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들을 “보수”라 하는가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적을 아는 것이다. 일찌기 손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적을 알고 그들을 정확하게 규정해내는 것은 모든 싸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일 뿐더러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땅의 친일세력과 군사독재 잔재세력을 “보수”세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조중동 같은 사이비 찌라시 신문을 “보수”신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의 신간인 <다시 진보를 생각한다>를 보면 시종일관 우리 정치를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진보가 다시 권력을 창출할 수 있을지를 논하고 있다. 이런 식의 논의 전개는 연구결과의 유용성과는 상관 없이 그들에게 “보수”라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그렇다면 보수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을 옹호하고 유지하려는 것인데, 정치적으로 볼 때 여기에는 상식과 민족이란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보수란 무조건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민족주의 관점에서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유효한 범위 내에서의 변화는 수용한다. 따라서 보수란 개념에는 어느 정도 긍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지금 이 땅에서 “보수”라 불리는 세력들의 면면을 보자. 한나라당, 조중동, 뉴라이트 등등의 세력들에게 과연 “보수”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그들의 뿌리가 어디인가? 그들은 가깝게는 군부독재의 잔재 또는 부역 세력이고 멀게는 일제시대의 친일세력이며, 조선시대 당쟁의 주류였던 노론세력이다. 이들은 수백 년간 이 땅의 권력과 부를 장악했고, 그들만의 성을 쌓아 특권 주류세력으로 부상했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법, 언론, 학계 등등 이 땅의 모든 지배 기재를 장악한 세력들이다.

과연 그들을 보수라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세력에게서 과연 민족이나 상식과 같은 개념을 찾아볼 수 있을까? 그들은 조선시대에는 조선의 왕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개혁을 추구하는 군주를 서슴지 않고 독살하였다. 오로지 중국의 황제만을 추종하는 듯 하면서 자신들의 영달과 탐욕을 추구하였다. 힘의 균형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자, 이들은 앞다투어 나라를 팔았고 친일세력으로 탈바꿈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등 뒤에 숨어 “반공”이라는 무기로 무장하여 죄없는 양민들을 괴롭혔다. 이승만과 결탁하여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고,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에 앞장서 부역하였다.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이들이 정치 권력을 놓쳐본 것은 단 10년, 1998년부터 2007년까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이었다. 그들이 얘기하는 대로 과연 “잃어버린 10년”의 기간이었다. 물론 이 10년 동안에도 행정부의 권력만이 개혁세력에게 잠시 넘어왔을 뿐, 나머지 모든 지배 기재는 여전히 이들 세력의 수중에 있었다.

우리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동물적인 본능은 누가 자신들의 적인지 그리고 누가 그 적의 핵심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수없이 쓰러져간 민주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 세력의 영악함과 간교함이 어떤지를 알 수 있다. 김구 선생을 시작으로 최근의 노무현까지 이들 세력들의 탄압으로 쓰러져간 인물들은 모두 그 시대의 가장 핵심적 민주개혁 인사였다. 노무현을 죽이고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은 한명숙을 공격하고 있다.

그들을 “보수”라 규정하고 “보수”라 대우해서는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고 그들을 넘어설 수 없다. 그들은 역사의 반동이고, 전형적인 기회주의 세력일 뿐이다. 그들은 친일세력이고 독재세력이고 부도덕한 부패세력일 뿐이다. 그들은 탐욕만을 추구하며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불구세력일 뿐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아직도 그들을 보수라 부를 것인가? 그들을 보수라고 부르는 순간, 이미 그들의 전략에 말려든 것이고 게임은 해보나마나 한 것이다.

그들은 보수가 아니다.

