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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12] 길에서 만난 아이들

[산티아고 순례길 12] 길에서 만난 아이들

스페인 북부 나바라 지방은 한여름이라도 밤낮의 기온 차이가 꽤 크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기분좋게 걸을 수 있지만, 한낮이 되면 따가운 햇볕에 쉽게 지친다.

해가 중천으로 넘어갈 즈음, 마을 입구에서 한 소년을 만났다. 방학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 소년은 순례자들을 상대로 레모네이드를 판다고 했다. 얼굴도 잘생기고 머리도 영리한 소년은 레모네이드에 값을 매기지 않았다. 한잔 마시고, 내고 싶은 만큼 기부하라고 했다. 그 돈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겠다고 했다. 더위에 지친 순례자들은 시원한 레모네이드 한잔을 마시고, 적어도 1유로 이상의 돈을 기부했다. 그 녀석의 장사 수완에 순례자들은 모두 유쾌한 한때를 보냈다.

한낮의 태양이 머리 위에서 이글거릴 때, 아이들은 수영복만 입고 다리 위로 달려갔다. 겁이 없는 개구쟁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리 위에서 개울로 몸을 던졌다. 지나가던 어른들은 혹시라도 아이들이 다칠까봐 잔소리를 해대지만, 아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다이빙을 하고 멱을 감았다. 그 아이들 머리에서 나바라의 햇볕 냄새가 났다. 평화로운 마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역시 천국은 아이들의 것이었다.

여왕의 다리(푸엔테 라 레이나)를 떠난 카미노는 마녜루와 시라우키를 지났다. 포도밭과 밀밭이 번갈아 나오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비행기가 길을 내면서 날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에스테야인데, 이정표에 적힌 거리가 잘못된 듯 걸어도 걸어도 그 마을은 나오지 않았다.

레모네이드 파는 소년
레모네이드 파는 소년
물놀이하는 아이들
물놀이하는 아이들
저 멀리 시라우키 (살모사 둥지)
저 멀리 시라우키 (살모사 둥지)
나바라의 포도밭
나바라의 포도밭
추수 끝난 밀밭과 비행운
추수 끝난 밀밭과 비행운
사이프러스 나무와 밀밭
사이프러스 나무와 밀밭
노란 바람개비와 순례자
노란 바람개비와 순례자
부엔 카미노, 코리안!
부엔 카미노, 코리안!
[산티아고 순례길 10] 용서의 언덕

[산티아고 순례길 10] 용서의 언덕

길은 생장을 떠난지 닷새만에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ón)에 닿았다. 팜플로나를 지나자 추수를 기다리는 누런 밀밭이 펼쳐진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푸른 빛 하늘과 미야자키 영화에나 나올법한 비현실적인 흰구름들이 조화롭다. 밀밭을 지나 저멀리 언덕에 풍력발전을 위한 바람개비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곳이 페르돈 고개, 용서의 언덕이다.

순례길 초반에 “용서의 언덕”으로 이름지어진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행운이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처럼 용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사랑이자 자비이며, 용서는 우리가 절망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힘이고, 진정한 평화와 행복에 이르게 하는 수행이다.

순례는 자기자신을 얽매고 옥죄고 짓누르는 그 모든 것들과 결별하는 과정이다. 그 첫번째 열쇠가 바로 용서라는 것을 카미노는 가르쳐 준다. 에고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참나를 찾아 가는 것이 바로 순례이다. 용서의 언덕을 올라가는 길이 한없이 기쁜 것은 저곳에 다다르기만 하면,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용서가 저절로 찾아올 것만 같은 착각때문이다. 그것이 착각이든 아니든, 용서의 언덕에서 누구든 얼마간의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그 해방감이 진정한 평화와 행복으로 이어지길 기도할 뿐이다.

