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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 September 2006

최장집, 강준만, 그리고 이한우

최장집, 강준만, 그리고 이한우

최장집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일했던 우리나라 진보학계의 대표적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다. 조선일보는 그를 낙마시키기 위해, 그의 제자 이한우를 이용하여 그를 빨갱이로 몰아 버린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격분했고, 강준만 같은 이는 이한우를 가리켜 “스승의 등에 칼을 꽂은 청부업자”라고 일갈했다. 1999년의 일이다. 나는 그때 정말 이한우만 나쁜 놈인 줄 알았다.

노무현 정부 들어 강준만이 커밍 아웃해 버리고, 드디어 최장집마저 정체를 드러냈다. 경향신문 창간 6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최장집은 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을 수 없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의 칼 꽂는 솜씨는 제자 이한우보다 한 수 위였다.

대부분 진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이념을 절대 시 한다. 그리하여 자기와 조금이라도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과는 끝없이 분열한다. 이념의 다름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이념은 절대 기준이 아니다. 많은 기준 중 하나일 뿐이다.

“The things you own, they end up owning you.”

“The things you own, they end up owning you.”

영화 Fight Club (1999) 은 David Fincher의 역작이다. 이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TYLER: I mean, you did lose a lot of nice, neat little shit. The trendy paper lamps, the Euro-trash shelving unit, am I right?
(Jack laughs, nods. He shakes his head, drinks.)
TYLER: But maybe, just maybe, you’ve been delivered.
JACK: (toasts) Delivered from Swedish furniture.
TYLER: Delivered from armchairs in obscure green stripe patterns.
JACK: Delivered from Martha Stewart.
TYLER: Delivered from bullshit colors like “Cobalt,” “Ebony,” and “Fuchsia.”
(They laugh together. Then, silence. They drink.)
JACK: Insurance’ll cover it.
TYLER: Oh, yeah, you gotta start making the list.
JACK: What list?
TYLER: The “now I get to go out and buy the exact same stuff all over again” list. That list.
JACK: I don’t… think so.
TYLER: This time maybe get a widescreen TV. You’ll be occupied for weeks.
JACK: Well, I have to file a claim…
TYLER: The things you own, they end up owning you.

네가 가진 것들이 결국은 너를 지배하게 될 거다. 공교롭게도 이 말은 이 영화가 나오기 30년 전쯤 법정 스님의 무소유란 수필에서 하신 말씀이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법정, 무소유, 범우사>

영화 Fight Club의 Tyler Durden은 법정 스님과는 정반대의 캐릭터이지만 – Tyler는 자신의 신념을 이루기 위해 911 같은 테러를 시도한다. – 소유에 대한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똑같다. 버리면 버릴수록 더 자유로워진다. 진리는 참으로 단순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행하기는 만만치 않다.

The Road Not Taken

The Road Not Taken

프로스트 (Robert Frost)의 절창 The Road Not Taken 은 이렇게 끝난다.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숲속의 두 갈래 길 중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는데,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중 몇몇 선택은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그런 선택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이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그때는 지금 알았던 것을 알지 못했다.

루쉰(魯迅)의 소설 <고향> 중에 희망을 길에 빗대어 한 말이 나온다.

희망은 본디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프로스트의 길과 루쉰의 길을 비교하자면, 전자는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선택을 표현한 반면, 후자는 역사 속의 민중의 힘을 나타낸 느낌이다. 우리에게 길은 선택이 되기도 하고, 희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 어찌할 것인가. 그때는 길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자유롭게 노닐다 …

자유롭게 노닐다 …

<장자(莊子)>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하였습니다.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鵬)이라 하였습니다. 그 등 길이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 번 기운을 모아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았습니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여 물결이 흉흉해지면, 남쪽 깊은 바다로 가는데, 그 바다를 예로부터 하늘못(天池)이라 하였습니다.

<오강남, 장자, 현암사>

<장자>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끝없는 상상의 나래와 거칠 것 없는 호방함 때문이다. 동서양의 고전 중 <장자>처럼 이렇게 호쾌하게 시작하는 책은 많지 않다. 소요유(逍遙遊)는 <장자> 첫 번째 편의 제목이다. 오강남은 이것을 ‘자유롭게 노닐다’라고 풀이했다. 그는 절대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변화와 초월이 소요유 편의 주제라 말한다.

오래전부터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무료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많이 있지만, 나의 결벽은 나만의 공간을 고집했다. 마음에 드는 블로그 제목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으름과 결벽은 대체로 일을 더디게 만든다.

이제야 내 공간을 만들고, 그 제목을 <장자> 첫째 편에서 따왔다. ‘자유롭게 노닐다…’ 이것만큼 이 블로그에 어울리는 제목도 드문 것 같다. 이제 멍석을 깔았으니 제대로 한 판 놀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