아직도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그대에게

그대가 소위 강부자, 고소영이라는 대한민국 1% 기득권층이라면 이 글을 그냥 못본척 하시라. 그대는 한나라당을 지지할 자격이 있다. 한나라당은 그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열심히 뛰고 있지 않은가. 그대가 1% 강부자는 아니지만, 1% 강부자가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지 마시라. 이 글은 그대의 욕망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글이기에 그대는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그대가 친일과 군부독재에 빌붙었던 사람이라면 이 글을 그냥 지나치시라. 이 글은 그대의 건강에 지극히 이롭지 못한 글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강부자도 아니고 친일과 독재에 빌붙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심정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거나 이번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찍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글을 읽어 보시라. 그대가 쌀값 폭락에 울분을 터뜨리는 농민이면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면, 그대가 언제 짤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면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면, 그대가 취직난을 겪는 20대이면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면 그대는 다시 한 번 그대가 지금 어디 서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대가 쌀값 폭락에 울상 지으며 논을 갈아엎는 농민이라면 그대는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논을 수십 마지기 갈아엎어도 그대가 계속 한나라당을 찍는다면 그대의 삶은 결코 나아질 수가 없다. 한나라당은 그대 같은 농부를 위한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을 수십 번 갈아엎는 것보다도 투표 한 번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다. 고향 사람이라고 찍어주고, 지역 감정에 때문에 찍어주는 어리석음을 이제 떨쳐버려야 한다. 현명한 투표가 그대와 그대의 자식들을 위해 몇 백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대가 하루하루 품팔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라면 그대는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는 안된다. 그대는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비정규직법을 두고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들은 결코 당신들 편이 아니다. 그들은 재벌과 대기업을 옹호하지 결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모른다면 그대는 어리석은 사람이고, 알고도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면 더이상 그대의 정규직화를 바라지 말라. 그대는 몸만 비정규직 노동자이지 마음은 이미 강부자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취업을 걱정하는 20대라면 그대는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는 안된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이 늘린 것은 청년 인턴이라는 이름의 6개월 알바자리였다. 정규직 대졸 초임은 30%까지 깎였고, 그나마 그런 일자리조차 거의 사라지고 있다. 그대가 그런 정당에게 아직도 일말을 기대를 걸고 있다면 그대는 어리석거나 순진하다. 정치적으로 각성되어 있지 않는 20대에게 정치인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것은 몇 안되는 진리 중 하나이다. 20대가 끊임없이 싸워나가지 않으면 20대를 위한 나라는 없다. 무관심하지 마라. 무관심은 20대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이다. 20대가 깨어있음을 온몸으로 선언하라.

그대가 진정 자식들의 교육과 앞날을 걱정하는 중년의 가장이라면 그대는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는 안된다. 지금 이 나라의 교육을 보라. 학교 끝나고 매일 학원에서 10시 11시까지 공부하는 불쌍한 그대의 아들 딸들을 보라.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한나라당을 지지할 자격이 있다. 한나라당이 원하는 세상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이다. 이런 정글에서 그대의 아들 딸이 살아남기를 바라는가? 그대가 강부자가 아닌데, 그대의 자식들이 과연 이런 무한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그대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아니라면 그대는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는 안된다.

이제 보궐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모른 척하고 무관심할 것인가? 투표를 안해도 상관없다고 할 작정인가? 투표조차 안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대는 강부자가 아니면서 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가? 강부자가 되고 싶은가? 정상적으로 살면서 강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것이 아니라면 그대는 친일과 독재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대는 한나라당을 지지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한나라당 정권 하에서 지난 2년간 배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그대의 암울한 삶은 지속될 것이고, 그 절망은 그대들의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이어질 것이다. 한나라당은 아무나 지지할 수 있는 그런 정당이 아니다.

비정규직 법에 대한 사기

비정규직 법을 유예하지 않으면 수십 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당할 것이라는 정부와 한나라당과 언론들의 “협박”이 과연 사실일까? 계약한지 2년이 지난 노동자들은 모두 다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과연 비정규직 법에 명시되어 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친히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방문하여 “비정규직 법”을 검색해 보았다. 검색결과는 없었다. 비정규직 법이라는 이름의 법안은 없었다.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노동부 소관 법령들 중에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있었다. 그러니까 언론들이 얘기하는 비정규직 법이 바로 이 법안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법이 아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하는 차별을 어느 정도 해소해 보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제1조 (목적) 이 법은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의 목적 자체는 아주 훌륭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하는 차별은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이나 한나라당 그리고 대다수 언론들이 법을 유예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협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법의 4조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제4조 (기간제근로자의 사용)
①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기간제 근로계약의 반복갱신 등의 경우에는 그 계속근로한 총기간이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다.
1.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2. 휴직·파견 등으로 결원이 발생하여 당해 근로자가 복귀할 때까지 그 업무를 대신할 필요가 있는 경우
3. 근로자가 학업, 직업훈련 등을 이수함에 따라 그 이수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4. 「고령자고용촉진법」 제2조제1호의 고령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5.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와 정부의 복지정책·실업대책 등에 따라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
6. 그 밖에 제1호 내지 제5호에 준하는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

②사용자가 제1항 단서의 사유가 없거나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

이 법에 따르면 되도록이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4조 1항에는 2년을 초과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나열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년이 지났다고 해서 해고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했다고 해서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규정도 없다.

