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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소한 유언

간소한 유언

삶과 죽음은 간결하고 소박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모든 군더더기를 없애고, 꼭 필요한 것만 남겨야 한다.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이 죽기 전에 남긴 몇 가지 당부는 간소하게 살고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1. 마지막 죽을 병이 오면 나는 죽음의 과정이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 나는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다가왔을 무렵에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기를 바란다.
  • 나는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그러므로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음식을 끊고, 할 수 있으면 마찬가지로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

2.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제,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 없다.

3. 나는 되도록 빠르고 조용하게 가고 싶다. 따라서,

  • 주사, 심장충격, 강제 급식, 산소 주입, 또는 수혈을 바라지 않는다.
  •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리를 함께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 위엄, 이해,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나누기 바란다.
  •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 다니거나 깨어남이다.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는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

4. 장례 절차와 부수적인 일들.

  • 법이 요구하지 않는 한, 어떤 장의업자나 그 밖에 직업으로 시체를 다루는 사람의 조언을 받거나 불러들여서는 안 되며, 어떤 식으로든 이들이 내 몸을 처리하는 데 관여해서는 안 된다.
  • 내가 죽은 뒤 되도록 빨리 내 친구들이 내 몸에 작업복을 입혀 침낭 속에 넣은 다음, 소나무 판자로 만든 보통의 나무 상자에 뉘기를 바란다. 상자 안이나 위에 어떤 장식도 치장도 해서는 안 된다.
  • 그렇게 옷을 입힌 몸은 내가 요금을 내고 회원이 된 메인 주 오번의 화장터로 보내어 조용히 화장되기를 바란다.
  • 어떤 장례식도 열어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죽음과 재의 처분 사이에 언제, 어떤 식으로든 설교사나 목사, 그 밖의 직업 종교인이 주관해서는 안 된다.
  • 화장이 끝난 뒤 되도록 빨리 나의 아내 헬렌 니어링, 만약 헬렌이 나보다 먼저 가거나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누군가 다른 친구가 재를 거두어 스피릿 만을 바라보는 우리 땅의 나무 아래 뿌려주기 바란다.

5. 나는 맑은 의식으로 이 모든 요청을 하는 바이며, 이러한 요청들이 내 뒤에 계속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되기를 바란다.

 

1. When it comes to my last illness I wish the death process to follow its natural course; consequently:
a. I wish to be at home not in a hospital.
b. I prefer that no doctor should officiate. The medics seem to know little about life, and next to nothing about death.
c. If at all possible, I wish to be outside near the end; in the open, not under a roof.
d. I wish to die fasting; therefore, as death approaches I would prefer to abstain from food.

2. I wish to be keenly aware of the death process; therefore, no sedatives, painkillers, or anaesthetics.

3. I wish to go quickly, and as quietly as possible. Therefore:
a. No injections, heart stimulants, forced feeding, no oxygen, and especially no blood transfusions.
b. No expressions of regret or sorrow, but rather, in the hearts and actions of those who may be present, calmness, dignity, understanding, joy, and peaceful sharing of the death experience.
c. Manifestation is a vast field of experience. As I have lived eagerly and fully, to the extent of my powers, so I pass on gladly and hopefully. Death is either a transition or an awakening. In either case it is to be welcomed, like every other aspect of the life process.

4. The funeral and other incidental details:
a. Unless the law requires, I direct that no undertaker, mortician, or other professional manipulator of corpses be consulted, be called in, or participate in any way in the disposal of my body.
b. I direct that as soon as convenient after my death my friends place my body in a plain wooden box made of spruce or pine boards; the body to be dressed in working clothes, and to be laid on my sleeping bag. There is to be no ornament or decoration of any kind in or on the box.
c. The body so dressed and laid out to be taken to the Auburn, Maine crematorium of which I am a paid member, and there cremated privately.
d. No funeral services are to be held. Under no circumstances is any preacher, priest, or other professional religionist to officiate at any time or in any way between death and the disposal of the ashes.
e. As soon as convenient after cremation, I request my wife, Helen K. Nearing, or if she predecease me or not be able to, some other friend to take the ashes and scatter them under some tree on our property facing Spirit Cove.

