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단죄할 수 있을까?

삼성을 단죄할 수 있을까?

삼성그룹의 전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리에 대해 폭로했다. 삼성에서 모든 혜택을 누리던 그가 왜 그랬을까 그 동기가 석연치 않지만, 그의 용기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그의 폭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다들 삼성이 어떤 기업인지 안다. 그들이 돈으로 이 사회를, 이 사회의 지도층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들 안다. 지난번 삼성 X파일 사건도 빙산의 일각이 아니었던가. 김 변호사는 삼성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만한 거악”이라고까지 했다. 죽음을 무릎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삼성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기는 할 거 같다.

삼성의 비자금 관리와 비리야 공공연한 비밀이기는 하지만, 과연 우리 사회가 삼성을 단죄할 수 있을까? 답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물론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요, 모든 사람들은 법 앞에 평등하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물적 증거가 나와도 삼성을 단죄할 수 없다. 국민들이 아무리 단죄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일단 삼성의 비리가 포착이 되면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하는데, 정부보다도 삼성의 관리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 검찰이 삼성을 제대로 수사하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검찰은 삼성을 수사하지도 않을 뿐더러 한다해도 그냥 시늉만할 뿐이며, 몇몇 곁가지만 쳐낼 뿐이다. 거악에 본류에 닿지 않는다.

검찰이 못하면 특검으로 가야 하는데, 과연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할수 있을 것인가. 통과할수 없다. 삼성 회장의 국회 증인 출석도 저지시키는 국회의원들이 과반을 훨씬 넘는 상황에서 삼성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은 찻잔 속의 태풍이나 다름 없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못하고, 특검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삼성의 비리를 수사할 만한 조직은 없다. 특검을 한다 해도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특검에 임명될 사람도 전직 검찰이나 법조인일텐데, 그런 사람치고 삼성의 관리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국민들의 여론이 삼성을 질타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일 뿐이다. 여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들이 삼성에 관한 일을 제대로 보도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모든 언론의 가장 큰 광고주인 삼성을 거스릴 수 있는 언론 사주와 편집장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시사저널 사태가 어떻게 결말났는지 다들 알지 않는가. 그 사건이야말로 자본이 어떻게 언론을 탄압하고 통제하는지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지만, 거의 모든 언론사는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삼성은 언론과 입법과 사법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아무리 거악이고, 비리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들의 불법을 단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 것도 없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는 명목상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겠지만,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삼성이라 봐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삼성은 다른 재벌들과도 혈연과 혼맥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삼성 권력은 이미 국가 권력을 넘어섰다고 봐도 무리는 아닌 듯 하다.

그렇다면 삼성이 어떤 짓을 해도 가만두고 봐야 한단 말인가. 김용철 변호사는 한낱 돈키호테로 전락할 것인가.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럴 확률이 지극히 높아 보인다. 삼성을 변화시키려면 삼성의 지배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이건희 일가로부터 삼성을 분리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가능할 지는 모르겠다. 이건희보다 더 큰 재력가가 나타나 이건희 일가의 소유구조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끝날 일이 아니다. 그것이 가능할 때까지는 달걀로 계속 바위를 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이건희를 구속시키고 삼성을 단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여도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개발독재와 성장위주 정책으로 재벌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삼성은 그것들 중 가장 강력한 괴물임에 틀림없다. 어쩌겠는가. 인과응보인 것을. 참으로 답답한 노릇 아닌가.

좋은 남자 고르는 법

좋은 남자 고르는 법

나리 님의 블로그에서 우리는 왜 나쁜 남자에게 빠질까?라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남녀관계는 어떤 경우든 다 각각 그 이유와 상황이 다르기에 일반적인 경향으로 정리하는 것이 큰 도움이 안 되고 때론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가 시작되고 인류가 멸망하는 날까지 인간들 사이에 가장 많이 회자되고 갈구하게 되는 것은 역시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이야기이기에 이것은 아주 중요하고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다.