문제는 4조 2항의 경우인데, 특별한 사유없이 2년을 초과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는 비정규직이라 할지라도 기간이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본다라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정규직은 아니지만, 함부로 해고할 수는 없는 것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자본가들을 대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나 언론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정규직은 아니지만 함부로 자를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의무적으로 2년된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2년이 초과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함부로 잘라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지금 한나라당이나 언론이 얼마나 추잡한 사기를 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사기업도 아닌 정부기관과 공기업이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해고한다고 하니 정말 이들이 얼마나 서민(鼠民)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악어의 눈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전형적인 경우라 하겠다.

결론은 이렇다. 이 법의 목적과 취지는 전혀 문제가 없을 뿐더러 이 법에는 2년이 초과된 비정규직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 법 때문에 2년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른다는 자들은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이 법은 큰 문제가 없다. 이 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둔 것뿐이다. 지금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그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받아드릴 수 없다고 법을 유예하자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노동자들 중에서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서 향후 어떤 선거에서든지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

투표 안한 20대들, 지금 행복한가

작년 4월 총선 전에, 우리나라 20대들의 투표 참여 의사를 보도한 기사를 보고 나는 크게 실망하여 “20대를 위한 나라가 없는 이유” 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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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 연령별 투표율

실제 20대 유권자와 30대 초반의 유권자들은 50~60대에 비해 절반도 안되게 투표에 참여했다. 총선의 결과는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고,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를 합해 수구 세력이 3분의 2의 의석을 가져가 버렸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이들 20~30대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이 나라를 어떤 꼴로 만들었는지, 게다가 그 결과로 이들 젊은이들은 정말 행복해졌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번듯한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이명박은 청년 인턴제, 공기업 초임 월급 30% 삭감 등의 눈가리고 아웅 하는 정책을 들이밀었다. 청년 인턴이 도대체 뭐하는 정책인지 그 인턴을 직접 뽑아야하는 몇몇 기관들의 담당자들한테 물어보니, 6개월 정도 인턴이라는 명목하에 임시직으로 젊은이들을 고용하여 허드렛일을 시키고 용돈을 쥐어주는 것이라 했다. 그럼 6개월이 지나면 어떻게 되냐니까, 대부분은 그만 두어야 한단다. 청년 실업이 너무 늘어 나니 실업률이라는 통계를 낮추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내놓은 정책이다. 6개월이 지나면? 나몰라라 하는 정책이다.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 신입사원들의 첫 월급을 10~30% 정도 깍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자리를 나눌려면 고용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우선이고, 월급을 깎을려면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고위직 간부들부터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텐데, 결국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이 밥이 되었다.

경제 위기가 어쩌느니 하면서 언론들이 설레발을 쳐도 가진 자들은 이 위기 속에서도 배를 불릴 것이고, 결국 힘없는 사람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위기의 쓰나미에 쓸려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가진 자들을 위해 세금을 깍아주고, 없는 사람들은 위한 복지는 축소시키는 세력들. 이러한 세력들이 언론과 입법, 사법,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고, 그로 인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우리 젊은이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기성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들 또한 민주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국민들이 쓰레기 언론에 속고, 사기꾼들에게 속고,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면 20대를 위한 나라 뿐만 아니라 1%의 특권층을 제외한 모든 국민을 위한 나라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경제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치이고, 정치보다 중요한 것은 도덕이다. 잘 살기를 바랄 것이 아니고, 바르게 살기를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결과만을 중시할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과정이 합당한지, 공평한지를 따져야 한다. 청년들을 위한 나라는 청년들의 참여에 의해, 노동자들을 위한 나라는 노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청년들이 살아있는 나라는 아무리 힘들어도 망하지 않는다. 청년들의 살아있는 눈빛을 보고 싶다.

