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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인생

어느 화가의 유언

어느 화가의 유언

“예술은 본능”이며, “예술에서의 이론은 의사의 처방전 같아서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환자”라고 일갈한 프랑스 야수파 화가 모리스 드 블라맹크(Maurce de Vlaminck)는 죽기 전 마지막 글에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삶은 내게 모든 것을 주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며, 내가 본 것을 그렸다.

Je n’ai jamais rien demandé, la vie m’a tout donné. J’ai fait ce que j’ai pu, j’ai peint ce que j’ai vu.

삶을 충만하게 살다 간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말을 남긴다. 삶은 그 자체로 완벽하기 때문에 무엇을 바라거나 원할 필요가 없다. 다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내면 된다.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반백년이 걸렸다.

소년들은 쉬이 늙고

소년들은 쉬이 늙고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학문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년들은 쉬이 늙었다. 돌아보니 30년이 흘렀다. 30년 전에는 모두들 까까머리 소년들이었는데, 이제는 삶의 무게 앞에 힘겨워하는 장년의 아재들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만 진학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세상은 대체로 비루하였고, 희망 따위는 너무 아득하여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 하루하루를 잘 버티고 견디어 30년을 살아냈으니, 그 소년들이 어찌 대견하다 하지 않겠는가. 소년들이여, 수고 많았다. 그대들의 고단함을 위로하며 박수를 보낸다.

이제 소년들은 그들이 비판했던 기성세대가 되었고, 꼰대가 되었다. 남은 삶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꾸역꾸역 건강하게 살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삶의 무게가 저절로 사라지는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인생 최대의 거짓말

인생 최대의 거짓말

인생 최대의 거짓말, 그것은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바뀌면 세상은 바뀐다. 세상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꿀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공헌한다’는 길잡이 별만 놓치지 않는다면 헤맬 일도 없고 뭘 해도 상관없다.

남이 내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라.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라.

누군가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이 협력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당신과 상관없다. 당신부터 시작하라.

다른 사람을 친구로 여기고, 거기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공동체 감각’이다.

누구도 자기의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자신도 다른 사람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

자신의 과제와 다른 사람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으면 인간은 영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세상은 단순하고, 인간을 변할 수 있으며,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 인플루엔셜>

이정남 할머니

이정남 할머니

올해 아흔넷의 이정남 할머니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을까? 전라북도 순창의 한 시골 마을, 따가운 햇볕에 고추가 붉게 익어가고 있었지만, 인적은 드물었다. 교회 마당에 노인 몇이 모였고, 그 중 이정남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지팡이 없이는 밖에 나올 수도 없었고, 지팡이를 짚고도 허리를 펼 수 없었다. 한 세기 가까운 노동으로 할머니의 뼈마디는 오그라들었다. 한쪽 눈꺼풀은 아예 떠지지가 않았고, 나머지 한쪽 눈도 성하지 않았다.

그래도 할머니는 혼자 몸을 건사하며 살아간다. 아침 저녁을 손수 차려 먹지만, 입맛도 없고 혼자 먹는 밥이 맛있을리 없다. 자식들은 모두 도회지로 나갔다. 할머니를 서울로 모셔가려는 자식들이 있지만, 할머니는 서울 생활이 마땅치 않다. 혼자이지만, 평생을 산 고향이 훨씬 마음 편하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고단한 삶이었다. 가난 속에서도 많은 자식을 낳았고, 어렵사리 고추농사로 그 자식들을 키워냈다. 더러는 성공한 자식도 있었고, 더러는 힘든 자식도 있었으리라. 남편은 앞서서 먼저 세상을 떠났고, 가끔씩은 그 남편이 보고 싶기도 했었다.

한때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꽤 큰 마을이었지만, 친구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젊은이들은 도회지로 떠나고, 이제는 팔십이 넘은 노인들만 몇 남아서 뙤약볕 밑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다. 할머니는 그들 중 제일 나이가 많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는 말에 할머니는 손사래를 친다. 어느 누구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할머니는 잘 알고 계신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저 평안하게 지내다 가면 그뿐, 더 바랄 일도 없다.

남겨진 고향은 할머니와 함께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삶에는 직선이 없다

삶에는 직선이 없다

지난 추석 물난리 때도 얘기했지만,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자연은 직선을 만들지 않는다. 직선은 인간들처럼, 욕망이 본능을 넘어서는 탐욕적인 생명체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선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직선을 추구하는 인간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의 삶도 직선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삶에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실패가 없었기에 너무 어린 나이에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고,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 그런 사람들에게는 삶의 향기, 인간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한 번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

많이 실패해 보고, 많이 넘어져 보고, 많이 아파 보고, 시련을 겪어 보고, 그 시련을 이겨도 보고, 그런 과정 속에서 삶은 깊어지고, 향기가 난다. 그러므로, 세상에 공짜는 없고, 삶은 공평하다. 누구나 어려움과 고난은 싫어하지만, 정작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간다면 그는 더 깊고 유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전직 교사이자 현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인 송인수 씨의 다음과 같은 말은 삶에 울림을 준다.

