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을 수 없는 고통과 빽빽한 햇볕, 밀양 密陽

위로받을 수 없는 고통과 빽빽한 햇볕, 밀양 密陽

새끼를 잃은 어미는 (그것이 짐승이든 사람이든) 우~우~우~ 하고 운다. 그 끝이 없은 슬픔은 가슴을 파고 들어 뼛 속까지 침잠한다. 고통과 절망은 세포 속의 핵에까지 전달된다. 위로받을 수 없는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새끼를 잃어 본 어미들의 고통이다. 그것은 결코 잊혀질 수 없는, 타인에게 전이될 수도 없는 그런 아픔이다. 그리고 사내들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없는 어미가 되어 본 여자들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고통이다.

위로 받을 수 없는 고통 위로 빽빽한 햇볕이 내린다. 빛이 아니라 볕이다. 빛은 보는 것이지만 볕은 느끼는 것이다. 치유될 수 없는 슬픔이 빽빽한 햇볕과 씨줄 날줄로 엮여 나간다. 밖으로 나아가지 못한 아픔이 볕을 받아들인다. 고통이 볕과 함께 퇴적된다.

위로하지 말고 그냥 두어 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것이다. 슬픔과 고통이 볕과 함께 발효될 때까지. 그 때가 언제가 될 지 기약이 없지만 볕은 계속 빽빽하게 내려쬘 것이고, 삶은 지속될 것이다.

밀양(密陽)은 Secret Sunshine 이 아니고 Dense Sunshine 이다.

유시민을 향해 쏘다

유시민을 향해 쏘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후원한 정치인은 노무현이다. 5년 전 그 때는 돈도 못벌 때였고, 머나 먼 외국에서 힘겹게 생활하던 그런 때였다. 노무현의 주말 경선 드라마는 내가 일주일을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해 주었다. 시차 때문에 밤잠을 설쳐가면서 인터넷 중계를 통해 그의 사자후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태평양을 건너 나의 심장을 때렸다.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는가. 당장 비행기를 타고 달려가고 싶을 정도였으니. 없는 살림이었지만 그리고 몇 푼 안되는 거였지만 그에게 몇 달을 후원하기로 아내와 같이 마음먹었다.

노무현은 그 힘든 고난을 뚫고 기어이 우리의 꿈을 이루고야 말았다. 우리들의 희망이 그를 통해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얼마나 자랑스러웠던가. 척박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세계 정치사에 하나의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나는 단 한 순간도 그 때 나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대통령은 나의 기대대로 지난 5년간 최선을 다했고, 그에 대한 나의 투자는 수백배, 수천배로 되돌아왔다.

5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아직도 우리가 가고자 했던 길을 다 가지 못했다. 노무현과 함께 가고자 했던 그 길에서 우리를 이끌 새로운 길잡이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나는 유시민을 선택했고, 그가 12월에 대통령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오늘 첫 기념으로 그에게 후원금을 쐈다. 내 돈 받고 대통령 안된 사람 없었다. 우리들의 자발적 후원금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 복돈이자 실탄이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유시민을 중심으로 모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 정치사의 두 번째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다.

처음이 어려운 것이지 사실 두 번째는 그리 힘들지 않다. 지금 상대는 지난 번 상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후지지 않은가. 물론 거의 전체 언론이 그에게 줄을 섰기 때문에 쉬운 싸움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일당백의 자발적 지지자와 후원자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듯이 유시민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는 저 썩어 빠진 그리고 특권에 미쳐버린 언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강하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유시민과 함께 간다.

유시민을 아껴두고 싶었다

유시민을 아껴두고 싶었다

솔직히 이번 대선에서 유시민을 아껴두고 싶었다. 유시민처럼 젊고 유능하고 그리고 단심이 있는 정치인은 헌법 개정을 통해 한 8년 정도 국민의 공복으로 그리고 우리의 지도자로 부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이해찬 카드로 막을 수 있길 바랬다.

