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progress)의 반대말은?

진보(progress)의 반대말은?

진보를 영어로 하면 progress인데, 이 말은 pro와 gress의 어원으로 나누어진다. pro는 “앞으로” 또는 “찬성”이란 뜻이고, gress는 “간다”라는 뜻이 있기에 progress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progress의 반대말은?

정답은 congress

농담삼아 한 얘기지만, 이 말에는 뼈가 있다. congress (국회 또는 의회) 가 우리 사회의 걸림돌이란 얘기다. “pro”의 반대말은 “con”이기 때문이다.

<덧글> 원래 congress에서 con의 의미는 “함께”라는 뜻이다.

WordPress 업그레이드 실패담

WordPress 업그레이드 실패담

석달 전에 WordPress 2.1 “Ella” 가 나왔다고 설레발을 쳐놓고도 짐짓 업그레이드를 하지 못했다. 그저 게으르기 때문이었지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 한 20분만 투자하면 될 일인데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업그레이드 하기로 했는데… 하기는 꼭 2.1로 올려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최신 버전인 2.1.3 을 내려 받아 업그레이드를 했는데, 플러그인 중 하나가 WordPress 최신 버전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블로그가 보기에는 이렇게 단순해 보여도 17개의 플러그인이 달려있다. 그 중 제일 중요한 플러그인이 UltimateTagWarrior (UTW) 가 WordPress 2.1.3 에서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댓글만 달면 태그가 없어지는 것이다. 난감했다.

검색을 해보니 이미 알려진 오류인데, UTW 최신 버전에서는 그 오류를 고쳐놓았다고 해서 내려받아 설치해 보니 모든 것이 Blank. 영팔이넷에서 알려준대로 코드를 고쳐보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다시 WordPress 버전을 2.0.10 으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석달 만에 큰 맘먹고 시작한 업그레이드 행사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UTW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 업그레이드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언젠가는 될까?

WordPress를 사용하면서 제일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스팸을 잡아내는 Akismet의 위력이다. 하루에도 수십개의 스팸을 잡아내는데 만약 이 녀석이 없었다면 나같이 게으른 사람의 블로그는 스팸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WordPress를 사용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런데 아직도 왜 UTW 최신 버전이 Blank 페이지로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혹시 아는 분 있으면 좀 가르쳐 주시죠?

20년전 오늘 우리는 이 노래를 불렀다

20년전 오늘 우리는 이 노래를 불렀다

진달래가 가득한 교정에서 최류 가스에 눈물을 쏟으면서 불렀던 노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사는 나무다”라고 외친 선배들의 죽음을 보면서 흐느끼며 불렀던 노래. 뜨거운 분노와 서러운 슬픔을 가슴 가득 안고 친구들과 함께 쓸쓸히 불렀던 노래.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쓰러져 간 젊음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 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이영도, 진달래>

오늘도 그때처럼 교정 가득 꽃이 피었건만, 아무도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태양만 말 없이 꽃을 비출 뿐, 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조선일보의 오바질, 두발 다 들었다

조선일보의 오바질, 두발 다 들었다

조선일보는 조승희가 정말 부끄러운 모양이다. 미국에게 너무너무 미안한 모양이다. 그들에게는 역시 그 더러운 친일의 피가 아직도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리더니 이제는 제호 앞에 향을 피운다. 아무리 봐도 이 신문은 제 정신이 아니다. 미국 언론도 이 정도는 아닌데, 이 신문의 오바질에 오바이트가 쏠릴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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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미국만이 조국이고, 미국인만을 사람 취급하는 신문이다. 일제시대에는 일본만이 조국이고, 일본인만이 사람이었겠지. 아마 죽은 미국인들도 조선일보가 피운 향불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 역한 냄새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조선일보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수치다. 이런 신문을 가장 많이 읽는다는 사실이 더 큰 수치다.

조승희, 그의 눈은 너무 슬퍼 보였다

조승희, 그의 눈은 너무 슬퍼 보였다

NBC 뉴스에서 공개한 조승희의 사진을 보았다. 망치를 들고 있는 그는 극도로 위악스런 표정을 지어보이려 했지만, 그는 너무 슬퍼 보였다. 금방 눈물이라도 쏟아낼 듯한 그의 눈은 깊고 깊은 절망의 슬픔을 담고 있었다.

