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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여자

면접

면접

아주 젊고 예쁜 아가씨가 면접을 보러 왔다. 배우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수수하고 단아하며 지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녀는 전혀 긴장하지 않고 묻는 질문에 또박또박 조리있게 대답했다. 그녀와의 대화는 어느덧 면접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마치 만난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은 연인이나 할 수 있는 그런 말들이 오고 갔다. 그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듣지 못한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녀는 상대방의 입술 모양을 보면서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들을 수는 없지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녀가 결혼하여 낳는 아이도 역시 들을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청각에 관한 아주 특이한 유전병을 앓고 있었다. 상관 없었다.

다른 면접관들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그녀를 뽑기로 했다. 별다른 경력이 없음에도 거절할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그녀를 꼭 뽑아야 하는 운명 같은 것을 느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 제안을 부드럽게 거절했다. 너무 아쉬워 그녀를 거듭 설득했지만 그녀는 조용히 웃기만 했다.

깨어 보니 꿈이었다. 이상하게 잊혀지지 않는 꿈.

기자와 똥꼬치마

기자와 똥꼬치마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언론이라고 인정받을만한 주간지인 <시사IN>의 기자, 고재열 씨가 지하철 계단에서 아주 짧은 치마(그는 똥꼬치마라고 했다)를 입은 여자를 뒤따르다 느낀 불쾌함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가 곤경에 처했다. 많은 비난들이 쏟아졌고, 급기야 그는 그 글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했다.

고재열 기자가 올린 “지하철 똥꼬치마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을 읽고, 남자인 나도 무척 당황했다. 아무리 본인의 짜증이 머리 끝까지 뻗쳤다 하더라도 그런 식의 글을 올린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 글을 읽고 내가 받은 느낌은 마치 이명박의 “마사지걸” 발언이나 “기생” 농담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 글에는 여성 비하와 폭력적 표현이 넘쳤다. 본인도 밝혔지만, 무의식 중에 고재열 기자의 마초 근성이 반영된 글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고재열 기자와 트위터로 대화를 나는 마법사 님의 글을 보다가 고재열 기자의 “똥꼬치마” 글이 실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재열 기자가 트위터에 올린 짧은 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좌파는 섹시한 것을 섹시하다고 하지 못하고, 꼴불견을 꼴불견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인가 봅니다. 댓글이 장난이 아니네요.

나는 개인적으로 고재열 기자를 모르기 때문에 그가 좌파인지 수구 꼴통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올린 “똥꼬치마” 글이 좌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가 자신의 실수 혹은 잘못을 뉘우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장황한 사과문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은 그렇게 장황하게 꼬치꼬치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마법사 님의 말대로 그는 적어도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정치적 이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며, 인간의 기본 품성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념을 떠나 성숙하지 못한 남자들이 흔히 여성을 적대시하거나 비하하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아직 철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과 생명의 기원이 여성임을 깨달을 때 그들은 비로소 아름다운 어른이 될 수 있다.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결별한다.
딸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신이 나오는 길을 알게 된다.
아기가 나오는 곳이
바로 신이 나오는 곳임을 깨닫고
문득 부끄러워 얼굴 붉힌다.
딸에게 뽀뽀를 하며
자신의 수염이 때로 독가시였음도 안다.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화해한다.
아름다운 어른이 된다.

<문정희, 남자를 위하여>

철모르는 남자들이 자신 속의 짐승과 결별하고 아름다운 어른이 되길 바란다.