이성을 잃고 미쳐 돌아가는 언론들 때문에 상황이 정말 녹녹치 않다. 전직 청와대 고위 관료의 연애 사건을 정권 차원의 게이트로 몰고 가는 이 미친 언론들에 대해 정말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아무리 미운 참여정부라지만 어떻게 사람들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 연애 사건 (정말 연애 사건인지도 아직 확실치 않지만) 의 최대 피해자이자 유일하게 정죄할 수 있는 변씨의 부인 입장에서 단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 봤다면 언론들이 이렇게까지 미쳐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신정아가 아무리 학력을 속였다 해도 어떻게 누드 사진까지 게재할 수 있단 말인가. 사생활 침해도 이런 사생활 침해가 있을까. 그들에게 사람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로이 이해찬도 좋고, 한명숙도 좋다라고 얘기하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지금 우리에게는 Fighter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것도 가장 강력한 Fighter가 필요한 시점이 되어 버렸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90%의 언론이 미쳐 돌아가는 것을. 이제 이 분위기를 확 뒤집을 수 있는 내공이 있는 사람이 나서야 될 시점이다.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이 미쳐 날뛰는 언론들을 제대로 개혁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하여 나는 이번 대선에서 유시민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능력으로 따지면 이해찬만한 이가 없고, 온화한 포용력으로 따지면 한명숙을 따라갈 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 상황을 확실히 돌파할 수 있는 용기와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그 단심이다. 유시민이 이번 주말 울산에서 시작되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5년 전 노무현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듯이 그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유시민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가. 때로는 분노에 이글거리고 때로는 환희에 감격해 하는 단 한 번도 광채를 잃지 않는 그 형형한 눈빛.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만하다. 저 쓰레기 언론들을 개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언론들을 청소하지 않고는 이제 우리나라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경제 문제, 남북 문제, 교육 문제, 정치 문제 등등 모든 분야에서 단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고 싶다면 이 언론의 탈을 쓴 쓰레기들을 청소해야 한다.

정말 이번에는 아껴두고 싶었지만, 할 수 없다. 세상이 당신을 필요로 하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노무현이 시작한 개혁의 역사를 유시민이 이어갈 것이다. 김대중이 시작한 남북화해를 유시민이 평화정착으로 통일의 기틀을 다질 것이다. 어디 이명박 따위가 비교나 된단 말인가.

5년전 노무현이 단 한 장의 필승 카드였듯이, 지금의 필승카드는 유시민이다. 그가 새로운 역사를 써 낼 것이다.

법원의 창의력에 경의를 표하며

법원의 창의력에 경의를 표하며

오래된 얘기지만, 아버지는 내가 판검사가 되길 원하셨다. 그 시대 분들의 공통된 염원이기도 했지만, 아들들이 공부 꽤나 하는 것 같으면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를 봐서 판검사가 되길 바라신 분들이 많았다. 그것이 그 시절 신분 상승과 출세의 지름길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아버지의 그런 바람을 거슬렀다. 사회 물정을 모르던 어린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판단하여 잘잘못을 가린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면에서 결벽증이 있었다. 더구다나 그 많은 법조문들을 외우고, 그 법으로 다른 이들의 행위를 재단하는 것이 재미없게 보였으며, 고리타분해 보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법조인에 대한 나의 이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법조인들은 절대 고리타분하지도 않고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내가 느낀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이 보여준 상상력과 창의력이 우리 사회 특권층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만 발휘된다는 사실이 참담할 뿐이었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든지 “사회의 정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라든지 하는 퀘퀘묵은 언명들이 쓰레기통에 쳐박힌지는 너무나 오래되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는 명판결은 모든 성공한 범죄를 처벌할 수 없게 만들 정도로 법치주의를 유린했지만 그들은 희희낙낙할 뿐이었다. “서울은 경국대전에 수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수도를 옮길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판결한 그들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만 있을 뿐이었다. 수백억의 회사돈을 횡령하고 회사에 수천억의 손실을 입혀 유죄가 선고되었지만 나라의 경제를 생각해서 사회봉사 명령을 내리는 그들의 애국심이 눈물겨울 뿐이었다.

법원이 재벌의 “유전무죄”를 위해 발휘한 창의력에 대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법원을 빠져나오면서 웃음을 지었다. 우리나라에서 감히 재벌을 처벌하려 하다니, 재벌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데 말이야, 안 그래?

