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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박정희

희정과 정희의 몰락

희정과 정희의 몰락

안희정의 아버지는 박정희를 존경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존경하는 박정희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그 이름의 저주는 아니겠지만, 밤의 안희정은 박정희가 되어 버린다.

박정희는 단순한 독재자가 아니다. 역사 상 전무후무한 기회주의자인데다가 수백 명의 젊은 여성을 유린한 기상천외한 색마였다. 사실 성범죄로 따지자면 박정희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

안희정은 박정희 같은 기회주의자는 아니지만 모든 국민을 속인 이중인격자다. 낮에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고 인권을 얘기했지만, 밤에는 수행비서를 능욕했다. 낮에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적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밤에는 박정희의 후계자였다.

지난 대선 경선 때부터 안희정의 혀는 길어졌다. ‘선의’를 말하면서 중언부언했고 궤변을 늘어 놓았다. 그의 말대로 그의 초심은 선의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가 광역단체장이라는 알량한 권력에 취해서 추악하게 변한 건 사실이다. 비서를 성폭행을 하고도 “괘념치 말라”고 마치 봉건시대의 왕처럼 말한 대목은 압권이다.

안희정 같은 철저한 위선자들이 사실 가장 위험한 부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위선과 이중성이 피해자인 수행비서의 용기로 폭로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범죄가 결정적인 순간에 터져 나왔다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거꾸로 돌아갔을 것이다.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안희정도 한순간에 몰락했다. 안희정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21세기 한국 정치판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목격했다. 안희정의 다채로운 삶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한국의 3대 기회주의자

한국의 3대 기회주의자

1. 박정희

우리나라 현대사를 보면 걸출한 기회주의자가 즐비한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박정희다. 이 자의 변신은 그야말로 신출귀몰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구사범을 나와 3년간 교사 생활을 하다 일왕에게 혈서를 쓰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간다. 성적우수자로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만주국 장교로 근무한다. 해방되자 광복군으로 편입하여 귀국하는데, 그 이후 국군 장교로 근무하다 남로당에 가입한다. 남로당 군 총책으로 사형 선고를 받자, 동료들을 밀고하여 형을 면한다.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그 이후 18년간 독재자로 군림하다 김재규의 총을 맞고 죽는다. 이 정도의 행태라면 거의 반인반신의 경지라 할 것이다. 기회주의로 거의 신의 경지까지 올라갔으니, 박정희를 능가할 기회주의자는 없다고 봐야 한다.

2. 이승만

박정희와 쌍벽을 이루는 자가 이승만이다. 그는 한때 독립운동을 했고, 임시정부의 대통령까지 지냈으나 임정에서 갖은 갈등을 일으키다 탄핵된다. 해방 이후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갖은 꼼수와 독재로 권력을 유지하다 4.19 혁명으로 하야하게 된다. 제주 4.3 항쟁 때에 3만 명이 넘는 양민을 죽이고, 한국 전쟁 때에는 자기만 살겠다고 먼저 서울을 버리고 피난을 간다. 성공한 기회주의자의 시조이자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3. 이명박

박정희, 이승만과 더불어 3대 기회주의자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자는 이명박이다. 그는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은 전직 현대건설의 사장이다. 이명박의 악행은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중 가장 나쁜 짓은 노무현을 죽인 것과 아름다운 강산을 초토화한 것이다. 이 자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온갖 비리와 연루된 혐의가 셀 수가 없다. 이명박은 돈의 신이고, 살아있는 기회주의자 중 으뜸이다.

이들 3명을 정죄하지 않고 적폐청산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회주의자가 성공하는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 기회주의 청산이 적폐청산의 핵심이다.

