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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겨울

인면수심

인면수심

겨울답지 않게 며칠째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니 아니나 다를까 미세먼지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그 먼지들은 서해안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나온 것도 있고, 오래된 경유차의 배기구멍에서 나온 것도 있고, 중국 베이징에서 날아온 것도 있었다. 시베리아에서 찬 바람이 불지 않으면 겨울 하늘은 늘 잿빛이다.

어렸을 때부터 코치에게 폭행을 당하고 커서는 성폭행을 당한 여자 빙상 선수가 폭로를 하자, 유도에서도 몇 년 간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자 선수가 공개적으로 코치를 고발했다. 자신이 십수 년 간 가르쳐온 선수들을 때리고 성폭행을 할 수 있는 그 자들의 인면수심에 구역질이 났다. 세상에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널려 있다.

자유한국당이 5.18 광주민주항쟁 진상조사단에 추천한 조사위원 면면이 공개되었다. 물론 예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진상조사 위원이라기보다는 진상조사 방해 위원이라고 해야할 사람들을 추천해 놓고 희희낙낙하는 그들 역시 인면수심이긴 마찬가지다. 하기야 광주학살 책임자 전두환을 민주주의 아버지로 생각하는 자들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미세먼지 가득한 따뜻한 겨울보다는 차라리 살을 에는 추위라도 좋으니 차갑고 맑은 겨울 날이 훨씬 낫다. 차가운 북서풍이 불면 정신을 좀 차릴 수 있을까? 답답한 월요일이다.

2019년 첫 산행

2019년 첫 산행

요즘 겨울 날씨는 추위와 미세먼지가 번갈아 나타나는 양상을 띤다. 추위도 한풀 꺽이고 공기도 좋은 날은 매우 드물다. 아침 기온 영하 6도. 날씨는 맑았고 모처럼 공기도 좋았다. 산에 가기 딱 좋은 날이다. 주머니에 물 한 병 찔러 넣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겨울산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아침 9시가 넘었는데도 해는 산 위로 솟아오르지 못했다. 나무들은 잎사귀를 모두 떨군 채 묵묵히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계곡 물은 바짝 얼었는데, 그 얼음 밑으로 졸졸졸 물이 흐른다. 푸른 하늘 위로 까마귀 몇 마리가 까악까악 울면서 날아간다. 이른 아침이라 인적은 드물었는데 저 앞에 노년의 부부가 손을 꼭 잡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당신들은 어쩌면 그렇게 금슬이 좋냐고 묻고 싶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단으로 바뀌어 있었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등산로가 패였고 나무 뿌리가 드러났다. 산을 보호하기 위해 구청에서 계단을 설치한 모양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계단길은 퍽퍽하고 재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산 정상까지 오르는데 한시간이 걸린다. 정상에는 삼국시대에 세워졌다는 성벽의 잔해가 널려 있다. 천 년 전 사람들은 그 산꼭대기에 돌로 성을 쌓았다. 그때도 겨울은 몹시 추웠을 것이고 산에는 눈도 많이 왔을 것인데, 그런 추위 속에서 돌성을 쌓았을 백성들의 노동이 처연했다.

어떤 사람들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산을 올랐고, 다른 사람들은 모형자동차를 몰면서 올라갔고, 몇몇은 개를 끌고 산에 왔다. 젊은이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산등성이에 기분좋게 번졌다. 올 겨울은 눈이 거의 오지 않아 하산길이 어렵지 않았다.

2시간 30분 동안 약 10킬로미터의 산길을 걷다가 내려왔다. 허기가 져서 점심으로 시래기 된장국을 한 사발 들이켰다. 기분 좋은 뻐근함이 온몸을 감쌌다.

겨울날의 회상

겨울날의 회상

바람은 북쪽에서 불어왔다. 눈보라는 능선을 넘어 휘몰아쳤고, 능선 위의 소나무들은 모두 남쪽으로 가지를 뻗었다. 나뭇가지는 바람을 거스를 수 없었다. 거스를 수 없는 것들의 운명은 쓸쓸했다.

지난 겨울은 몹시 추웠고, 추운만큼 쓸쓸했고 건조했다. 떠들석한 잔치가 끝나고 난 후의 공허함이 겨울의 한복판을 갈랐다. 모두 떠나버렸고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았으며 누구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바람은 다시 불었고 눈발이 날렸다. 그의 발자국은 자작나무 숲 속으로 사라졌다. 눈 속으로 떠났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은 그치지 않고 겨울은 잊혀지지 않았다.

겨울 안개

겨울 안개

오늘처럼 겨울 안개가 자욱한 아침에는 김승옥을 읽어야 한다. 사는 곳이 무진(霧津)은 아니지만, 아니 무진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지만, 겨울 안개는 바로 여기 이곳을 무진으로 만들었다.

안개는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들을 감쌌고, 건물 사이의 횡한 공간들을 채웠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오갔지만, 그들은 이내 안개와 섞여 버렸다.