나 같은 일반인들은 탈세나 배임, 횡령 같은 경제 범죄를 더욱 확실하게 처벌해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상식적인 생각을 하지만, 우리의 자랑스런 판사님들은 나라의 경제를 위해서 재벌 그룹 회장들의 그런 범죄는 눈감아 주거나 눈감아 줄 수 없을 때는 강연이나 신문 기고 같은 엄청난 사회 봉사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상상력인가.

(물론 될 수도 없었겠지만) 내가 법조인의 길을 택하지 않은 건 정말 현명한 판단이었다. 저렇게 소설가를 능가하는 창의력으로 법을 만들고 유린하는 그들과 같은 법조인이 되었다면 너무나 부끄러워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상상력이라면 아예 젬병이 아니든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대한민국의 판검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유전무죄”의 깃발 아래 최고의 상상력을 발휘하시라.

다음 대통령은 유명찬이다

다음 대통령은 유명찬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경선 예선 결과가 발표되었다. 예상대로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이 다섯 명의 후보로 압축되었다. 초등학생들도 아는 것이겠만, 손학규, 정동영의 본선 경쟁력은 말 그대로 제로다. 손학규는 한나라당 경선도 포기하고 나온 인물이다. 그는 도저히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이길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이 본선에서 이명박과 맞붙었을 때는 그냥 백전백패다. 아무리 개인적인 자질이 손학규가 낫다할지라도, 아무리 이명박이 인간 쓰레기라 할지라도 손학규는 이명박을 이길 수 없다. 한나라당의 예선조차 포기하고 나온 자가 어떻게 본선을 노릴 수 있단 말인가.

정동영 또한 마찬가지다. 이 뺀질뺀질한 정치인은 그의 전매 특허인 “실용” 노선으로 열린우리당을 말아먹은 장본인이다. 아직 그가 장악하고 있는 조직이 있어 어찌어찌 예선은 통과했지만 그도 역시 손학규와 마찬가지로 이명박을 이길 수 없다. 반한나라당 세력의 최대 주주인 노무현 대통령과 척을 지고는 한나라당과 싸워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유치원생들의 셈법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는 누가 될 것인가? 손학규, 정동영을 뺀 나머지 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들은 세 사람이지만 결국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유시민, 한명숙, 이해찬 이 세 사람은 “유명찬”으로 변신 합체할 것이다. 누구로 단일화되든지 상관 없다. 이 셋이 힘을 모으면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는 물론 한나라당의 이명박도 이길 수 있다. 이 세 사람이라면 노무현 정부 이후의 우리나라를 맡겨도 될 만하다.

이 세 사람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철학과 정책을 고스란히 이어 받아 우리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을 것이다.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다음 정부에서는 통일의 기초가 다져질 것이다. 사회투자가 활성화되고 경제의 양극화 문제도 가닥을 잡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더욱 공고해 질 것이며, 상식과 원칙을 지켜지는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언론 개혁 또한 과감히 추진할 것이다. 어디 이명박 따위가 비교라도 된단 말인가.

유시민, 한명숙, 이해찬이라면 해낼 수 있다. 그들이 살아온 인생의 궤적과 그들이 해온 정치와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알기에 나는 이번 대선에서 유명찬을 지지한다. 국민들은 2002년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유명찬이다.

노무현이 위대한 이유

노무현이 위대한 이유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절실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경제 문제, 양극화 문제, 신자유주의 문제 들을 말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정치 개혁을 말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환경과 복지 문제 들을 얘기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 나가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이 문제들이 잘 풀리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언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 사회의 근본 모순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그 엄청난 언론 권력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언론 독재 시대이다. 군부 독재 시절, 부패한 독재 권력에 빌붙어 기생했던 그 언론들이 민주 정부 10년째인 지금 민주화의 열매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 무임승차도 이런 무임승차가 있을까. 무임승차만도 염치없을 일일텐데, 이제 독재 권력이 사라진 자리를 그 염치없는 언론들이 꿰차고 들어섰다. 선출된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조차도 그 언론들의 횡포에 다구리를 당하는 세상이니 일반 국민들이야 오죽할까.