박근혜의 선물

박근혜의 선물

박근혜와 최순실 일가, 그리고 이 땅의 지배계급인 친일반민족 독재부역 세력들이 이 나라를 시궁창에 쳐박았다. 모든 소설과 영화를 뛰어넘는 그들의 엽기 행각에 사람들은 당황했다. “이게 나라냐?”, “어떻게 박근혜가 이 지경이 됐단 말이냐?” 사람들은 분노했고,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모든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박근혜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박근혜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고만 했으면 누구나 충분히 알 수 있는 이 시대에 51.6%의 사람들은 묻지마 투표를 감행했다. 박근혜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 되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헌법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락했다. 죄없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죽어갔으며, 정의로운 사람들이 잘려나갔다. 희망은 사라졌다. 청년들은 취업과 결혼과 출산을 포기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매일 늘어났으며, 아이들은 지옥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지배계급은 최선을 다해 부패했고 타락했다. 이 정도의 부패와 이 정도의 타락이라면 이 나라는 당연히 망해야 한다. 아니 망하려면 더 철저히 망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폐허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유일한 미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가 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준 건 절망과 자괴감 그 자체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런 참담한 상황에서도 몇 가지 긍정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역량만 있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그것을 박근혜의 선물이라 말할 수 있을까? 1. 민주주의에 대한 집단 경험과 지성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10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한다. 그 시위는 평화적이고 감동적이며 축제로 승화된다. 그런 비폭력 평화의 축제 같은 시위로 박근혜를 퇴진시킨다면, 민주주의를 위한 승리의 집단 경험이 적어도 한 세대, 30년은 간다. 87년 6월 항쟁의 동력이 이제 거의 소진되었는데, 박근혜가 살신성인으로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다니, 이런 것을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30년 전은 야만의 시대였다. 군인과 경찰이 인권을 유린했으며, 그에 맞선 집회와 시위도 폭력을 동반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과 그때가 다른 건 딱 그만큼이다. 박근혜가 만들어준 이번 기회를 성공적으로 이용한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2. 헌법 제1조의 중요성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중요성을 사람들이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이 나라는 왕조나 봉건제 국가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이다. 박근혜가 누렸던 권력은 국민들이 그에게 위임한 것이다. 박근혜는 그 권력을 사유화하여 최태민 최순실 일가를 위해 휘둘렀다. 박근혜와 그 일당들을 단죄하면서 이 땅의 주인은 한줌도 안 되는 지배계급이 아니라 국민임을 다시 한 번 자각할 것이다. 3. 박정희 신화의 몰락 박근혜의 부패와 타락과 무개념은 그의 아버지 박정희 신화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박정희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기회주의자이자 독재자였고,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처참한 수준의 사람이었다. 박정희의 공과 과를 나누어 평가해야 한다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그런 사람들 역시 대개는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렇게 따지면, 독일의 히틀러도 공과 과를 땨져야 할 것이다. 박근혜가 누구를 닮아서, 어떻게 컸길래 저 지경이 되었을까? 그것은 박근혜가 박정희 딸이었기에 가능한 얘기다. 박정희를 반인반신으로 섬기는 무지한 백성들에게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4. 지역감정의 완화 빌어벅을 지역감정도 역시 걸출한 독재자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박근혜 콘크리트 지지의 핵심이었던 대구경북에서 박근혜가 몰락한다면 그의 아버지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지역감정도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다. 이미 부산경남에서는 민주당이 약진했고, 안철수와 박지원의 국민의당이 호남을 장악했으니, 민주당이 전국정당으로 부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5. 지배계급의 균열 친일과 군부독재 세력이었던 이 땅은 지배계급은 거의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있다. 재벌, 새누리당, 언론, 사법부, 고위 관료, 군부 등 으로 대표되는 그들은 여전히 견고하게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그들의 견고한 권력에 조그만 구멍이라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들은 이번에도 적당히 꼬리를 자르고 적당히 변신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박근혜는 그들의 얼굴마담이었고, 유통기한이 다 된다면 철저히 버려질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박근혜의 타락과 부패가 그들의 권력에 균열을 내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어떤 효도

어떤 효도

그의 아버지는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본군 장교였고, 해방 이후 남로당 군총책이었으며,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고 독재자가 되었다. 죽을 때까지 권력을 지키고자 유신을 선포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탄압했다.