문제는 아무도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는 거다. 미국 사회든, 한국 사회든. 죽기 전에 그는 그저 여학생을 추근덕거리는 스토커이자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였고, 자기를 포함한 33명의 목숨을 빼앗은 후에는 미치광이 살인마로 전락했다. 한국인들은 미치광이 살인마인 그를 부끄러워 할 뿐이었고, 언론들은 미국인들에게 행여 보복당하고 차별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세상이 자기에게 이 일을 강요했다고 생각한 그는 그 일을 저지른 후에도 영원히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세상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수 많은 총들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수 많은 생명들을 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절반의 책임과 슬픔은 오롯히 우리들의 몫이다.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은 우리들의 몫이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조승희를 용서하고 우리도 용서받는 일 뿐이다. 그를 미친 살인마라고 욕하며 그를 버린다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에게 손을 내밀며 친구가 되어 주었던들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주위를 둘러 보자. 우리가 손을 내밀어 보듬어 주어야 할 이웃이 있는지. 절망의 슬픔을 견디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지. 있다면 그들의 손을 단 한 번만이라도 잡아 주자. 그 단 한 번의 마음 씀씀이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빈다. 부디 다음 생에서는 총 없는 세상에 태어나시라. 조승희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부디 부디 다음 생에서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친구가 생기기를.

참으로 가슴 먹먹한 하루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잔인한 이유

오세훈 서울시장이 잔인한 이유

서울시에 의해 불성실, 무능 공무원으로 찍힌 “현장시정추진단” 78명의 첫날 활동이 한겨레에 의해 보도되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첫날 임무는 한강변에서 잡초를 뽑는 것. 서울시의 3% 무능력 공무원 퇴출이라는 이번 조치에서 서울시와 서울시장 오세훈이 얼마나 무능력하고 잔인한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자를 거면 깨끗하게 잘라내는 편이 오히려 나을 거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을 도대체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 생각인가. 한강변에서 꼭 잡초 뽑는 일을 시키면서 신문에 이런 사진이 올라가길 바랬단 말인가. 사람만 패지 않았다 뿐이지 이것은 전두환의 삼청교육대식 발상이다. 조폭을 뿌리 뽑는다는 구실로 죄없는 사람들을 삼청교육대로 끌고 간 그 전두환 말이다.

경영학에 Peter Principle 이란 것이 있다. “A man rises until he reaches his level of incompetence.” 조직에서 사람은 그의 무능이 드러날 때까지 위로 승진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신입사원들 중 무능력한 사람이 10% 밖에 되지 않고 그 조직의 인사시스템이 나름대로 잘 되어있어 능력있는 사람을 세 배 정도 많이 승진시킨다 하더라도 거의 최고 경영진에 이르러서는 능력있는 사람과 무능력한 사람이 거의 반반을 차지하게 된다.

이번 현장시정추진단에 속한 대부분의 공무원은 하위직이라 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 무능한 사람들이 많을 것인데 시울시는 하위직 공무원만을 솎아내겠다는 것이다. 또한 그 솎는 기준이라는 것도 애매하고 일률적인 비율로 부서장에게 무능력한 공무원을 지목하라는 것도 폭력적이다. 오죽했으면 어떤 부서장은 제비뽑기를 하다가 직위해제 됐을까. 공무원의 무사안일을 타파하는데 과연 이 방법밖에 없었을까.

이런 일을 추진하려면 공정한 평가 수단을 먼저 만들고 그것을 조직원들에게 미리 알려주어야 하며, 시간을 갖고 그 평가 기준에 맞게 평가를 한 후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정 비율의 사람을 잘라낸다 하더라도 그 규칙이 조직원들에게 암묵적으로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Adobe 같은 회사는 매년 10%의 인력을 잘라낸다. 하지만 입사할 때부터 이 규칙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의 반발은 없다.