전두환이 언론통폐합을 할 때 꼬리내리고 숨죽이고 있던, 그리고 그 앞에서 딸랑이를 흔들었던 이들이 기자실 통폐합에는 언론 탄압이라며 난리를 치고 있다. 40여개 언론사 편집국장들까지 단체 행동에 나섰으니 그들의 특권의식이 뼈 속까지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론 권력은 이미 정치 권력을 넘어섰다. 지금 언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단은 대통령이나 정치 집단이 아니다. 다만, 자본과 언론 사주들 뿐이다. 지금의 언론들은 스스로 권력이 되었으며 스스로 정치 권력도 창출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러한 특권 의식은 비단 수구 언론들 뿐만 아니다. 자칭 진보라는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조중동이 이명박 캠프의 총사령탑이고 오마이뉴스가 문국현의 나팔수가 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이러한 언론들의 가장 큰 폐해는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상식과 가치를 전도시킨다는 데에 있다. 자기들의 이익과 맞지 않을 경우에는 그것이 아무리 옳은 방향의 의견이나 정책이라 할지라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무력화시킨다.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이명박의 온갖 비리 의혹에는 눈 감으면서 대통령은 처 20촌까지 뒤지는 자들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는 말도 안되는 이데올로기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여론을 조작한다. 어떻게 이명박 같은 이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는 나라가 됐단 말인가. 음주 운전 기록만 있어도 고위공직자로 임명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위장 전입을 비롯해서 부동산 문제, 주가 조작 문제, 세금 문제 등등 수없는 비리로 얼룩진 자는 언론들의 비호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자의 주민등록초본을 떼어 본 사람들은 줄줄이 구속이 되고.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있는가.

우리나라의 현대 정치사에서 언론을 탄압한 권력자들은 몇 있었어도 언론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운 정치인은 오직 노무현이 유일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마지막 과제로 언론 개혁을 빼들었다. 그들이 “언론 자유”이라는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니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힘들고 괴로울 것이다. 기자실 없애는 것 하나도 (이것은 상당히 지엽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엄청난 저항에 맞부딪히고 있지 않은가. 대통령은 말한다.

언론들이 사실은 제가 보기에 상당히 막강한 특권들을 누리고 있더라는 것이죠. 심지어 인사에 대해서도 발언할 만큼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근거가 되는 제도들 몇 가지를 끊어버린 것이죠. 그때 기자실을 폐지시켰습니다. 그런데 다 폐지된 줄 있었는데 몇 년 지나고 보니까 아직 그루터기가 남아 있어요.

[중략]

자기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는 어떻게 하냐, 그래도 그 공론의 장에 모두를 다 올려놓고 공정하게 뛰게 해줘야 합니다. 그럼 노무현 하고 싶은 얘기도 실어줘야 될 것 아닙니까? 전 세계에서 기자실을 운영을 하고 있는 나라가 과연 몇 개국이나 되며, 그 기자실에 대한 선진국 기자들의 평가는 어떻게 나와 있으며, 사무실 출입에 대한 원칙은 어떻게 돼 있으며, 기자가 공무원을 인터뷰하려고 할 때 거치는 절차가 어떻게 돼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주장하는 문제에 대해서 같이 내놓고 같이 갑론을박하고 이해 관계가 없는 제3자 그리고 이 사회의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판단하게 해줘야 될 것 아닙니까. 전혀 안 합니다. 그들의 사유물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디 가서라도 이 말을 해야겠는데 말할 데가 없습니다. 이 말이 보도가 될까요.

[중략]

저는 소신대로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소위 개혁을 하려고 했고, 서로 공생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니까 옛날에는 편을 갈라서 싸우던 언론이 저한테 대해서는 전체가 다 적이 돼버렸어요. 매우 중요한 얘기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PD연합회 20주년 축사>

정말 많은 일을 해결한 노무현 정부가 이제 언론 독재에 맞섰다.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을 일삼아 우리 사회 정상적인 여론이 공론화되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상식과 가치를 전도시키는 쓰레기 언론들을 청소하지 않고 우리는 이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에 언론 개혁없이는 정치 개혁, 양극화, 교육 문제 등의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토론과 정책을 수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과 대언론 정책을 지지한다. 노무현만이 해 낼 수 있는 일이다.