역사는 그의 아버지를 친일 매국노, 독재자로 기록했다.

그는 아버지를 기록한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아버지의 명예(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회복을 위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선언한다. 아버지를 친일파로, 독재자로 기록한 역사책은 편향된 교과서이고, 그런 편향된 교과서로 배우는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독재를 했다기보다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도 그에게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역사는 그를 심청이 수준의 효녀로 기록할까? 효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고,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는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의 효도가 눈물겹기만 하다.

왜 나라를 팔았나?

왜 나라를 팔았나?

영화 <암살>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옥윤이 염석진에게 총을 겨누면서 묻는다. “왜 동지를 팔았나?” 염석진은 이렇게 소리친다.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염석진 같은 친일 매국노들은 해방될 줄 몰라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조국의 독립이나 해방 따위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눈 앞의 이익만을 좇는 그들은 기회주의자들이었다. 일제가 좋아서 친일을 한 것이 아니라,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친일 매국 반민족 행위를 한 것이다. 나라와 민족과 동지를 판 대상이 굳이 일제일 필요는 없었다. 그것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심지어 북한이든 상관이 없었다.

독립군을 토벌하던 만주국 장교 박정희는 해방이 되자 광복군으로 잽싸게 옷을 갈아 입었고, 좌익이 득세를 하자 남로당 군총책을 맡았다.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에는 반공을 국시로 삼았다.

친일 매국노들은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원하지 않았다. 해방될 줄 몰라서 나라와 동지를 판 것이 아니고, 그들은 해방을 원하지 않았다.

귀태(鬼胎)

귀태(鬼胎)

이 땅에 태어나는 것들은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귀태(鬼胎)라는 말 자체는 성립하지 않는다.

박정희(다카키 마사오 또는 오카모토 미노루)의 경우라 하더라도 그는 귀태일 수 없다. 그는 귀태가 아니고, 친일 반민족 행위자이고, 군부독재자이고,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열한 기회주의자일 뿐이다.

문제는 그의 부도덕하고, 비열하고, 천인공노할 행위들이 (물론 그가 김재규의 총에 죽기는 했지만) 단 한 번도 단죄된 적이 없다는 것이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박정희의 부박하고 비루한 역사가 전두환을 낳았고, 이명박을 낳았고, 결국에는 박정희의 딸이 다시 권력을 잡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친일 반민족을 단죄하지 않고, 독재를 응징하고 않고, 비리를 처벌하지 않는 한, 가치가 전도되고 불의가 판을 치는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성립되지도 않는 귀태라는 말 대신, 그들의 범죄 행위와 악행들을 적확히 심판하고 응분의 책임을 지워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이 땅에서 정녕 벌어지겠는가. 매우 회의적이긴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진 못하겠다. 아마 그들이 기쁘게 듣지는 못하겠지만, 역사의 심판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예감과 기대 때문이다.

안철수가 위험한 이유

안철수가 위험한 이유

지난 해 서울시장 선거 직전부터 갑자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안철수가 드디어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그동안 그를 알기 위해 언론에 드러나 있는 그의 행적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여전히 그는 모호하고 불확실하다. 그는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회색이다. 그의 대권 도전이 희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뭔지 모를 불안감을 불러온다. 찝찝하다.