경험에 비추어 내가 발견한 몇 가지 사실을 여자들에게 전한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곤란하고,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냥 재미삼아 몇자 적어본다.

생물학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열등하다. 신체적인 완력은 남자들이 강하지만, 그 이외에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남자들은 여자들을 당해낼 수 없다. 남자들은 대개 새로운 환경에 적응력이 약하고 극한 상황을 잘 참지 못한다. 남자들은 대개 즉자적이며 호전적이다. 결정적으로 남자들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남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정자를 제공하는것 밖에는 없다. 이것은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원초적 열등의식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정자를 빌어와 아이를 만들 수 있지만, 남자들은 아무리 여자들의 난자를 빌어온다 하더라도 아이를 품을 수 없다. (물론, 남자들의 몸에 자궁을 넣을수 있는 기술이 생긴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원시사회는 우리가 알다시피 모계 중심 사회였다. 종족의 보존과 번성이 사회의 주요 임무이었기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들이 대접받고 권력을 잡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 남자들은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게 되고, 남성 중심의 사회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전통은 수천년을 지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봉건적인 모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대한민국은 남성 중심 사회이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들은 이미 여자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엄마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여자친구의 입김에서, 그리고 결혼을 해서는 아내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겉보기는 지극히 남자 중심으로 보이는 사회지만, 그 속은 이미 여자들이 점령했고, 이제는 겉에 보이는 사회 구조까지 여자들에게 넘어가고 있는 추세다. 머지 않아 인류는 모계 중심 사회로 되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남자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몹시 두려워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일종의 방어기제다.)

이런 상황을 전제로 지금까지 관찰한 몇 가지 사실을 얘기해 보면, 우선 열등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행복하게해 주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는 것이다. 한다 하더라도 그건은 아주 일시적인 것이고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그런 물질적, 정신적 행복을 바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백마를 타고 오는 왕자님은 없을 뿐더러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백설공주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지 일반 여자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행복은 남자들로부터 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여자들 스스로 만들고 찾아가는 것이다. 남자들의 선물이나 근사한 프로포즈를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녀석들을 적극적으로 골라라. 그리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남자들에게 종속되지 말고, 남자들을 지배하라. 그럴려면 우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필수다.

여자들에게 선물 공세와 사탕발림을 하는 남자들은 대개 별 볼일 없는 남자들이다. 그런 남자와 결혼한 여자일수록 결혼 후에 변하는 남자들의 행동에 분개하고 실망하기 마련이다. 연애할 때 일방적으로 잘하는 남자들은 사실 좀 위험하다. 그들은 결혼 후에 그런 일방적인 행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나무꾼 증후군이라고나 할까. 기본적으로 관계는 상호적이어야 한다.

좋은 남자는 말이 통하는 남자다. 잘생긴 남자도, 돈이 많은 남자도 아니고,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남자다. 살아온 경험이 비슷하고, 지향이 비슷하고, 취미가 비슷하면 말이 통할 확률이 높다. 이 남자와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앞으로 얼마나 많이 맞춰갈수 있을지 가늠해 보라.

무엇보다는 남자를 알려면 여러 남자들을 만나봐야 한다. 사랑도 해보고, 배신도 당해보고, 이별도 해보면서 알아가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리고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사람도 변하고, 사랑도 변하고, 나 자신도 변한다. 남자이기 이전에 같은 인간으로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세상 경험을 많이 하게 되고, 나이를 먹다 보면 사람에 대해 그런 면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전수전 겪다보면 이제 당신은 나쁜 남자를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혜안을 갖게 되었을 때 이미 당신은 예전의 그 파릇파릇하고 싱그러운 여자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인생인 것을.