다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모든 후보들 (이명박 빼고) 은 자기들의 언론관과 언론 정책을 밝혀야 한다. 특히 민주신당의 후보들과 독자 출마를 선언한 문국현 후보는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다. 언론에 대한 견해가 후보들의 옥석을 가르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노무현의 철학과 정책을 계승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이런 언론을 견디느니 차라리 탈레반을 견디겠다

이런 언론을 견디느니 차라리 탈레반을 견디겠다

아프간 피랍 사태가 정부의 노력으로 잘 마무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언론이 한마디씩 토를 달고 있다. 휴가까지 반납하며 사태해결을 위해 노심초사한 대통령과 공무원들의 노력에는 애써 눈을 감으면서 말도 안되는 논리와 프레임으로 정부를 공격한다.

자, 수구 보수 신문들부터 보자.

“국제사회 원칙을 지키기보다 발등의 불 끄기에 급급한 인상을 남겼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책임 연구원은 29일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수습하면서 외교적 손익을 따져볼 때 한국은 국제적 신뢰와 국격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인질은 석방됐지만 ‘비싼 수업료’ 지불, 중앙일보]

납치가 일어난 지역의 정부를 제쳐둔 채 납치범과 직접 협상을 벌인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앞으로 여러 나라가 무장세력에 항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독일 슈피겔은 “납치를 부추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인질 구했지만 납치 근본 해결 못해, 동아일보]

“광(光) 나는 것은 청와대가, 껄끄러운 것은 외교통상부가 발표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억류 중인 한국인 인질 19명의 전격 석방합의 사실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 명의로 발표된 배경을 놓고 대선을 겨냥한 ‘생색내기’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생은 외교부가 하고 생색은 청와대가?, 서울경제]

납치된 사람들을 구해 오니, 이제 한다는 소리가 국제 사회의 원칙을 못지켜 국격에 상처를 받았단다. 직접 협상을 벌인 것이 잘못이라고 한다. 정말 어이없지 않은가.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테러 집단과 직접 협상을 하지 않으면서 납치된 사람들을 전원 무사히 구해왔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아프간 정부나 미국은 탈레반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뒷짐만 지고 있는 형국에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직접 협상” 말고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만약 매일 한 사람씩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국제적 관행을 지키기 위해 탈레반과 직접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경우 이 쓰레기 언론들은 직접 협상하라고 매일 정부를 다그쳤을 것이다.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국제적 원칙이 무슨 소용이냐고 하면서.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더욱 웃긴 것은 인질 석방 발표를 청와대가 했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대선을 겨냥한 “생색 내기”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의 잘난 언론들은 구제 불능이다. 이들은 예수나 부처가 와도 구제가 안되는 족속들이다.

그렇다면 자칭 진보 언론들의 보도는 또 어떨까. 오마이뉴스의 윤똑똑이 손석춘이 또 나섰다.

고 김선일이 참혹하게 숨졌을 때 경고했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남은 인질이 모두 풀려나기로 합의된 오늘, 거듭 진지하게 당부한다. 이라크에서는 자주적 결정으로 철군해야 옳다. 그것이 또 다른 참극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침략전쟁 파병으로 추락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스스로 높일 길이다.

[인질 석방을 환호만 할 수 없는 까닭, 오마이뉴스]

손석춘은 이 납치사건이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은데, 그것은 아니다. 이번 납치 건은 아프가니스탄 파병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파병을 안 했더라도 샘물교회의 단기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봉사라는 이름의 선교 활동을 했다면 역시 납치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의 책임은 파병을 한 정부가 아니라 정부의 만류에도 굳이 아프가니스탄 선교를 떠난 교회 측에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아니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원해서 이라크에 파병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억측일 뿐이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한겨레 또한 사설에서 횡설수설하면서 결론은 이라크 철군이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려면 무엇보다 명분 있는 외교가 전제돼야 한다. 사실 한국은 아프간에 지금까지 군 병력을 남겨놓을 이유가 없었다. 이라크 파병도 처음부터 명분이 없었다. 정부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이번 사태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비상시의 외교력은 평소의 외교 행태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마련이다. 한국 외교는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한국 외교 현주소 보여준 아프간 인질 사태, 한겨레]

