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하는 방법

명상하는 방법

고요히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환히 미소 지으며 인당(눈썹 사이)에 마음과 생각을 모으세요. 또 숨을 고요하고 부드럽게 쉬세요. 그리고 숨에 귀를 기울이세요. 이 명상을 틈틈이 매일매일 계속하면 정신의 빛이 자꾸 더 밝아집니다. 빛의 밀도가 높아져서 눈부시게 응어리집니다.

<자허, 숨 명상 깨달음, 다해, 2004, pp. 62>

상을 여읜다는 것

상을 여읜다는 것

상을 여의었다는 건 그 어떤 상에서든 다 벗어났다는 말이고, 어떤 상도 여읜다는 것은 세상 만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입니다. 나와 다른 삶의 방식, 나와 다른 의견과 주장, 나와 다른 종교와 신앙, 나와 다른 사랑의 방식도 모두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상을 여읜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게 옳다, 저게 옳다를 구별하는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늘 시시비비에 끌려 다닙니다. 또 자꾸 경계를 지어서 스스로를 답답하게 묶어 놓습니다. 화단에 피어 있는 꽃들을 보세요. 형형색색으로 예쁘게 피어 다른 꽃들의 아름다움을 시비하거나 경쟁하지 않습니다.

<법륜, 금강경 강의, 정토출판, 2012, p. 67>
별이 진다네

별이 진다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오늘도 별이 진다네
아름다운 나의 별 하나
별이 지면 하늘도 슬퍼
이렇게 비만 내리는 거야

나의 가슴 속에 젖어오는 그대 그리움만이
이 밤도 저 비 되어 나를 또 울리고
아름다웠던 우리 옛 일을 생각해 보면
나의 애타는 사랑 돌아올 것 같은데

나의 꿈은 사라져 가고
슬픔만이 깊어 가는데
나의 별은 사라져 가고
어둠만이 짙어 가는데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주고
보듬어 껴안아줄 일이다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해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너, 너무도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우산

우산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우산이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꿈이란
우산천과 같고,
계획은
우산살과 같고,
자신감은
우산손잡이와 같다.

용기란
천둥과 번개가 치는 벌판을 홀로 지나가는 일이요,
포기란
비에 젖는 것이 두려워 집안에 머무는 일이다.

행운이란
소나기가 쏟아지는데 서랍 속에서 우산을 발견하는 것이요,
불운이란
우산을 펼치기도 전에 비가 쏟아지는 것이다.

희망이란
거리에 나설 때쯤이면 비가 그칠 것이라고 믿는 것이요,
절망이란
폭우가 쏟아지는데 우산에 구멍이 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도전이란
2인용 우산을 만드는 일이요,
역경이란
바람에 우산이 젖혀지는 일이고,
지혜란
바람을 등지지 않고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사랑이란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는 것이요,
이별이란
하나의 우산 속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쓸쓸함이란
내가 우산을 씌워줄 사람이 없는 것이요,
외로움이란
나에게 우산을 씌워줄 사람이 없는 것이고,
고독이란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는 것이다.

그리움이란
비가 오라고 기우제를 지내는 일이요,
망각이란
비에 젖은 우산을 햇볕에 말려 창고에 보관하는 일이다.

실수란
우산을 잃어버리는 일이요,
잘못이란
우산을 잊어버리는 일이다.

분노는
자동우산과 같고,
인내란
수동우산과 같다.

지식은
3단 우산과 같고,
지혜는
2단 우산과 같으며,
겸손은
장우산과 같다.

부모란
아이의 우산이요,
자녀는
부모의 양산이다.

연인이란
비오는 날 우산속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요,
부부란
비오는 날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여행을 위해서는
새로 산 우산이 필요하고,
추억을 위해서는
오래 된 우산이 필요하다.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갈 줄 알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우산이 되어줄 때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양광모, 우산>

초능력과 마법의 주문

초능력과 마법의 주문

“17년 동안 승려로 살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17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매진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다산초당, 2022, pp. 7-8>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다산초당, 2022, p. 130>
오른쪽 뇌

오른쪽 뇌

오른쪽 뇌는 현재 순간의 풍요로움에 모든 걸 맞춘다. 삶에 대한 고마움,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득하다. 매사에 만족하고, 정이 많고, 넉넉히 끌어안고, 한결같이 낙관적이다. 우뇌의 성격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판단이 없으므로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바라본다. 현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정한다. [중략]

오른쪽 뇌에는 현재 순간 외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매 순간이 감각들로 채워진다. 출생이나 죽음은 현재 순간에 일어난다. 기쁨의 경험 역시 현재 순간에 일어난다. 우리 자신보다 거대한 존재를 지각하고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경험 또한 현재 순간에 일어난다. 우뇌에서는 ‘지금 이 순간(The Moment of Now)’만이 끝없이 계속 이어진다.

<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윌북, 2019, pp. 140-141>

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

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

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
미소를 머금고 두 손을 흔들고
오월 바람에 꽃잎 날리듯 가볍게
그러나 조금은 눈물겹게 그렇게

저리는 아쉬움 가득 하지만
기다림 속에 다가올 외로움들을
따사로운 축복의 말로 대신하며
우리 그렇게 헤어지기로 해

나 오늘 떠나는 그대를 이토록 사랑하지만
묻고 싶던 그 수많은 이야긴 가슴에 묻어 두고
나를 사랑했었다는 그 확인이나 어떤 다짐도 약속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지기로 해

나 오늘 떠나는 그대를 이토록 사랑하지만
묻고 싶던 그 수많은 이야긴 가슴에 묻어 두고
나를 사랑했었다는 그 확인이나 어떤 다짐도 약속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지기로 해

화사했던 오월의 어느 날
바람에 꽃잎 날리듯
가볍게 또 담담하게 음~~
우리 그렇게 헤어지기로 해

<동물원, 우리 이렇게 헤어지기로 해>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의 핵심은 현상계가 오직 생각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인데, 오히려 생각 너머의 세계까지 생각 안으로 끌고 와 버리는 것이다. 실상계는 현상계와 다른 차원에 있기에 현상계에서의 노력으로 현상계를 벗어나 실상계에 도달하는 일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현상계가 실상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온전히 이해함으로 이미 실상계에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없다거나 모른다고 하는 것은 생각의 한계와 오류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

<중략>

無我, 나는 없다.

지금껏 ‘나’라고 여겨왔던 것은 생각과 기억의 다발이다. 그것은 연기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들을 묶어서 自性을 가진 고정된 실체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독립된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

無知, 오직 모를 뿐이다.

현상계는 모두 생각으로 구성된 가상현실이다. 그 현상계의 본질인 실상의 세계, 생각 너머의 세계는 체험하거나 인식할 수가 없다. 생각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해 뭔가를 아는 것이 있다면 이미 생각이 작동된 것이다. 텅빈 無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 또는 저것이 있다고 인지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오직 모를 뿐이다. (생각을 통하지 않고 아는 것이 있는가를 묻는다면, 한 번의 숨을 길게 들이키고 내쉰 뒤 無知라고 대답하겠다.)

唯念, 생각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음 밖에 한 법도 없다.)

현상계는 모두 생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나, 우주, 가족, 사랑, 진리, 깨달음 등의 개념으로 표현되는 일체는 생각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그 생각의 작용을 벗어난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단어로 표현되는 모든 생각의 바깥 세계는 무념이다.

<김영식,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 어의운하, 2020, pp. 135-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