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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죄 추정의 원칙도 사치인가

이제 무죄 추정의 원칙도 사치인가

먼저 이글은 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김길태를 변호하거나 두둔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김길태가 진짜 여중생을 살해한 범인이라면 그는 그런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댓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김길태가 체포된지 며칠이 지났다. 경찰은 시체에서 나온 김길태의 DNA가 나왔다며 김길태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김길태 여전히 묵비권을 행사하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증거는 시체에서 나왔다는 김길태의 DNA뿐이다. 그것 이외에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그 DNA 증거를 100% 인정한다 해도 아직 김길태에게 살인범의 혐의를 씌울 수는 없다. 그는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살인을 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들이 김길태를 싸이코패스로 몰기 시작했다. 그가 진짜 싸이코패스인지도 모른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알려진 것은 그가 성폭력 전과가 있는 전과자라는 것이다.

인간이 예외없이 누려야할 권리 중에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피의자나 피고인은 될 수 있지만, 범죄인은 아니라는 원칙이다. 이것은 세계 인권 선언 제11조 1항과 우리나라 헌법 제27조 4항에 명시되어 있는 원칙이다.

세계 인권 선언 제11조 1항

모든 형사피의자는 자신의 변호에 필요한 모든 것이 보장된 공개 재판에서 법률에 따라 유죄로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4항

형사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이런 문제를 다룰 때는 정말 신중해야 한다. 만의 하나라도 김길태가 범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진짜 범인은 따로 있는데, 김길태가 그 누명을 뒤집어쓰고 사형을 당하든, 평생 감옥에 갇혀있게 되면 어찌 하겠는가? 김길태라고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게 김길태가 아니고 당신이나 나라면?

이번 김길태 사건은 2008년 12월에 발생한 조두순 사건과 엄청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조두순은 초등학교 여자아이를 살해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인생이 망가지도록 만들어 버렸다. 언론은 처음에는 그 사건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성폭력 상해나 살인 사건이 그만큼 흔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사건 발생 후 9개월이 지나고 한 방송국에 의해 이슈화되자 그때부터 난리가 났는데, 그때도 언론은 그 사건을 “나영이 사건”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석연치 않다. 유래없이 이명박이 개입했다. 개입하자마자 방송은 유래없이 특별방송까지 편성해 공개수배에 나섰고, 미적대던 경찰은 갑호비상령까지 내리면서 용의자 체포에 주력했다. 그리고 거의 전 언론이 달려들었다. 왜 그랬을까? 왜 조두순 사건 같은 수많은 성폭력 상해, 살인 사건에는 크게 관심을 안보이던 권력과 언론이 이번 사건에는 득달같이 달려들었을까?

권력과 언론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배경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김길태가 진짜 범인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정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아직 결정적 증거가 없고, 피의자의 자백조차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김길태를 살인범으로 단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증거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사치품이 아니다. 그것은 이명박이든, 김길태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할 보편타당한 원칙이다. 물론 어떤 이는 흉악범에게 무슨 인권이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김길태가 흉악범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가 흉악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경우에는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니 결정적 물증이 나올 때까지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처럼 우리는 신중하게 기다려야 한다. 그때 김길태를 욕하고 처벌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