태어나서 지금껏 만난 여자들(어머니와 아내를 포함하여)은 대개 남자들보다도 훨씬 뛰어나거나 사려깊은 이들이었다. 그런 행운에 감사하며, 그런 사려 깊은 여자들을 존경한다. 세상을 여자들이 지배하기 시작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여 나는 새로운 모계 중심 사회를 꿈꿔 본다.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는다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는다

20년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러는 머리숱이 적어져 있었고, 더러는 반백이 되어 있었다. 얼굴마다 지난 세월의 흔적을 제각기 지니고 있었다. 반갑기도 했고 어색하기도 했다.

20년 전에 찧고 까불고 풋풋한 청소년기를 같이 보냈던 녀석들인데, 이제는 거의 모두 가정을 이루고 있었고, 삶이 주는 무게에 피곤한 모습들이었다. 아내들이 있었고, 하나 둘 자식들이 있었으며 그 가정을 꾸려가야할 책임 앞에 힘겨워했다.

돈을 많이 번 녀석들도 있었고, 빚을 많이 진 녀석들도 있었으며, 이혼한 녀석들도 있었고, 들리는 바에 의하면 자살한 녀석들도 있었다. 20년의 시간은 각자의 인생을 수십 갈래로 나누어 놓고 말았다.

술 한 잔에 먹고 사는 얘기, 재산을 불리는 얘기, 자식 교육 얘기들이 나왔고, 나는 녀석들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 속에서 묵묵히 그 얘기들을 주워담고 있었다. 20년 전보다 삶은 더 고되지고 있었다.

각자가 견뎌야 할 삶의 몫은 달랐지만, 그 종류는 대개 비슷했다. 산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같은 종류의 문제와 고민과 맞닥드리는 것이다. 녀석들과 좀 더 자주 만나면 예전의 편안함이 다시 살아날까?

내가 인정하는 몇 안되는 진리 중 하나,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는다는 것. 20년만에 만난 친구들의 얼굴마다 그 진리는 또렷히 되살아 나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되면 포털만 죽을까?

이명박 대통령되면 포털만 죽을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캠프의 뉴미디어 팀장인 진성호(전직 조선일보 기자)라는 자의 막말이 블로그계를 달구고 있다. 정권 잡으면 포털 너희는 다 죽었어라는 말은 전직 조선일보 기자이자 이명박 후보의 미디어 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적절한 협박이었다. 유유상종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후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참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과연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포털만 죽고 말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 포털만 죽는다면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되는 것을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왜? 하나의 포털이 죽으면 또다른 포털이 생겨날 것이므로. 전체 포털이다 죽는다 해도 이명박이 대통령에서 물러나면 또다른 포털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것이다.

문제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포털만 죽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우려할만한 것은 우리나라의 주요 강들이 한반도 대운하라는 이름으로 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라. 전국의 주요 강들이 청계천처럼 시멘트에 뒤덮이는 상황을. 이것은 거의 재앙에 가까운 그리고 정말 되돌릴수 없는 무서운 일이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는 고위 공직자나 기득권층의 비리 의혹을 들추지도 못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위증교사와 주가조작 등의 의혹은 범죄의 부류에도 들지 못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의료보험 같은 것은 되도록 내지 말아야 하고, 자기 소득을 속이고 탈세하는 것은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그러할진대 그 밑의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들이야 뭘 더 따지겠는가. 도덕적 가치는 전복될 것이고, 하이에나 언론들과의 야합은 극에 달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간신히 극복해 놓은 경제와 도덕성은 땅에 떨어질 것이다. 전국에서 부동산 투기의 열풍이 불 것이고, 가진자들은 더욱 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를 것이다. 땅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것이고, 주가는 곤두박칠치겠지. 또 한차례 IMF 경제 위기가 온다 해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학교에서는 영어로 국어와 국사 교육을 할지도 모른다. 특목고가 우후죽순으로 생길 것이고, 3불 정책 폐지로 일반 가정은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의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겠지.

마사지 시장에서는 안 예쁜 여자들이 각광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고, 조선시대처럼 관기 서비스가 생길 수도 있겠지. 호텔마다 묵주 파티가 열릴 수도 있고, 여기자들의 젖가슴은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 한나라당 시대에 상상해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블로그계는 어떻게 될까. 포탈이 죽는 상황에서 일반 블로거들이라고 가만 놔둘리 만무하지 않은가. 이 블로그도 폐쇄될 지 모르는 일이다.