정치인이나 공인으로서 보여준 것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력 후보인 박근혜, 문재인과 충분히 겨룰만한 지지율을 보인다. 물론 이명박이 보여준 극악함의 반동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대권 후보로서의 첫번째 행보인 현충원 참배에서 그가 가진 역사의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박근혜, 문재인과 차별화된 전략을 보인다면서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박태준의 묘역을 참배했다. 그러면서 “역사에서 배우겠다”고 했다. 공은 공대로 계승하고 과는 과대로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 해 서울시장 선거 직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얘기를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의 물결이다, 저도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라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의 현충원 참배를 보면서 “그는 과연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 박정희 묘역을 참배하면서 공과를 운운하는 것일까? 정말 박정희의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박정희는 군부쿠데타의 주역이고, 군부독재를 18년이나 자행한 독재자다. 헌법을 유린하고, 종신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뿐인가.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장교가 되기 위해 일본왕에게 혈서를 썼던 자고, 해방이 되어서는 남로당의 군총책으로 활동하다 투옥이 되기도 했던 우리 현대사의 으뜸가는 기회주의자다.

도대체 박정희의 삶에서 무엇을 배우겠다고 그를 참배한단 말인가? 히틀러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히틀러의 묘역을 참배해야 하는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과오를 알기 위해 과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하는가? 박정희 참배는 히틀러 참배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다름없는 행위다.

인혁당 사건으로 하룻밤에 사형당한 고인들과 유가족이 과연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아직도 장준하의 혼이 구천을 맘돌고 있는데, 어디서 박정희의 공을 운운한다 말인가.

참배는 고도의 상징을 내포한 행위다. 더군다나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참배는 더욱 그렇다. 안철수의 박정희 참배는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의 행위는 아니다. 대권 후보 안철수의 첫번째 행보는 낙제점이다.

12월에 대선이 치뤄질 때까지 안철수에 대해 몇 편의 글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글들이 정말 기우였으면 좋겠다. 착한 안철수가 정말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 안철수가 정말 힘을 보탰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더욱 궁금한 것은 그가 출마선언을 하면서 “정권교체”라는 말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과연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지 않을까? 안철수는 민중의 편일까? 안철수는 정권교체에 힘을 보탤까?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최선의 선택

최선의 선택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로선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5·16이 그 초석을 만들었다고 볼 때 바른 판단을 내리셨다고 본다.”

박근혜 말처럼 그의 아버지 박정희는 늘 최선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일제시대에는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혈서를 썼고, 결국 원하던 일본군 장교가 되었다. 해방이 되자 광복군으로 기어들어갔고, 좌익이 득세하던 시기에는 남로당 군총책이 되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군 장성이 되어 호시탐탐 쿠데타의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마침내 4·19 혁명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총칼로 무참하게 무너뜨렸다.

박정희는 최선을 다한 독재자였고, 최선을 다해 어린 여자들을 희롱하였으며, 최선을 다해 부하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등졌다. 박정희의 최선의 선택은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최악의 불행이었고, 공포였다.

박정희는 독재자이기 이전에 기회주의자였다. 식민지 시대와 해방 정국 그리고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기회만 주어지면 권력을 향해 카멜레온처럼 변신했다. 물론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지만, 그 능력은 자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악마의 주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민주공화국의 가장 근간이 되는 헌법 1조이다. 박정희는 헌법 1조를 어긴 범죄자일 뿐이다.

그런 박정희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자들은 민주공화국을 부정하는 아주 위험한 사람들이고, 민주공화국에서 삶을 영위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그것은 마치 독일에서 아직도 히틀러를 추종하는 네오나치 세력과도 같은 것이다. 아무리 민주공화국이라 하더라도 민주주의 근본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은 용인될 수 없다.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는 5·16 쿠데타가 초석이 된 것이 아니고,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이 초석이 된 것이다. 5·16 쿠데타와 유신헌법은 민주주의의 반동일 뿐 초석이 될 수 없다.

