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늘

아버지의 그늘

어릴 적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아버지는 젊었고, 사소한 잘못도 용서하지 않았다. 야단을 맞을 때 아버지가 미웠고, 아버지가 집에 안 들어왔으면 할 때도 있었다. 어린 나에게 아버지는 두려움이었고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다. “내가 커서 아버지처럼 되지는 않으리라.” 아버지는 나에게 반면교사였다.

지금 나는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거울을 보면서 문득 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놀란다. 아이를 야단 치면서 내가 어릴 적 싫어하던 아버지처럼 나도 소리지른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아버지는 이미 내 안에 들어있다.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버지는 더 이상 야단을 치지 않으셨다. 물론 내가 어릴 때처럼 야단 맞을 짓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것은 아버지가 점점 늙어간다는 또다른 증거였다.

아버지가 되어보니 알겠다. 아버지만큼 아버지 노릇 하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어릴 때에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작심한 내가 지금은 제발 아버지만큼만 되어도 소원이 없겠다로 변했다.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사랑하고 계신지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버지보다는 친절한 아버지가 되었지만, 내 아이를 얼마나 잘 키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가 내게 해 주신 것만큼 나도 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을까? 제발, 제발, 그렇게만 되어도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 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신경림, 아버지의 그늘>

당신의 은혜를 갚는다는 부질없는 약속은 하지 않으렵니다. 그냥 아버지처럼 저도 제 자식을 사랑하렵니다. 그것이 아버지가 더 바라는 일일테니까요.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김근태, 껍데기는 가라

김근태,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망국적인 지역감정과 지역주의 정치를 타파하고, 지역과 세대, 계층과 이념, 양성간의 차별을 뛰어넘는 진정한 국민통합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창당한 열린우리당이 실패했다며 김근태는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새로운 대통합의 길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의 국민통합과 지금의 대통합은 무엇이 다른가? 진정한 국민통합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든 당이 실패했다면 김근태는 그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한때 당의장으로서 당을 책임지고 이끌었던 사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모든 것은 노무현탓”이라며 당을 깨야 한다고 한다.

이제 와서 김근태는 2002년 대북송금특검으로 남북의 화해협력이 좌초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2003년에 “민족을 분열과 대립으로 몰아가는 냉전, 수구세력의 부활을 저지하고,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남북통일을 이룩하는 데 앞장설 것을 결의”하면서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그가 진정으로 대북송금특검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아예 열린우리당에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했다.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은 통합의 걸림돌이라면서 그는 한나라당과의 상생의 정치를 얘기한다. 한미FTA는 졸속 타결이라 하면서, 그는 재벌 사면, 출총제 완화, 한국판 뉴딜 정책을 얘기한다.

도대체 김근태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당신한테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통합이 필요한 것인가? 대통합이 실패한다면 그 다음에는 또 어떤 통합을 부르짖을 것인가? 차기 대권주자가 되길 바라는가?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왜 당신은 차기 주자로서 단 1%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있는가? 이것도 노무현 책임인가? 당신이 말한 열린우리당 실패에 대해 당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있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그냥 당만 깨면 다 끝나는 것인가?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정동영, 김근태와 그들의 졸개들이 당을 떠난다면 열린우리당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창당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하여 다시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 당신들이 마지막으로 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떠나는 것이다. 노무현 탓 하지 말고 깨끗하게 떠나길 바란다. 떠날 때는 말없이.

껍데기가 되어 버린 김근태, 더이상 추한 꼴 보이지 말고 정계를 떠나라. 그 길만이 알량한 김근태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길이다. 당신의 동문인 고건, 정운찬처럼 말이다.

천정배는 최병렬 사돈일 뿐이다

천정배는 최병렬 사돈일 뿐이다

목포가 배출한 3대 수재 중 한 사람으로 사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고도 전두환에게 임명장을 받을 수 없다며 변호사의 길을 택한 사람. 조영래, 노무현 등과 함께 민변 활동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확립에 기여한 사람.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현역 국회의원 중 누구보다도 먼저 노무현을 지지하고 나섰던 사람. 열린우리당의 초대 원내대표였고, 참여정부의 법무부장관까지 지냈던 사람, 천정배.