5. I make all these requests in full consciousness and the hope that they will be respected by those nearest to me who may survive me.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는 비오는 날을 몹시 좋아한다. 주룩주룩 싱그럽게 내리는 봄비도 좋고, 추적추적 쓸쓸하고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가을비도 좋다. 그런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포근하고 아늑해진다. 마치 엄마의 몸 속으로 다시 들어가 양수 속에서 유영을 하는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 비오는 날 파전이나 김치전을 먹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하고 담백한 칼국수 한 그릇도 괜찮고. 비오는 날, 고구마를 삶아 놓고 만화책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여름에는 열무김치를 좋아하고, 겨울에는 동치미를 즐겨 먹는다. 내가 더 늙기 전에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열무김치와 동치미를 담는 법이다. 아니면 마눌님께 배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가 맞는 수가 있다.^^

한때는 시를 꽤나 좋아해서 시집을 자주 들춰 보곤 했다. 백석이나, 신경림, 황지우 등의 시들을 많이 봤었다. 류시화를 오해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내공을 알고 나서 류시화의 책은 빠짐없이 본다. 지금도 책을 좋아해 줄기차게 사서 보기는 하는데, 소설이나 시를 예전만큼 보지는 않는다. 주로 건강 서적이나 종교 서적, 그리고 고전들을 보고 있다.

집에 오래된 기타 한 대가 있는데, 고등학교 때 조금 배운 기타 실력으로 반주를 하면서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긴다. 비오는 날, 기타를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 듯 노래를 부른다. 마눌님의 품평은 생긴 것에 비해 목소리는 괜찮다고 하는 편이다.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고, 어떤날과 루시드폴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이병우의 기타 연주도 좋아한다.

민중가요가 좋아 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적도 있었고, 복음성가가 좋아 교회에 다닌 적도 있었다. 젊었을 때 노래방에 자주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친구들이 “노래방집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예전에는 유행하는 노래들을 거의 모두 섭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를 먹었을 뿐더러 요즘 노래들은 듣는 이들을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한다. 쉬는 날에는 자주 산에 가려고 한다. 땀흘리며 산을 오르는 것만큼 몸을 정화시키는 것도 없을 듯하다. 제일 좋아하는 산은 계룡산인데,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태어난 곳이 계룡산 근처이다 보니 계룡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제주의 올레도 좋고, 지리산 둘레길도 좋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숲 속을 걷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혼자 걸어도 좋고, 마눌님과 같이 걸어도 좋다. 편백나무 숲도 좋고, 전나무 숲도 좋고. 숲 속을 걸으면서 나무와 바위와 얘기하는 것도 좋다.

딸아이와 같이 미야자키 할아버지의 만화영화를 자주 보곤 하는데, 토토로는 백 번도 더 본 것 같고, 나우시카도 거의 그 정도 본 것 같다. 제일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은 미래소년 코난. 그 녀석의 발가락이 너무 부러울 정도였으니까. 미야자키의 만화영화는 빠짐없이 즐겨 본다.

우리나라 영화로는 이창동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그의 첫작품인 “초록물고기”를 좋아한다. 그 당시 한석규라는 배우를 참 좋아했다. 한석규를 좋아했던 이유는 혹시 내가 (특히 내 목소리가) 한석규를 닮지 않았나하는 착각 때문이었다. 물론, 마눌님은 아니라고 하셨다. ㅠㅠ 이창동 감독의 최근 영화 “시”도 너무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외국 영화 중에는 “블레이드 러너”나 “매트릭스” 같은 SF영화들을 즐겨본다.

딸아이와 쎄쎄쎄를 자주 하는데, 요즘은 딸기아줌마 가위바위보를 배워서 놀고 있다. “딸기아줌마 딸기아줌마 주먹을 내세요 파송송 계란탁”하면서 상대방의 머리를 툭하고 치는 것이다. 가위를 내세요 하면, “파리모기 에프킬라 칙칙”하면 된다. 예전에는 공기놀이도 자주 했었는데, 딸아이는 우리동네 아빠 중에서 내가 제일 공기를 잘 할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딸아이가 나보다 공기를 더 잘 한다.

“이런 잡문을 쓰다 보니 한도 끝도 없네. 어떡하지, 지금 끝내면 아쉬워서.”