현장시정추진단이 하는 일도 참 웃기다. 한강변에서 잡초를 뽑게 한다? 한강변에 잡초아닌 것이 어디 있나? 전혀 생산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은 일을 무능한 공무원으로 찍힌 사람들에게 서울시는 강요하고 있다. 정말 서울시의 상상력은 이것밖에 되지 않는단 말인가. 서울시장과 서울시는 자기들이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일처리는 이런 일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능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시장 오세훈은 정수기 광고 건으로 시장 출마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선관위와 언론의 봐주기로 어물어물 넘어가기는 했지만 분명 선거법상 지난 번 선거에 나올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마 강금실이 서울시장이 되었다면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끔하게 생긴 오세훈에게서 전두환의 냄새를 맡는 건 정말 고역이다.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지 마라. 그 업은 고스란히 당신들에게 되돌아 갈 것이다.

한겨레 논설위원의 댓글에 대한 답변

한겨레 논설위원의 댓글에 대한 답변

한겨레 논설위원께서 영광(?)스럽게도 내가 쓴 “기자와 정자의 공통점”이란 글에 친히 댓글을 주셨다. 일개 블로거에 지나지 않는 나의 글에 중앙언론사의 (일반 기자도 아닌) 논설위원께서 댓글을 주시다니.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게 한다. 관심을 가져주시니 일단 고맙다. 하지만, 그의 댓글에 대해서는 한마디 드려야 될 것 같다.

그가 내게 표시한 불만은 “왜 한겨레나 오마이뉴스의 보도는 사실을 비튼 것이고 MBC 보도는 사실이라고 말한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한겨레나 오마이뉴스가 사실을 왜곡했다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장관들을 질책했다는 것을 나도 직접 들은 적이 없고 기자들도 직접 들은 적이 없다. 다만, 기자들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전한 것이고, 나도 기자들이 보도한 것을 읽은 것 뿐이다. 진실은 그 말을 한 대통령이나 그 자리에 참석한 장관들 그리고 비서관들만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은 “어떻게 900명 (혹은 700명)의 어민이 피해보는 것을 엄청나다는 식으로 보고할 수 있느냐”라는 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내 글의 요지는 같은 상황을 전하더라도 기자가 어떤 “의도”를 가졌냐에 따라 상황이 180도 바뀐다는 것을 얘기한 것이다. 한겨레는 제목부터 “900명 피해가 엄청나냐” 노대통령, FTA워크샵 ‘호통’ 으로 뽑고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대통령이 900명의 어민 피해는 아무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도록 기사를 작성했다.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기사에 붙은 몇몇 댓글을 보자.

[kilf9000] 900명은 엄청난 피해가 아니다? 정말 엄청난 대통령이구만

[kiwijin] 900명의 어민이 노통 말마따나 엄청난 피해를 운운할 것인가 하는 것은 액면 그대로는 고개 갸우뚱 할 일이긴 하다. 하지만 900명에 의존하는 식솔과 연관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 더욱이 국가의 먹거리를 자생적으로 공급하는 농.축.어민의 존재와 다양성은 그 자체로만 이야기할 사항은 전혀 아니다. 철학의 문제고, 통수권자로서의 자질의 문제다. 시장의 건전성과 생명은 그 규모가 아니라 바로 다양성에 있다.

[ryuryustone] 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900명에게는 삶의 전부일 수도 있는 문제이다. 과연 900명중에 친척이나 지인이 있다고 생각됐다면, 그래도 쉽게 그런 발언이 나왔을까?

[alpinum] 노무현씨, 당신이 900명 생계 책임지겠다는 소리입니까? 당신 재산으로 그들의 피해 보상해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진정한 책임감 없이 한 소리라면, 당신은 정말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볼짱 다 본 사람입니다.

자 어떤가? 이 기사를 쓴 신승근 기자는 독자들 중 많은 사람이 대통령을 “인간으로서 볼짱 다 본 사람”으로까지 생각하도록 유도했다. 위의 댓글들은 단지 한겨레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것들이다. 이 기사가 네이버 같은 포탈에 올라갔을 때 수많은 순진한 독자들은 대통령의 900명 어민을 무시한듯한 발언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장관들을 질책한 상황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대통령이 900명 정도의 어민의 피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일까? 적어도 MBC의 보도는 이 기사에서 대통령 발언의 핵심을 전해주고 있다.

