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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평화

김복동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어느 가을, 이름 없는 숲 속에서 한 마리 나비를 만나거든 당신이 오신 줄 알겠습니다. 죽거들랑 나비처럼 날고 싶다던 당신이 그렇게 오신 줄 알겠습니다.

구십 평생 모진 세월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리오. 고통도 미움도 원한도 모두 훌훌 던져버리고 오직 사랑과 평화가 흐르는 그곳으로 훨훨 날아 가십시오.

할머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편히 쉬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평화, 담대한 시작

평화, 담대한 시작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여준 4.27 남북정상회담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 민족 8천만 겨레에게 선사한 가장 감동적인 선물이었다. 품격있는 마법사 문재인은 신의와 성심을 다해 김정은을 맞았고, 패기있는 젊은 지도자 김정은은 예의를 갖춰 문재인을 대했다. 그들의 만남은 남과 북이 하나의 언어를 쓰고 하나의 문화를 가진 한 핏줄 형제임을 새롭게 일깨웠다. 이전에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을 만났지만, 그 모든 과정이 생중계되지 않아 이번 회담처럼 극적인 감동을 주지 못했다. 더군다나 대내외 환경 변화로 합의 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해 정상회담의 성과가 반감되고 말았다. 지난 10년 간 이명박, 박근혜 정권 하에서 남과 북은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작년만 해도 북한 김정은은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거나 핵실험을 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사상 최악의 경제 제재를 단행했고, 연일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메세지를 쏟아냈다. 일촉즉발이었다. 북한의 핵이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이르자 김정은은 그것을 놓고 미국과 협상하길 원했다. 그들 사이에 문재인이 있었다. 문재인은 외국 언론이 얘기한 대로 위대한 협상가였다. 명징한 분석력으로 상황을 정확히 판단했고, 성심성의를 다해 그들을 설득했으며, 원칙을 갖고 묵묵히 일을 처리했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우리의 처지가 풍전등화와 같았지만, 올초부터 상황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것이 미리 준비되어 있던 것처럼. 클린턴 대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까지 모든 상황이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몇주 후에 있을 북미정상회담만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이제 우리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 수 있고 통일까지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트럼프는 노벨상을 받을 것이고, 우리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다 문재인 덕이고,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뽑은 현명한 국민들 덕분이다. 그대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대들은 문재인 같은 대통령을 보유할만한 자격이 있는 국민들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의 꿈이 문재인을 통해 영글고 있다.
올림픽 정신과 단일팀

올림픽 정신과 단일팀

올림픽 정신의 목표는 인간의 존엄성 보존을 추구하는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도모하기 위해 스포츠를 통해 조화로운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The goal of Olympism is to place sport at the service of the harmonious development of humankind, with a view to promoting a peaceful society concerned with the preservation of human dignity.

<올림픽 헌장 중에서>

올림픽은 단순한 체육 행사가 아니다.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인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선수들의 메달 경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따라서 평창 올림픽은 당연히 평화 올림픽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올림픽 정신이다. 남북단일팀은 당연히 올림픽 정신에 부합한다. 이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올림픽을 말할 자격이 없다.

유일한 수행 방법

유일한 수행 방법

영성(정신, 마음)과 생명력을 정화시키기 위해 행하는 수행법이 다양하며, 또 수행의 여러 단계마다 거기에 맞는 수행법이 있지만, 영성과 생명력이 정화되는 길은 단 하나뿐입니다. 수행의 첫걸음에서부터 마지막 완성에 이르기까지 그 하나의 길만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워서 참 성품(하늘 성품)을 드러내고, 번뇌(온갖 생각)을 떨치고 또 떨치어 정신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 이 하나입니다. 명상, 참선, 기도, 주문, 단전호흡 등 수많은 수행방편들은 모두 이 하나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마음을 비운다 함은 가슴이 공허해지거나 마른 나무처럼 메말라지는 게 아닙니다. 나의 온갖 감정이 사라지고 참된 본성, 하늘마음(성품)이 환하게 가슴을 채우는 것입니다. 하늘마음(성품)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나 굳이 언어로 표현한다면 지극히 고요하며 무한한 사랑과 자유와 평화입니다. 삼라만상 온 우주를 사랑으로 품어 안고 무한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되, 지극하게 고요한 상태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 하늘마음(성품)과 상당히 가깝습니다.

사랑, 자유, 평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일체감, 한몸이라는 느낌입니다. 티끌보다 작은 미물 중생부터 온 우주까지 모두가 나와 한몸이라는 일체감이 하늘의 성품에 가장 가까운 마음입니다. 한없이 고요한 상태에서 이런 일체감에 젖다보면, 거기서 더 나아가 하늘 성품이 드러납니다.

