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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소요유

트럼프와 김정은

트럼프와 김정은

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예상과는 다르게 성과 없이 끝났다. 트럼프는 예전의 트럼프가 아니었다. 워싱턴의 주류 정치인과 언론들은 그를 사정 없이 몰아붙였다. 그는 실무진이 협상하여 마련한 합의문에 서명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져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었지만, 한반도의 상식 있는 국민들의 처지에서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평양에서 베트남 하노이까지 4천 킬로미터가 훨씬 넘는 거리를 열차로 이동한 김정은은 비록 젊었지만, 피곤해 보였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그는 뭔가 합의를 기대하고 달려왔지만, 트럼프는 그의 기대를 총족시키지 못했다. 서른 다섯의 젊은 지도자의 어깨 위에 2천 5백만 북한 인민의 삶이 얹혀 있었다. 그는 몹시 버거워 보였고, 긴장되어 보였다.

북미정상회담에 재를 뿌리는 자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 자들이다. 군수업체 로비를 받는 워싱턴의 정치인들이나 전범의 후예인 일본 아베는 그렇다 치자. 한반도 평화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 땅의 반민족 친일 매국노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말 무지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탐욕에 눈이 먼 것인지.

트럼프가 망나니이긴 하지만, 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오바마보다 낫다. 바라건대, 이 한반도에도 제발 평화가 찾아오길. 그렇게만 된다면, 트럼프는 재선에도 성공하고 노벨평화상도 받을 것이다. 그나저나 문재인 대통령만 힘들게 생겼다.

공동체와 갈등

공동체와 갈등

갈등은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할 만큼 중요합니다. 갈등을 없애거나 피하려고만 하는 태도는 마치 병의 근본 원인이 아닌 증상만 없애려는 것과 같습니다.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볼 때에야 갈등의 근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거울을 치우거나 거울 앞에서 도망친다고 해서 병이 나을 리 없지요. 모든 갈등은 예수님이 각자에게 주시는 질문입니다.

<이재영, 오두막, IVP, 2016, p. 247>
죽음을 알리는 신호

죽음을 알리는 신호

사람들은 죽기 직전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본인과 가족 모두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다.

– 2주 전: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다.

– 1주 전: 물도 삼키기 힘들어지고 걸을 수 없게 된다. 의식이 명료하지 않고 자는 시간이 길어진다.

– 6일 전: 환시, 환청이 생기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섬망 증상이 나타난다.

– 5일 전: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목에서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난다.

– 4일 전: 소변이 안 나오게 된다.

– 3일 전: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전혀 거동을 못하고 누워 지낸다.

– 2일 전: 불러도 반응이 없다.

– 1일 전: 몸에서 철이 녹슨 듯한 냄새가 난다.

– 한나절 전: 손발이 차가워지고 자줏빛으로 면한다. 혈압이 떨어진다.

– 임종: 호흡이 멈추고 온몸이 차가워진다.

<오가사와라 분유, 더 없이 홀가분한 죽음, 위즈덤하우스, 2018, p. 184>

중완(中脘) – CV12

중완(中脘) – CV12

중완(中脘)은 임맥의 12번째 혈이다. 족양명위경의 모혈(募穴)이고, 팔회혈(八會穴) 중 부회(腑會)에 해당한다. 배꼽의 중점과 기골을 연결하는 선 중간에서 취혈한다. 배꼽 위 4치에 위치한다.

백회(百會) – GV20

백회(百會) – GV20

백회(百會)는 독맥의 20번째 혈이다. 머리는 모든 양(陽)이 모이는 곳이며, 백회는 머리의 정상에 있다. 족태양(足太陽), 수소양(手少陽), 족소양(足少陽), 족궐음(足闕陰), 독맥(督脈)이 모이는 곳이라 삼양오회(三陽五會)라고도 한다. 하악각(下顎角)와 이첨(耳尖)을 연결하는 선과 머리의 정중선이 교차되는 지점에 취한다. 전발제(前髮際) 위 5치, 후발제(後髮際) 위 7치에 위치한다.

