 돌로 성을 쌓았다. 그때도 겨울은 몹시 추웠을 것이고 산에는 눈도 많이 왔을 것인데, 그런 추위 속에서 돌성을 쌓았을 백성들의 노동이 처연했다.

어떤 사람들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산을 올랐고, 다른 사람들은 모형자동차를 몰면서 올라갔고, 몇몇은 개를 끌고 산에 왔다. 젊은이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산등성이에 기분좋게 번졌다. 올 겨울은 눈이 거의 오지 않아 하산길이 어렵지 않았다.

2시간 30분 동안 약 10킬로미터의 산길을 걷다가 내려왔다. 허기가 져서 점심으로 시래기 된장국을 한 사발 들이켰다. 기분 좋은 뻐근함이 온몸을 감쌌다.

최저임금 단상

최저임금 단상

지난 40년 간 지속된 신자유주의는 극심한 양극화를 남겼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고 주장했고, 시장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었다. 그들이 약속했던 낙수효과는 애초부터 사기였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때 모든 후보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했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조차도 임기 내 최저시급 1만원을 약속했다. 그랬던 그들이 문재인 정부가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을 1880원을 올리자 경제를 망친다며 생난리를 치고 있다.

조중동을 비롯한 주류언론과 야당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들먹이면서 최저임금 공약을 철회하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폐기하라고 연일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다. 언제부터 그들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 편이었을까.

최저임금의 인상은 극심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소극적인 정책이다. 말로는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사기다. 양극화 해소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증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고 그들의 처지를 개선하지 않고는 양극화 해소는 가능하지 않다.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도 역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다. 그들의 어려움은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상황을 을대을의 대결로 몰고 가는 것은 한마디로 후안무치다. 1인당 GDP가 3만불이 넘는 나라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이렇게 논란이 되는 것은 수준 낮은 언론과 정치인들 때문이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이 나라의 기득권층은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세상이 금방 바뀌는 건 아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는 말처럼 쉽지 않다. 일단 의회권력을 교체한 후 노무현 문재인 세력이 적어도 30년 정도 집권하면 그때는 적폐청산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