번뇌(잡념)를 떨쳐 정신이 깨끗하다함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깜깜한 상태에 이르는 게 아닙니다. 지극히 고요한 상태에서 무한한 일체감에 젖어, 보여지는 게 있으면 무심히 바라보고, 들려지는 게 있으면 무심히 듣는 것입니다. 또 몸으로 느껴지는 어떤 촉감이 있으면 그냥 느끼는 것입니다. 맑게 깨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허, 숨 명상 깨달음, 다해, 2004, pp. 236-237>

이름 없는 비석

이름 없는 비석

그날, 제주의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세찬 바람에 눈발까지 날렸다. 까마귀들이 눈발 속에서 울어대며 웃무드내 하늘을 빙빙 돌다가 나뭇가지에 앉았다. 을씨년스러웠다.

어떤 이들은 폭동이라 했고, 어떤 이들은 사건이라 했으며, 어떤 이들은 항쟁이라 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죄없는 수많은 제주의 양민들이 미군과 정부군의 공격으로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그 희생들은 온전히 안식하지 못했다.

제주 4.3 ……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교체된 후에야 비로소 제주 4.3의 진상이 하나둘 밝혀졌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하기 전까지 그들은 숨죽여 울지도 못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세월 속에서 그들은 처절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오로지 한라산 중산간의 바람과 까마귀 울음만이 그들과 함께 했다. 그 아픔과 절망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그 무고한 사람들의 영혼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제주 4.3 평화기념관 전시실 입구에 이름 없는 비석, 백비(白碑)가 놓여 있다. 그 비석 앞 팻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여 있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제주는 세상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섬이지만, 그 섬에는 너무나 슬프고 아픈 역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아픔과 슬픔이 여전히 온전하게 위로받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전시실을 나오면서 낮고 목메인 소리로 <잠들지 않는 남도>를 읖조리며 그들의 평안을 기도했다.

슬픈 5월, 평화로웠다

슬픈 5월, 평화로웠다

빙하기 같은 4월을 뒤로 하고, 5월이 되자 온 산들이 들고 일어섰다. 바람에 온기가 실려 있었고, 나무와 꽃들은 저마다의 싱그러움을 자랑했다. 산을 보고 들을 보면, 달라진 것이 없었다. 때가 되면 꽃이 피었고, 나뭇잎이 돋았으며, 새들이 날아왔다. 한가하고 평화로웠다.

천안함으로 죄없는 병사들이 수장되어도, 구제역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동물들이 산채로 땅에 묻혀도, 켜켜이 쌓인 슬픔으로 끝없이 침잠하여도 자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평화로웠다.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봉하 들판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해가 떠오르는 남동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일출 시간이 지났지만 두터운 구름과 자욱한 아침안개 때문에 아직 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태양이 솟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다리를 곧게 펴고 섰다.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 마을의 정겨운 산과 들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평화로웠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사람들은 언제까지 그를 기억할까. 해마다 5월이 되면 그의 모습을 기억할까. 따뜻한 바람에 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평화로운데,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는 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정녕 평화로웠을까.

오늘도 별일 없이 하루를 마쳤다. 몇가지 일을 하고, 두끼 식사를 하고, 책을 몇 줄 보았다.

정의로운 전쟁? 그런 건 없다

정의로운 전쟁? 그런 건 없다

인간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중 가장 추악하고 가장 불행한 것은 “전쟁”이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가 어떤 명분을 갖다 붙여도 전쟁은 가장 추악하고 불행하다.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못된 짓의 총합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살인이고 유괴고 강간이고 파괴고 폭력이다.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오바마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정의로운 전쟁(Just War)”에 대해 언급했다. 개인적으로 그의 이런 언급은 참으로 실망스럽다. 지금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입장과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게 주는 가장 영예로운 상을 받는 수상자의 입장이 만들어낸 어정쩡한 합리화가 정의로운 전쟁이다.

정의로운 전쟁? 그런 것은 없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은 인간들의 탐욕을 가장 파괴적이고 가장 추악하게 드러낸 가장 불행한 행위일 뿐이다. 전쟁이 합리화될 수 있는 단 하나의 경우라 하면, 그건 전쟁을 일으킨 자들에 대한 “방어”와 같은 불가피한 경우뿐인데, 이 때도 실제 전쟁 행위 자체에 “정의”라는 말을 붙일 수 없다. 그 행위라는 것은 결국 살인과 파괴와 폭력일 뿐이니까. 전쟁에서는 모든 인간들이 고통을 받는다. 죽는 자도 죽이는 자도. 어린 아이들과 여자들이 겪는 불행과 고통은 말로 헤아릴 수 없다. 인간의 영혼까지 파괴시키는 행위가 전쟁이다.