저는 인생에 직선은 없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샛길로 새지 않고 직선으로 달려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 생에는 직선이 없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4대강을 다 펴면 아름답겠습니까. 곡선이니까 유장한 거지요. 유장하려면 깊이 있는 물이 돼야 합니다. 깊이 있는 생각, 통찰을 품어야 합니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방해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로를 선택하고 다음 진로를 찾을 때 지금 있는 길과 전혀 다른 쪽으로 점핑을 하는 게 아니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다음 일의 실마리가 찾아집니다.

[시사IN, “우리 인생에 직선은 없다”]

깊이있는 물이어야 바다에 닿을 수 있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라. 때로는 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상처가 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뒤돌아볼 줄 아는 삶, 때로는 더디더라도 더불어갈 줄 아는 삶, 그리하여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지는 삶을 누리라.

설을 맞아 이제 11살이 되는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지 딸아이가 알아 들을까? ^^

내 삶의 비법

내 삶의 비법

우리 시대 위대한 영적 스승 중 하나인 크리슈나무르티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삶의 비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나의 수준으로 이 말의 진의를 깨닫기는 무리지만, 집착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이 그런 것이 아닐까 짐작만 해 본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아내가 떠올랐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아내와 나는 억겁의 카르마로 연결된 인연으로 이 생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고, 우리는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며, 존경하며 살아왔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걱정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아내 때문이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언제부턴가 내 속에 그가 들어와 있음을 알았다. 그는 멀리 있어도 내 안에 있었고, 그의 영혼과 나의 의식은 교감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제 십 년도 훨씬 지난 일이 되어버렸는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날, 아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아내와의 첫 만남은 다른 여자들과의 만남과는 달랐다. 그는 억겁의 인연에 따라 신이 내게 보내준 나의 분신이었다. 그때는 그 다른 느낌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로 인해 나의 삶이 완성될 것이란 일종의 계시와 같은 것이었다.

그 인연은 빗나가지 않았고, 우리는 결혼을 하여 십 여년을 부부로 지냈다. 아내는 나와의 결혼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고,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한다고 말했다. 나는 아내를 내게 보내준 신과 억겁의 인연에 감사했다. 나의 영혼은 사랑으로 충만해졌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그가 세상에 옴으로해서 내 존재가 세상에 올 수 있었고, 그가 나에게 옴으로해서 나의 삶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언젠가 있을지도 모르는 그의 부재에 대한 슬픔으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 경지를 넘어선 것 같다. 설령 어떤 이유로 인해 이 생에서 그와 헤어져야 한다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고 우리는 언제나 같이 있기 때문에 또다른 생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걱정하지 않는다.

내 삶의 비법은 바로 나의 아내이기 때문에.

축하해 그리고 사랑해.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한 시대에 획을 긋는 음악과 노래들이 있다. 10여년 전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도 그런 노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담백하고 냉소적인 분위기가 나를 압도한다. 냉소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비주류였고, 주변인이었다. 군더더기를 싫어했고 탐욕을 저주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중심이 아니고 그 주변을 맴도는, 그것도 위성이 아닌 혜성이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길을 그렇게 떠나버리는, 그렇다고 딱히 갈 곳이 정해져 있지도 않은.

나에게는 인생의 목표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무엇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냥 주어진 시간을 때로는 기쁘게, 때로는 힘들게 견뎌왔다. 종착역은 없었고, 운명을 개척하려 하지도 않았다. 계획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이 흐르듯 세월에 삶을 맡겼다.

그런데도 가끔은 여유로웠고, 때로는 행복했다.

배우는 사람이 아니다?