강기갑을 지켜내야 하는 이유

18대 국회가 당연히 막장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은 지난 해 봄 총선이 끝난 바로 직후였다. 수구 정당 한나라당이 170석을 넘었고, 그에 못지 않은 수구 정당 자유선진당이 18석, 친박연대라는 해괴한 이름을 가진 한나라당 샴쌍둥이가 8석으로 국회의 3분의 2가 수구들로 득시글거렸다. 게다가 무늬만 야당인 민주당이 80여석, 그리고 잘난 진보 민노당은 17대에 비해 반으로 줄어든 5석에 불과했다.

이런 “똥덩어리” (강마에 버전으로) 국회를 만든 우리 국민들의 저력(?)에 대해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에 의해 생긴 결과가 아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파고들면 그들의 영향이 없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직접적으로는 국민들의 무관심과 탐욕이 빚은 불행한 결과다. 수구세력 지지자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깊이 반성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쓰레기장에서 장미꽃이 핀다고 이런 막장 18대 국회를 만든 국민들이 용서받을 수 있다면 그 이유는 강기갑이라는 인물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정말 경남 사천의 유권자들에게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들이야말로 18대 국회 유일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을 국회로 보내주었다.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고, 그 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참여정부 시절 민노당이 보여주었던 정치력 부재와 그동안 민노당의 간판이라 불려왔던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등에 깊이깊이 실망했던 사람이다.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은 좌파 인텔리일지언정 그들은 노동자 농민이 아니다. 그들은 머리와 말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가 말했듯이) 그들은 스키머(Schemer)이고, (김근태, 문국현이 그렇듯이) 그들은 껍데기다.

내가 민노당을 지지하지도 않으면서 강달프 강기갑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현재 18대 국회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이 땅의 농민들과 노동자들에게 말이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자신의 노동으로 가치를 생산하고 창조하고 그러면서도 늘 고달프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말이다. 강기갑의 어깨에 수백만 농민들의 그리고 천만 노동자들의 한과 기대와 염원이 걸려 있다.

강기갑은 평생 농민으로 살아왔다. 그는 그의 두손으로 흙을 일구고, 곡식을 키우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지금은 정치인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뼛속 깊이 농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는 투박하고, 거칠고, 어눌하고, 세련되지 못했지만, 그는 정직한 손을 가지고 있고, 노동의 의미를 온몸으로 알고 있다. 이 지점에서 강기갑은 말로만 정치를 하던 기존 좌파 인텔리들과 극명하게 구별된다.

조중동,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수구들은 본능적으로 누가 그들의 주적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의 주적을 숙청하기 위해 악랄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공격한다. 대단한 능력이다. 김대중, 노무현, 유시민, 이해찬 등이 끊임없이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이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자, (노무현은 여전히 그들의 밥이지만) 이제 그 화살이 강기갑을 향하고 있다. 강기갑은 현재 수구들의 눈엣가시다.

한나라당은 강기갑의 사퇴결의안을 준비하고, 국회사무처는 강기갑을 고발한단다. 검찰은 법원에서 나온 1심 결과가 너무가볍다며 어떻게 해서든 강기갑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에서 끌어내려 하고 있다. 조중동은 연일 강기갑에 대해 폭력사범으로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수구세력 지지자들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에는 현재 강기갑이 필요하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 국회를 구할 수 있는 단 한명의 의인이다. 수구들의 표적이 된 강기갑을 지켜야 한다. 당신이 노동자, 농민, 서민이라면 강기갑에게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지금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끌고가는 이 나라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강기갑을 끌어안아야 한다.

나는 노무현, 유시민에 이어 세번째로 강기갑을 후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국회에서 정정당당히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저 탐욕에 찌든 한나라당과 수구세력에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릴 수 있도록 그를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이다.

강기갑 의원에게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데, 다음에는 저 박계동이의 면상에 국민의 이름으로 정의의 고무신을 날려주시길 바란다. 룸싸롱에서 여종업원 가슴이나 만지던 자가 국회사무처장이라니. 이런 자들 때문에 대한민국 국회는 하염없이 막장으로 치닫는 것이다.

서민들은 왜 보수적인가, 정말 그들은 보수적인가

대한민국에는 두 종류의 서민들이 있다. 하나는 종부세 대상자이면서 스스로 서민이라 우기는, 쥐박이라 불리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서민(鼠民)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庶民)들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게 살면서도 쥐박이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이중서민들도 꽤 존재한다.