한국 마초들의 슬픈 자화상

한국 마초들의 슬픈 자화상

군가산점 부활 움직임과 한국 스포츠계의 성폭력 사태는 얼핏 전혀 다른 사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 마초들의 위기의식과 열등감이 스며 있다. 우선 군가산점 제도부터 살펴보자. 청와대가 이미 논평을 냈지만, 취직할 때 군필자에게 부여했던 군가산점 제도는 이미 오래전에 위헌 판결이 났던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남녀평등과 장애인 차별 금지라는 헌법적 가치에 위배되는 것일 뿐더러,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수많은 예비역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병역은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주어진 의무다. 의무에 대해 보상을 주장하는 것도 자존심 구기는 일이지만, 만약 군 복무에 대한 보상을 주장하려 한다면, 취업 후 군대 경력을 인정해 달라고 얘기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또는 국가가 부과하는 병역의 의무에 동의할 수 없다면, 모병제를 주장하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라. 군대를 갔다 왔기 때문에 취업시험에 가산점을 부여해야 한다는 마초들의 논리는 그 근거가 부족하다. 취업시험에서 점수가 낮게 나오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안했거나 실력이 모자라서일 뿐이지 군대를 다녀온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열등감이 극에 달한 어떤 이들은 여자들에게도 똑같이 병역의 의무를 지워야 한다고 설레발을 친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남녀 평등에 맞는 것일까? 그런 주장을 할 정도로 그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철저하게 평등주의자들이고 떳떳한가? 내가 보기에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노동의 양이 많다. 맞벌이 부부만 따져 보더라도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다섯 배까지 아내들이 남편들보다 훨씬 가사노동을 많이 한다. 당신들의 어머니, 당신들의 아내가 감당해야 했던 노동의 수고를 곰곰히 생각해 보라. 아니 지난 주에 있었던 설연휴를 한번 떠올려 보라. 당신들의 어머니나 아내나 며느리가 없었다면 설 명절에 차례나 제대로 지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정말 여자들에게 병역의 의무까지 지우고 싶은가? 그리되면 정말 대한민국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언제 당신들의 어머니나 당신들의 아내가 그 노동의 댓가를 요구한 적이 있는가? 상식이 있고, 자존심 있는 남자들이라면 이런 낯뜨거운 주장은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스포츠계 성폭력 사태는 군가산점 제도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스포츠계의 지도자라는 자들이 “지도”라는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범죄자들이 한둘이 아니고 거의 모든 종목에서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다는 것이 충격이다. 이런 파렴치한 자들이 지도자랍시고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는 사회 풍토에 얼마나 많은 어린 여자 선수들이 절망했겠는가? 여자 선수들을 다스리고 통제하기 위해서 그 선수들과 자야 한다고? 도대체 그들의 머리 속에는 뭐가 있는 것일까? 실력 없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X 밖에 없으니 성폭력을 저질러서라도 지배를 하겠다? 여자 선수들이 무슨 성노리개감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런 사고 방식의 근간에도 마초들의 열등의식이 여지없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합리적 이성과 실력으로 여자 선수들을 지도할 수 없는 자들이니 말이다. 한국 남자들은 성차별이나 성폭력 같은 사회 문제를 얘기할 때 여자들은 타자화하고 대상화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적이거나 또는 남자들의 상대 개념이 아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어머니거나 또는 남자들의 아내거나 남자들의 딸이거나 며느리인 것이다. 성차별이나 성폭력은 여자들만이 당하거나 견뎌야할 문제가 아니고, 남자들의 어머니, 아내, 딸, 며느리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남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문제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우리 모두가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들이다. 한국 남자들의 과거의 누렸던 몹쓸 권위들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그것들을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마초 근성을 드러내지 말라. 그러면 그럴수록 초라해지는 것은 남자들 스스로다. 당당한 남자로 살고 싶다면 마초 근성을 버려야 한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우월하지 않다. 한국 남자들이 언제나 밴댕이 소갈 딱지를 뗄 수 있을 것인가.
설 연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설 연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설 연휴의 끝자락이다. 이번 설은 주말과 이어져 긴 연휴가 되었다. 연휴가 길면 느긋하게 쉴 수 있어 좋은 일이지만, 우리나라 기혼 여성들은 그만큼 더 힘들기도 할 것이다. 명절 때만 되면 우리나라에서 결혼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보통 고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차례 음식 장만하랴, 손님 치르랴, 하루 세 번씩 꼬박꼬박 밥상을 차리고 설겆이를 해야 하는 대부분 한국 여성들의 명절은 참으로 고되다. 오죽하면 명절 증후군이란 말이 생겼겠는가.

요즘 젊은 부부들 중에는 남편들이 제법 집안 살림을 돕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돕는다는 차원이다. 집안의 가사노동이 자기 일이 아니고 아내의 일이지만,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도와준다고 얘기한다. 우리 아버지 세대보다는 나아졌지만, 가사노동을 둘러싼 우리나라 남자들의 사고방식은 좀 더 진화해야 한다. 더군다나 아내와 맞벌이를 한다면 집안 일은 공평히 분담해야 한다. 그런 마음을 먹어도 여자들의 노동 강도를 넘어서기 힘들다.

최근 서울시에서 발표한 맞벌이 여성들의 가사노동 강도를 보면 아직도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집안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을 비교해 보면, 06년 상반기 남성의 월평균임금은 3,127,000원, 여성은 1,888,362원으로 여성은 남성 임금의 64.1%를 받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임금격차의 벽은 5년 전인 02년과 별 차이가 없다.

