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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에 읽었던 두 편의 시

이십대에 읽었던 두 편의 시

꽃처럼 무너지던 시절 있었네
나 아직 이십대 늙은 사내처럼
추억을 말하네……
사라져간 물결 있었네
그 물결 속으로
그리움의 나뭇가지를 꺾으며 나는
제발 내게 기적이 없기를 빌었네
삶이 전쟁이므로 사랑도 전쟁이었고
나의 샤먼 그대는 나를 적시지 않았네
세상에 대한 알 수 없는 적개심
나 휘발유 같던 시절 있었네
자폭하고 싶었지 나 아직 이십대
그대 내 전부의 세상
그대는 바뀌지 않았네 나 참을 수 없어
몸을 떨었네 휘발유 같던 시절 있었네
지난날에 발 담그고 나는
구시렁거리네 철든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노여움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노여움으로
건너오는 건 아닌지
나 아직 이십대 개떡같은 사랑
이야기하네 왜 나, 나의 사랑을
과거의 일로 돌리려 애쓰는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대였으므로
나는 외로웠네
모든 바람은 새로웠지만
낯익은 것들이었네 폭풍이 몰아쳐
그대 조금 흔들렸지만
내 몹쓸 사랑, 꽃처럼
무너지던 시절 있었네

[이대흠, 나 아직 이십대]

어둠과 취기에 감았던 눈을
밝아오는 빛 속에 떠야 한다는 것이,
그 눈으로
삶의 새로운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 입술로
눈물 젖은 희망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

어제 너를 내리쳤던 그 손으로
오늘 네 뺨을 어루만지러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
결국 치욕과 사랑은 하나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가을비에 낙엽은 길을 재촉해 떠나가지만
그 둔덕, 낙엽 사이로
쑥풀이 한갓 희망처럼 물오르고 있는 걸

하나의 가슴으로
맞고 보내는 아침이 이렇게 눈물겨웁다.
잘 길들여진 발과
어디로 떠나갈지 모르는 발을 함께 달고서
그렇게라도 걷고 걸어서

나 서른이 되면
그것들의 하나됨을 이해하게 될까.
두려움에 대하여 통증에 대하여

그러나 사랑에 대하여
무어라 한마디 말할 수 있게 될까.
생존을 위해 주검을 끌고가는 개미들처럼
그 주검들으로도
어린것들의 살이 오른다는 걸

나 감사하게 될까, 서른이 되면…

[나희덕, 나 서른이 되면]

방황은 이십대에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길을 헤메고 있다. 분노와 사랑이 무뎌지지 않기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