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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양심

법 위의 기술자들

법 위의 기술자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평등권을 규정한다. 즉,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어떠한 사회 특권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당연하고 거룩한 가치이건만 이것은 단지 헌법 조항일 뿐이다.

대한민국에는 법 위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법을 만들고 법을 해석하고 법을 적용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 흔히 법조인이라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법조인은 법 위에 있다.

법관들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양심이 일반 국민 평균보다 낫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 계급의 특권을 지키는 데에 온 양심을 다 쏟는다.

전직 대법원장이 사법농단의 주범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 사건에서 일본 전범 기업을 대리한 변호사를 직무실에서 만나 재판을 코치했다. 일본 대법원장이 아니고 대한민국 대법원장이 말이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다.

법은 일반 국민들이나 지키는 것이고, 법 위의 기술자들은 그들의 양심(?)에 따라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법 앞에 있는 것은 국민이고 그들은 법 위에 있다.

한때는 검찰과 언론이 적폐의 끝판왕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해였다. 법관 앞에서 검찰과 언론은 적폐의 명함을 못 내밀고 있다. 적폐청산의 길은 정말 멀고도 험하다.

법관의 양심

법관의 양심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은 모든 법관들에게 똑같이 주어져 있는 것이니,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법관의 양심이다. 만약 양심이 극도로 불량한 판사가 법을 임의로 해석하여 판결을 내리면 어떻게 될까? 정의는 사라지고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 될 것인데, 이를 견제할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들의 양심이 적어도 일반인 평균 이상의 수준을 가질 때 작동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고법 정형식 판사는 삼성의 황태자 이재용을 집행유예로 풀어 주었다. 물론 1심 판결이 났을 때부터 예상된 것이었다. 어떡하든 이재용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눈물겨운 판결을 했다. 이재용의 거의 모든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차고도 넘치는 증거를 모른 척 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받지도 않은 돈을 받았다고 판결했던 사람이 이재용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심초사했다. 이 정도 양심은 있어야 우리 사회 지도층이 되는 것이다. 적폐들의 최후의 보루는 양심 불량 법관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운 판결이었다. 하기야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최고 권력 삼성의 황태자를 1년 가까이 감방에 처넣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긴 했다.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이 나라 지배세력은 아직 너무도 견고하다. 예상했던 일이고 놀랍지도 않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감히 양심을 말할 수 있는 자

감히 양심을 말할 수 있는 자

오랜만에 서울에 갔다가 아침 출근길 전철을 탔다. 몇 년만이지 모르겠지만, 전철 안의 풍경은 정말 낯설었다. 전철 소음을 제외한다면 전철 안은 적막했다. 사람들은 빼곡히 들어차 있었지만, 그 누구도 깨어있지 않았다. 태반은 졸고 있었고, 눈을 뜬 사람들조차도 활기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들 피곤에 절어 있었고, 얼굴은 잿빛이었다.

전체 국민의 절반이 모여 산다는 서울의 아침은 그렇게 잿빛이었다. 출근 시간이 지난 한낮에도 강남의 거리는 차들이 밀려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으로 공기는 매캐했다. 강남의 어느 비싼 아파트 단지는 출근시간에 주차장을 빠져 나가는데에만 30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봐 쉬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아파트를 뜯어먹고 사는 족속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서울의 경쟁력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려고 했던 이유는 우리나라 국토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잿빛으로 죽어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살리자는 뜻도 있었다. 물론 서울의 아파트를 뜯어먹고 사는 족속들에게 이런 노무현의 진심이 먹혀들어갈 리가 없었다. 노무현의 행정 수도 이전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물거품이 되었다. 헌재의 노회한 재판관들은 조선시대 경국대전을 들먹이며 수도 이전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어처구니 없어 보였지만, 그들도 역시 아파트를 뜯어먹고 사는 족속이었으므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행정수도는 행정복합도시(세종시)로 강등되었지만, 이조차도 서울의 아파트를 뜯어먹고 사람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그 당시 서울시장으로 있었던 이명박은 행정도시 건설을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다고 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국회에서 합의한 ‘행정중심 복합도시’안을 24일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다”고 말한 데 이어 25일에는 “행정도시 건설은 수도분할로 국가 정체성과 통치의 근본을 쪼개 수도이전보다 더 나쁘다”고 맹비난했다.

[이명박 “군대 동원해…” 김현미 “쿠데타 수제자…”, 한겨레]

이명박은 2007년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말을 180도 바꾼다. 그에게 있어서 말바꾸기는 손바닥 뒤집기보다도 더 쉬운 일이고 더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놀랍지도 않다.

“일부 도민들께서는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행복도시를 중단할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 여권(민주당)에서 이명박이 되면 행복도시는 없어진다고 저를 모략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말씀 드릴 것은 이미 (행정도시를 추진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저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킵니다.

