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d by
Category: Poetry

오늘 하루

오늘 하루

어두운 하늘을 보며 저녁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이것저것 짧은 지식들은 많이 접하였지만
그것으로 생각은 깊어지지 않았고
책 한권 며칠씩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이 묻혀
읽지 못한 나날이 너무도 오래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지만
만나서 오래 기쁜 사람들 보다는 실망한 사람이 많았다
…… 나는 또 내가 만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을 것인가
미워하는 마음은 많았으나 사랑하는 마음은 갈수록 작아지고
분노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이해하는 말들은 줄어들었다
소중히 여겨야 할 가까운 사람들을 오히려 미워하며
모르게 거칠어지는 내 언어만큼 거칠어져 있는 마음이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덜컹거렸다
단 하루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오늘도 혁명의 미래를 꿈꾸었다.

<김남주, 오늘 하루>

김남주는 온유하고 순수했지만 강했다. 그는 시인이자 전사였고, 그의 시는 무기였다. 그의 <오늘 하루>라는 시의 마지막은 나를 참 아프고 부끄럽게 한다. “단 하루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혁명의 미래를 꿈꾸다니.

왜 하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을 쉽게 데려가는 것일까. 학창 시절에 제일 좋아했던 시 중 하나도 김남주의 것이었다.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김남주, 사랑은>

부질없는 말이지만, 그가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면. 그의 시가 우리의 부끄러움을 일깨운다면. 아, 김남주!

Job 뉴스

Job 뉴스

왜 푸른하늘 흰구름을 보며 휘파람 부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호수의 비단잉어에게 도시락을 덜어 주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소풍온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듣고 놀라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비둘기떼의 종종걸음을 가만히 따라가 보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나뭇잎 사이로 저며드는 햇빛에 눈을 상하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나무 벤치에 길게 다리 뻗고 누워 수염을 기르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이런 것들이 40억 인류의 Job이 될 수는 없을까?

<장정일, Job 뉴스>

강금실은 장정일 필화 사건 때 그를 변호하면서 그가 소년과 스님의 이미지가 있다고 얘기했다. 스님은 잘 모르겠고 확실히 그에게는 소년의 모습이 있다. 그의 상처 받은 순수가 위로받길 기도한다.

당연한 일

당연한 일

세상엔 당연히 일어날 일 외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땅한 이유없이 헤어지는 연인이 어디 있으며
까닭도 없는 싸움이 왜 일어나겠는가
당연하게 주저앉아 버릴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폭락해야 할 주가와 폭등해야 할 물가의
오르내림이 또한 당연하고
유유상종으로 헤쳐 모여를 거듭하는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너무도 당연하니
세상 모든 게 당연지사이다

출세의 길은 그러니까 당연히 일어날
일에 대해 남들보다 앞서 준비하는 것이다
알고보면 별 것 아니다
어제 본 재방송 드라마를 꾹 참고
하루 세 번씩만 더 보는 일
진부함을,
진부함의 지겨움을,
진부함의 고통을 견디는 것
그것이 출세의 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세상엔 당연히 일어날 일 외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의외의 일이란,
우매한 인간들이 자신도 예상못할 일들을
벌려놓아 빚어지는 넌센스에 다름아니다
제가 벌려놓은 일들로 전전긍긍 불편한 생을
사는 동물이 인간말고 또 있으랴
생활이 편리해지면 인생이 불편해지듯
살아 온 만큼 불행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정해종, 당연한 일>

나이를 먹다 보면, 사람들은 삶을 바라보는 몇 가지 기준들을 만드는데, 언제부턴가 나는 인과율에 관한 고정관념을 갖기 시작했다.

“세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처럼 보이는 어떠한 사건도 수많은 필연들이 만들어 낸 결과다. 즉, 우연은 필연이란 요소들의 변증법적인 결합일 뿐이다.”