한때 천정배라는 사람에게 참 큰 기대를 했었다. 아마 차세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그도 다른 정치꾼들과 마찬가지로 배신의 머나먼 길을 철새처럼 날아갔다. 그의 정치적 신념을 차치하고라도 김근태 버금가는 형광등 같은 정치 감각으로 어떻게 목포 3대 수재라는 평을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열린우리당이 개혁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첫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이다. 이번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의 첫 원내대표였던 그는 원구성을 할 때 한나라당에게 법사위원장 자리를 넘긴다. 그 이후 열린우리당은 국회 과반수 의석을 갖고도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된 개혁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이 첫 패착은 한나라당이 적은 의석을 갖고도 국회를 마음껏 유린할 수 있도록 도와준 행위였다.

또한 그는 참여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이라는 중책을 맡고도 검찰 개혁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했다.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지휘 한 것을 빼고 그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을 정도다. 그가 열린우리당의 의석을 갖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했다면 강정구는 수사 대상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폐지는 고사하고 상정조차 못한 책임의 가장 큰 부분은 천정배가 져야 한다.

이제 열린우리당을 이렇게 말아먹고도 그는 노무현을 욕하면서 당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뜬금없이 한미FTA를 반대한다며 단식에 들어갔다. 차라리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단식을 했다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단식으로 천정배의 변비가 낫기를 기대할 뿐이다.

천정배는 자기가 진짜로 싸워야 할 대상을 젖혀두고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다. 하기는 자기 딸이 한나라당의 전직 대표였던 최병렬의 조카며느리가 되었으니 이제 같은 식구가 된 모양이다. 한나라당과 같은 편이 되어서 “모든 것이 노무현 탓”이라는 철지난 유행가를 부르고 있다. 한마디로 가소롭다. 지지율이 채 1%도 되지 않는 자가 대권을 꿈꾸니 역시 오버를 할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한때 목포가 낳은 수재로 이름을 날리며 민주화에 기여한 천정배는 그렇게 스러져가고 있다. 목포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천정배는 이제 최병렬의 사돈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배신자는 그렇게 치욕으로 기억되다 잊혀져야 한다.

FTA 정신분열에 걸린 오마이뉴스

FTA 정신분열에 걸린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와 한겨레 등 이땅의 소위 진보 언론들이 한미FTA에 반대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좋다. FTA에 대해 충분히 반대할 수 있다. 이런 정책에 대해서는 찬반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찬성 측, 반대 측의 논리가 있으니 언론이라 해서 반대하지 말라는 법 없다. 인정한다. 오마이뉴스 등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너무 감정적인 반대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 또한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자.

오마이뉴스는 “한미FTA 독인가 약인가”라는 특별 섹션을 두어 한미FTA 반대 기사들을 편집해 놓고 있다. 사실 이 섹션의 이름은 “한미FTA는 독이다”라고 해야 맞다. FTA가 약이라는 기사는 단 한 가지도 없으니 말이다. 주요 기사는 다음과 같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쓸모없는 개성공단 조항, 용도는 ‘열린우리당 달래기’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도입 정부 부동산 정책 끝장났다

미국 일정에 쫓겨 타결한 FTA 미 요구에 ‘4월 재협상’ 가능성

전두환과 똑같은 ‘농업개방론’

노 대통령 쇠고기 수입 약속은 부적절

자동차 협상 잘했다고? 잘 해야 본전

이런 정도의 기사라면 FTA는 절대악이다. 이런 것을 추진하는 정부와 대통령은 거의 사탄이라 여기는 기사들이다. 좋다. 오마이뉴스의 입장이 그렇다면 이것까지 인정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FTA를 반대하고 저주하는 기사들마다 아래와 같은 광고가 번쩍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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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한미FTA 반대를 넘어 저주를 하는 언론 오마이뉴스에서 기사 말미마다 “한미FTA는 경제선진국으로 가는 큰 기회”라는 광고를 올리는 것은 정말 너무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지만 이건 거의 정신 분열의 수준이다. 난 오마이뉴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광고의 효과는 얼마나 적절한 문맥에 광고가 녹아들어가 있느냐가 결정하는 것이다. 극도로 FTA를 저주하는 기사마다 광고를 붙여서 무슨 효과를 보겠다는 건지 나는 알 수 없다. 이런 식으로 국민 세금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그 광고들이 어떤 기사에 붙는지도 정확하게 따지고 그것이 맞지 않다면 광고를 발주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는 오마이뉴스에 발주한 FTA 광고를 당장 취소하라. 취소할 수 없다면 최소한 균형있는 보도에만 광고를 붙일 것을 요구하고 모니터링하라. 오마이뉴스도 FTA를 그렇게 반대한다면 이런 정부의 광고를 수주해서는 안된다. FTA를 반대하는 곳도 많으니 그런 곳의 광고를 받으란 말이다.

