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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권정생

소박한 유서

소박한 유서

양철북에서 펴낸 책,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이 1973년부터 30년간 주고 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다. 두 사람은 12년이라는 나이 차가 있었지만, 죽는 날까지 동지로 도반으로 함께 했다.

그들이 주고받은 많은 편지에는 스무 살때부터 결핵을 앓아온 권정생 선생의 처절한 고통을 엿볼 수 있는데, 그런 병고 속에서 <강아지똥>이나 <몽실언니> 같은 우리나라 아동 문학의 진수를 창작했다는 것은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의 영혼이 얼마나 순수했는지, 그의 열정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책 말미에 실린 권정생 선생의 소박한 유서를 잊을 수 없다.

……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 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 주기 바란다.
……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스물다섯 살 때 스물두 살이나 스물세 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선생님이 남기신 작품들은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맑게 합니다. 다음 생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싱그러운 아가씨와 연애도 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스널프의 죽음

스널프의 죽음

며칠 전 서울대가 만든 세계 최초의 복제 늑대 스널프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늑대 한 마리 죽은 것이 무슨 대수냐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스널프는 우리 지구별에서 처음으로 엄마 아빠 없이 태어난 늑대다. 엄마 아빠의 존재와 사랑을 몰랐던 스널프는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까?

이 소식을 듣고 떠오른 사람은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었다. 권정생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전 남기신 마지막 동화가 “랑랑별 때때롱”이다. 이 동화의 머리말에서 선생은 엄마 아빠가 없는 동물을 왜 만들어야 하냐고 되물었다. 태어날 때부터 고아였던 스널프의 마음을 사람들은 단 한 번이라도 헤아려 보았을까? 과연 사람들에게 그런 생명을 만들어낼 권리가 있는 걸까?

5백 년 전 랑랑별에 살았던 보탈이는 모든 우수한 유전자를 받아서 태어난 아이였지만, 그는 슬픔도 기쁨도 알지 못하는 아이였다. 놀 줄도 모르는 아이였다. 놀 줄을 모르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새달이와 마달이처럼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고 놀아야 한다. 가리마에서 햇볕 냄새가 나는 아이들, 피부는 까맣지만 건강한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된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해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놀 줄 모르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경제 성장 그리고 극한의 경쟁만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권정생 선생의 “랑랑별 때때롱”은 행복한 세상의 가장 기초가 무엇이냐는 근본적 물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전해준다. 많은 어른들이 이 동화를 읽고 다시 한 번 삶과 행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다.

이제 이명박 대신 이런 사람을 얘기하자

이제 이명박 대신 이런 사람을 얘기하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들 하지만, 정치인이자 대선주자로서의 이명박은 이미 그 바닥을 드러냈다. 천박을 넘어 “명박”스런 그의 말과 행동 속에서 우리가 건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가 뿜어대는 비전이라는 것은 잿빛 콘크리트 속에서 싹을 틔우지 못하는 씨앗들의 절망 뿐이다. 청계천은 시멘트 어항으로 변했고, 펌프질로 길어올려지는 한강물은 숨을 쉬지 못해 허덕인다. 전 국토의 강들을 시멘트로 쳐발라 운하를 만들자고 떠들어대는 그의 억지에 이 산하와 이 땅의 생명들은 절망한다.

불구자 낙태, 동성애자들은 비정상, 바이올린 줄이 금속이기에 금속노조에 가입, 프라이드가 없으면 노조를 만든다, 중견 배우는 한물 간 배우 등등의 발언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느끼는가? 정치인, 기업인으로서의 이명박 인생 궤적에서 우리는 어떤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 자식들에게 이명박처럼 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럴 수 없다.

이런 철학 부재의 명박스런 인간에 대해선 그만 얘기하자. 그에게는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들려 줄 가치가 아무 것도 없다. 대신 이제 이런 사람을 얘기하자.

권정생. [강아지똥]과 [몽실언니]의 작가. 평생 자연과 어린이들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 자기의 거의 모든 수입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면서 자신은 안동의 골짜기 5평짜리 오두막에서 기거했던 사람. 몇 안 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 엊그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유서에조차 어린이를 위한 마음, 통일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인세는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굶주린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여력이 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서도 써달라.

남북한이 서로 미워하거나 싸우지 말고 통일을 이뤄 잘 살았으면 좋겠다.

강아지똥조차도 자연의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는 진리를 일깨운 선생의 글에게 우리는 자연과 생명, 인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권정생 선생의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글들이 힘이 있는 것은 선생이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실천의 힘. 그것이 선생의 글과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삼류 정치인의 잿빛 발언 대신, 권정생 선생의 어린이와 자연에 대한 소박한 사랑을 더 많이 얘기했으면 좋겠다. 이 사회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이명박의 경부운하가 아닌 권정생의 삶과 글과 그리고 그의 오두막임을 깨닫자.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한 선생이 계셨음을 말해주자.

권정생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편안하시길…

권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