지금 미국이 하고 있는 두 개의 전쟁을 오바마가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그는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어떻게든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해야 하는 입장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의 의무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오바마야 당연히 전쟁에 반대하겠지만,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오바마는 다른 결정을 내려야할 수도 있다. 미국은 가장 강하지만 가장 탐욕스러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예수나 붓다 같은 성인이 아니다. 간디나 킹 목사와 같은 인권운동가도 아니다. 그는 현실 정치인이다. 그가 간디나 킹 목사와 같은 순수한 주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그의 결정 하나에 수십 만명, 아니 수백 만명의 목숨이 달려 있다. 따라서 그의 현실적인 영향력이 간디나 킹 목사를 넘어설 수 있다.

그는 빠른 시일 내에 전쟁을 끝내야 한다. 동시에 미국에서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지켜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오바마의 존재 이유다. 그에게 부여된 역사적 책임과 의무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지혜다. 그가 전세계 인민들의 염원인 평화와 공존을 뿌리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언급한 킹 목사의 말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길 바란다.

Violence never brings permanent peace. It solves no social problem: it merely creates new and more complicated ones.”

전쟁은 가장 극악한 폭력일 뿐이다. 따라서 전쟁으로 항구적인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오바마가 노벨상을 받게 된 이유

오바마가 노벨상을 받게 된 이유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한지 열달도 되지 않아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었다. 노벨평화상은 세계 평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 봉사한 사람들에게 주는 가장 권위있는 상이다. 테레사 수녀, 넬슨 만델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등 평생을 인권과 평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받는 상이다. 이런 상을 대통령이 된지 열달도 되지 않은 오바마가 받게 되자 말들이 많다. 객관적으로 볼 때, 오바마가 아직 노벨평화상을 받을만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바마 자신도 전혀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다음과 같이 말했다.

I am both surprised and deeply humbled by the decision of the Nobel Committee. Let me be clear: I do not view it as a recognition of my own accomplishments, but rather as an affirmation of American leadership on behalf of aspirations held by people in all nations.

To be honest, I do not feel that I deserve to be in the company of so many of the transformative figures who’ve been honored by this prize — men and women who’ve inspired me and inspired the entire world through their courageous pursuit of peace.

<Obama’s Reaction to the Nobel Peace Prize>

그렇다면 노벨 위원회는 왜 오바마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었을까?

우선 그 이유를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 전 미국의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 부시는 대통령을 하는 동안 아무 명분도 없는 전쟁으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이라크에서 75만명이 죽고 140만명이 다쳤다. 죽은 사람들 중 민간인은 70만명에 달한다. 아프카니스탄에서는 2만명이 죽고, 5만명이 다쳤다. 이것이 부시 정권 하에서 미국의 모습이었다. 미국은 세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었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그 당선 자체로만도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만약 부시의 뒤를 이어 미국에서 네오콘들이 여전히 정권을 잡고 있었다면, 이란과 한반도도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바마는 네오콘의 집권을 저지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셈이다.

또한, 아무리 제 정신을 가진 대통령을 선출했다 하더라도 미국은 끊임없이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 했다. 클린턴 때도 마찬가지였다. 클린턴이 북핵 때문에 북한을 폭격하려 했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다는 클린턴조차 그런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바마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졌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그렇게 쉽게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그리고 가장 진보적 성향이 강한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가 추진하려고 하는 일들이 미국 내에서조차 큰 저항을 받고 있다. 특히 개혁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는 의료보험 개혁에 대해서 기득권 세력의 총체적 저항에 직면해 있다. 노벨 위원회에는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오바마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흑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엄청난 사건이다. 링컨이 흑인을 해방시킨 후 150년만에 일어난 일이다. 노예의 후예가 대통령이 된 사건이다. 미국이라는 세계 초강대국에 비주류가 처음으로 권력을 잡은 사건이다. 노벨 위원회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려 했을 것이다.

오바마의 말대로 이번 노벨상 수상은 업적에 대한 찬사와 보상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라는 의미가 훨씬 강하다. 그는 충분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다. 다만, 기득권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번에 노벨 위원회가 힘을 실어준만큼 그가 세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꼭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