FTA 찬성하고 반대하는 것 다 좋은데 우리 제발 상식에 맞게 살자. 부탁이다.

노무현, 그는 정말 위인의 반열에 오르려는가

노무현, 그는 정말 위인의 반열에 오르려는가

한사람의 정치인이 나를 이렇게 감동시킬 줄이야 내 어찌 알았겠는가. 그의 정치 역정이 그러했고,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이 그러했으며,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과정 또한 그러했지만, 오늘 그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정치, 이렇게 가선 안됩니다”라는 글은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글은 정치하는 사람들, 또한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고, 암기하고, 실천해야 할 원칙이자, 계명이자, 실천매뉴얼이다. 이런 글을 쓸 수 있고, 이 글대로 정치를 해 온 사람이 나의 그리고 우리의 대통령이란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정치인이 가져야 할 철학과 원칙을 이렇게 분명하고 쉽게 쓴 글을 본 적이 없다. 이런 글은 자신이 그렇게 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글이다. 자신과 국가 앞에 떳떳하지 않고는 절대로 쓸 수 없는 글이다. 대통령은 말한다.

저울과 계산기일랑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정치는 남으면 하고 안 남으면 안 하는 ‘장사’가 아닙니다. 공익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입니다.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보람을 찾아야 하는 일입니다. 먼저 헌신하고, 결과는 그 다음에 따라 오는 것입니다.

정치는 공익을 추구하는 일입니다. 공익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고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이익만을 셈하여 정치를 해서는 안됩니다. 정치는 정정당당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입니다. 민주주의는 마치 운동경기와 같이 규칙으로 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심판입니다. 투명하고 알기 쉽게 해야 합니다. 복잡한 정략과 권모 술수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콩이면 콩, 팥이면 팥이지요. 애매하고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정말 한 구절 버릴 수도 없는 정치에 대한 소신이자 원칙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언뜻 알고 있는 그런 말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왜 이렇게 감동을 받는 것일까? 만약 다른 정치인 예를 들면 요즘 잘 나간다는 대권 주자들에게 같은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이런 감동을 받았을까?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글이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그가 바로 그렇게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나 글은 언제나 그의 실천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그러니 울림이 크고 힘을 갖는 것이다.

이제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은 정치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고 명문화한 대통령께 감사드린다.

생각같아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5년만 더 이 나라를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을 못하게 해 놓은 우리나라 헌법이 너무 야속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상식으로 굴러가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있을텐데 정말 아쉽다. 그렇다면 다음 대통령 선택의 기준은 명확해진다. 과연 누가 노무현의 이 원칙과 정책을 가장 잘 계승할 것인가?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해서만 정확히 판단하고 대답을 하면 된다.

노무현. 그는 이미 나의 마음 속에서는 위인의 반열에 올랐다. 단언하건대 그는 이 시대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아! 노무현. 그는 감동이다.

네이버가 욕먹는 이유

네이버가 욕먹는 이유

던킨 도너츠 사건, 박지윤 아나운서 사진 노출 사건 등 일련의 사태로 네이버의 일관성 없는 검열 행위가 도마에 올랐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일개 기업에게 영혼을 가지라고 요구할 만큼 우리 사회가 도덕적, 상식적으로 탄탄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 블로거들이 네이버를 욕하고 그에 저항하는 것은 네이버의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욕과 저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극복하려 한다면 네이버에게는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네이버의 가장 큰 문제라 여겨지는 것은 인터넷 정신을 역행하는 폐쇄성일 것이다. 우리나라 검색 시장의 70% 이상을 독점하는 이 업체는 인터넷 안에 울타리를 쳐놓고 자기들만의 성을 쌓고 있다. 엠파스와의 열린 검색 논쟁도 그렇거니와 구글의 검색 로봇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 등은 1등 검색 업체가 취할 행위라고 보기에는 너무 방어적이다. 인터넷의 정신은 우리가 알다시피 개방과 공유와 참여다. 웹 2.0의 성공적 사례라 일컬어지는 사이트들은 거의 모두 이 세 가지 인터넷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아무도 네이버를 웹 2.0의 대표 기업으로 보지 않는다. 지금은 이 폐쇄성에 근거하여 1등을 먹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네이버의 또 다른 문제는 자기가 여론 생성의 선수이면서, 그것도 가장 막강한 선수이면서 마치 아닌 것처럼 뒤로 물러나는 비겁함에 있다. 사실 요즘은 조중동 편집국보다도 네이버는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네이버를 통해 뉴스를 보기 때문에 네이버의 최종 편집권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여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네이버 뉴스는 대체로 정치적으로 한나라당의 수구성을 지향하며 경제적으로 2% 정도 되는 종부세 납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편집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 주류라 할 수 있는 가진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네이버는 이러한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테지만 그들이 행하고 있는 주요 기사 편집, 베스트 댓글이나 추천수 조작 등의 행위를 볼 때 아니라고 부인하기에는 너무 많은 증거들을 남기고 있다. 네이버 뉴스 편집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전직 조중동 기자 출신들이라는 사실도 이러한 행위를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가 된다.

