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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Life

공동체와 갈등

공동체와 갈등

갈등은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할 만큼 중요합니다. 갈등을 없애거나 피하려고만 하는 태도는 마치 병의 근본 원인이 아닌 증상만 없애려는 것과 같습니다.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볼 때에야 갈등의 근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거울을 치우거나 거울 앞에서 도망친다고 해서 병이 나을 리 없지요. 모든 갈등은 예수님이 각자에게 주시는 질문입니다.

<이재영, 오두막, IVP, 2016, p. 247>

죽음을 알리는 신호

죽음을 알리는 신호

사람들은 죽기 직전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본인과 가족 모두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다.

– 2주 전: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다.

– 1주 전: 물도 삼키기 힘들어지고 걸을 수 없게 된다. 의식이 명료하지 않고 자는 시간이 길어진다.

– 6일 전: 환시, 환청이 생기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섬망 증상이 나타난다.

– 5일 전: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목에서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난다.

– 4일 전: 소변이 안 나오게 된다.

– 3일 전: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전혀 거동을 못하고 누워 지낸다.

– 2일 전: 불러도 반응이 없다.

– 1일 전: 몸에서 철이 녹슨 듯한 냄새가 난다.

– 한나절 전: 손발이 차가워지고 자줏빛으로 면한다. 혈압이 떨어진다.

– 임종: 호흡이 멈추고 온몸이 차가워진다.

<오가사와라 분유, 더 없이 홀가분한 죽음, 위즈덤하우스, 2018, p. 184>
후배들의 졸업

후배들의 졸업

오랫만에 모교를 방문하여 후배들의 졸업식을 보았다. 아들뻘 되는 아이들이 졸업을 하는데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았다. 졸업식은 무척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교장선생님은 축하 말씀을 끝낸 후 모든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일일히 수여하였다. 후배들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고, 선생님들은 졸업하는 아이들을 껴안아 주었다.

모교를 방문하여 인구절벽을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지금 졸업하는 아이들보다 내년에 졸업할 아이들의 숫자가 3분의1이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세월의 흐름과 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졸업하는 모든 후배들의 건승을 빌었다.

당구

당구

설 연휴에 부모님을 모시고 당구장에 갔다. 당구는 대학 다닐 때 처음 쳤는데, 졸업한 후에 당구를 친 적은 없다. 더구나 부모님을 모시고 당구장에 간 건 처음이었다. 요즘 아버지가 친구분들과 소일거리로 당구를 치시는데, 어머니는 호기심으로 아버지와 한 번 치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예전에는 당구장에서 담배를 많이 펴 공기가 안 좋았는데, 요즘은 흡연실이 따로 있어 당구장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당구를 치러 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 가족 중에는 아버지가 제일 안정된 기량을 보이셨다. 나머지 사람들은 당구를 처음 하거나 너무 오랫만에 하느 거라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다음에 가족이 모이면 다시 하기로 했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아 큰 부담 없이 한두시간 놀기에는 그만이다.

윷놀이와 더불어 당구가 가족 스포츠가 될 전망이다.

2019년 설날 가정 예배

2019년 설날 가정 예배

예전에는 유교식으로 차례와 제사를 지내다가 큰아버지가 교회 직분을 맡으신 이후로 제사 형식을 기독교 예배로 바꾸었다. 올해부터 연로하신 아버지 대신 가정 예배를 인도하기로 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제사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제사를 지낼 때의 마음가짐이다.

