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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월

백화난만

백화난만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올 무렵, 꽃들은 순서를 지키며 하나둘씩 피는데, 올해는 지난 주부터 시작된 때아닌 고온으로 모든 꽃들이 너도나도 서둘러 피어 버렸다.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 그리고 벚꽃을 3월의 끝자락에 동시에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그야말로 천지에 꽃사태가 났고, 눈이 부시다. 말로만 듣던 백화난만(百花爛漫)이 바로 이런 것이던가.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돌아왔건만, 이 봄은 그리 길지 않을 듯하다.

나무들은 서둘러 꽃을 피우고 잎을 내어, 곧 다가올 여름을 맞이할 것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은 이제 한달 남짓 꽃으로 흔적만을 남긴다. 이제 푸르지만 무더운 여름이 올 것이고, 세월은 그렇게 흐를 것이다.

2014년 봄이 백화난만 속에서 속절없이 가고 있다.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는다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는다

20년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러는 머리숱이 적어져 있었고, 더러는 반백이 되어 있었다. 얼굴마다 지난 세월의 흔적을 제각기 지니고 있었다. 반갑기도 했고 어색하기도 했다.

20년 전에 찧고 까불고 풋풋한 청소년기를 같이 보냈던 녀석들인데, 이제는 거의 모두 가정을 이루고 있었고, 삶이 주는 무게에 피곤한 모습들이었다. 아내들이 있었고, 하나 둘 자식들이 있었으며 그 가정을 꾸려가야할 책임 앞에 힘겨워했다.

돈을 많이 번 녀석들도 있었고, 빚을 많이 진 녀석들도 있었으며, 이혼한 녀석들도 있었고, 들리는 바에 의하면 자살한 녀석들도 있었다. 20년의 시간은 각자의 인생을 수십 갈래로 나누어 놓고 말았다.

술 한 잔에 먹고 사는 얘기, 재산을 불리는 얘기, 자식 교육 얘기들이 나왔고, 나는 녀석들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 속에서 묵묵히 그 얘기들을 주워담고 있었다. 20년 전보다 삶은 더 고되지고 있었다.

각자가 견뎌야 할 삶의 몫은 달랐지만, 그 종류는 대개 비슷했다. 산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같은 종류의 문제와 고민과 맞닥드리는 것이다. 녀석들과 좀 더 자주 만나면 예전의 편안함이 다시 살아날까?

내가 인정하는 몇 안되는 진리 중 하나,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는다는 것. 20년만에 만난 친구들의 얼굴마다 그 진리는 또렷히 되살아 나고 있었다.

20년의 두께

20년의 두께

어젯밤 술자리에서 만난 아이들은 내가 고향을 떠날 때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20년 전보다 아이들의 술자리는 세련되어 보였다. 사발을 들고 다니는 선배들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했고, 비릿해 보이는 아이들은 어색하게 술을 마시며 인사를 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진리만 변하지 않는 듯 했다. 20년의 두께를 뛰어 넘어 그들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가 그 당시 했던 삶과 사회에 대한 고민들이 지금 그 아이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어 어쩐지 우울했다. 그들은 젊었지만 그 젊음이 부럽지 않았다. 그들이 부닥쳐 살아야 할 인생들이 무거워 보였고, 그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여전히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안도했다. 비겁하지 살지 않을 수 있는 행운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그들에게 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술 서너잔에 몸이 가라앉았다.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