참으로 이번 대선은 재미없는 선거가 되어 버릴 것 같다. 지난 3번의 대선은 정말 찍고 싶은 사람이 있었고, 그중에 두 번은 내가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며, 그들은 지난 10년간 나라를 정상으로 돌려 놓았다. 그런데 이번은 어떤가. 이명박을 막을 수 있다면 이회창이라도 받아드려야 하는 정말 엿같은 선거가 되어 버릴 것 같다.

언론독재의 시대에 어리석은 백성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너무 크다. 이명박 시대에는 포털만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하시겠는가. 견딜 수 있으시겠는가. 견딜 수 없다면 즐기시겠는가. 나라가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 천천히 음미하면서? 모두들 메조키스트가 되시겠는가?

계림의 이강몽환(漓江夢幻)

계림의 이강몽환(漓江夢幻)

계림은 늘 연무에 휩싸여 있었다. 엷은 안개 속에 드러난 수만개의 봉우리들은 한폭의 중국 산수화처럼 명도를 달리하며 저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봉우리들은 능선으로 연결되지 않았고, 산맥을 형성하지 않았다. 작은 봉우리들이라도 들판에서 갑자기 불끈 솟아올라 버린 것이다. 그것들은 인간들과 같이 있었지만 인간들과 뒤섞이지 않았다. 인간들은 봉우리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있어도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자연과 인간은 그렇게 나뉘어져 있었다.

봉우리들 사이로 작은 강이 흘렀다. 사람들은 그 강을 이강(漓江)이라 불렀다. 이강의 물은 맑았고, 봉우리들은 물위에 그것들의 자태를 드리웠다. 그것들은 하늘로도 솟아 있었고, 물 아래로도 꺼져 있었다. 수면을 경계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이강과 봉우리들과 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마치 꿈속의 환상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강몽환(漓江夢幻).

자연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풍경 속에서도 인간들의 삶은 팍팍했다. 어부들은 가마우지 목에 줄을 매달아 그것들이 잡은 물고기들은 빼앗고 있었다. 가마우지들은 본능으로 잡아올린 물고기들을 삼킬 수 없었다. 목을 조이고 있는 줄이 물고기를 계속 입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자유롭게 물고기를 삼킬 수 없는 가마우지의 처지가 불쌍했고, 가마우지 앵벌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인간들의 삶이 안쓰러웠다. 마을 사람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호객을 했고, 몇몇 아이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손을 벌리며 구걸을 했다. 계림의 자연은 중국 산수화 그대로였지만, 인간들은 그 산수와 썩 어울리지 못했다. 중국 산수화에 인간의 모습이 빠져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추석 즈음에 피었어야 했을 계수나무 꽃이 이제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꽃의 모양은 볼품 없었지만, 은은한 향기는 멀리 퍼지고 있었다. 계수나무 꽃의 향기와 밤하늘의 달이 공감각으로 어울렸다. 그 달빛이 물에 어리고 멀리 산들의 무정형하고 불규칙한 윤곽선이 가물거렸다. 계림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이명박 지지율이 저렇게 높은 이유

이명박 지지율이 저렇게 높은 이유

어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100분토론 이후 블로그계가 난리가 났다. 어떻게 저런 인물이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그의 지지율이 50%를 넘는다고 연일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으니 논리상으로는 유권자 2명중 한명은 이명박을 지지한다는 말인데, 과연 그럴까?

이명박 후보는 일반 국민들의 평균 수준에 비해 아주 현저하게 낮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왔던 삶의 궤적도 전혀 본받을만한 것이 없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열손가락으로도 제대로 다 셀 수 없는 수많은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장본인 아닌가. 그렇다면 이명박 후보는 왜 가장 유력한 후보로 자리매김되었을까?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언론의 대국민사기극”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언론의 8할 이상이 “깜”도 안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물론 그 선봉에는 “조중동”이라는 수구 신문들이 있는 것이고.