정부의 노력과 성과를 흔쾌히 칭찬하지 못하고 어떤 식으로든 흠짓 내려하는 한국의 언론들. 그들에게는 기자실이라는 떡고물이 더 중요하겠지. 탈레반보다도 더 극악스러워 보이는 언론들이다. 아, 정말 이런 언론들을 견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프간 사태 해결의 최고 공로자는 ‘한국 언론’

아프간 사태 해결의 최고 공로자는 ‘한국 언론’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사람들이 모두 풀려났다. 경위야 어찌되었든 일단 큰 희생없이 사건이 마무리된 것은 잘 된 일이다. 40여일 간 납치되었던 사람들도 삶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과 종교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 사건은 그들에게 내린 하늘의 선물일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들은 좀 더 겸손하고 다른 종교를 존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을테니. 뭐, 아니면 말고.

많은 국민들은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들인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시했던 우리 정부는 “테러 집단과의 직접 협상”이라는 꺼림칙한 전술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제 사회의 비난의 목소리를 각오하고 “철 없는”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정부가 보여준 헌신적인 노력은 평가받고, 칭찬받아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 해결의 숨은 공로자는 따로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그 잘난 언론들이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단 한 명의 기자도 사건의 현장인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 정부 요청을 받은 아프간 정부가 비자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한국의 기자들이 아프가니스탄에 가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것은 사태 해결에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

연합뉴스 발로 한겨레에 보도된 기사는 아프간 사태의 최대 희생자는 ‘한국 언론’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그것은 언론들의 입장이고, 피랍자나 그들의 가족, 국민의 입장에서 우리나라 언론들이 직접 아프간 땅을 밟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그들이 아프간에 가서 쏟아냈을 법한 그 어마어마한 가공의 왜곡 기사들만 상상하면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당장 사태 해결이 된 후언론들이 내놓는 기사들을 보라.

정부 초기대응 미숙… “희생 불렀다” [YTN]

외교적 개가인가 … 테러집단과 타협인가 [중앙일보]

‘이면합의’ 있나 [연합뉴스]

탈레반 ‘몸값’ 포기했을까? [연합뉴스]

한국 외교 ‘반성과 새출발’ 계기 [연합뉴스]

이런 언론들이 협상이 진행되는 아프간 현지에 가서 직접 취재한답시고 협상팀을 비아냥대는 추측성 기사를 마구 쏟아냈다면 아마 대부분의 피랍자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열받은 탈레반이 기자들까지 납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과 기자들이 보인 그 자제력에 나는 고개 숙인다. 당신들의 그런 노력이 21명의 목숨을 건진거나 다름 없다. 당신들이 맨날 “무능”하다고 욕하는 참여정부는 당신들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해결한다.

그냥 외신들 (비록 오보라도) 받아쓰기나 하면서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 당신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대통령 후보는 기획 상품이 아니다

오마이뉴스, 대통령 후보는 기획 상품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의 언론들 (물론 대부분은 쓰레기이지만) 은 대통령 선거라는 게임에 감독으로 데뷰하기 시작했다. 조중동이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것이야 다들 아는 사실이고, 이번 대선에서도 이명박을 적극 밀고 있다. 아니 그냥 미는 정도가 아니고, 거의 일거수일투족을 코치하고 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제 소위 진보 언론이라는 오마이뉴스까지 가세하고 있다. 물론 오마이뉴스가 미는 문국현이라는 인물은 이명박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인생을 가진 인물이다. 인정한다. 그가 가슴 따뜻한 성공한 경영자라는 것 인정한다. 오마이뉴스의 정치적인 노선이 문국현과 같다면 문국현 지지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보이는 행태는 도가 지나쳤다. 지난 주부터 연일 문국현 기사를 탑에 올려 놓고 문국현 띄우기를 기획적으로 하고 있다.

처음 한두번이야 뭐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갔지만, 이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지금 보이는 오마이뉴스의 행태는 조중동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거울을 마주 보고 있는 쌍둥이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 오마이뉴스 편집국은 이런 식의 행위가 문국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그들의 수준은 조중동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지향이 좀 다를 뿐이지.

