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과 영웅
안중근이 메모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제가 이토의 목숨을 없앤 것은 죄일 수 있겠지만, 이토의 작용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재판에서 이토를 죽인 까닭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복이고, 이토가 살아 있을 때 이토에게 말하지 못한 것은 저의 불운입니다. 신부님.”
빌렘이 말했다.
“너의 말은 다만 말일 뿐이다. 인간의 행위는 몸과 마음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너의 말은 뉘우치는 자의 마음이 아니다. 너는 너의 마음의 진실을 말하라. 뉘우침의 힘으로 새로워져라.”
안중근이 메모를 들여다보지 않고 말했다.
“제가 이토를 죽인 일을 뉘우친다면, 제가 이토를 죽이는 사업에 성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만일 이 사업에 실패해서 이토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저는 이토를 죽이려는 저의 마음을 뉘우칠 수가 없습니다. 신부님.”
“그것은 세속의 마음이다. 뉘우침이 아니다.”
“그것이 저의 진심입니다.”
“너의 마음의 깊은 곳에 또다른 마음이 있을 것이다. 말하기 힘들어도 그것을 말해라.”
안중근은 눈을 감고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안중근이 말했다.
“이토를 쏠 때, 이토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조준했습니다. 쓰러뜨리고 나서, 신부님께 세례 받던 날의 빛과 평화가 떠올랐습니다.”
<김훈, 하얼빈, 문학동네, 2022, p. 272-278>
좌훈정 의사 선생님은 할복한 후 손바닥에 피를 묻혀 흰 천에 도장을 찍었다. 혹시 안중근 의사를 본받기 위해 한 시도였을까. 안중근 의사의 그 의사는 좌훈정 의사의 그 의사가 아닐텐데 말이다. 진정 안중근 의사를 따라 할 요량이었으면, 어설픈 할복보다는 왼손 약지 한마디를 끊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가 도대체 흰 천에 쓰려고 했던 혈서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의사들이 국민의 건강권을 볼모로 밥그릇 지키려 하는 것, 지난 의약분업 때 신물이 나도록 보아왔다. 진정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는 의사들이라면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