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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Poetry

아내와 나 사이

아내와 나 사이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이생진, 아내와 나 사이, 월간 《우리詩》, 2008>

순례자 나무

순례자 나무

나무는 천 년을 두고
걸어도 걸어도 그 자리,
길 떠난다

울타리 마구 넘는 탱자꽃
마을 돌담길 따라 멀리
길 떠난다

까투리 병아리
물자국 따라 하늘 낮게 지나고
날치며 끼어드는 천둥번개

잘가라 끄덕이는 코스모스
붉거나 희게 그리워지는
풍경 속으로

돔바르게 손 흐드는 단풍
눈보라 두동지게
되돌아온다

나무는 천 년을 두고
가도 가도 떠난 그 자리,
길 되돌아온다

<박종빈, 순례자 나무, 2021>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주고
보듬어 껴안아줄 일이다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해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너, 너무도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우산

우산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우산이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꿈이란
우산천과 같고,
계획은
우산살과 같고,
자신감은
우산손잡이와 같다.

용기란
천둥과 번개가 치는 벌판을 홀로 지나가는 일이요,
포기란
비에 젖는 것이 두려워 집안에 머무는 일이다.

행운이란
소나기가 쏟아지는데 서랍 속에서 우산을 발견하는 것이요,
불운이란
우산을 펼치기도 전에 비가 쏟아지는 것이다.

희망이란
거리에 나설 때쯤이면 비가 그칠 것이라고 믿는 것이요,
절망이란
폭우가 쏟아지는데 우산에 구멍이 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도전이란
2인용 우산을 만드는 일이요,
역경이란
바람에 우산이 젖혀지는 일이고,
지혜란
바람을 등지지 않고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사랑이란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는 것이요,
이별이란
하나의 우산 속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쓸쓸함이란
내가 우산을 씌워줄 사람이 없는 것이요,
외로움이란
나에게 우산을 씌워줄 사람이 없는 것이고,
고독이란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는 것이다.

그리움이란
비가 오라고 기우제를 지내는 일이요,
망각이란
비에 젖은 우산을 햇볕에 말려 창고에 보관하는 일이다.

실수란
우산을 잃어버리는 일이요,
잘못이란
우산을 잊어버리는 일이다.

분노는
자동우산과 같고,
인내란
수동우산과 같다.

지식은
3단 우산과 같고,
지혜는
2단 우산과 같으며,
겸손은
장우산과 같다.

부모란
아이의 우산이요,
자녀는
부모의 양산이다.

연인이란
비오는 날 우산속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요,
부부란
비오는 날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여행을 위해서는
새로 산 우산이 필요하고,
추억을 위해서는
오래 된 우산이 필요하다.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갈 줄 알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우산이 되어줄 때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양광모, 우산>
삶의 신념

삶의 신념

Don’t undermine your worth by comparing yourself with others. It is because we are different that each of us is special.

Don’t set your goals by what other people deem important. Only you know what is best for you.

Don’t take for granted the things closest to your heart. Cling to them as you would your life, for without them life is meaningless.

Don’t let life slip through your fingers by living in the past or in the future. By living one day at a time you live all days of your life.

Don’t give up when you still have something to give. Nothing is really over until the moment you stop trying.

Don’t be afraid to admit that you are less than perfect. It is this fragile thread that binds us to each other.

Don’t be afraid to encounter risks. It is by taking chances that we learn how to be brave.

Don’t shut love out of your life by saying it is impossible to find. The quickest way to lose love is to hold to it tightly, and the best way to keep love is to give it wings.

Don’t dismiss your dreams. To be without dreams is to be without hope, to be without hope is to be without purpose.

Don’t run through life so fast that you forget not only where you have been, but also where you are going. Life is not a race, but a journey to be savored each step of the way.

<Nancye Sims, A Creed To Live by>

잃어버림에 대하여

잃어버림에 대하여

지위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이 영혼을 잃어버리게 했다 허깨비 같은 명예를 위해 나무에게 말 건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나팔꽃이 필 때를 기다려 강둑길 걷던 시간이 사라지고 말았다 필요 이상의 돈을 위해 하늘을 언제 바라보았는지 기억도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건 우리들의 윤리라고 배웠다 잘못된 가르침이었다 지금이 아니고선 마주보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있던가 네가 사라지고 나서야 함께 바라본다는 것이 지상 최고의 감사임을 알았다 잃어버리고 살았던 모든 것들이 깊은 산 중 별이 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도복희, 잃어버림에 대하여>
별의 먼지

별의 먼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이름으로
당신이 온다 해도
나는 당신을 안다.
몇 세기가 우리를 갈라놓는다 해도
나는 당신을 느낄 수 있다.
지상의 모래와 별의 먼지 사이 어딘가
매번의 충돌과 생성을 통해
당신과 나의 파동이 울려퍼지고 있기에.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소유했던 것들과 기억들을 두고 간다.
사랑만이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
그것만이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우리가 가지고 가는 모든 것.

<랭 리아브, 별의 먼지, 류시화 옮김>

If you came to me with a face I have not seen,
with a name I have never heard, I would still know you.
Even if centuries separated us, I would still feel you.
Somewhere between the sand and the stardust,
through every collapse and creation,
there is a pulse that echoes of you and I.

When we leave this world,
we give up all our possessions and our memories.
Love is the only thing we take with us.
It is all we carry from one life to the next.

<Lang Leav, Stardust>

봄길

봄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봄길>
깨달음의 역설

깨달음의 역설

도를 깨닫고자 하면 도가 오히려 어지럽고

편안함을 구하고자 하면 도리어 편치 않다.

편안함도 깨달음도 없는 경지에 다다르면

그제야 이 일이 복잡하지 않음을 알게 되리.

情存見道還迷道

心要求安轉不安

安到無安見無見

方知此事勿多般

<원감 충지, 도안 장로에게 부치다(寄道安長老)>

선물

선물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나태주,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