첫번째 부류의 서민(鼠民)들이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고 한 짓이라고는 종부세 무력화와 감세, 그리고 각종 부동산 규제 철폐 뿐이다. (그리고 전봇대도 2개나 뽑았구나.) 어떻게 해서든 땅값을 올려 일하지 않고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뿐인데, 대한민국의 경제적 최상위층들이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고 지켜주는 이런 부도덕한 정치집단을 지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봐서는 당연하다. 물론, 잘사는 그들 중에도 간혹 양심을 가진 도덕적인 부자도 있겠지만, 극히 소수이겠지.

문제는 두번째 부류의 서민(庶民)이다. 이들은 도시와 농촌에서 매일매일 뼈빠지게 일을 하고도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버텨나가는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한 부류다. 이런 서민들의 수는 전체 국민의 50%를 넘는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대한민국에서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켜 줄 정치세력을 집권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현실은 두번째 부류의 서민들에게 자못 우울하다. 노동자, 농민, 그리고 도시빈민 등 서민들을 대변한다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지지율을 5%를 넘지 못한다.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서민인 나라에서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은 집권은 커녕 지지율 5%를 넘지 못한다. 종부세 대상자 2%만을 위하는 정당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언제나 30%를 웃돈다. 이런 현실은 정말 많은 서민(庶民)들이 이중서민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서민(庶民)들은 극우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일까? 경제학자 도스타인 분데 베블렌(Thorstein Bunde Veblen)은 그의 “유한계급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The abjectly poor, and all those persons whose energies are entirely absorbed by the struggle for daily sustenance, are conservative because they cannot afford the effort of taking thought for the day after tomorrow; just as the highly prosperous are conservative because they have small occasion to be discontented with the situation as it stands today.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요, 부자들은 오늘에 불만을 품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다.

이유는 다르지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보수적이라는 얘기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정치고, 신자유주의고 자기들의 관심사가 될 확률이 아주 적다. 선거에 악착 같이 투표하는 사람들은 강남에 사는 졸부들이지, 인력시장에서 하루하루 몸을 파는 노동자들이 아니다. (지난 번, 서울 교육감 선거에서 위대한 강남은 공정택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민들의 정치의식이 떨어지고, 정치적 무관심과 체념이 커질수록 경제적 양극화는 더 커질 것이고, 정치권력은 한나라당과 같은 극우 보수 세력에게 고스란히 넘어갈 것이다.

우리나라 서민(庶民)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할만한 정치세력을 선택하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는 서민들의 계급적 사고를 가로막는 숱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이 아주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신문들이 언론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공영방송이라던 KBS도 이미 이명박 졸개들에게 넘어가버리고, 아직도 1950년대 반공사상에 젖어서 좌빨 타령이나 하고 있는 수구 쓰레기 알바들이 네이버를 장악하고 있으며, 우리가 남이가 한마디면 앞뒤 가리지 않고 한나라당을 찍어대는 지역감정 추종자들이 있는한 서민들의 계급적 사고는 그야말로 요원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2~3% 지지를 받고 있는 진보신당의 심상정이 한미FTA를 들이대면서 노무현을 씹어돌려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신자유주의가 세계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근본 모순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서민들에게는 아무런 이슈가 되지 못한다. 결국, 이런 상식적인 토론이 가능하려면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 한다. 언론 문제, 지역감정 문제, 그리고 색깔론. 이런 문제들이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서민들의 이중서민 노릇은 지금처럼 계속된다.

또다른 해결책은 투표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룰라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이유는 브라질이 의무투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룰라같은 노동자 출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으며, 그를 지원하는 세력이 집권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투표율이 적어도 80%만 넘어가도 한나라당이 집권할 수는 없다. 아무리 서민들이 보수화되었다고 해도, 아무리 국민들이 사기를 당했다 하더라도, 아무리 대한민국이 후진 나라라 하더라고 투표율 90%에서 이명박과 같은 사기꾼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는 없다.

정작 문제는 서민들의 보수화라기 보다는 서민들의 무관심이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당면 문제는 한미FTA가 아니고, 언론 문제고, 지역감정 문제고, 남북 문제다. 이들 문제가 선결되지 않고는 이명박이 아무리 깽판을 쳐도, 그 이후에는 박근혜가 정권을 잡을 것이고, 박근혜가 아무리 나라를 말아먹어도 그 이후에는 오세훈 같은 젊은 수구들이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참으로 암울한 현실이다.