이명박의 셀 수 없는 비리 의혹이 나올 때마다 이들 수구 신문들은 그것을 덮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신정아, 변양균 이야기가 두달이 넘도록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도 사실은 이명박 의혹을 감추기 위한 전술 중 하나이다.

신문들이 또하나 이용한 방법은 “여론조사”를 이용한 대세론 만들기이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얼핏 보면 과학적인 방법 같지만, 실상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구석이 너무 많다. 당장 응답률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1000명을 조사하기 위해 여론조사 업체들은 적게는 5000명에서 10000명의 사람들과 접촉한다. 응답률이 채 20%도 안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업체들이라면 응답률이 30%가 되지 않는 결과는 신뢰도가 너무 낮기 때문에 발표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업체와 언론들은 그렇지 않다.

한국 갤럽이라는 여론조사 기관의 전 회장이 이명박 캠프의 상임고문으로 간 것만 보더라도 이명박 캠프와 여론조사 기관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부풀려진 결과가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되면서 언론들은 대세론을 만들어 나가고, 별 고민없는 국민들은 그려러니 하면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순환 과정을 통해 이명박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변신하는 것이다.

여기에 또 나름대로 조연급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검찰과 선관위가 바로 그들이다. 검찰은 이명박의 도곡동 땅 문제를 수사해 놓고도 그 결과를 제대로 발표하지 않았다. 그 땅이 이명박 형의 소유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는 아주 검찰답지 않은 온순한 모습을 보였다. 신정아에게 한 것의 단 10분의 1이라도 했으면 그 땅 주인은 벌써 밝혀지고도 남았다. 이것이 대한민국 검찰의 모습이다.

또 선관위는 어떤가. 대통령에게는 선거법 위반했다고 대들면서 이명박에 대한 나쁜 이야기만 나오면 선거법 위반이라고 네티즌들을 협박하고 다닌다. 신문 기사에 나온 이야기만을 모아 놓아도 삭제하라며 얼른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지금 이명박의 높은 지지율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이명박의 지지율은 우리나라에서 방귀 꽤나 뀐다는 주류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정말 이들은 방귀는 대단한것 같다. 저렇게 형편없는 사람을 지지율 50%짜리 유력 대선 후보로 만들 정도니까.

그들의 시나리오에는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이명박이라는 인물 그 자체다.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가면 주위의 모든 주류 세력들은 이명박의 지지율을 올리려고 혈안이 되겠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 자기의 지지율을 까먹게 되어 있다. 어지간한 사람을 후보로 만들었으면 (예를들면 이회창 정도되는) 정권교체는 그야말로 받아 놓은 밥상인데, 이명박은 생방송 토론 3번으로 50%의 지지율을 거의 다 까먹을 사람이다. 이것이 권력을 다시 잡고자 하는 대한민국 주류세력들의 딜레마다.

이해찬이 신당의 대선주자가 된다면 이명박이 대통령 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동영이나 손학규가 신당의 후보가 된다면 이명박은 상대적으로 쉬운 싸움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김영삼을 넘어서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갖게 될 것이다.

신은 참으로 공평한 것인가. 신은 우리나라에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내려주셨지만, 사람들은 그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신은 우리나라에 최악의 대통령을 주실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 예수도 2000년전 유대땅에 나셨지만 유대인들은 아직도 그를 인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 신은 어느 백성에게나 기회를 주지만 결국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고난 속에서 살게 되어 있다. 나는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오해 혹은 결벽증