5·16 쿠데타를 최선의 선택, 바른 판단, 구국의 혁명이라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든 간에 민주공화국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의 대통령 결격사유는 그가 독재자의 딸이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선의 선택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MB는 MBC가 맡는다

MB는 MBC가 맡는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박정희의 유신 군사독재가 한창일 때,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통해 독재와 투쟁을 시작한다. 이에 놀란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에 대해 광고탄압을 자행하고, 150여명이나 되는 기자와 PD, 그리고 아나운서들이 해직을 당한다. 이른바 동아투위의 시작이다. 결국 제정신을 가진 언론인들은 그때 거의 다 거세되었고, 언론에 암흑기가 도래했지만, 해직 언론인들은 재야에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88년 한겨레신문의 창간을 주도한 이들도 이들 해직 언론인들이었고, 지난 30여년간 언론 자유와 언론 운동을 이끄는 정신적인 힘은 거의 대부분 동아투위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이 정권을 잡자 언론 상황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35년 전으로 급회귀해버렸다. 이명박과 박정희를 차이는 투표로 정권을 잡았는가 아니면 군부 쿠데타로 잡았는가의 차이 뿐이었다. 부도덕하고 탐욕스럽기는 매일반이었지만, 거짓말하기는 이명박이 오히려 원조 독재 박정희를 능가한다.

지금은 35년 전과 똑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명박이 들어서자마자 한 짓은 KBS와 YTN 사장을 자기 심복으로 교체하는 일이었다. 혁명을 하든, 쿠데타를 하든 맨 처음 해야할 일이 방송국 장악인 것을 이명박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의 당선은 극우언론들의 사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정통성 유지는 군부독재 정권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참여정부 때는 KBS 사장을 정연주라는 인물이 맡고 있었는데, 정연주 역시 동아투위 출신이었다. 정연주 사장 하에서 KBS는 신뢰도 1위의 언론으로 거듭났었다. 그러나 사장이 바뀌자마자 이들은 정권의 나팔수로 급격히 변신한다.

이제 남은 것은 MBC뿐인데, 이명박 정권은 허울좋은 민영화를 통해 MBC를 극우언론이나 재벌들의 먹이감으로 준비하고 있다. 지금 국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미디어 관련 법안이 바로 MBC를 조중동에게 넘기기 위한 사전준비인 것이다. 이명박은 자신의 당선과 정권 유지의 일등공신인 조중동을 나몰라라할 수 입장이 아니기에 어떤 무리수를 쓰든지간에 MBC를 조중동에게 넘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종이 신문의 몰락은 명약관화한 것이고, 조중동이 지금과 같은 언론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상파 방송을 잡아야하는 상황이다.

이명박의 이런 음모에 언론노조가 정면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특히 MBC의 젊은 노조원들이 이명박의 음모를 전세계에 고발하기 시작했다. 35년 전, 동아투위 선배들이 비장하게 자유언론실천을 선언했다고 하면, 이들 MBC 노조원들은 패기있고, 발랄하게 이명박과의 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이명박과 언론노조, 특히 MBC 노조와의 싸움은 단순히 방송국 하나를 민영화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이 아니다. 과연 이 나라가 정상적인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더 나아서는 이 나라가 숨을 쉴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인 것이다.

그 이름도 왜색창연한 이명박(아키히로)을 사람들은 MB라 부른다. MB의 언론장악 음모에 MBC가 나섰다. 이 싸움은 친일과 독재세력과의 싸움이고, 반민주주의와의 싸움이고, 비상식과의 싸움이다. 사필귀정이라 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다. MBC 노조원들을 믿고, 그들을 지지한다. 당신들 앞에는 동아투위 선배들이 있고, 당신들 뒤에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이 있다. 타협하거나 물러서서는 안되고, 끝까지 싸워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당신들과 우리들이 살 수 있는 길이다. MBC가 마지막 희망이 되고 있다.

