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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성탄절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시인 백석(白石)이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에서 했던 말.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서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성탄절을 맞아 세상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안과 위로를 보낸다. 지금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사람들은 하늘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예수님께 드리는 편지

예수님께 드리는 편지

아홉살 먹은 딸아이는 아직도 성탄절을 기다리며 예수님께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를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놓았다. 예수님이 읽어 보고 꼭 선물을 달라는 애원(또는 협박?)이었다. 편지 앞면에는 예수의 탄생 장면이 그려져 있고, 뒷면(이면)에는 예수님께 하고 싶은 말이 적혀 있었다.

예수님께!

예수님, 내일이 예수님의 생신 성탄절이에요. 예수님은 천국에 계시죠?

저는 욕심꾸러기에요. 어쩌면 선물을 받고 싶어서 이러는지도 몰라요? 그래도 용서해 주실 거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계시잖아요.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벌을 받을께요…

이면지를 꼭!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이 편지를 본 아빠의 마음은 급해졌다. 예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탄 전날, 많은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았고, 동네 장난감 가게만이 나와 같이 마음 급한 부모들로 북적거렸다.

12월 25일이 예수 탄신일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 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 분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 임하셨고,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사랑과 용서, 그것 이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까?

딸아이는 정확하게 예수님의 참뜻을 알고 있었고, 그것과 더불어 한가지 더, “선물”을 바라고 있었다.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셨고, 아빠는 선물을 마련하였다.

천국이 어린 아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아이들만 생각하면 늘 행복하다.

천년의 사랑, 성탄절에 부른 노래

천년의 사랑, 성탄절에 부른 노래

성탄절 전날 밤, 꿈 속에서 내가 부른 노래는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이었다. 이 노래를 부르고 부르다가 지쳐 잠을 깨고 말았다. 크리스마스 캐롤도 아니고 성탄절에 “천년의 사랑”이라. 왜 “천년의 사랑”이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천년의 사랑”은 인간들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탄절에 듣는 천년의 사랑은 예수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천년이 두 번씩이나 가도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했기 때문에 라고 예수가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었을까? 역시 꿈보다는 해몽인가.

이대로 널 보낼 수는 없다고

밤을 새워 간절히 기도했지만

더 이상 널 사랑할 수 없다면

차라리 나도 데려가

내 마지막 소원을

하늘이 끝내 모른척 저버린데도

불꽃처럼 꺼지지 않는 사랑으로

영원히 넌 가슴속에 타오를 테니

나를 위해서 눈물도 참아야 했던

그동안에 넌 얼마나 힘이 들었니

천년이 가도 난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는 성탄절을 기뻐하실까

예수는 성탄절을 기뻐하실까

유대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으로 일컬어진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등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석학들을 배출해낸 민족이고, 지금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을 막후에서 움직이는 민족이 유대인들이다. 명석한 두뇌, 고난과 역경을 기회로 바꾸는 도전 정신, 세계 제일의 교육열 등은 훌륭한 유대인들을 배출하는 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명석하고 똑똑한 민족이지만,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적지 않은 과오를 발견하게 된다. 모세는 약 400여년간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을 홍해까지 갈라가면서 구해내지만, 정작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은 모세를 믿지 않았다. 단 열흘이면 도착할 수 있었던 가나안 땅을 가지 못하고, 유대인들은 40여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된다. 유대인들이 배출해낸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 예수도 그가 태어난지 2000년이 지나도록 유대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얼마나 지독한 역설이란 말인가. 그 수많은 이적을 행하고, 인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르침을 행한 하느님의 아들이자 인간의 아들인 예수는 고향 사람들인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렸다. 그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를 외면하면서 구원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민족도 유대인들에게 버금갈만한 똑똑하고 부지런한 민족이다. 그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반만년동안 꿋꿋히 나라를 지켜온 민족이며, 20세기 들어와서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유일한 민족이다. 아마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민족은 단연코 우리 민족일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들을 거세하고 제거한 것은 비단 유대인들뿐만 아니었다. 우리 역사도 유대인 못지 않은 과오가 있었다. 조선 시대만 보더라도 조광조가 제거되었고, 정약용이 유배되었으며, 정조 이산이 독살되었다. 해방 이후 김구가 암살되었고, 여운형, 조봉암, 신익희가 뜻을 펴지 못한 채 사라졌으며 장준하가 살해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유대 민족이나 우리 민족 전체가 이런 훌륭한 인물들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늘 그 시대의 부도덕한 주류세력들이 그들의 정치적 권력과 탐욕을 지키기 위해 개혁 세력들의 지도자를 제거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은 예수는 이억 만리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땅 대형 교회의 목사들과 주류 세력들은 예수의 이름을 팔아 장사를 하고 있다. 예수는 가진 자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주류 이데올로기의 대명사가 되었고, 서울을 봉헌한 어느 기독교 정치인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외면받은 예수는 한반도에서 또다른 방식으로 거세되어 버린 것이다. 팔레스타인이든, 한반도든 사회적 약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예수는 발붙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아니 그런 세상이 된 것이 아니고 원래 그런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런 부도덕의 댓가를 직접적으로 치뤄야 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거세시킨 주류세력들이 아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부도덕을 추인해버린 어리석은 백성들이란 사실이다. 2007번째 생일을 맞은 예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성탄절에 읽는 토마스 머튼의 기도

성탄절에 읽는 토마스 머튼의 기도

MY LORD GOD, I have no idea where I am going. I do not see the road ahead of me. I cannot know for certain where it will end. Nor do I really know myself, and the fact that I think I am following your will does not mean that I am actually doing so. But I believe that the desire to please you does in fact please you. And I hope I have that desire in all that I am doing. I hope that I will never do anything apart from that desire. And I know that if I do this you will lead me by the right road though I may know nothing about it. Therefore I will trust you always though I may seem to be lost and in the shadow of death. I will not fear, for you are ever with me, and you will never leave me to face my perils alone.

[Thomas Merton, “Thoughts in Solitude”]

당신을 기쁘게 하겠다는 바람이 사실 당신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찾아왔지만, 우리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의 생일만을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