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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이성부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북한산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북한산

10여년만에 다시 와 본 북한산은 옛날 그대로였다. 몇몇 계곡이 안식년으로 쉬고 있었고, 기슭의 등산로들이 조금 정비되었을 뿐이었다. 산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말이 없었고, 수 많은 등산객들을 넉넉히 품어주고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만큼 힘이 드는 일이 있을까. 허벅지에 전해오는 중력의 팍팍함에 나는 쉽게 지쳐갔다. 근육속에서 글리코겐이 끊임없이 연소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쌓인 젖산에 나는 피로하였다.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산은 그렇게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전이될 수 없는 경험이다. 자기 몸으로 부딪혀가며 끝까지 올라본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혹시 깨달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산을 오르는 것은 고해성사 같은 것이다. 살아가면서 잘못했던 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 말, 너무 집착하여 헤어나올 수 없었던 것 등이 땀과 함께 씻겨 내려간다. 그것은 일종의 해방이고 용서다. 몸이 힘들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그 숱한 걱정과 고민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결국 내가 느끼는 것은 산에 오르는 나 자신 뿐. 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자 가르침이다.

산에 빠져서 외롭게 된
그대를 보면
마치 그물에 갇힌 한마리 고기 같애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를 움켜쥐고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의 그물에 갇힌
그대 외로운 발버둥
아름답게 빛나는 노래
나에게도 아주 잘 보이지

산에 갇히는 것 좋은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져서
갇히는 것은 더더욱 좋은 일이야
평등의 넉넉한 들판이거나
그즈넉한 산비탈 저 위에서
나를 꼼꼼히 돌아보는 일
좋은 일이야
갇혀서 외로운 것 좋은 일이야

[이성부, 좋은 일이야]

10여년만에 다시 산에 중독될 것 같다. 좋은 일이야.

입춘에 읽고 싶은 시

입춘에 읽고 싶은 시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봄>

올해는 봄이 더디게 오지 않았다. 겨울을 건너 뛰고 서슴없이 오고 말았다. 따뜻한 겨울을 좋아하긴 하지만 올 겨울은 좀 너무하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봄이 오는 것을 마다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지랭이 피어오르는 들판이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