영심이

영심이

그 아이를 보면 배금택이 그린 만화 주인공 영심이가 떠오른다. 오랜만에 영심이를 만났다. 한 때는 건강에 문제가 있어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주 건강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에게서 밝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아픈 손가락 같은 아이였는데, 이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그에게서 위로를 받을 정도로 영심이는 많이 성장했다. 영심이가 더욱 기특한 이유는 그가 목표로 했던 일을 거뜬히 이루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낌없는 칭찬으로 그를 격려했다.

세월이 흘러도 이렇게 찾아오는 이들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고맙다. 영심이의 건승을 빈다.

질병이란 무엇인가

질병이란 무엇인가

질병이란 우리 몸에서 우연히 생기는 오류가 아니라 사실은 매우 정교한 치유 메커니즘이다. 질병의 증상은 그저 몸이 현존하는 불균형에 대하여 반응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데 열중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일 뿐이다. 질병의 증상을 완벽하게 억제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몸의 치유 능력을 강제로 약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가 “우리의 치료는 성공적이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사실에 맞게 옮기면 “우리는 몸의 치유 노력을 성공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었다”가 될 것이다. 질병의 증상을 없애거나 완화함으로써 질병을 치유하거나 통제할 가능성이 사라진다.

<안드레아스 모리츠, 의사들도 모르는 기적의 간 청소, 에디터, 2015>

망언

망언

자유한국당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두환의 민주정의당(민정당)이 나온다. 전두환은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광주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면서 정권을 잡는다. 그 학살의 주범 전두환이 만든 당이 바로 민정당이다. 따라서 자유한국당은 군부독재 세력의 후예들이다.

자유한국당 의원 세 명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망언을 했는데, 그것은 상식있는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는 망언이지만, 자유한국당의 군부독재 후예들이 볼 때는 용기있는 직언이다. 전두환이 아직도 살아서 저렇게 뻔뻔하게 활개칠 수 있는 이유도 다 자유한국당의 군부독재 후예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치의 후예들이 국회의원이 되어서 독일 국회에서 히틀러를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그들은 법의 심판을 받고 종신형이나 사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30% 가까운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유한국당이 이런 망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국민들이 깨어나지 못하면 이런 독재 부역세력들이 좀비처럼 끊임없이 부활한다.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적폐청산은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 총선은 가장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후배들의 졸업

후배들의 졸업

오랫만에 모교를 방문하여 후배들의 졸업식을 보았다. 아들뻘 되는 아이들이 졸업을 하는데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았다. 졸업식은 무척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교장선생님은 축하 말씀을 끝낸 후 모든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일일히 수여하였다. 후배들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고, 선생님들은 졸업하는 아이들을 껴안아 주었다.

모교를 방문하여 인구절벽을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지금 졸업하는 아이들보다 내년에 졸업할 아이들의 숫자가 3분의1이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세월의 흐름과 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졸업하는 모든 후배들의 건승을 빌었다.

객관적 판단

객관적 판단

심사와 평가는 늘 주관적이다. 객관적 평가는 관념 속에서나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지 모르지만, 실제 평가는 다 평가자의 가치관과 주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연구 결과를 요약하여 논문을 제출했는데, 그 논문이 과연 출판할 가치가 있는지 평가하려면 그 논문의 기여도를 보게 된다. 이론적 기여가 있는지, 실제 그 결과를 응용할 수 있는지, 기존 연구에 비해 새로운 주장이 있는지 등을 평가하게 되는데, 이런 기여가 없을 경우 논문은 출판되지 못한다.

각종 경연이나 경진 대회의 심사도 마찬가지다. “객관적으로 심사해 주세요.” 이런 주문은 불가능하다. 객관적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공정하게 평가해 주세요.” 여기서의 핵심은 “공정”인데, 이건 절차에서의 공정만이 가능할 뿐이다.

법대로 판결한다는 법관도 예외일 수 없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한다지만, 그 양심이란 것에 객관적인 척도는 없다. 따라서 모든 법적 판결도 주관적이다.

모든 판단은 주관적이지만, 그것이 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판단에 대한 비판을 허락해야 한다. 비판을 허락하지 않는 판단은 비합리적인 도그마가 될 확률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