이런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거대 포탈이 마치 공평한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는 것도 비위 상하는 일이다. 아나운서라는 같은 직업을 가진 두 여자의 사진 노출에 대해 네이버는 극명하게 다른 잣대로 반응했다. 네이버는 아니라고 하지만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다. 재벌가 며느리는 보호를 받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여자 아나운서의 사생활은 선정적으로 드러나게끔 되어있는 것이다. 검색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칙이 통용되는 것 아닌가.

블로거들이 네이버를 욕하는 이유는 단지 이 문제에 대한 이중잣대에 기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네이버가 그동안 보여온 폐쇄성, 수구성, 그리고 비겁함 등이 이 문제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것 뿐이다. 네이버가 처음 생길 때 보인 그 풋풋하고 정열적인 모습이 사라진 건 이미 오래다.

네이버가 구글을 능가하는 그런 진취적인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술로써 승부하고 정정당당한 젊은 기업의 모습을 바라는 것이 무리인가? 지금의 네이버는 너무 빨리 늙어 버린 것 같다.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참으로 곤욕이 아닐 수 없다.

네이버가 초심을 찾았으면 좋겠다. 처음처럼.

결혼기념일에 아내가 보내준 선물

결혼기념일에 아내가 보내준 선물

아내는 내가 준비한 보잘 것 없는 선물에 기뻐했고 행복해 했다. 그리고 나에게 가슴 시린 사랑이 담긴 선물을 보내왔다. 우리는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서로를 믿고 존중하고 사랑하므로 행복하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정말 귀엽고 예쁜 딸이 있지 않은가.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가 행복한 만큼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결혼 전에 우리는 몇몇 공연에 갔었는데, 주로 꽃다지라든지, 노찾사라든지, 안치환이라든지, 김광석이라든지 이런 그룹들을 쫓아다니고 그들의 노래를 따라부르곤 했었다. 아내가 보내준 선물도 바로 안치환의 노래 “사랑하게 되면” 이다. 아내의 마음이 고맙다. 나를 잠못들게 하는 사람아!

나 그대가 보고파서 오늘도 이렇게 잠못드는데
창가에 머무는 부드런 바람소리 그대가 보내준 노랠까
보고파서 보고파서 저 하늘 넘어 그댈 부르면
내 작은 어깨에 하얀 날개를 달고 그대 곁으로 날아오르네

훨훨 훨훨 날아가자 내 사랑이 숨쉬는 곳으로
훨~훨 훨훨 이 밤을 날아서 그댈 품에 안고 편히 쉬고파

나를 잠못들게 하는 사람아

보고파서 보고파서 저 하늘 넘어 그댈 부르면
내 작은 어깨에 하얀 날개를 달고 그대 곁으로 날아오르네

훨훨 훨훨 날아가자 내 사랑이 숨쉬는 곳으로
훨~훨 훨훨 이 밤을 날아서 그댈 품에 안고 편히 쉬고파

훨훨 훨훨 날아가자 내 사랑이 숨쉬는 곳으로
훨~훨 훨훨 이 밤을 날아서 그댈 품에 안고 편히 쉬고파

나를 잠못들게 하는 사람아

<안치환, 사랑하게 되면>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

영화 씨네마천국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선물을 남기고, 토토는 그 선물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알프레도가 토토를 위해 이어붙인 입맞춤 장면들. 가슴뭉클한 대목이다. 알프레도의 방해로 첫사랑과 헤어져야 했던 토토. 알프레도의 바람대로 토토는 유명한 감독이 되지만, 그 길이 과연 토토를 행복하게 해 주었는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알프레도가 토토를 자기 목숨보다도 더 사랑했다는 것. 그 진심을 알게 된 토토도 알프레도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은 아내와 결혼한 지 꼭 아홉해 되는 날이다. 세월은 살과 같이 흘렀고, 아내와 나 사이에는 토끼 같은 딸이 생겼다. 행복했던 순간들과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아내와 함께 보낸 9년의 세월은 내게 너무 소중하다.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고 행운이었다.