  1. 사도신경
  2. 찬송 (78장 참 아름다워라)
  3. 개회 기도
  4. 말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5. 기도
  6. 감사 묵념
  7. 찬송 (305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8. 주기도문

겨울비, 친구

겨울비, 친구

모처럼 겨울비가 촉촉히 내렸다. 매캐했던 미세먼지가 가라앉고 공기는 상쾌했다. 설 연휴, 고향에 내려온 친구들을 충북 영동에서 만났다. 생전 처음 와본 낯선 곳이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우리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으니 벌써 35년이 된 사이다. 그 긴 세월 동안 우리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꿋꿋이 버텨왔다. 언제나 한결 같은, 보석 같은 친구들이다. 이런 인연을 계속 이어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영동의 맛집은 몹시 붐볐다. 이런 시골에서도 맛집으로 방송을 타게 되면 어디선가 사람들이 몰려온다. 한참을 기다려 먹은 탕수육과 짜장면은 소문 만큼 엄청난 것은 아니었다. 그 맛집을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새로 생긴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우리들은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다들 이제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 어엿한 중산층이 되어 있었다. 한 녀석은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고 기러기 생활을 시작했고, 다른 녀석은 어린 아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삶을 누구에게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화장실에 가고…… 누구나 그런 삶을 산다. 차이는 그런 일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이다. 다들 지혜로운 녀석들이라 잘들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창 밖의 겨울비는 추적추적 소리 없이 내리고, 우리들은 또다른 만남을 기약했다.

더 많이 도와줄게

더 많이 도와줄게

좋은 남편들이 아내가 힘들 때 하는 말.

“내가 더 많이 도와줄게.”

남편들의 선의는 알겠는데, 이 말의 속뜻을 알게 되면 남편은 역시 남의 편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일을 도와준다는 것은 “그 일이 본래 당신 일이지만 마음씨 착한 내가 당신이 힘들지 않도록 협조하겠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일은 바로 그 일은 본래 당신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내의 집안 일을 돕는 남편은 언제나 착하고 좋은 남자들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대개의 남편들은 집안 일을 돕는다고 얘기하지, 그 집안 일이 자기 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내가 전업주부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맞벌이 부부인 경우에도 남편들은 집안 일을 돕는다고 얘기한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민음사, 2016>

이제 곧 설 명절이다. 명절증후군을 앓는 이 땅의 모든 아내와 며느리들을 치유하려면 남편들은 집안 일을 도와줄 것이 아니라 그 일이 바로 자신의 일임을, 자기가 해야할 일임을 깨달아야 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 생활은 바로 남편들의 정확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번 설에는 진실로 철든 남편들이 되시길 그리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주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주

우리는 20대 초반의 풋풋한 청년들로 처음 만났지. 어느덧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오십이 넘었네. 모두들 아저씨, 아줌마들이 되어 직장 문제에, 자식 교육에, 남들과도 같은 걱정을 나누며 하루를 보냈어. 1년에 한두 차례씩이라도 안부를 전하고 밥 한 끼라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다들 조용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사는 모습들이 보기 좋네, 그려.

돈, 명예, 출세가 다 부질없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네. 누군가 말했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주는 시골 이장 친구 사주라고. 아무 권력도 책임도 없지만, 이장 친구를 두어서 그럭저럭 좀 재미를 볼 수 있는 사주가 제일 좋다는 우스개 소리를 했지. 그런데 그게 맞는 말이야.

이제 헤어지면 여름에나 볼 수 있겠구먼. 그때까지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꾸역꾸역 살아보자구. 잘 가게, 친구들.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살다보면,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운명처럼 꼭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면 좋으련만,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일 수 밖에. 아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어차피 해야할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할 수도 있겠다.

2019년에는 원하지 않지만 꼭 해야할 일들이 몰려오고 있다. 받아들이고 즐기는 수밖에 다른 방도를 알지 못한다.

빈소

빈소

나이 어린 후배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업이 잘 된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실상은 아니었나 보다. 그가 짊어졌던 절망의 무게가 쓸쓸하고 안쓰러웠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선배는 초라한 변명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황망한 마음으로 빈소를 찾을 뿐이다.

영정 속 그의 모습은 꽃다운 청년이었다. 딸의 통곡 소리가 장례식장에 번졌다. 문상객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먼저 떠난 후배의 명복을 빌 뿐,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졌다. 다음 생에서는 부디 행복하길 빌어 보는데, 그것조차 부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