용서의 언덕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서울까지의 거리가 새겨져 있다. Seul 9700Km. 그 현실감이 없는 거리 때문에 마치 서울이 요단강 건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처럼 느껴진다. 서울에 남겨져 있는 그 모든 부조리함들을 용서의 언덕에서 용서할 수 있을까? 카미노는 불가능할 것 같은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푸엔테라레이나 17.2Km
푸엔테라레이나 17.2Km, 페르돈 고개 8.4Km
용서의 언덕을 향하는 카미노
용서의 언덕을 향하는 카미노
길 위의 순례자들
길 위의 순례자들
사리키에기, 산안드레아 성당
사리키에기, 산안드레아 성당
언덕 위의 바람개비들
언덕 위의 바람개비들
서울 9700Km
서울 9700Km
용서의 언덕
용서의 언덕
[산티아고 순례길 9] 팜플로나의 태양은 지고

[산티아고 순례길 9] 팜플로나의 태양은 지고

정수리에 내리꽂히던 햇볕이 밤 9시가 넘어가자 서서히 기운을 잃었다. 태양을 피해 어딘가 숨어 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팜플로나의 하루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거리 곳곳의 술집과 식당에 사람들이 넘쳐났다.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맥주잔을 들고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그들은 가슴에 담아둔 얘기를 평생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술을 마시면서 쉴 새 없이 얘기했다. 그들의 말소리와 성당의 종소리가 뒤섞였고, 팜플로나는 비로소 생기가 되찾았다.

팜플로나는 축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소몰이로 유명한 산페르민 축제. 황소와 시합을 하듯 앞서 달리다가 때로는 황소뿔에 받히기도 하는 그것을 해보려고 해마다 백만명의 사람들이 팜플로나로 모여 들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하루하루 사는 사람들. 팜플로나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개 낙천적이다. 행복은 과거나 미래에 머무르지 않고 순간을 최대치로 살아내는 것에 있다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 그들은 태양을 닮았고, 정열을 가슴에 품었다. 해는 다시 지고, 내일 다시 떠오른다. 내일은 또 내일로 열심히 살면 그뿐이다.

카미노는 팜플로나를 관통하여 용서의 언덕으로 향했다.

팜플로나를 가리키는 화살표
팜플로나를 가리키는 화살표
예술작품처럼 놓여 있는 건초더미
예술작품처럼 놓여 있는 건초더미
길가의 미루나무
길가의 미루나무
성당 지붕을 수리하는 할아버지
성당 지붕을 수리하는 할아버지
팜플로나 가는 길
팜플로나 가는 길
막달레나 다리
막달레나 다리
수말라카레기 문
수말라카레기 문
산타마리아 성당
산타마리아 성당
팜플로나 시청사
팜플로나 시청사
헤밍웨이가 다녔다는 카페 이루냐
헤밍웨이가 다녔다는 카페 이루냐
해는 다시 지고
해는 다시 지고
팜플로나 거리에 나선 사람들
팜플로나 거리에 나선 사람들
거리에 앉아 술마시는 사람들
거리에 앉아 술마시는 사람들
[산티아고 순례길 8] 길 위의 사람들

[산티아고 순례길 8] 길 위의 사람들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윌프리드를 만났다. 윌프리드는 벨기에서 온 친구인데, 은퇴를 앞두고 회사와 가족에게 3개월 휴가를 얻어 벨기에부터 걸어서 산티아고에 왔다고 했다. 그는 총 2,500Km를 걷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미 1,700Km를 걸어서 론세스바예스에 왔다. 지난 두달 동안 매일 25~30Km를 걸었고, 앞으로 남은 한달도 그렇게 갈 거라 했다.

윌프리드는 큰 키에 마른 체형으로 미소가 순박한 50대 후반의 아저씨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서 삶을 순수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범부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60년 가까이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전환의 시점에서 산티아고를 찾았다. 그가 이번 여정에서 얻은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설계하길 기도했다.

이튿날, 윌프리드와 이탈리아에서 온 실비아와 함께 길을 나섰다. 그들의 걸음이 워낙 빨라서 쉽게 따라갈 수 없었다. 오늘은 어차피 수비리(Zubiri)까지 갈 계획이었고, 윌프리드, 실비아와는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카미노는 너무 느리게 걸어서도 안 되고, 너무 빠르게 걸어서도 안 된다. 길이 요구하는 대로, 그리고 몸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걸으면 된다.

윌프리드, 실비아와 헤어지고 개울에서 쉬고 있는 동안, 다섯 명의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김 이사와 나이도 엇비슷하고 말이 통해 그와 며칠 간 동행했다. 유럽인들은 카미노에 왜 이렇게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궁금해 했다. 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알지 못하지만, 그들에게는 치유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좀 더 높은 영성을 위해 길을 나서기도 할 것이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까지는 약 23Km. 떡갈나무와 밤나무 숲이 아름답고 멋드러진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연처럼 다가온 인연이지만 사실은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들과의 추억이 별처럼 길을 비췄다.

