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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유족

여한(餘恨)

여한(餘恨)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 진상규명이었다. 왜 그 천사같은 수백 명의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차디찬 바다 속에서 죽어가야 했는지 부모들은 알아야 했다. 그들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거리로 나섰고, 목숨을 건 단식을 했다. 물론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그 유족들의 바람을 외면했다. 유족들의 한은 깊어만 갔다.

박근혜는 석달 반 전에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유족들과 면담하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국민들께는 말씀을 드리겠지만 특별법은 필요하다 그렇게 봅니다. 특검도 해야 된다. 근본부터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지 그냥 내버려두면 그게 또 그게 계속 자라가지고 언젠가 보면 또 부패가 퍼져 있고, 이렇게 돼서는 안 되지 않느냐, 그런 생각이다. 국정조사도 한다고 했고 수사도 하고 있으니 그런 모든 것이 차제에 또 부패방지법이 있지 않나. 그 부분도 강력하게 시행해야 된다, 통과시켜서. 그런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다. 무엇보다 진상규명에 있어서 유족 여러분들이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 오늘 다 얘기를 못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여러분들에게 계속 반영이 되고, 투명하게 공개가 되냐 하는 것을 다시 의논을 드리겠다.

<세월호 靑대화록>③ “진상규명 유족들 여한없게 할것”

물론 거짓말이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진상규명은 말할 것도 없고. 단지 코 앞에 닥친 지방선거와 보궐선거를 위한 립서비스가 필요했을뿐. 두 번의 선거가 지나가자, 그들은 유족들을 벌레 보듯 하기 시작했다.

기회주의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표리가 부동하다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 필요할 때는 간이라도 빼줄 것 같지만, 막상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언제라도 뒷통수를 친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본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무능과 무책임과 무대책이 만천하에 드러날 경우 정권 유지는 커녕 이 나라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러니 그들의 책임을 밝히겠다는 수사와 진상규명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의 한은 눈물이 되고 빗물이 되어, 오늘도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민족의 최대 명절 한가위가 내일 모레 앞으로 다가왔지만, 그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단식을 하고 삼보일배를 하며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다.

유족들의 여한은 한없이 커져만 갔다.

삼보일배

악몽보다 지독한 현실

악몽보다 지독한 현실

2014년 4월 16일, 300명 넘는 사람들이 진도 앞바다에 수장되었다. 이것은 불가항력의 선박 사고가 아닌, 미필적 고의와 구역질나는 탐욕이 부른 학살에 가까운 인재였다. 죽은 이들 중 대부분은 아직 꽃도 피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었다. 부모들은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다. 참혹한 슬픔과 절망이 차라리 악몽이길 빌었다.

아이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어머니는 흐느끼며 이렇게 말했다.

“먼저 시신이라도 찾은 가족들을 보면 우리는 ‘축하한다’고 말하고 유가족들은 ‘미안하다’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사과할 시간 있으면 잠수부들 안마나 해달라”, 노컷뉴스>

시신 찾은 것을 축하해야 하는 현실, 이것을 견디어야 하는 가족들, 그 말을 전해들어야 하는 국민들, 이 모습은 악몽보다 지독한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2012년 12월, (비록 냉소적이었지만) 안녕하길 바랬는데, 그것은 그냥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슬픔은 늘 그렇듯 살아남은 자들의 몫으로 남았고, 악몽보다 지독한 현실은 기억 뒷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또다른 탐욕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을 것이고, 깨어있는 몇몇은 또다시 그들의 안녕을 기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