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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4월의 끝자락에서 봄은 벌써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흐드러질 수 없을 정도로 꽃들은 지천으로 피었고, 나뭇가지마다 연한 풀빛의 새순이 돋았다. 하늘은 맑고 높았고, 따사로운 햇볕 속에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었다. 그 상쾌하고 아련한 봄날에 한적한 길을 걸으며 숨을 깊이 들이키니, 짙은 봄기운이 온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 봄을 만끽하려는 순간 봄은 저만치 물러가 버리고 어느덧 여름 냄새가 다가왔다. 봄은 무심히도 그렇게 가버렸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슬픈 봄날은 이다지도 쉽게 가버렸다.

이런 날은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들어야만 한다. 듣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봄날은 그렇게 갔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같은 것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랑도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김윤아, 봄날은 간다>

나른한 오후의 재즈 한 곡

나른한 오후의 재즈 한 곡

햇살이 따사롭다. 봄이 성큼성큼 다가온 것 같은 그런 나른함으로 온몸을 감싼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고, 나무가지가 가볍게 리듬을 타고 있다. 저 멀리 보이지 않는 해변에 갈매기가 날고, 사람들은 따사로운 햇볕을 쬐고 있다.

1월의 강(리오데자네이로)이라는 도시의 이파네마 해변. 소녀는 하늘거리는 스커트를 입고 맨발로 해변을 거닐고 있다. 바람이 그녀의 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머리칼 사이로 사과향이 퍼져나간다. 나른한 오후의 청량감으로 다가오는 향기. 한가롭고 평화롭다. 구리빛으로 그을린 남자들이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린다. 그녀를 보는 순간, 누구라도 사랑에 빠져버리지만 아무도 고백하지 못한다. 그녀는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은 채, 눈길도 한 번 주지 않은 채 경쾌하게 해변을 걸어간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나른한 여운이 길게 남는다.

조아오 질베르토의 기타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의 나른하면서도 상큼한 목소리가 실려온다. 그 뒤를 따라 온 스탄 게츠의 섹서폰 소리가 일품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나른한 봄날 오후, 보사노바의 명곡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The Girl from Ipanema)”를 듣는다. 행복은 순간순간 이렇게 스며든다.

Tall and tan and young and lovely,
the girl from Ipanema goes walking
And when she passes, each one she passes goes – ah
When she walks, she’s like a samba that swings so cool and sways so gently
That when she passes, each one she passes goes – aah

Ooh But he watches so sadly,
How can he tell her he loves her,
Yes he would give his heart gladly,
but instead when she walks to the sea,
she looks straight ahead not at him,

(saxaphone solo)

(Ooh) But he sees her so sadly,
How can he tell her he loves her
Yes he would give his heart gladly,
But each day, when she walks to the sea
She looks straight ahead, not at him

Tall, and tan, and young, and lovely,
the girl from Ipanema goes walking
And when she passes, he smiles – but she doesn’t see
She just doesn’t see, She doesn’t see, She doesn’t see……

<The Girl from Ipanema, Astrud Gilberto>

봄에 듣고 싶은 노래

봄에 듣고 싶은 노래

아침에는 여전히 쌀쌀한 날씨라 아직 봄이라고 하기엔 좀 이르다. 나이가 드니 점점 겨울이 멀어지는 느낌이다. 좀 더 봄이 빨리 왔으면, 어서 왔으면 하고 아침마다 중얼거린다. 봄은 나에게 늘 아련함을 가져다 주었다. 따뜻한 공기와 더불어 저 멀리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지 알 수 없지만, 봄은 포근하면서도 아련해지는 그런 계절이었다.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때의 봄은 매캐한 최류 가스와 함께 시작되었고, 시위대의 소음과 경찰의 진압이라는 긴박감에 묻혀버렸었다. 하지만 그런 시절에도 어김없이 포근하고 아련한 봄은 찾아왔었다. 그때 우리들은 봄이면 춘천행 기차를 탔었다. 기타 하나, 소주 몇 병, 라면 몇 개를 챙겨 가지고 그 기차를 탔었다. 기차는 우리들을 대성리, 새터, 강촌, 또는 춘천 등에 내려 놓았고, 북한강 줄기를 바라보면서 밤새 소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울고, 웃고 그랬었다. 벌써 20여년 전 일이다.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라는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엠티를 쫓아다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늘 춘천가는 기차를 탔던 것 같다.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민주주의를 얘기하고, 토론하고, 노래 부르고 그랬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기억들은 사그러들지 않고 아련하게 살아서 20여년간 나의 삶을 붙잡아 주었다.
조금은 지쳐있었나 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차창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 보니 흘러가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한잔 마시고 싶어 저녁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그리운 모습 [김현철, 춘천가는 기차]
비에 실려 온 아내의 마음 한자락

비에 실려 온 아내의 마음 한자락

하루 종일 촉촉히 내린 비에 봄내음이 서려있다. 흙과 풀과 나무는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맞으며 소리없이 재잘대고 있었다. 이미 겨울에 와 버린 봄이 새삼스럽지 않지만, 비는 봄의 느낌을 몇 배 증폭시킨다. 비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가 시를 보내 주었다. 그 시 속에 아내의 마음이 봄비처럼 적셔 온다.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 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 비에 젖었습니다
젖는 마음과 젖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나희덕, 젖지 않는 마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는데, 부부로 만나 결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함께 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내와 나는 어떤 인연이 있었길래 이렇게 만나 사랑하게 되었을까.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고, 건강을 챙기고,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었을까.

봄비와 아내가 보내 준 시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내로 만들어 주었다. 아내의 마음이 고맙다. 시인 김남주가 감옥에 있을 때 자기 아내를 생각하며 시를 쓸 때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감옥 속의, 겨울 속의 나를 머리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가슴 가득히 뜨거운 피가 돌게 한다.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이 한밤 어둠뿐인 이 한밤에
내가 철창에 기대어 그대를 그리워하듯
그녀 또한 창문 열고 나를 그리고 있을까.

[김남주,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중에서]

지금은 다만 아내의 마음만을 만지고 싶다. 봄비 소리를 들으며 느끼고 싶다. 사랑해, 여보야.

입춘에 읽고 싶은 시

입춘에 읽고 싶은 시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봄>

올해는 봄이 더디게 오지 않았다. 겨울을 건너 뛰고 서슴없이 오고 말았다. 따뜻한 겨울을 좋아하긴 하지만 올 겨울은 좀 너무하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봄이 오는 것을 마다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지랭이 피어오르는 들판이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