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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과 법치주의

이재용과 법치주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 특검은 이재용에게 430억원의 뇌물공여, 횡령, 청문회 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의 조의연 판사는 18시간의 심사숙고 끝에 의연하게도 영장을 기각했다. 뇌물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판단인데, 횡령과 위증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물론 영장기각은 당연히 예상된 일이었다. 삼성공화국의 황태자를 구속하다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법원이 이재용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다면 그게 더 놀랍고 이상한 일일 것이다.

24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버스 운전기사에게 법원은 그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 버스기사가 고의로 2400원을 훔친 것도 아니고 실수로 장부에 누락한 것인데도 법원은 2400원도 횡령은 횡령이기 때문에 해고가 정당하단다.

이재용은 수십억원을 횡령하고 수백억원을 뇌물로 줘도 다툼의 여지가 있으므로 구속할 수 없고, 버스 기사는 2400원을 실수로 누락해도 횡령이므로 해고해도 된다. 이것이 이 나라의 법치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이 나라의 법치주의는 정확히 말해 ‘법조인치주의‘다. 얼핏 보기에 이 나라는 입헌국가의 가장 기본 원리 중 하나인 법으로 다스려지는 것 같지만, 사실 법은 허울이고 법을 지배하는 것은 법조인이다. 아무리 죄가 무거워도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벌을 줄 수 없고, 설령 검사가 기소한다 해도 판사가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무죄가 된다. 법은 그냥 글자일 뿐이고, 그것을 해석하고 판단하고 집행하는 인간들, 법조인들이 슈퍼 갑이 된다.

그 슈퍼 갑인 법조인들을 을로 여기는 유일한 집단이 삼성이다. 삼성은 이 나라의 모든 권력집단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는 울트라슈퍼 갑이다. 그런 삼성의 황태자가 구속될 일은 없고, 설령 그가 뇌물이나 횡령보다 더 중한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처벌될 일은 없다.

법조인들은 법 위에 있는 인간들이고, 그 법조인들 위에는 삼성이 있으며, 그 삼성을 지배하는 자가 이재용이다. 결국 이재용에게 법치주의는 “개나 주라고 그래”가 된다. 뭐 이런 개같은 경우가 있냐고 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억울하면 법조인이 되든, 재벌이 되든, 이도저도 아니면 법조인과 재벌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선출하든지. 하지만 노무현을 죽인 나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덧.

2017년 2월 17일, 특검이 이재용에 대해 다시 청구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법원이 삼성의 황태자 이재용을 구속시켰다는 것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결정이다. 이제 막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젊은 판사 한정석이 재벌의 눈치를 보는 선배 판사들보다 정의로운 것인가, 아니면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 판사의 치기어린 판결인가. 이유야 어찌되었든 특검의 수사가 탄력을 받게 되었고, 박근혜 탄핵이 가시화되었다.

법(法)의 정의

법(法)의 정의

법(또는 법률)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 보면, 법이란 사회 질서 유지와 정의 실현을 위해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강제하는 일종의 사회 규범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법은 이런 사전적 정의와는 거리가 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인 찰스 맥클린(Charles Macklin)은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이란 속임수(또는 말장난)의 과학이다. 당신의 면전에서는 웃으면서 당신의 주머니를 뒤진다.

The law is a sort of hocus-pocus science, that smiles in your face while it picks your pocket.

이 말은 농담 같지만, 법의 본질을 비교적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현실에서의 법을 다시 정의해 보면, “법이란 법조인들이 (자신들을 포함한)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제정하고, 해석하고, 집행하는 강제력이 동원된 술책”이다. 따라서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피지배계급을 기만하는 무의미한 당위일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조인이다. 법조인들은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전문가 집단을 일컫는데, 여기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이 포함된다. 법을 만드는 입법권은 국회의원에게 있지만, 국회의원들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집단이 법조인들이다. 또한,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의 수장이나 장관들도 법조인이 많으며, 사법부는 100% 법조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을 기초로 서로의 권력을 견제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 대개 법은 법조인들을 주축으로 제정되고, 법조인들이 법을 해석하여 위법 여부를 판단하며, 법조인들이 지휘하는 행정부가 집행을 한다. 따라서 삼권분립의 원리라는 것은 법조인에 의한, 법조인을 위한, 법조인의 정치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검사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수사권과 기소권이다. 아무리 엄청난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죄가 아니고 처벌되지 않는다. 설령, 검사가 기소하였다 하더라도 판사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무죄를 내리면 처벌할 수 없다. 반대의 경우,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검사가 기소를 하고 판사가 법을 어겼다고 판결하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인혁당 사건은 독재 정권과 결탁한 법조인들이 합법을 가장한 살인을 저지른 경우이다.

문제는 이런 법조인들의 도덕성이나 가치 판단이 일반 국민들의 평균적인 수준보다 전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간혹가다 존경을 받을만한 법조인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법조인들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다. 대부분 사법고시를 합격한다든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여 법조인이 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기존에 형성된 질서를 수호하고 지배계급의 이익에 복무한다. 따라서 대개의 법조인들은 보수적이거나 수구적이다.

결국 이런 시스템 하에서 일반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착하고 선한 법조인을 만나길 기도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좋은 운을 타고 나야 일어나는 일이고, 대부분은 그들의 처분만을 묵묵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이 법조인이 되길 바라셨지만, 속세의 이치가 무엇인지 잘 몰랐던 아들이 그것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훗날, 그 선택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닫고 그 아들은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