이명박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가? 온다…

우연히 김규항이 프레시안에 쓴 칼럼 “이명박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가?”를 읽었다. 김규항을 비롯한 좌파들의 생각이 어떤지 대강은 알기에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사실 이런 류의 글들은 그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이명박과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이 땅의 수구 극우들을 지극히 이롭게 한다. 따라서, 이런 글들은 좋은 세상을 오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좌파들의 주장은 신자유주의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공공의 적이므로, 신자유주의가 없어지지 않고는 좋은 세상이 오지 않는다로 요약될 수 있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다시 말해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극복될 수 없는 모순을 갖고 있다. 필연적으로 양극화는 심해질 수밖에 없으며, 인간들은 무한 경쟁의 정글로 향하게 되고, 우리가 바라는 인간적인 삶은 도태되어 버린다. 자본주의가 극복되고, 거의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그것이 사회주의일까? 이론적으로는 사회주의가 맞겠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이란 종이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좌파들의 또다른 주장은 이명박이나 노무현이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에 다르지 않다고 본다.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도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바마나 부시나 다를 것이 없다고 얘기한다.

이를테면 “모든 게 이명박 때문” “이명박만 없으면”이라는 ‘시대의 신학’이 목표로 하는 세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명박 이전에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훨씬 더 민주적이며 개혁적인 정권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사회 진보 운동의 목표는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인가? 물론 진보적이되 먹고 사는 일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야 ‘이명박이라는 짜증나는 인간’만 사라져도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대개의 사람들은 이명박이 물러나고 김대중이나 노무현 시절로 되돌아간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

[김규항, "이명박만 없으면 좋은 세상이 오는가?"]

이 지점에서 나는 좌파들과 결별할 수 밖에 없다. 김규항의 질문에 내가 답하자면, 이명박이 없어지면 이명박이 없어진만큼 좋은 세상이 온다. 한나라당이 사라지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세상이 된다. 조중동이 폐간되면, 우리 사회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2배쯤 좋은 사회가 된다. 물론, 그 좋은 세상이란 것이 좌파들이 얘기하는 궁극적인 사회는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후진 사회는 아니란 얘기다.

이명박이 없었다면,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유모차를 끌고나가 촛불을 켤 필요가 없었다. 이명박이 없었다면, 대운하 같은 정신 나간 짓거리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이명박이 없었다면, 돈많은 부자들은 지금보다 더 세금을 많을 냈을 것이며, 복지 예산은 지금보다 조금 더 늘어났을 것이다. 이명박이 없었다면, 아이들은 조금 더 행복한 세상에서 공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중동이 없었다면, 이명박 같은 사기꾼이 절대 대통령으로 뽑히지 않았을 것이다. 조중동이 없었다면, 지금쯤 더 이상 북한 퍼주기 얘기는 안나왔을 것이다.

좌파들이 원하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이 권력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조중동은 폐간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싸우기 위해서는 먼저 이명박과 한나라당과 투쟁해야 하며, 조중동과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상식과 토론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명박과 조중동을 놔두고, 신자유주의와 싸우자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 이념은 반대지만, 이명박과 같은 편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신자유주의가 힘을 못쓰고 하려면, 일단 이명박과 조중동이 사라져야 한다.

좌파들은 이 사실을 당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노무현을 까대던 진보 학계의 거두 최장집이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별 말이 없다. 대부분의 좌파들이 그렇다. 좌파들은 왜 이명박이나 조중동보다 노무현을 더 싫어했을까? 왜 그랬을까? 노무현이나 이명박을 동일시하는 그런 좌파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좌파들의 말을 실현하는 길은 혁명을 하는 것밖에 없는데, 내가 보기에 이 지구상에서 2008년 혁명이 가능한 나라, 혁명이 성공할 수 있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길 밖에 없지 않을까? 그들이 진정 평등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원한다면 말이다.