배우는 사람이 아니다?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한 제작자는 배우(俳優)라는 말을 풀어쓰면서, 한자로 배우를 나타내는 배(俳)는 사람인(人)과 아닐비(非)가 합쳐진 낱말로 “배우는 사람이 아니지만 아주 뛰어난 사람”이라는 엉뚱한 정의를 내렸다. 그는 이어서 배우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주로 의존한 삶을 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 비해 감수성이 아주 예민할 뿐더러 때로는 즉자적이고, 때로는 엇나간 모습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배우들은 영화나 연극 혹은 TV 연속극에서 늘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서의 연기를 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기에 때로는 진짜 자기가 누구인지 헷갈릴 때도 있을 것이다. 진짜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은 자기를 버리고 실제로 감독이나 연출자의 지휘에 몸을 맡겨버린다. 그리고, 그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에는 자기가 아닌 그 작품 속의 인물로 살아간다고 한다. 영화 밀양에서 신애를 연기한 전도연이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 작품이 끝나고도 본래의 자기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주홍글씨 촬영을 마친 이은주는 자살했다. 물론, 그 죽음이 영화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나오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배우든, 가수든 우리가 흔히 속된 말로 “딴따라”라고 부르는 광대들은 그들의 예술과 창작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그리고 행복하게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삶은 순탄치 않다. 아니 행복하고 바른 광대들은 더이상 광대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의 밑바닥까지 부딪혀 보지 않고는, 그 쓰디쓴 인생의 절망을 맛보지 않고는 제대로된 광대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들의 천형이라면 천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길을 간다.

한때 이 시대 최고의 우상이었던 최진실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배우로서, 연기자로서, 그리고 광고모델로서 꽤나 성공한 축에 들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다. 견뎌야했던 것들과 견딜 수 없던 것들 속에서 그는 수없이 방황했을 것이고, 그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끝은 그에게 너무도 갑자기 그리고 어이없게 닥쳐버렸을 것이다. 슬픔은 엄마를 그렇게 보내버린 두 아이의 몫으로 오롯이 남아버렸다. 그에게 주어진 삶이 그만큼이라는데 누굴 탓할 것인가.

최진실의 죽음은 그가 너무 유명한 스타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35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다. 삶은 유명 배우에게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도, 돈이 너무 많아 주체할 수 없는 재벌 회장에게도 그렇게 견디기 힘들고 팍팍한 것임을, 그리하여 붓다는 삶은 고(苦)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른다.

비루하고, 고통스럽고, 쓸쓸하지만, 삶은 또 그렇게 지속된다. 스스로 세상을 등질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다음 생은 부디 편안하기를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다 행복하기를…

또다시 길을 떠나며

또다시 길을 떠나며

일흔을 넘긴 늙은 시인은 또다시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칠십 평생 수많은 길을 떠나 왔지만, 그 길들은 언제나 세상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고, 그 누군가를 스치게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길은 그가 떠나온 그 수많은 길들과는 다른 길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관조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자, 시인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다. 젊었을 때의 그 혈기왕성한 힘과 날카로움,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가 사그러들었지만, 시인은 조용한 안식을 얻었다. 삶은 그렇게 공평한 것이었다.

세상은 전혀 평화로와지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시인은 그 악다구니 속에서도 평화를 보았다. 아니 그는 자기가 떠나야 할 시간을 알고는 더 이상 그 팍팍한 삶에 간섭하지 않으려는지도 모른다.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이제는 던져버리고 그는 그 원초적 기원으로 떠날 것이다.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있는 그 순수의 세계로.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신경림, 낙타]

한 평생 살고 나서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을 제대로 살아냈음을 이 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시는 신경림만이 쓸 수 있는 시다.

인생을 쉽게 사는 방법

인생을 쉽게 사는 방법

내 책상 컴퓨터 자판 옆에 있는 조그마한 책 한 권. 불교 초기 경전 중의 하나인 법구경이다. 일을 하다가 좀 시간이 나면 무심코 들춰 보면서 한 구절씩 읽곤 하는데, 그때마다 잔잔한 감동을 얻는다. 법구경의 ‘더러움’ 편에 있는 구절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얼굴이 두터워 수치를 모르고
뻔뻔스럽고 어리석고 무모하고
마음이 때묻은 사람에게
인생은 살아가기 쉽다

수치를 알고 항상 깨끗함을 생각하고
집착을 떠나 조심성이 많고
진리를 보고 조촐히 지내는 사람에게
인생은 살아가기 힘들다

<법구경, 244-245>

부끄러움을 모르고 뻔뻔하게 살면, 삶은 참 쉬워진다. 서너 달 사이 대한민국은 참 쉽게 사는 사람들의 천국이 되어버렸다. 견디기 힘들다. 이 조그마한 땅에 무슨 업보가 그렇게 많은 것일까? 반만년 동안 아니 해방 이후만 보더라도 이 동쪽의 조그마한 땅은 참 편안하게 지낸 적이 없는 것 같다. 늘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날뛰는 세상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사람이 이 척박하고 황폐했던 나라의 제 16대 대통령이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그를 추억하면서 견딜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누가 그를 잇겠다고 나설 것인가? 그가 우리의 희망이 될 것이다.

내 아이들에게는 어떤 삶을 보여 줄 것인가. 어떤 삶을 살라고 말할 것인가. 쉽고 살라고? 힘들게 살라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몇년은 참으로 고단한 시간이 될 것이다. 고단하고 힘들더라도 그것이 삶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