저 멀리 앞서 가는 윌프리드
저 멀리 앞서 가는 윌프리드
철조망에 걸린 순례자의 신발
철조망에 걸린 순례자의 신발
에스피날 거리
에스피날 거리
수비리의 라비아 다리
수비리의 라비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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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바르톨로메 성당과 그 뒤의 알베르게
[산티아고 순례길 7] 장미의 계곡

[산티아고 순례길 7] 장미의 계곡

카미노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나바라 왕국으로 향했다. 산을 계속 오르니 안개가 점점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순례자들을 따라 구름도 피레네를 넘고 있었다. 롤랑의 샘을 지나면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 나온다. 여기부터 나바라 왕국(스페인 북부)의 땅이라는 표지가 없었다면 아무도 국경인 줄 알 수 없는 그 평화가 부러웠다.

해발 1400m가 넘는 레푀데르 언덕에 도착하니, 눈 앞에 구름바다가 펼쳐졌다. 지친 순례자들이 물을 마시며 한숨 돌리는 곳이다. 저 아래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로 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뻗어 있다.

론세스바예스. 장미의 계곡. 롤랑과 그의 부하들이 죽은 후, 샤를마뉴가 적군과 아군의 시체를 구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아군 시체의 입에서 장미가 피었다는 전설을 지닌 그곳. 피레네를 넘은 카미노의 스페인 첫마을. 그곳에서 롤랑의 노래와 전설을 만났다.

오리송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는 17Km, 약 5시간이 걸렸다. 새로 단장한 알베르게가 깨끗했다. 샤워와 빨래를 하고, 관광안내원을 따라 성당과 박물관을 한바퀴 돌았다. 저녁을 먹고 미사에 참석했는데, 스페인 신부가 한국말을 비롯한 각국의 언어로 순례자들의 평안을 기도했다.

한여름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쌀쌀했다. 론세스바예스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안개 걷히는 카미노
안개 걷히는 카미노
이정표에 매달린 순례자 신발
이정표에 매달린 순례자 신발
피레네를 넘는 구름
피레네를 넘는 구름
레푀데르 언덕에서 쉬고 있는 순례자들
레푀데르 언덕에서 쉬고 있는 순례자들
론세스바예스로 향하는 가파른 내리막길
론세스바예스로 향하는 가파른 내리막길
수도원 알베르게
수도원 알베르게
롤랑의 동상
롤랑의 동상
카미노의 별
카미노의 별
성 야고보 성당
성 야고보 성당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알베르게의 장미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알베르게의 장미
[산티아고 순례길 6] 무산몽환(霧山夢幻)

[산티아고 순례길 6] 무산몽환(霧山夢幻)

오리송 산장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카미노는 안개 속에 사라졌다. 꿈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아침에 보니 어제 그 청명했던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산은 안개와 구름으로 덮혀 있었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안개 속에 사라진 카미노는 이미 이 세상 길이 아니었다.

이슬비와 안개와 구름으로 가득한 꿈같은 길. 그 길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순례자들. 안개 속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와 소들.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산티아고로 향했던 카미노는 이제 다른 세상에 닿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란 안개 속의 카미노와 같은 것.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지만, 저 안개 너머에 무지개가 있을 거라 기대하며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나아가는 것.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온몸을 전율하는 것. 무산몽환(霧山夢幻).

피레네 산맥의 안개 속 카미노를 걸으면서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본래 하나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이 늘 같이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것. 죽음이 삶을 가치있게 한다는 역설. 안개 속 카미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워 나갔다.

안개 속의 카미노
안개 속의 카미노
소와 자전거
소와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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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
양치기와 개
양치기와 개
카페 앞의 순례자들
카페 앞의 순례자들
숲 속의 안개
숲 속의 안개
안개 속으로 사라진 길
안개 속으로 사라진 길
론세스바예스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론세스바예스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산티아고 순례길 5] 세월호의 흔적

[산티아고 순례길 5] 세월호의 흔적

카미노를 걷다 보면 가끔씩 세월호의 흔적을 발견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였다. 자식을 잃은 부모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이 수장되는 순간을 TV를 통해 지켜보던 거의 모든 이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과 상처를 안겼다.