노대통령은 “잘못하면 국민의 세금을 대충 갈라줘 버리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이런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盧, ‘어설픈 FTA 피해 보고’ 질책, MBC뉴스]

대통령의 뜻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상황에 맞게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진심을 한겨레 기사 말미에라도 적었다면 어땠을까? 독자들이 대통령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는 그렇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FTA를 추진하는 대통령이 못마땅했고, 어떻게든 그를 까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가 보였기에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기사에 대해 “사실을 비틀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FTA에 대해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정정당당하게 그 싸움에 임해야한다. 조중동도 아니고 한겨레가 이래서는 안된다. 한겨레까지 조중동을 닮는다면 우리나라 언론의 미래는 없다. 제대로 된 언론을 새로 만들던지 아니면 천만 블로거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던지 할 것이다.

블로거들이 다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천만 명의 블로거 중에는 제대로 된 블로거가 반드시 존재하고 그 블로거들이 쓴 글들은 어떻게든지 다른 사람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이 웹의 법칙이다.

정리하자. 현재 우리 사회의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은 언론이다. 조중동 뿐만 아니라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소위 진보 언론들도 포함된다. 기자들이 특권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언론의 미래는 없다. 언론들이 여론을 옛날처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직은 당신들이 힘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한겨레 창간호의 잉크냄새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 한겨레는 정말 우리의 희망이었다. 한겨레가 조중동을 따라해서는 비전이 없다. 그것은 지향 뿐만 아니라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한겨레 논설위원께 부탁한다. 제발 한겨레가 초심을 찾았으면 좋겠다.

심상정은 좌파 전여옥?

심상정은 좌파 전여옥?

아니면 전여옥은 수구 심상정? 이렇게 얘기하면 누가 더 좋아하고 누가 더 기분 나빠할까? 둘 다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요사이 이 두 분의 국회의원님들은 거의 막상막하라 할 만큼 수준이 근접해 있다.

우리나라 유일의 이념 정당 민노당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FTA를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어거지 논리를 들이댄다 해도 자본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그들의 지향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들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얘기가 들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에 이르러서는 민노당의 스탠스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당론이라고 얘기해 왔으면서 막상 대통령이 그렇게 개헌을 하자하니 되지도 않을 개헌을 왜 꺼내냐며 대통령을 구박한다. 대통령에게 의제를 선점당해서 배가 아파서 그런가?

지난 3개월동안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 개헌에 대해 한 일이 도대체 뭔가? 나는 이 사람들이 왜 나라로부터 돈을 타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막상 대통령이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하니 각 정당의 원내대표라는 자들이 모여 “다음 국회에서 하겠다”라고 합의를 했다? 왜 다음에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하면 안되나? 그리고 당신들이 다음에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당신들이 뭔데 다음 국회에서 할 걸 미리 결정하나? 지금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 족속들이.

대통령이 조건부로 유보하겠다고 하니 아주 신이 났다. 민노당 의원 심상정은 한 술 더 뜬다.

잘못한 일을 잘못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국민과 기싸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추진은 기승전결 모두가 잘못된, 나쁜 정치의 전형입니다. 나쁜 정치를 철회하면서 구차스러운 조건을 걸고, 흥정하려는 태도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대통령, ‘원포인트 개헌’ 실패 솔직히 인정해야, 오마이뉴스>

난 노무현 대통령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국회의원들 말을 안 들어서? 대통령이 언제 국민과 기싸움을 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나쁜 정치의 전형이라? 자신의 공약을 지키는 것이 나쁜 정치의 전형이라고? 그리고, 언제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철회했는가?

아직도 노무현을 이렇게 모르니 맨날 깨지는 것이다. 정말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철회할 것으로 생각하나? 당신들이 임기를 줄여가면서 꼭 하겠다라고 약속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경우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을 발의할 것이다. 그것이 노무현이다. 하지도 않을 것은 아예 꺼내지도 않는다.

민노당의 심상정 의원을 비롯한 대부분 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발의가 두려운 것이다. 그것을 막을 명분은 없는데, 노무현이 시작한 일을 찬성할 수도 없고, 반대할 수도 없고. 정말 대통령에게 사정하고 싶은 것이다. 발의만을 말아 달라고. 아닌가?