[이명박 “세종시 안한다는건 모략,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오마이뉴스]

이명박에게 있어 말이나 약속은 크게 의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2년이 가까워오는 동안 세종시 건설은 전혀 진척되지 않고 있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었던 것이였기에 이를 추진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제 언론들은 이명박의 양심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양심상 그대로 추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당시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이대통령 ‘세종시 원안 전면수정’ 정면돌파 착수, 한겨레]

이제는 양심상 할 수 없단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었던 세종시이니 그리 얘기하는 것이 더 정직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양심을 가진 자에게 세종시를 원안대로 건설하라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정권을 교체하지 않고는 행정도시는 건설될 수 없다. 행정도시와 같은 어정쩡한 타협안이 아니라 원래 노무현이 하고자했던 “수도 이전”을 하려면 정권은 교체되어야 한다.

이명박의 말 중에서 몇 안되는 참말을 꼽으라면 다음과 같은 말을 들 수 있겠다.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그렇지 않은가.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 세계 어느 나라든지.”

[MB 정세변화 못읽거나, 외면하거나, 한겨레]

그는 표가 나온다면 뭐든지 얘기하고 약속하는 자이다. 그런 자에게 세종시를 원안대로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양심을 들먹일 수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아파트를 뜯어먹고 사는 족속들이 저렇게 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그리 길게 가지는 못할 것이다. 서울에 사람이 더 모여들수록 서울은 더 살기 힘든 지옥이 되어버릴 것이고, 그들의 삶의 질은 사람이 모여들면 들수록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이란 한편으로는 영리해 보여도 워낙 탐욕스러워서 끝을 보기 전에는 여간해서 포기하지 못한다.

행정수도 이전과 세종시 건설에 관한 이 지리멸렬한 논란을 통해 탐욕의 끝은 결국 공멸임을 깨닫게 되길 바란다. 그것만이 이명박 정권이 남긴 유일한 교훈이 될 것이다.

덧. 이명박의 어록이 잘 정리되어 있는 곳을 발견. OpenChronicle: 이명박 어록

사법부는 어떻게 화살을 피할 수 있을까

사법부는 어떻게 화살을 피할 수 있을까

판사 한 명이 소송 당사자가 쏜 화살을 맞았다. 다행히 화살 맞은 판사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사법부와 검찰이 발칵 뒤집힌 모양이다. 사건의 외양만 보면 정신 나간 전직 교수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피격한 사건이다. 사법부 입장에서는 중대한 사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왜 우리나라 사법부가 화살을 맞을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성균관대에 재직했던 젊은 교수 김명호는 촉망받는 수학자였다. 그가 대학입시 채점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수학 시험 문제 하나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하다 다른 교수들의 미움을 받아 재임용에 탈락하게 된다. 그는 사법부에 법적 판단을 요청하였지만 10년 훨씬 지난 지금까지 법원은 재임용에 관련된 사항은 학교의 재량이라며 학교의 편을 들어 주었다. 더 자세한 사항은 한겨레 21의 보도 ‘학문을 위한 양심의 수난’과 Mathematical Intelligencer 의 ‘The Rewards of Honesty?’ 를 참조하면 된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주류계층의 부도덕함과 그들의 끈끈한 연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직한 사람이 매장당하는 사회,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사법부가 그 정직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그 사람의 억울함을 배가시켜준 꼴이니 사법부는 화살을 맞아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 전직 교수가 날린 화살은 판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사법부 전체에 대한 경고로 해석해야 한다.

나는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위헌 판결을 보고 대한민국 사법부에 학을 뗀 사람이다. 전두환에 대해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고 얘기한 검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스스로 자정할 능력이 없는 집단들이다. 이들에게 정의를 바로 세우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기보다도 어렵다. 사회관과 가치관 정립이 안 된 사람들을 사법시험 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판사 검사로 임명을 하고 엄청난 권한을 누리게 했으니 그 집단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인적 구성에서 사법부 개혁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제도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앞으로 많은 판검사들이 화살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법고시를 없애고 법학대학원 도입을 빨리 하여 법조인의 수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배심원제를 두어 판사가 판결을 내리기보다 배심원들이 판결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사법부 고위직은 국민들이 선거로 뽑아야 하고, 고위직의 비리를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고위직 비리 수사처를 두어야 한다. 검찰의 권한도 분산시키고 부처들끼리 서로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 견제와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더 이상 법조인들이 화살을 맞지 않도록 국회에서 사법부 개혁에 관한 법률을 빨리 통과시키기 바란다.

그 억울한 전직 교수의 인생이 측은하다. 한 때 촉망받는 수학자였던 그가 정직의 보상으로 우리 사회 주류의 이지메에 매장을 당했으니.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그는 살인미수에 대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의 삶을 보상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에게 수행과 용서의 기도를 권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처지가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