<중략>

서울시 여성의 가정관리와 가족보살피기 등의 가사노동시간은 4시간 47분(04년 기준)으로 5년 전보다 8분 줄었고, 남성은 2시간 11분으로 5년 전보다 5분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남성의 비해 2배나 더 높다.

[서울시 ‘직장 여성, 돈 벌면서도 가사부담 여전’, 서울시청]

이것이 서울시의 평균이기 때문에 이 정도이지, 전국 평균으로 하면 여성들의 노동 강도는 휠씬 더 증가할 것이다. 2006년 말의 경우를 보면, 맞벌이 부부 중 아내가 남편보다 평균 5배 이상 더 집안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만약 우리나라 여성들이 집단 파업이라도 하면 어찌될 것인가. 제대로 차례를 지낼 수 있는 집이 몇 집이나 될까? 이번 설에도 나는 어머니가 해 주시는 음식을 꼬박꼬박 받아먹으면서 함포고복했다. 설겆이라도 할라치면 어머니는 극구 만류하신다. (이 지점이 아내와 어머니의 세대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아내는 나의 가사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알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집안 일 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신다.)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어떤 사람들은 이명박과 그의 인수위원회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하자 잘된 일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시기상조다.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이 받는 차별이 아직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어머니와 나의 아내와 나의 딸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남자들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 여성가족부는 존치되어야 한다.

설 연휴를 고단하게 보낸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다음 명절이 이번보다는 좀 더 나은, 좀 더 편하고 즐거운 명절이 되길 바란다.

어머니와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많은 빚을 지면서 살고 있다.

좋은 남자 고르는 법

좋은 남자 고르는 법

나리 님의 블로그에서 우리는 왜 나쁜 남자에게 빠질까?라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남녀관계는 어떤 경우든 다 각각 그 이유와 상황이 다르기에 일반적인 경향으로 정리하는 것이 큰 도움이 안 되고 때론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가 시작되고 인류가 멸망하는 날까지 인간들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되고 갈구하게 되는 것은 역시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이야기이기에 이것은 아주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다.

경험에 비추어 내가 발견한 몇 가지 사실을 여자들에게 전한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곤란하고,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냥 재미삼아 몇자 적어본다.

생물학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열등하다. 신체적인 완력은 남자들이 강하지만, 그 이외에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남자들은 여자들을 당해낼 수 없다. 남자들은 대개 새로운 환경에 적응력이 약하고 극한 상황을 잘 참지 못한다. 남자들은 대개 즉자적이며 호전적이다. 결정적으로 남자들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남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정자를 제공하는것 밖에는 없다. 이것은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원초적 열등의식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정자를 빌어와 아이를 만들 수 있지만, 남자들은 아무리 여자들의 난자를 빌어온다 하더라도 아이를 품을 수 없다. (물론, 남자들의 몸에 자궁을 넣을수 있는 기술이 생긴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원시사회는 우리가 알다시피 모계 중심 사회였다. 종족의 보존과 번성이 사회의 주요 임무이었기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들이 대접받고 권력을 잡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 남자들은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게 되고, 남성 중심의 사회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전통은 수천년을 지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봉건적인 모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대한민국은 남성 중심 사회이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들은 이미 여자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엄마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여자친구의 입김에서, 그리고 결혼을 해서는 아내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겉보기는 지극히 남자 중심으로 보이는 사회지만, 그 속은 이미 여자들이 점령했고, 이제는 겉에 보이는 사회 구조까지 여자들에게 넘어가고 있는 추세다. 머지 않아 인류는 모계 중심 사회로 되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남자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몹시 두려워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일종의 방어기제다.)

이런 상황을 전제로 지금까지 관찰한 몇 가지 사실을 얘기해 보면, 우선 열등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행복하게해 주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는 것이다. 한다 하더라도 그건은 아주 일시적인 것이고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그런 물질적, 정신적 행복을 바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백마를 타고 오는 왕자님은 없을 뿐더러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백설공주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지 일반 여자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행복은 남자들로부터 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여자들 스스로 만들고 찾아가는 것이다. 남자들의 선물이나 근사한 프로포즈를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녀석들을 적극적으로 골라라. 그리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남자들에게 종속되지 말고, 남자들을 지배하라. 그럴려면 우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필수다.