“이월해.” “이월~, 이월~, 이월~”

그래, 오늘은 그만 자고 다음에 짜투리 시간이 나면 또 쓰지 뭐. ㅋㅋ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었다

뜨거운 태양이 서산으로 떨어지고, 붉은 노을의 흔적도 점점 사라지면서 땅거미가 내렸다. 작렬하던 태양의 뜨거운 빛이 사위어 가면서 바람이 불었다. 한낮의 열기를 식히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바람이 불었다.

이름 모를 풀들이 춤을 추었고, 숲의 나무들이 흔들렸다. 저수지에 갇힌 물들이 바람을 타고 내 앞으로 밀려왔다. 나는 한 포기의 들풀이 되었고,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바람이 부는대로 내 몸을 맡겨 버렸다.

바람 부는 한여름 밤에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뒤이어 앞산마루에 길쭉한 달이 떠올랐다. 바람은 달을 밀어 올렸고 별들을 은하수 너머로 흐르게 했다. 그 별들을 따라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이 흘렀다.

시간이 멈췄다. 바람이 불었지만 세상은 고요했다. 텅 빈 풍경과 함께 모든 욕망은 침잠했다.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아픔은 바람과 함께 내 곁을 떠났다.

바람은 누군가의 노래를 싣고 왔다.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여행자들의 노래가 들렸다. 세상에 온 이유를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만 알 수 있는 그 원죄와도 같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

바람은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여행자들의 삶은 바람과 함께 번져 나갔다.

7월의 어느 밤에 바람이 불었다.

삶에는 직선이 없다

삶에는 직선이 없다

지난 추석 물난리 때도 얘기했지만,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자연은 직선을 만들지 않는다. 직선은 인간들처럼, 욕망이 본능을 넘어서는 탐욕적인 생명체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선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직선을 추구하는 인간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의 삶도 직선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삶에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실패가 없었기에 너무 어린 나이에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고,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 그런 사람들에게는 삶의 향기, 인간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한 번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

많이 실패해 보고, 많이 넘어져 보고, 많이 아파 보고, 시련을 겪어 보고, 그 시련을 이겨도 보고, 그런 과정 속에서 삶은 깊어지고, 향기가 난다. 그러므로, 세상에 공짜는 없고, 삶은 공평하다. 누구나 어려움과 고난은 싫어하지만, 정작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간다면 그는 더 깊고 유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전직 교사이자 현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인 송인수 씨의 다음과 같은 말은 삶에 울림을 준다.

저는 인생에 직선은 없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샛길로 새지 않고 직선으로 달려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 생에는 직선이 없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4대강을 다 펴면 아름답겠습니까. 곡선이니까 유장한 거지요. 유장하려면 깊이 있는 물이 돼야 합니다. 깊이 있는 생각, 통찰을 품어야 합니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방해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로를 선택하고 다음 진로를 찾을 때 지금 있는 길과 전혀 다른 쪽으로 점핑을 하는 게 아니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다음 일의 실마리가 찾아집니다.

[시사IN, “우리 인생에 직선은 없다”]

깊이있는 물이어야 바다에 닿을 수 있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라. 때로는 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상처가 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뒤돌아볼 줄 아는 삶, 때로는 더디더라도 더불어갈 줄 아는 삶, 그리하여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지는 삶을 누리라.

설을 맞아 이제 11살이 되는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지 딸아이가 알아 들을까? ^^

들풀처럼 살라

들풀처럼 살라

시간은 존재하는가? 흔히 과거, 현재, 미래라 불리는,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은 존재하는가? 시간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가장 자연스럽고 강력한 관념 중 하나다. 지구 상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시간이란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고, 순간을 살 뿐이다.

인간들이 던지는 궁극의 질문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해결되기를 기다리며 인간들 주위를 맴돌았다. 깨달은 몇몇은 실마리를 남긴 채 지구별을 떠났고, 남겨진 자들은 여전히 무지의 어둠 속에서 헤맸다. 남겨진 자들에게 삶은 버거운 짐이었다.

예수가 태어난지 2011년째 되는 해. 2011은 지극히 인위적이고 아무런 의미없는 숫자이지만, 인간들은 또다시 지속되는 삶 속에 궁극의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류시화, 들풀>

산과 들에 있는 풀과 나무와 바위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지만, 인간들은 그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질문만 던질 뿐, 보이는 것을 보지 않는다.

법정 스님이 이 별을 떠나시기 전에 남기신 말씀.

