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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 March 2008

3월의 황사와 뼈아픈 후회

3월의 황사와 뼈아픈 후회

서쪽에서 온 바람에 모래가 실려 왔다. 사람들은 황사라고도 했고, 흙비라고도 했다. 숨쉬기가 버거웠고, 목이 아팠다. 모래알갱이가 서걱서걱 씹혔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사람들은 봄을 기다렸지만, 봄은 황사에 밀려 쉬이 오지 못했다.

서걱거리는 황사 속에서 왜 자꾸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라는 시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 끝없는 이기심들의 암묵적 합의로 태어난 거짓의 향연 속에 사막의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온다. 후회가 부질없기는 하지만 때로는 뼈에 새기는 아픔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이제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 황사 속에 끝없는 폐허가 아른거린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돌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황지우, 뼈아픈 후회]

이메가가 노리는 잿빛 세상

이메가가 노리는 잿빛 세상

“이메가와 그의 아이들” 벌이는 초현실 코메디 쑈의 결정판을 보면서 “모모”라는 소설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해. 허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한 마디로 몹시 지루한 게야. 허나 이런 증상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란다. 하루하루, 한 주일 한 주일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는 게지. 그러면 그 사람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 속이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된단다. 그 다음에는 그런 감정마저 서서히 사라져 결국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지. 무관심해지고, 잿빛이 되는 게야. 온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아지는 게지. 이제 그 사람은 화도 내지 않고, 뜨겁게 열광하는 법도 없어.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아. 웃음과 눈물을 잊는게야. 그러면 그 사람은 차디차게 변해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그 지경까지 이르면 그 병은 고칠 수가 없어. 회복할 길이 없는 게야. 그 사람은 공허한 잿빛 얼굴을 하고 바삐 돌아다니게 되지. 회색 신사와 똑같아진단다. 그래, 그들 중의 하나가 되지. 그 병의 이름은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란다.

<미하일 엔데, 모모, p.328>

세상 모든 것이 잿빛이 될 때까지 이메가의 쑈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슬퍼할 것은 슬퍼하고 후회할 것은 후회하고, 분노할 것은 분노해야 하지 않겠는가. 견딜수 없다면 싸워야하고, 싸워서 끌어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무관심은 이메가의 호구로 가는 지름길이다.

The fact that you prevented it from happening doesn’t change the fact that it was going to happen.

<Steven Spielberg, Minority Report, 2002>

이메가의 쑈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일 뿐이다.

대한민국 여성분들께

대한민국 여성분들께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기념일입니다. 명색이 100주년인데, 축하하는 이들(특히, 남자들)이 없는 것 같아 제가 대한민국 남자들의 대표는 아니지만, (주제 넘게) 대한민국의 여성분들에게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들, 아내들, 며느리들, 그리고 딸들께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이 나라는 그리고 이 나라의 남자들은 온전히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당신들의 꿋꿋한 인내와 눈물겨운 희생에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새천년을 맞이한지 벌써 8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 여성들은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군요. 경제 규모로서는 세계 10위권이라는 이 대한민국에서 남녀 평등 지수는 97위랍니다. 대한민국 여성분들께 참 미안합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 아내 그리고 딸에게도 참 미안합니다.

언제나 이 나라의 여성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언제나 이 나라의 남자들이 철이 들고, 정신을 차릴까요? 남자인 저도 참 답답하고 난감한데, 여러분들 심정을 어떻겠습니까?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이 땅의 남자들이 여러분의 권리와 처지를 배려해 줄리 만무하니, 다른 방법이 없군요. 현명하신 여러분들이 스스로 쟁취하시는 것 밖에는.

제가 드리는 이 감사와 축하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들, 아내들, 며느리들, 그리고 딸들, 힘내십시오. 그리고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십시오. 여러분들이 행복해져야 아이들이 행복해지고, 아이들이 행복해져야 이 세상이 행복해집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훨씬 따뜻하고 행복한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소요유 올림

사랑하는 딸의 생일을 축하하며

사랑하는 딸의 생일을 축하하며

너는
지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내에게 날아온 천상의
선녀가
하룻밤 잠자리에 떨어뜨리고 간 한 떨기의 꽃

<김용화, 딸에게>

나는 지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내는 아니었지만 천상의 선녀처럼 예쁘고 현명한 네 엄마를 만나 너를 낳았다.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 해서 어지간히도 게으르고 어정쩡한 사내였던 나는 아빠가 되었지. 철 모르던 사내들은 아빠가 됨으로써 비로소 어른이 된단다.