결혼할 때 반지조차도 마다했던 아내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다.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보낸 그 입맞춤 장면들처럼. 결혼할 때 친구들과 지인들이 홈페이지에 남긴 축하메세지들을 다시 정리했다. 9년 전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생이 다할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랑하면서 살자꾸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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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은 Lab Science”

“현대 의학은 Lab Science”

이 말은 미국의 한 70대 내과의사한테 진찰을 받다가 들은 말이다.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피검사를 하지 않고는 의사들이 환자의 질병을 제대로 진단할 수 없음을 냉소적으로 고백한 것이다. 의사들은 기계가 내 놓은 결과를 해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해진 코스대로만 처방한다. 그 정해진 코스라는 것도 (미국에서는) 대개 제약회사와 보험회사들의 로비와 합의로 결정된 것들이다.

우리 시대 재야 명의로 불리는 장병두 할아버지가 법정에 섰다. 면허없이 의료 행위를 했다는 이유다. 장병두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 수많은 사람들이 구명운동에 나섰다.

박태식 전북대 경제학부 교수는 “3년전 복막과 장으로까지 전이된 위암으로 1달 정도 살 수 있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할아버지의 치료를 받고 완치됐다”며 “삶의 벼랑끝에 몰린 환자들의 희망을 누가 있어 저버릴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현대판 화타 장병두 할아버지 구명운동 ‘불길’, 쿠키뉴스]

질병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도와 새로운 희망을 준 장병두 할아버지는 의사면허와 관계없이 이미 진정한 의자이다. 이런 재야 의자를 찾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현대 의학에서 포기한 이들이라고 볼 때, 장병두 할아버지의 의술은 현대 의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 동양에는 서양의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많은 훌륭한 전통들이 있다. 이것들이 단지 “과학적”이지 않다는 편견으로 무시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 현대 의학은 너무 극명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밥그릇 지키기에만 연연할 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환자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현대 의학 전공자들과 정부의 열린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장병두 할아버지가 하루라도 빨리 환자들 곁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진정한 의자는 환자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너무 서두르지 마, 견디기 힘이 들 때면

너무 서두르지 마, 견디기 힘이 들 때면

장혜진의 <내게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다. 곡도 좋고 노래도 잘 하지만, 무엇보다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너무 서두르지 마 견디기 힘이 들 때면
애써 따라오려 하지말고 오히려 더 천천히

한 사람이 열 발자국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열 사람이 함께 한 발자국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노래다. 경쟁에 지쳐 버려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암울하게 보내고 있을 우리나라의 불쌍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삶이 단거리 경주가 아님에도 회색인간들이 정해놓은 그 길에서 낙오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때문에 기계처럼 공부하는 아이들. 그 길에서 한 발 앞서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에도 이 사회는 그것을 강요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삶의 소중한 가치를 제대로 전해 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 노래는 단비처럼 촉촉히 우리의 귀를 적신다.

모든 것은 회색인간 어른들의 100% 잘못이다. 아이들의 꿈을 빼앗는 회색인간들 때문이다.

너무 서두르지마 견디기 힘이 들 때면
애써 따라오려 하지말고 오히려 더 천천히
그래 그렇게 다가와 내가 여기에서 기다릴께

숨이 찰땐 걸어오렴 힘이 들며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린 아주 먼길을 가야만 해 서두르지마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것이 내겐 소중해
조금 늦는것쯤 상관없어 내가 지쳐있을때
네가 기다려준것처럼 내가 여기있어 힘을 내봐

숨이 찰땐 걸어오렴 힘이 들때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린 아주 먼길을 가야만 해 서두르지마

걱정마 기다리고 있어 이젠 멀지 않아
조금만 더 힘을 내
내가 너의 두팔을 잡아줄수 있도록

숨이 찰땐 걸어오렴 힘이 들때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린 아주 먼길을 가야만해 서두르지마

<장혜진, 내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