시공간은 측량할 길 없었고, 존재하지만 동시에 사라져버린, 양립할 수 없지만 눈 앞에 존재하는, 그러나 모든 구별과 경계는 사라졌다.

판단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누군가를 사로잡았던 욕망과 두려움도 안개 속에 숨어 버렸다. 안개는 혼돈 속의 평화를 가져왔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는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김승옥, 무진기행, 1964>

잔인한 겨울

잔인한 겨울

흐르는 강이 막혀 버리자, 땅은 기운을 잃고 병들어 갔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불고 눈이 쏟아져 겨울은 깊어 갔지만, 엄동설한에도 역병이 창궐했다.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돌아 죄없는 짐승들만 산 채로 땅에 묻혔다. 인간들은 그런 것을 살처분이라 불렀다.

굴삭기의 삽질 아래 강은 신음하다 죽었고, 헤아릴 수 없는 뭇 생명들이 스러졌다.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 그리고 닭, 오리들이 살처분됐다. 잔인한 겨울이었다.

2011년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으례 하는 인사로도 “희망찬 새해”라 말할 수 없었다.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신음했고, 비명을 지르며 아우성쳤다.

한무리의 족속들만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간들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었고, 전세난으로 집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오래 전에 잊혀진 줄 알았던 전쟁의 고통까지 되풀이되었다.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예견된 것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예견된 저주였고, 그 저주는 인간들의 탐욕과 어리석음, 그리고 무관심이 불러 온 것이었다.

올 한해 냉정하게 지켜볼 작정이다. 인간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의 끝이 어디일지 그리고 그 탐욕과 어리석음의 댓가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게으른 블로거의 2007년

게으른 블로거의 2007년

며칠째 겨울비가 내려 쌓인 눈을 모두 녹였다. 나를 비롯한 인간들이 싸질러놓은 오물로 어머니 대지는 확실히 더워지고 있다. 나 같이 없이 사는 사람들한테 따뜻한 겨울은 축복일 수 있겠으나, 이것을 온전히 달가워할 수만은 없는 슬픈 겨울이다.

2007년 한해가 간다. 시간의 연속성으로만 본다면야 오늘 뜨는 해와 내일 뜨는 해가 다르지 않겠지만, 그 시간을 마디마디 끊어서 새로운 숫자를 부여하는 인간들의 행위는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다. 그렇게라도 해야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자기 삶의 궤적을 돌아볼 것이 아닌가.

7년만의 귀환이었다. 객지를 떠돌다 돌아온 나에게 한반도는 적당히 낯설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안식처를 제공하였다. 지난 7년 동안 심신이 피로하였으나, 2007년은 그 피로를 어느 정도 덜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개인적인 성취와 보람도 있었으며, 늘 그렇듯 부끄러운 모습도 있었다. 올해도 나는 운이 좋았다.

처음으로 블로거로서 온전한 한해를 보낸 나는 이제 갓 초보 딱지를 뗀 운전자의 모습이었다. 돌아보면 내 주장의 과잉에 종종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좀 더 따뜻한 글들을 많이 써볼껄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2007년 순간순간의 내 모습이었기에, 훗날 이 글들을 되돌아보면서 2007년을 추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만으로도 이 블로그는 참으로 게으른 나에게 의미가 있다.

보잘 것 없는 글에 이름모를 많은 분들의 성원이 있었다. 그분들의 댓글로 이 블로그는 숨을 쉴 수 있었다. 밀실에 유폐되지 않은 채 광장과 나름대로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블로그를 찾아와서 글을 읽어주고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의 관심 덕분이었다.

2008년이 더 나은 한 해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지금으로봐선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때문에) 감히 “더 행복하세요”라고 빈말이라도 기원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해인사 한마디에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십시오. 살아보니 건강만큼 소중한 것이 없더이다. 몸도 건강하고 그리고 생각도 건강한 그런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견뎌야할 시간들이 우리들이 예상한 것보다 쉽게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맙습니다.

뉴저지로 돌아오다

뉴저지로 돌아오다

뉴저지는 겨울이 깊어 을씨년스러웠다. 1월 중순까지 거의 봄날씨를 보이다가 2월부터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윤달이 끼어서 그런지 올 겨울은 유난히도 늦게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겨울은 3월의 햇볕에 겨워 스스르 자취를 감추고 말 것 같다.

14시간의 비행과 시차로 몸이 많이 무겁다. 몸의 시계는 14시간의 공간 이동을 빠르게 감당하지 못한다. 밤낮이 뒤바뀌었다. 불면의 밤과 잠에 취한 낮이 나를 며칠 괴롭힐 것이다.

아내의 따뜻한 미소와 손길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해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시

해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시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들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고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두운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 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기다림 만나
얼씨구나 부등켜안고 웃어 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 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 눈 내리는 보리밭 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정호승,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이 깊어지면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겨울을 견딜 수 있다.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꼭 읽어보는 시다. 새해에는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