노무현 대통령의 오해 혹은 결벽증

염치라는 것이 있다.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 그것을 우리는 염치라고 한다.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어 보면, 하나는 염치가 있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주류 계층은 대부분 염치를 잘 모르는 족속들이었다. 그 뿌리가 멀게는 친일파들이었고, 가까이는 군부독재에 줄이 닿았던 자들에게 염치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염치없는 일일 수 있다. 우리 현대사의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그러했고, 언론인들이 그러했고, 지식인들이 그러했다. 그들의 염치없음에 민중들은 수십년간 당혹스럽게 살아왔다. 염치있는 사람들이 염치없는 사람들을 이기기라는 것은 쉽지 않다. 역사를 길게 보면 사필귀정이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염치없는 자들을 당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노무현은 우리 현대사에서 아주 드물게 볼 수 있었던 염치있는 정치인이다. 물론 노무현 이전에도 몇몇 염치있는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염치없는 족속들의 손에 도태되었다. 김구가 그러했고, 여운형이 그러했고, 장준하가 그러했다. 노무현이 보석과 같이 빛나는 이유는 “원칙”과 “상식” 이 두 가지만을 붙잡고 염치없는 족속들을 하나씩 둘씩 물리치고, 마침내 승리하는 역사를 보여줬다는데 있다. 이것은 우리 역사 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문 장면이다.

노무현과 맞서고자 했던 주류 세력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굴복했다. 물론 노무현은 그들과 맞서면서 숱한 고난과 역경을 겪었지만 끝내는 승리하고야 말았다. 그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을 정치 9단이라고 했지만, 그가 보여준 것은 너무나 단순했다.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것, 신의를 지키는 것, 인간에 대해 애정을 갖는 것, 정직하게 사는 것, 이런 것들이었다. 초등학교만 다녀도 우리가 쉽게 알고 배울수 있는 것들이었다. 노무현이 지도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단순한 원칙을 굳건히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와 명철한 판단력 덕분이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용기까지 갖추기 쉽지 않기 마련이지만, 노무현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드물게 염치를 아는 정치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를 만나 예의 결벽증을 드러냈다.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내가 (지지자들에게) 제일 미안한 게 그 점입니다. 나하고 친하다는 이유로, 또 옛날에 나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지금 여러분이 이 자리 저 자리에서 구박받고 있는 것이, 또 대통령인 내가 구박당하는 것을 보고 마음 상해할 것이고, 그 점이 제일 힘듭니다. 아주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나 때문에 힘들었지요? 노무현 지지자여서 구박받는 게 제일 미안”, 오마이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나같은 지지자에게 얼마나 많은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었는데, 왜 이런 말을 하실까? 우리가 그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가 알고 있을까? 우리가 그를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그는 알고 있을까? 우리가 그를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그가 진정으로 알고 있을까? 진정으로 안다면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텐데.

사람은 누구나 실수가 있고 결점이 있다.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가 정말 훌륭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했지만 그도 몇 가지 전술적 실수를 저질렀다. 그 중 하나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의 같은 것이다. 대통령은 “나의 자만심이 만들어낸 오류”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그당시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나라당의 구성원은 대부분 우리 현대사의 주류 특권계층이었지만 그들은 사실 상식이나 말이 통하는 집단이 아니다. 그런 점을 대통령은 간과한 것 뿐이다. 이라크 파병 같은 경우는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자연인 노무현이었다면 당연히 파병을 원치 않았을 것이었겠지만, 대통령은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물론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부분이었지만, 내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FTA 부분도 비슷하다.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내가 지금껏 노무현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이유는 그의 따뜻한 시선과 염치를 너무나 잘 아는 그 마음 때문이다. 때로는 결벽이라고 느낄 정도로 그는 겸손하고 부끄러워 할 줄 안다. 그런 지도자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 그것도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정말 어려운 시기에 노무현과 같은 지도자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국민의 복이다. 지금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노무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이 얼마나 쉽고 신나는 일인지 안해 본 사람은 잘 모른다. 아마 이명박을 지지하는 것보다 백만배 이상 자랑스러운 일이고 정동영을 지지하는 것보다 50만배 이상 가슴뿌듯한 일이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 대통령에게 감사한다.