당신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통령은 쐐기를 박을 것이다. 당신들은 대통령의 발의를 투표로 반대할 권한이 있다. 그 권한대로 한 번 해 보기 바란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개헌은 결국 국민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과연 국민들이 당신들의 말을 믿을까 아니면 대통령의 말을 믿을까? 내기해도 좋다.

심상정은 결국 좌파 전여옥이었다.

조폭언론 비판하다 조폭되어 버린 강준만

조폭언론 비판하다 조폭되어 버린 강준만

옛날 묘기대행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여러 기인들의 위험천만한 묘기가 나올 때면 아이들은 절대 따라해서는 안된다는 자막이 친절하게 흘렀다. 보자기 뒤집어 쓰고 수퍼맨 흉내를 내는 아이들이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호기심 많은 애들은 제법 따라할 만도 했다. 전북대 교수 강준만은 조폭언론이란 말을 만들어내며 조중동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인물이다. 싸우다가 닮는다더니 이제 강준만은 자신이 그렇게 비판했던 조폭언론 조중동을 넘어서는 조폭이 되었다. 조중동에게 바란다. 당신들의 기사마다 “강준만은 절대 따라하지 마라”라는 문구를 넣어달라. 얼치기 조폭 흉내내다가 강준만이 다치기라도 하면 조중동이 책임질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한국일보에 기고한 강준만의 “노무현과 박정희”라는 조폭칼럼은 노무현을 까기 위해 별 관심도 없는 FTA를 들이댄 경우라 하겠다. 정작 강준만은 FTA에 대해 찬반을 밝히지도 않았다. 다만 노무현의 FTA의 추진 방식이 박정희의 쿠데타와 비슷하다면서 그는 자신의 독심술을 근거로 들었다. 강준만이 독심술까지. 이제 천하무적 변신로보트가 된 강준만은 노무현과 안희정의 심연에 박정희가 존재한다고 관심법을 들이대고 있다. 이 관심법을 피할 자가 과연 누구일까. 잔민 패거리 궁물의 이론적 대부답게 그는 노무현이라면 이를 갈고 있다. 한 때는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이라는 책을 썼던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그 책을 사게 했던) 그가 이제는 반노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그때는 노무현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그를 찬양했고, 민주당 분당 이후로 그의 실체를 파악했기에 반노로 돌아섰다? 반노로 돌아선 계기가 좀 창피하지 않을까? 그깟 잔민 패거리들의 궁물을 지켜주기 위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강준만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제일 밥맛이다. 한 때는 마치 개혁의 선봉임을 자처하다가 자신과의 이해관계와 어긋난다하여 오바질하는 인간들. 이런 인간들이 대학 교수입네 하면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제 이런 인간들의 글은 그만 봤으면 좋겠다. 아주 신물이 난다. FTA에 대해서는 노무현만큼이나 찬성하고 있는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해서 강준만은 뭐라 할까? 만약 김대중이 FTA를 추진했다면 강준만은 과연 김대중을 비아냥대면서 씹었을까? 강준만의 학생들은 잔민 패거리 때문에 변신로보트가 된 자신의 선생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할까? 조중동보다 더 조폭이라고 생각할까? 강준만의 학생들이 가여워지는 나른한 봄날이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다

새벽에 잠이 깨서 시집 한 권을 읽었다. 류시화가 엮어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름 모를 이들의 삶이 뚝뚝 묻어나오는 잠언에 나는 파묻혔다. 그들이 깨달은 진리와 지혜가 깨끗하지 못한 내 영혼을 씻어 주었다. 10여년 전에도 읽어 보았던 구절들이었지만, 읽을 때마다 다가오는 감동은 다르다. 삶에 대한 천착의 깊이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종은 누가 그걸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노래는 누가 그걸 부르기 전에는
노래가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도
한쪽으로 치워 놓아선 안 된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

A bell’s not a bell ’til you ring it,
A song’s not a song ’til you sing it,
Love in your heart wasn’t put there to stay,
Love isn’t love ’til you give it away!

[Oscar Hammerstein II,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한 번 더 얘기해 주자.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 더 안아 주자. 지금 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있는 이 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

오늘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 더 해 주어야겠다.

<덧글> 류시화의 번역 중에 세째 구절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식이면 어떨까?

당신 마음 속의 사랑도 거기 그냥 놓아둬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