세상의 아빠들이 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겠지만, 아빠가 된다는 것은 신이 사내에게 내리는 가장 큰 축복이다.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생명을 껴안고 느끼는 사랑과 행복. 그 사랑과 행복에는 물론 그 생명을 지키고 키워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이 따르지만, 세상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그런 소중한 것이지.

거짓이 진실을 억누르는 그런 못된 세상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래도 희망이 있고 일말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까닭은 너와 같이 예쁘고 착한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빠를 포함한 어른들은 정말 많이 반성해야 돼. 너희들이 살아갈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지는 못할 망정 점점 더 힘들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면목이 없다.

아빠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너를 위해서라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겠지. 네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아빠가 살았던 세상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도록 아빠는 노력할 것이다.

사랑하는 딸아. 아빠와 함께 진실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런 것들을 배워 나가자. 물론 아빠도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은 어렴풋하게 알 것도 같다. 건강하고 지혜롭고 행복한 삶, 그런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이다.

선녀가 떨구고 간 한 떨기 아름다운 꽃 같은 딸아, 너의 일곱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돈 많은 것이 죄가 아니라구?

돈 많은 것이 죄가 아니라구?

이메가라는 자가 취임하자마자 1억 달러 내각을 끌어모았다. 예상못했던 바도 아니고,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만약 그 자가 윤구병 같은 이를 장관으로 임명하려 했다면 그것이 더 놀랄 일 아니겠는가. 1억 달러 내각의 면면은 이메가를 닮았지만, 아무도 이메가를 뛰어넘지 못했다. 하기는 우리나라에서 이메가를 뛰어넘는 뻔뻔함을 가진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1억 달러 내각에 대한 검증이 시작되자, 그들이 안드로메다에서나 통할 법한 소리로 변명을 늘어 놓는다. 이런 어처구니들의 손을 들어 준답시고, 또다시 여론조작을 시도하는 언론들. 돈 많은 것은 죄가 아니란다. 그러면서 그들은 교회의 장로들이고 집사들이다. 믿음이 부족해서 복지정책이 실패하고 양극화가 생겼단다. 돈이 많은 것이 죄가 아니라면, 왜 그들이 그렇게 받들고 있는 예수는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셨을까. 왜 예수는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을까. 왜 그래야만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을까. 그들은 도대체 어떤 예수를 믿는 것일까. 그들이 다니는 교회에는 내가 알고 있는 예수와 다른 예수가 있는 것일까. 돈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은 죄다.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노동인데, 자기의 노동만으로는 1억 달러 내각에 있는 자들처럼 돈을 긁어 모을 수가 없다. 설령, 억세게 운이 좋아서 죄를 짓지 않고 돈을 많이 벌었다 하더라도 필요 이상의 돈은 다른 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이고, 부처의 가르침이다. 사람은 돈이 많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돈이 많으면 불행해질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자기가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은 전생에 죄가 많다고 보면 된다. 그 업을 씻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훨씬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다. 대부분이 종부세 대상자라 노무현을 극도로 혐오했던 우리나라 주류층들의 단면이 이번 1억 달러 내각에 녹아 있다. 그들의 뿌리는 알다시피 친일이나 독재 세력, 또한 그들에 기생했던 재벌과 언론이다. 그들의 부도덕과 추잡함과 뻔뻔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것보다도 그들이 더 위험한 이유는 국민들의 정신과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구? 정말 그런가?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그렇게 부도덕하게 살아도 돈만 많으면 되는가? 그러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가? 장관도 하고, 대통령도 하고? 그리고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수를 찾고 기도만 하면 되는가? 딱 한가지만 물어보자. 진짜 그렇게 살면, 경제만은 살릴 수 있는가? 탄자니아 세렝게티 평원에 살고 있는 짐승들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먹지 않는다. 그래서 옛말에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란 말이 있나 보다. 한반도는 지금 세렝게티 평원만도 못한 곳으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