여자들에게 선물 공세와 사탕발림을 하는 남자들은 대개 별 볼일 없는 남자들이다. 그런 남자와 결혼한 여자일수록 결혼 후에 변하는 남자들의 행동에 분개하고 실망하기 마련이다. 연애할 때 일방적으로 잘하는 남자들은 사실 좀 위험하다. 그들은 결혼 후에 그런 일방적인 행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나무꾼 증후군이라고나 할까. 기본적으로 관계는 상호적이어야 한다.

좋은 남자는 말이 통하는 남자다. 잘생긴 남자도, 돈이 많은 남자도 아니고,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남자다. 살아온 경험이 비슷하고, 지향이 비슷하고, 취미가 비슷하면 말이 통할 확률이 높다. 이 남자와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앞으로 얼마나 많이 맞춰갈수 있을지 가늠해 보라.

무엇보다는 남자를 알려면 여러 남자들을 만나봐야 한다. 사랑도 해보고, 배신도 당해보고, 이별도 해보면서 알아가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리고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람도 변하고, 사랑도 변하고, 나 자신도 변한다. 남자이기 이전에 같은 인간으로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세상 경험을 많이 하게 되고, 나이를 먹다 보면 사람에 대해 그런 면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전수전 겪다보면 이제 당신은 나쁜 남자를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혜안을 갖게 되었을 때 이미 당신은 예전의 그 파릇파릇하고 싱그러운 여자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인생인 것을.

태어나서 지금껏 만난 여자들(어머니와 아내를 포함하여)은 대개 남자들보다도 훨씬 뛰어나거나 사려깊은 이들이었다. 그런 행운에 감사하며, 그런 사려 깊은 여자들을 존경한다. 세상을 여자들이 지배하기 시작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여 나는 새로운 모계 중심 사회를 꿈꿔 본다.

여성부를 위한 변명

여성부를 위한 변명

여성부의 성매매 방지 연말 캠페인 때문에 말들이 많다. 회식 후에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면 회식비를 제공하겠다는 발상이 좀 웃기기는 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캠페인이 나라 망신을 시켰다며 여성부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영국 BBC 나 CNN 에 방송이 되었다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 남자들이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기사다.

성지미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산업경영학부 조교수는 4일 ‘맞벌이 부부의 시간 사용’이라는 보고서에서, 맞벌이 부부 중 부인의 가사노동 시간이 주당 21.4시간으로 남편의 4.6시간에 견주어 다섯배 정도 많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한국노동연구원의 ‘한국노동패널’ 7차 연도(2004년) 자료를 이용한 것으로, 맞벌이 부부 859쌍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다.

보고서를 보면 자녀가 있는 경우에 남성의 가사노동이 주당 5.1시간으로 조금 늘어났으며, 자녀가 2살 미만일 때 8.4시간으로 가장 많았다. 2~5살은 7.3시간, 6~11살 4.5시간, 12~18살은 3.9시간으로 나타났다. 여성도 자녀가 있을 때 23.2시간으로 가사노동이 증가했고 2살 미만일 경우 28.8시간, 2~5살 24.6시간, 6~11살 23.7시간, 12~18살 22.1시간이었다. 또한 남성의 고용 상태별로 가사노동 시간을 분석한 결과, 임금노동자일 때 5.3시간으로 가장 길었고 고용주와 자영업은 각각 3.5시간인 것으로 집계됐다.

[맞벌이 주부 집안일 주21시간…남편의 5배, 한겨레신문]

맞벌이를 하는 우리나라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평균 5배 정도 더 가사노동을 한다는 얘기다. 사실 직장에서도 여자들이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남편과 아이들 치닥거리에 쉴 틈이 없다.

이런 불평등이 계속되는 한, 여성부는 그 상징성 자체로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 집안 일은 여자들 몫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어머니, 아내, 딸들이 안쓰럽지도 않은가.

그렇다고 여성부의 웃기는 캠페인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여성부 책임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회식 후의 성매매를 걱정할 일이 아니라 시야를 좀 더 넓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회식 문화가 담백하지 않다. 이런 문화를 좀 더 가족적이고 담백하게 유도할 필요가 있다.

내가 여성부의 정책 입안자였다면, 직장의 연말 회식을 가족 중심의 모임으로 유도했을 것이다. 부부동반이나 더 넓게는 아이들까지 같이 즐길 수 있는 회식과 모임에 비용을 도와주는 이벤트. 이런 방법이 훨씬 세련되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시라.

여성부가 단지 성매매 방지만을 위해 일하는 곳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여성부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