진정한 노무현 지지자는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마음 상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누가 뭐래도 우리의, 아니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대통령입니다. 당신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냅니다.

종이 신문을 많이 읽으면 공부를 잘한다?

종이 신문을 많이 읽으면 공부를 잘한다?

종이 신문을 많이 읽으면 공부를 잘 한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최영재 한림대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도한 이 기사는 우리나라 신문과 연구자들이 어떻게 대중을 우롱하고 호도하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장사해 먹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 하겠다. 기사는 “평소에 신문을 열심히 읽는 대학생은 사회지식도 많고 공부도 잘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다음과 같이 최영재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

논문에서는 “연구 결과 종이신문 읽기는 지식 습득과 민주주의 의식 향상 효과가 동시에 나타났다”면서 “종이 신문은 인터넷 등 어떤 뉴미디어 매체로도 채워질 수 없는 문화적 자산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문 읽기 운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팀이 서울·대구·강원·전북의 대학생 12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종이신문을 하루 평균 30분 이상 읽는 중(重)이용자는 16%, 6~29분 읽는 경(輕)이용자는 22%, 5분 이하 읽는 비(非)이용자는 6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지난 2년간 평균 학점을 비교하면 4.5점 만점에 중 이용자 3.69점, 경이용자 3.57점, 비이용자 3.55점 순이었다.

[“신문 많이 읽는 대학생, 학점도 높아”, 조선일보]

이 연구는 학생들의 종이 신문 읽는 시간과 학점의 연관성을 분석한 것인데, 연구자인 최 교수팀은 두 변수의 상관관계(correlation)을 분석해 놓고, 해석은 인과관계(causation)으로 해 버리는  아주 기가 막힌 우를 범하고 있다. 이것은 종이 신문을 많이 읽으면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의 특징 중 한 가지가 신문을 상대적으로 많이 읽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전체 논문을 읽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의 과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연구의 결론은 잘못내려진 것이다.

상관관계 분석은 두 변수가 어떠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고, 인과관계 분석은 두 변수의 연관성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최영재 교수팀의 논리대로라면 “아침식사를 거르지 않으면 성적이 좋다” 또는 “머리를 단정하게 깍으면 공부를 잘한다”라는 논리도 가능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침을 거르지 않는다는 것과 머리가 단정한 것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특징일 뿐이다.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

최영재 교수팀은 종이 신문이 인터넷등 어떠한 매체로도 채울수 없는 문화적 자산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이 대목에 이르면 이 논문의 연구비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대강 짐작할 만하다. 종이 신문에 나오는 모든 기사들을 인터넷으로 다 볼수 있는데 종이 신문에 무슨 문화적 가치가 있을까? 지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광고 말고 무엇이 더 있는가.

최 교수팀에 딱 한 가지 동의하는 것은 종이 신문을 읽으면 민주의식이 고양된다고 한 부분이다. 조중동 같은 반민주, 반민족, 반통일 신문들을 보면 세상을 저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하는 타산지석의 교훈은 얻을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종이 신문은 되도록 보지 말자. 쓰레기 신문들이 하루에도 천만 부 이상 발행되니 그 얼마나 종이 낭비가 심각할 것인가. 하루에도 웬만한 숲이 하나씩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종이 신문들에 실리는 기사는 종이 그 자체보다도 가치가 없으니 종이를 아끼는 차원에서 종이 신문을 읽지 말자. 대신 필요하면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도록 하자.

조중동 같은 종이 신문을 많이 읽으면 사람이 이상해지게 된다. 정상적인 사고가 쉽지 않게 된다. 종이를 아끼는 차원에서도 종이 신문을 보면 안된다.

이명박, 김영삼의 경지를 넘어서다

이명박, 김영삼의 경지를 넘어서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영어 사교육비를 반으로 줄이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영어교육의 개혁을 가장 강조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국어나 국사 등 일부 과목을 영어로 강의를 하면 어학연수를 안 가도 영어에서 불편함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에 원어강좌를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이 후보는 이를 위해 영어를 완벽하게 잘하는 한국인을 계약직으로 교사로 고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초등교서 원어수업… 사교육비 半으로”, 문화일보]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 초등학교 학생들은 영어로 국어나 국사를 배우는 매우 기네스북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 같다. 그가 개념이 별로 없는 사람임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무개념이 이 정도 수준인지는 내 상상력으로도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졌다.

