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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조국

죄와 벌

죄와 벌

지금의 사법 체계에서는 당신이 사람이 죽였다고 해서 범죄자가 되거나 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해서 살인자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죄가 되는 행위와 범죄자가 되는 것은 별개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범죄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검찰이 이 사람은 죄를 지었다고 기소하고 법원이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실제로 그 죄가 되는 행위를 하였는가는 사실 큰 관련이 없다. 검찰과 판사가 작당을 하면 무고한 사람도 평생 감옥에 보낼 수가 있고,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자도 얼마든지 풀어줄 수 있다.

검찰과 법원이 결탁하면 누구든지 범죄자를 만들 수 있고, 누구든지 감옥에 보낼 수 있다. 이것을 감시해야 하는 유일한 집단이 언론인데, 언론마저 동조해 버리면 그 사슬을 뚫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범죄자를 만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의 완성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 교수의 경우, 위법과는 하등 관계없는 그의 행위들이 11개의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고 구속영장까지 발부되었다. 그는 자기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평범한 엄마였고, 자기 재산을 사모펀드에 투자한 지극히 상식적인 투자자였다.

정경심 교수의 유일한 죄는 검찰개혁을 평생의 과업으로 생각하는 정의롭고 잘난 남자를 남편으로 두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정농단이나 내란음모보다 더 큰 죄다. 감히 검찰개혁을 운운하다니.

따라서 지금의 사법체계에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교과서에나 나오는 관념일 뿐이다. 모든 것은 엿장수 마음대로다. 검찰이나 법원이 말하는 법과 원칙은 그냥 지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손석희, 노회찬, 조국

손석희, 노회찬, 조국

“노회찬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다.”

손석희는 세상을 떠난 노회찬을 추억하면서 이렇게 말했고,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면서 울먹였다. 동갑내기 정치인을 떠나보내면서 생방송 중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손석희의 모습은 큰 울림으로 남았다. 그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최근 두달 동안 조국과 그의 가족이 검찰과 언론에게 조리돌림을 당할 때 손석희는 짐짓 기계적 중립 또는 선택적 중립을 지켰다. 세월호 참사나 박근혜 국정농단 때의 보도와는 너무도 달랐다. 늘 저널리즘의 본령을 난해한 만연체로 설파하던 그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JTBC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노회찬의 부끄러움을 존중해주면서 그와의 작별에 목이 메던 손석희는 왜 조국을 외면했을까? 조국은 가난한 정치인 노회찬의 하나 밖에 없는 후원회장이었던 사람인데. 손석희는 노회찬과는 달리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립을 말하는 자는 앞과 뒤가 다르고, 처음과 끝이 다르며, 겉과 속이 다르다. 중립을 말하는 자는 기회주의자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검사, 깡패, 양아치

검사, 깡패, 양아치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윤석열이 박영수 특검의 부름을 받고 수사팀장으로 오면서 한 말이다. 그렇다면 검사가 검찰개혁을 막기 위해 수사권 가지고 쿠데타를 하면 그건 무엇일까? 예전에는 검찰이 조폭같은 범죄 집단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쌩양아치 집단이었다.

수십 명의 특수부 검사가 수십 군데 압수수색을 해서 찾아낸 것이 겨우 표창장 위조라고? 물론 이것도 거짓말일 것이다. 그들은 표창장 위조를 위조하고도 남을 집단이니까.

검찰의 전천후 무기는 수사권이나 기소독점권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의 미치광이 칼춤의 종말을 얼른 보고 싶다. 인과응보의 법칙이 윤석열과 그의 똘만이들을 비켜가지는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