지금 오마이뉴스는 이수만의 SM 사단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왜 언론이 대선 후보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매니저가 아니라면 문국현 캠프의 기관지라도 된단 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문국현을 팔아 장사를 하자는 것인가?

우리나라 언론들이 비겁한 이유는 할 짓들은 다 하면서 정작 지지선언은 안 한다는 것이다. 대선이 가까워오면 미국의 언론들은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지 다 밝힌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대선이 개입하는 일은 없다. 다만 철저한 검증과 사실 보도를 통해 유권자들의 판단을 도울 뿐이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겉으로는 중립인 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각 캠프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이것이 언론의 자세인가? 그럴거면 차라리 공개적으로 본색을 밝히기라도 하든지.

오마이뉴스는 문국현을 제 2의 노무현으로 만들어 보려 하는 모양이다. 내 단언하지만 문풍은 없다. 문국현은 지금의 수준으로는 노무현을 쫓아갈 수 없다. 그는 아직 용기를 보여주지 못했고,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노무현이 2002년 단지 경선에서 이겨 노풍을 만든 것이라고 보는가? 아니다. 그런 노무현이 되기까지 그에게는 10년 이상의 도전과 좌절이 있었다. 그런 토대 위에서 2002년 노풍이 생겨난 것이다.

문국현이 단지 두어 달만에 노무현의 경지에 오르려는 것은 과욕이다. 마치 유치원생이 대입 수능을 보는 꼴이라고나 할까. 문국현이 훌륭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아니다. 그의 최선의 전략은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팀에 들어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초심을 많이 잃었다. 지금은 조중동의 또다른 인터넷 버전으로 퇴락하고 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대통령은 기획 상품처럼 두달만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신차리시게. 오마이뉴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한 법인 걸 아직도 모르시겠나. 그냥 문국현을 가만 놔두라구.

난생 처음 박사모의 눈물에 공감하다

난생 처음 박사모의 눈물에 공감하다

이미 지난 일이고 별 관심도 없는 일이긴 하지만,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의 승자는 이명박이 아닌 박근혜다. 박근혜는 세간의 예상과는 달리 당원 투표에서 신승했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뒤져 이명박에게 후보 자리를 넘길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여론조사가 이번 경선의 승자를 결정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경선은 민주주의 형식을 빌어 당원 투표를 했지만 결정은 여론조사가 했다. 여론조사가 민주주의의 절차를 뒤집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과학의 이름을 빈 사기”라 할 수 있다. 설문조사를 단 한 번만 해 본 사람은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설문의 문항을 어떻게 만들고, 순서를 어떻게 하고, 표본을 어떻게 추출하고, 응답률을 어떻게 조정하고, 빠진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고, 데이터 분석에 어떤 기법을 사용하는가 등등 사실 단계단계마다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표본 추출 방법, 표본 오차 해석, 응답률 등을 무시한 여론조사 결과로 한 정당의 대선 후보를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이것은 여론조사 업체가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꼴이다. 한나라당의 정당 민주주의는 결국 여론조사 업체 선정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만약 박근혜가 조금만 더 똑똑했더라면 아니 박근혜 진영의 어떤 인사라도 여론조사의 맹점을 알고 있었더라면 이번 경선의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숫자가 뿜어내는 객관이라는 마력에 사로잡혀 여론조사의 포로들이 되버린 정치인들. 그냥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 그것도 대부분은 정확하지 않은 숫자일 뿐이다.

때문에 박사모의 식을 줄 모르는 분노가 지극히 정당해 보이며, 난생 처음으로 그들의 눈물에 공감하고 말았다. 이번 한나라당의 여론조사에 의한 경선 결과는 개혁진영에 있어서는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보다는 이명박이 훨씬 상대하기 쉽지 않나.

여론조사는 그냥 한 순간의 경향을 파악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절대 맹신해서는 안된다. 여론조사의 결과로 한 정당의 후보를 뽑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고도 무식한 짓이다. 이런 행위는 이번 한나라당의 경선으로 끝내야 한다.

두 번이나 대선에 실패하고도 한나라당의 자업자득은 계속되고 있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