노빠는 문국현을 지지할 수 없다

노빠는 문국현을 지지할 수 없다

한 노무현 지지자가 정동영에게 표를 줄 수 밖에 없는 그 심정을 변명이란 표현으로 문국현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는 문국현을 2007년도판 노무현으로 격상시키면서 문국현에게서 희망을 보았으나 거악인 이명박을 물리치기 위해 할 수 없이 정동영에게 투표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노무현 지지자와 문국현 지지자는 양립할 수 없다. 정작 문국현 본인은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부정하고 있으며, 노무현도 문국현을 자신의 정치적 계승자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노무현을 지지하는 나는 문국현을 지지할수 없다. 더군다나 문국현을 2007년의 노무현이라고 얘기하는데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문국현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 나라의 정통성을 짊어지고 나갈 지도자가 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근원적인 모순과 거악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왜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 민주정부가 이렇게 엄청난 성과를 내고도 이런 가시밭 길을 걸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정작 싸워야 할 상대가 무엇인지, 자신은 어느 편에 있는지 모르고 있다. 왜 노무현이 임기 말년까지 “공수처 설치”를 주장하고, “기자실 통폐합”을 하는지 문국현은 잘 모른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문국현이지만, 그는 한 번도 제대로 맞서지 않았다. 늘 계산했고, 돌아가려 했다. 노무현은 밭을 탓하지 않는 농부였지만, 문국현은 비를 내리고 땅을 만드는 신의 경지로 본인을 자리매김했다. 노무현은 국민과 함께 땀흘리고 뒹구는 농투서니였고, 문국현은 모든 문제를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는 “어디선가 나타난” 전지전능의 해결사가 되길 원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해결하는. 그에게 과연 그럴 능력이 있을까?

정치적 수세에 몰린 문국현은 급기야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버렸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18일 “박 전 대통령의 삶에서 부정과 부패가 있었느냐, 박정희 대통령은 깨끗하게 살았다”고 말했다.

[文, ‘박정희 삶에 부정부패는 없었다’, 뉴시스]

아무리 어려워도 이런 말은 하는 것이 아니다. 립서비스라도 말이다. 박정희야말로 세계 독재사에 우뚝 솟을만한 인물이고 그의 삶이 부정과 부패로 점철되어 있는, 급기야 부하의 총에 맞아 세상을 등진 인물 아닌가. 문국현이 정말 몰라서 이런 말을 했다면 천박한 역사인식을 드러낸 것이고, 알고도 했다면 참으로 기회주의적인 것이다.

문국현은 좌우를 넘나들면서 자기가 필요한, 대중에게 다가갈만한 정책들은 다 골라냈다. 노무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노무현에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욕을 먹고, 대통령직을 내놔야 한다 해도 노무현에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문국현은 그것이 이율배반적이라도 할지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양립시킨다. 예를 들어, FTA를 찬성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것 같은. 노무현은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정치인으로서 문국현은 노무현과 비교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고, 아직까지 그러한 가치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그가 참여정부를 계승할 사람도 아니니 노무현 지지자들이 문국현을 지지할 이유도 없고, 지지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노무현 지지자가 문국현에게 표를 주는 것은 이명박을 도와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문국현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이명박이 당선될까봐 할 수 없이 정동영에게 표를 던진다고 얘기하는 것은 사실 상당히 비겁한 자기 위선이자 합리화다. 이런 비판적 지지론은 87년 대선 때부터 진보 진영의 단골 손님처럼 등장했다.

자기의 세계관과 지향은 “선택”이라는 행위가 말하는 것이다. 권영길을 지지하고 싶은데 할 수 없이 노무현한테 표를 던졌다 또는 문국현을 지지하는데 어쩔 수 없이 정동영에게 표를 던졌다라는 것이야 말로 자기 변명일 뿐이다. 그런 것은 없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노무현을 찍었다는 행위이지, 권영길을 지지했다는 마음이 아니다. 우리 좀 담백하게 살자. 애초부터 비판적 지지라는 것은 없다.

나는 노무현 지지자이므로, 문국현을 지지할 수 없다. 노무현의 정치 철학과 정책을 계승할 세력을 선택할 것이다. 그 세력은 여전히 유시민, 한명숙, 이해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