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내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이미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생에 집착하고 삶을 소유로 여기기 때문이다.

生에 대한 집착과 소유의 관념에서 놓여날 수 있다면
엄연한 우주 질서 앞에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이미 수천년 전부터 명확하게 제시되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리석음이 원죄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성공이란 무엇인가

미국 초절주의(Transcendentalism) 운동의 지도자이자 시인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To laugh often and love much; to win the respect of intelligent persons and the affection of children; to earn the approbation of honest citizens and endure the betrayal of false friends; to appreciate beauty; to find the best in others; to give of one’s self;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have played and laughed with enthusiasm and sung with exultation; to know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this is to have succeeded.

<Ralph Waldo Emerson, What is Success?>

시인 류시화는 이 말을 이렇게 번역했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류시화 역, 무엇이 성공인가>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안다면, 그리고 나의 삶이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했다면, 나는 성공한 삶을 산 것이다. 성공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충만한 마음만 가지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덧.

위의 구절이 에머슨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군요. 누구의 것이든 깊은 성찰이 있는 구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http://www.cas.sc.edu/engl/emerson/Ephemera/Success.html

삶을 바라보는 태도

삶을 바라보는 태도

헤네폴라 구나라타나 스님( Bhante Henepola Gunaratana)이 쓴 <위빠사나 명상>이라는 책에는 명상을 하는 11가지 태도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나는 이러한 태도가 비단 명상뿐만 아니라 삶의 바라보는 태도로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삶 자체가 명상인 분들은 언제나 이러한 태도로 살겠지만, 그렇지 못한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이러한 태도로 삶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조금씩 조금씩 삶의 근원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1.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라
  2. 긴장하지 마라
  3. 서두르지 마라
  4.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아무것도 거부하지 마라
  5. 놓아버려라
  6.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받아드려라
  7. 자신에게 관대해져라
  8. 자기 자신을 탐구하라
  9. 모든 문제를 도전 과제로 간주하라
  10. 심사숙고하지 마라
  11. 차이에 머무르지 마라

<헤네폴라 구나라타나 스님, 위빠사나 명상>

아무것도 집착하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비교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삶이 물처럼 머무르지 않고 흘러감을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도의 경지가 아닐른지.

인디언들의 몇 가지 가르침

인디언들의 몇 가지 가르침

아침에 눈을 뜨거나 저녁에 잠들기 전에 뭇 생명들과 그대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 감사하라. 위대한 정령이 그대에게 준 많은 좋은 것들과 날마다 조금씩 더 성장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라. 어제 그대가 한 행동과 생각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구하라. 다른 모든 생명체에게 이로움이 될 일들을 찾으라.

대지와 대지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의 어머니로 여기라. 광물 세계, 식물 세계, 동물 세계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어머니 대지를 더럽히는 어떤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지혜를 갖고 어머니 대지를 보호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한결같이 진실되어야 한다.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인류 전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인류 전체를 존중하는 것과 같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과 부족들은 하나의 들판에서 피어난 서로 다른 색깔의 꽃들과 같다. 모두가 아름답다. 위대한 정령의 자식들로서 모두가 존중되어야 한다.

모든 일에 있어 절제와 조화를 중요시 여기라.

삶에서 그대를 행복으로 이끄는 것과, 그대를 파괴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삶의 지혜다.

그대의 마음이 안내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를 따르라. 여러 가지 형태로 찾아오는 해답에 마음을 열어 두라. 해답은 기도를 통해, 꿈을 통해, 또는 홀로 고요히 있는 시간을 통해서도 올 수 있다. 지혜로운 어른들과 친구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그것은 찾아온다.

<아메리카 인디언 도덕률, 류시화 역>

Each morning upon rising, and each evening before sleeping, give thanks for the life within you and for all life, for the good things the Creator has given you and for the opportunity to grow a little more each day. Consider your thoughts and actions of the past day and seek for the courage and strength to be a better person. Seek for the things that will benefit others (everyone).

Treat the earth and all of her aspects as your mother. Show deep respect for the mineral world, the plant world, and the animal world. Do nothing to pollute our Mother, rise up with wisdom to defend her.

Be truthful at all times, and under all conditions.

The hurt of one is the hurt of all, the honor of one is the honor of all.

All the races and tribes in the world are like the different colored flowers of one meadow. All are beautiful. As children of the Creator they must all be respected.