대통령은 가증스런 위선의 눈물을 보이며 유가족의 한을 풀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참사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진상규명은 끊임없이 방해받고 있다. 그 방해하는 집단이 이 참사를 기획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누군가가 철조망에 노란 리본을 걸어 놓았다. 무덤 앞 십자가에는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카미노를 걷는 이들 중에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유가족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카미노를 걷다가 노란 리본을 보면서 세월호의 상처를 기억한다. 그 상처가 치유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진상규명이다. 카미노는 분명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소리 없이 외쳤다.

철조망에 걸린 세월호의 흔적
철조망에 걸린 세월호의 흔적
로산나 무덤의 세월호 리본
로산나 무덤의 세월호 리본
가슴 먹먹한 집시들의 춤, 플라멩코

가슴 먹먹한 집시들의 춤, 플라멩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를 가지 전까지만 해도, 플라멩코(Flamenco)는 그저 스페인의 전통 춤이라 생각했다. 투우사 옆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은 어여쁜 아가씨가 캐스터네츠를 손에 쥐고 고혹적인 눈길로 관중을 사로잡으며 화려하게 추는 그 춤이 바로 플라멩코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플라멩코는 집시들의 춤이었다. 집시들은 인도와 유럽을 떠돌며 살아가는 유랑민족을 일컫는다. 그들이 스페인 남부까지 내려와 살며, 그 수천 년의 고난과 서러움을 춤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플라멩코다. 물론 안달루시아에 내려오는 스페인의 전통과 풍속이 같이 어우러진 춤이겠지.

플라멩코를 추는 집시들은 대부분 40~50대의 아주머니들이었다. 그들의 얼굴과 몸매와 옷맵시에는 삶의 고단함이 서려 있었다. 집시 가수가 기타와 카혼의 선율에 맞춰 박수를 치며 노래를 하면, 집시 여인들이 무대에 발을 구르며 장단을 맞추어 나간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는 한이 서려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판소리와 비슷하기도 한데, 구성진 가락과 박수 소리가 묘하게 어울리면서 리듬을 만들어 나간다. 집시 여인들은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폭풍처럼 빠르게 무대에 발을 구르며 처연한 몸사위를 짓는다. 절정에 다다렀을 때는 그들의 발동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어떤 사람들은 플라멩코가 스페인의 정열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슬픔과 한이 어린 몸부림이라 해야 할 것 같다. 발을 구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집시들의 눈물과 고단함이 춤으로 승화된 것이리라. 플라멩코를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알 수 없는 갑갑함이 무대에 긴 여운을 남긴다.

고향이 없다는 것,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만큼 서글픈 것이 있을까. 그 슬픔과 고단함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집시들은 발을 구른다. 올라!

flamenco

꿈이 죽으면 나타나는 징후들

꿈이 죽으면 나타나는 징후들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첫번째 소설 <순례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꿈들을 죽일 때 나타나는 첫번째 징후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가장 바빠 보였던 사람조차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 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꿈들이 죽어가는 두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삶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모험이라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스스로 현명하고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여깁니다. 아주 적은 것만 기대하는 삶 속에 안주하면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그 세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깁니다.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 문학동네, pp. 78-79>

코엘료의 말이 맞다는 가정 하에서 본다면, 나의 꿈은 이미 죽어 버렸다. 나에게 나타난 징후는 세번째 것인데, 언제부턴가 나는 삶에 대한 기대를 접었던 것 같다. 무엇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지도 않았다. 운이 좋았던 몇몇 경우엔 내 노력보다 훨씬 큰 것을 얻기도 했고, 그렇지 않았던 대부분의 경우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실패했다고 해서 실망하지도 않았고, 운이 좋았다고 해서 기뻐하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삶은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내 곁을 스쳐갈 뿐이었다. 나에게는 열정이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저 순간순간 내 자신을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었다.

내 삶은, 언젠가는 바다로 가겠지만 그것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흐르는 강물같은 것이었다. 때로는 바위에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폭포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내가 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삶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가 가버렸다.

나의 꿈은 무엇인가? 코엘료의 말처럼 나의 꿈은 이미 죽어 버린 것인가?

아내가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난지 벌써 한달이 되었다. 아내의 꿈은 코엘료처럼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었다. 아내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꿈을 이룬 후에 아내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