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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소요유

The Road Not Taken

The Road Not Taken

프로스트 (Robert Frost)의 절창 The Road Not Taken 은 이렇게 끝난다.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숲속의 두 갈래 길 중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는데,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중 몇몇 선택은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그런 선택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이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그때는 지금 알았던 것을 알지 못했다.

루쉰(魯迅)의 소설 <고향> 중에 희망을 길에 빗대어 한 말이 나온다.

희망은 본디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프로스트의 길과 루쉰의 길을 비교하자면, 전자는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선택을 표현한 반면, 후자는 역사 속의 민중의 힘을 나타낸 느낌이다. 우리에게 길은 선택이 되기도 하고, 희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 어찌할 것인가. 그때는 길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자유롭게 노닐다 …

자유롭게 노닐다 …

<장자(莊子)>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하였습니다.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鵬)이라 하였습니다. 그 등 길이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 번 기운을 모아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았습니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여 물결이 흉흉해지면, 남쪽 깊은 바다로 가는데, 그 바다를 예로부터 하늘못(天池)이라 하였습니다.

<오강남, 장자, 현암사>

<장자>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끝없는 상상의 나래와 거칠 것 없는 호방함 때문이다. 동서양의 고전 중 <장자>처럼 이렇게 호쾌하게 시작하는 책은 많지 않다. 소요유(逍遙遊)는 <장자> 첫 번째 편의 제목이다. 오강남은 이것을 ‘자유롭게 노닐다’라고 풀이했다. 그는 절대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변화와 초월이 소요유 편의 주제라 말한다.

오래전부터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무료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많이 있지만, 나의 결벽은 나만의 공간을 고집했다. 마음에 드는 블로그 제목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으름과 결벽은 대체로 일을 더디게 만든다.

이제야 내 공간을 만들고, 그 제목을 <장자> 첫째 편에서 따왔다. ‘자유롭게 노닐다…’ 이것만큼 이 블로그에 어울리는 제목도 드문 것 같다. 이제 멍석을 깔았으니 제대로 한 판 놀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