Observe moderation and balance in all things.

Know those things that lead to your well-being, and those things that lead to your destruction.

Listen to and follow the guidance given to your heart. Expect guidance to come in many forms; in prayer, in dreams, in times of quiet solitude, and in the words and deeds of wise Elders and friends.

<Native American Traditional Code of Ethics, Intertribal Times, October 1994>

미국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인류 역사상 영적으로 가장 진보된 종족이었다. 백인들은 그들을 야만인 또는 미개인이라 불렀다. 백인들은 그들의 터전을 빼앗고, 그들을 몰살시켰다.

그들은 사라졌고, 그들의 정신만이 화석처럼 남겨져 있다.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장자 외편 달생(達生)장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以瓦注者巧, 以鉤注者憚, 以黃金注者殙. 其巧一也, 而有所矜. 則重外也. 凡外重者內拙.

질그릇으로 내기 활을 쏘면 솜씨가 좋아 잘 맞는다. 띠쇠로 내기 활을 쏘면 주저하여 잘 안 맞게 된다. 황금으로 내기 활을 쏘면 마음이 혼란하여 전혀 안 맞게 된다. 그 재주는 마찬가지인데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 외물만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모두 외물만 소중히 한다면 안에 있는 정신은 옹졸해지고 만다.

오쇼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시로 번역했다.

궁수가 재미로 활을 쏠 때는
그의 온 기술을 다해서 쏜다.
만일 그가 청동으로 된 상패를 얻기 위해 활을 쏜다면
그는 어느새 신경이 예민해진다.
만일 그가 금상을 받기 위해 활을 쏜다면
그는 눈이 멀게 된다.
아니면 두 개의 과녁을 본다.
그는 그의 마음에서 이미 빗나가 있다.

그의 기술은 변함이 없으나
상이 그를 분열시킨다.
그는 근심한다.
그는 활 쏘는 일보다
이기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한다.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그의 힘을 다 고갈시켜 버린다.

<오쇼, 이겨야 할 필요>

이규혁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 구절이 떠올랐다. 지난 20년간 스케이팅은 그에게 기쁨이었고, 자유였고, 삶이었다. 그는 수많은 대회에 나가 때로는 우승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떨어지기도 했다.

삶은 그런 것이다. 언제나 이길 수도 없는 것이고, 때로는 이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스케이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 20년간의 과정을 즐겼다면 결과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눈물을 흘릴 이유도 없다. 그는 이미 승리한 것이고, 언제나 승리한 삶이었다. 그걸 깨닫기만 한다면 금메달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기는 일보다 더 많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활을 쏘는 일이다. 무엇이 본질인지 깨닫게 되면 삶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 된다.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을 하게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박사는 그의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에서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자유의지”라고 말한다. 그 자유의지에 따라 인간들은 자기의 삶을 만들어 간다. 인간들이 각자의 소명을 다하고 물리적 몸을 벗을 때, 다시 말해 인간들의 삶이 죽음을 통해 완성될 때, 물리적 몸은 소멸하지만 인간들의 영은 창조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 존재의 근원을 신이라고 하고, 하느님이라고도 하고, 붓다라고도 부르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근원이다.

지상에서의 삶을 끝내고 창조의 근원 앞에서 받는 단 하나의 질문.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

이 질문에 쩔쩔매며 우물쭈물할 나를 상상해본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봉사를 해왔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영향을 주며 살아왔을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부끄럽지 않고 당당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자명하다. 예수나 붓다를 비롯한 인류의 수많은 성인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은 단 하나,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심지어 원수라 할지라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감싸주는 것, 그것만이 영원하다는 것은 진리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결코 불행이 아니라고. 죽음은 고통도 두려움도 아니라고. 죽음은 삶의 완성이자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마치 누에가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이고 삶의 목적은 성장하기 위해서라고.

우리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우리의 몸을 진짜 “나”로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몸이 죽어 소멸하면 우리도 소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스 박사의 연구와 증거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과학”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수많은 신비주의 스승들이 수천 년 전부터 가르쳐왔던 것들이다. 우리의 몸이 소멸한다 해도 우리의 “참나”는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정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해답을 찾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생의 수레바퀴>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고, 그만큼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없이 기뻤다.

이 책을 추천해 주신 미리내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