시청 앞에서 정말 우연히 20년 전의 초등학교 짝을 만난다든가, 우연히 산 복권이 당첨되어 횡재를 한다든가, 버스에서 우연히 같이 앉은 여자와 눈이 맞아 결혼을 한다든가, 이런 정말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을 조목조목 따져보면 거기에는 낱낱의 필연적인 요소들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믿기 시작한 것이다.

수억 마리의 정충 중의 하나가 선택되어 ‘나’라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사실, 그 성스런 시작은 결코 확률이나 통계의 무책임한 해석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런 상상은, 사람 사이의 인연이란 쉽게 저버릴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내가 지금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라는 생각까지 어렵지 않게 다다르게 된다.

안도

안도

스무 살 안팎에는 누구나 한번쯤 연애 편지를 썼었지
말로는 다 못한 그리움이며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 외로움이 있던 시절 말이야
틀린 글자가 있나 없나 수없이 되읽어 보며
펜을 꾹꾹 눌러 백지 위에 썼었지
끝도 없는 열망을 쓰고 지우고 하다 보면
어느날은 새벽빛이 이마를 밝히고
그때까지 사랑의 감동으로 출렁이던 몸과 마음은
종이 구겨지는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리곤 했었지
그러나 꿈 속에서도 꿨었지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다고
그런데 친구, 생각해보세
그 연애 편지 쓰던 밤을 잃어버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타협을 배우고
결혼을 하면서 안락을, 승진을 위해 굴종을 익히면서
삶을 진정 사랑하였노라 말하겠는가
민중이며 정치며 통일은 지겨워
증권과 부동산과 승용차 이야기가 좋고
나 하나를 위해서라면
이 세상이야 썩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친구, 누구보다 깨끗하게 살았노라 말하겠는가
스무 살 안팎에 쓰던 연애 편지는 그렇지 않았다네
남을 위해서 자신을 버릴 줄 아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집안에 도둑이 들면 물리쳐 싸우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가진 건 없어도 더러운 밥은 먹지 않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사랑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한 발자국씩 찾으러 떠나는 거라고
그 뜨거운 연애 편지에는 지금도 쓰여 있다네

<안도현, 연애 편지>

십여 년 전 노트에 베껴 썼던 안도현의 연애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아직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도 되었던 나의 행운에 안도하며, 지금 다시 연애 편지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 생각해 본다. “집착하지 마라. 집착하지 마라. 집착하지 마라.” 하지만 이것은 연애 편지가 아닌데…… 이제 더 이상 연애 편지를 쓸 수 없단 말인가.

너무 멀리 오다

너무 멀리 오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향수(鄕愁)]

내일이 추석이다. 고향의 정겨운 풍광들이 그리워지는 때다. 길가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뒷산 언덕배기에 떨어져 있는 밤송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그리고 연하게 푸른 하늘, 안부를 묻는 친척들의 느린 사투리, 할아버지 묘소의 고즈넉한 침묵, 끈질긴 생명력의 잡풀들, 앞 산으로 구불구불 사라지는 마을 길. 이렇게 그리운 것들을 떠나 나는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정지용의 향수를 이동원 박인수의 목소리로 들으며, 고향의 품 속으로 되돌아간다. 부모님이 보고 싶다.

The Road Not Taken

The Road Not Taken

프로스트 (Robert Frost)의 절창 The Road Not Taken 은 이렇게 끝난다.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숲속의 두 갈래 길 중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는데,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중 몇몇 선택은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그런 선택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이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그때는 지금 알았던 것을 알지 못했다.

루쉰(魯迅)의 소설 <고향> 중에 희망을 길에 빗대어 한 말이 나온다.

희망은 본디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프로스트의 길과 루쉰의 길을 비교하자면, 전자는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선택을 표현한 반면, 후자는 역사 속의 민중의 힘을 나타낸 느낌이다. 우리에게 길은 선택이 되기도 하고, 희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 어찌할 것인가. 그때는 길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