나는 이명박 후보의 이 말에서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며 날마다 조깅을 하던 김영삼 옹이 떠올랐다. 그래 영삼 옹은 무던히도 건강을 챙겼다. 그리고 나라는 IMF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명박 후보의 무개념이 이미 영삼 옹의 경지를 넘어선 것 같다. 차라리 대통령 출마보다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면 많은 국민들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명박 씨는 정말 교육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영어를 완벽하게 잘하는 한국인을 국어 교사로 채용하면 우리나라 교육 환경이 정말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3불 정책을 무력화시키면서 사교육비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지 나는 그의 뇌구조가 몹시 궁금하다. 세계적인 건설사 CEO를 그렇게 오래하고, 서울시장까지 지낸 그의 영어 실력도 역시 궁금하다.

자기 나라 국어를 다른 나라 언어로 배우는 곳은 전 세계, 아니 전 우주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한 나라가 될 것이다. 행복할까?

막장 한국 언론, 막장까지도 넘어서다

막장 한국 언론, 막장까지도 넘어서다

한국의 보수 언론(다른 말로는 수구찌라시)들에게 북한의 김정일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상종할 수 없는 철천지 원수요, 악의 화신이 아니었던가. 주석궁으로 탱크를 몰고 들어가 없애버려야 할 그런 인간이 아니었던가. 아마 오사마 빈 라덴보다도 한 십만배쯤 더 나쁜 인간 말종이 아니었던가.

그런 김정일이 노무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언론들을 조롱했다. “기자가 아니라 작가인 것 같다”라고. 그러면서 김정일은 기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왜? “니들은 찌라시니까” 말은 그렇게 안했지만 그런 비웃음이 깔려 있었다.

자신들이 인간 말종이라 여기던 김정일한테까지 조롱받는 한국의 보수 언론들 (대표주자는 조중동문이렷다). 이제 올 때까지 왔다. 여기가 막장이다. 기자가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지어낸다고 소리를 들었다면 그건 얘기 끝난 것 아닌가. 그것도 김정일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으니 더 이상 할 말도 없을 것 같다.

김정일의 조롱을 받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한국의 언론들은 남북정상들이 내놓은 선언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역사적인 남북정상 선언 폄훼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 신문들이 내놓은 기사들의 제목들을 훑어 보자.

[중앙일보] 상봉 확대, 동포애 강조 … 새로운 게 없다
[동아일보] “납북자 문제 거론조차 안하다니…”
[동아일보] ‘내정 불간섭’ 인권문제 눈감는 셈
[조선일보] 북핵→ 6자회담으로 떠넘겨
[동아일보] 정상들 ‘수시 만남’… 선언적 문구 그칠 가능성
[MBC] ‘NLL 문제’ 논란
[연합뉴스] <10.4선언> “공동선언 내용 막연“<WSJ>

어떡해서든지 남북정상회담의 결실을 훼손해 보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어떡해서든지 선언에 명시된 내용이 실천되지 않길 바라는 그들의 희망이 엿보이지 않는가? 한겨레만이 “예상 뛰어넘는 진전”…‘남북 공동번영’ 가속페달이라며 정상회담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어제밤 노무현 대통령은 입술이 부르튼채로 대국민 보고회를 가졌다. 입술이 부르트면서까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불철주야 일을 하고 온 대통령에게 단 한마디 감사와 위로는 하지 않고, 선언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물어뜯기 바쁜 한국 언론들.

막장에 다다른 한국 언론이 막장을 뛰어 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쓰레기들을 봐줘야 한단 말인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는 이땅의 쓰레기 막장 언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