나는 이명박 정권보다 노무현 정권 때가 나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부시보다는 오바마가 나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이다. 노무현이나 오바마를 성공시키고, 그 다음에는 그들보다 조금 더 진보적인 인물들을 선택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민노당이 제도권으로 들어온 것이 언제였는가? 노무현 정부 때 아니었는가? 내가 노무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단 한걸음 우리가 원하는 사회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물론, 좌파들이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보였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야 우리는 또 한걸음 내딛을 수 있다. 미국도 흑인 대통령이 나오기까지 200년이 넘게 걸렸다. 오바마가 얼마나 진보적 인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200년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비주류인 흑인이 권력을 잡게 되었다는 사실. 역사는 참 더디게 흐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좌파들이 열걸음을 원하는데 노무현은 단 한걸음밖에 나아가지 못했다. 좌파들은 그 한걸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한걸음이 눈물이 나도록 소중하다. 오바마가 당선되었다고, 흑인들의 삶이 당장 나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리고 나에게는 그 오바마의 한걸음이 중요하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없어지면 우리는 또 한걸음 내딛을 수 있다. 조중동이 없어지면 우리는 두걸음을 내딛을지도 모른다. 이명박과 싸우지 않고, 조중동과 싸우지 않고, 신자유주의 타파를 부르짖는 것은 거짓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해서, 내가 세상에 집착한다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놓고 급전 300억 달러를 빌릴 수 있게 되었다고 환호작약하는 저들에게 해줄 얘기는 아무것도 없다. 한나라당이 1%만을 위한 정당인 줄 알면서도 선거만 있으면 한나라당을 찍어대는 국민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민주당은 우리의 대안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희망도 패기도 정열도 용기도 없다. 그냥 리만 브라더스와 한나라당에 질질 끌려다니는 무기력만 가득할 뿐이다. 비전도 없고, 대안도 없고, 그저 떡고물이나 쫓아다니는 궁물들과 386 떨거지들이 모여있는 노회한 정당일 뿐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사라진 정당에는 적막만 감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제대로된 정치 세력, 정당이 없다는 것이다. 수십 만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도 그것을 정치적 힘으로 묶어낼 세력이 없다. 아무리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깽판을 쳐도 4년 후에 그들을 딛고 일어설 세력이 있다면 그나마 위안이 될 수도 있을텐데 우리에겐 그것이 없다. 희망이 없다는 것만큼 견디기 힘든 것도 없다. 새로운 정당이 생겨야 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될 수 있으면 당분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침묵하고 싶다. 지쳤다. 아니 저들의 탐욕에 질려버렸다. 저들의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당분간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 탐욕의 극한에서 그 탐욕에 의해 저들이 쓰러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탐욕은 죄다. 그 죄의 댓가를 모두가 질 것이다. 같은 하늘을 이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그러거나 말거나.

단풍이 아름답다. 떨어지는 낙엽 사이로 가을은 깊어간다. 바람이 살랑거리고, 햇살이 따사롭다. 인간의 탐욕만 외면해버리면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자연의 품은 그렇게 넉넉하다. 밥 굶지 않고, 내 몸뚱이로 노동을 감당할 수 있을만큼 건강하다면 행복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사치인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달러모으기 운동”의 조건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서…”

(써놓고 보니 무슨 소설 제목도 아니고) 어찌되었든 잃어버린 10년을 찾아서 한시도 쉬지않고 매진하는 리만 브라더스(이명박 & 강만수)와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의 노고를 치하한다. 오늘 환율과 주가가 크로스되는, 일명 리만 크로스를 연출하느라 얼마나 밤잠을 설쳤겠는가. 지난 봄부터 말이지.

조금만 있으면 거의 10년 전의 한국으로 완전히 되돌아갈 것이다. 예상보다도 아주 빠르게 말이다. 환율은 거의 2000원을 넘나들고, 주식을 가볍게 1000선 아래로 내려가 주는 바로 그런 10년 전의 모습. 우리 국민들에게 아주 익숙한 그런 모습. 우리 국민들이 10년 전의 우리나라에 지독한 향수가 있었나보다. 그 향수를 즐기기 위해 다시 한 번 피눈물을 흘리게 생겼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이번 금융위기는 적어도 우리나라를 피해가지는 않을 것이다. 왜? 우리나라는 리만 브라더스가 있지 않은가. 현대건설, BBK, 그리고 서울시까지 가는 곳마다 부도와 파탄을 몰고 다녔던 이명박과 외환위기 초래의 달인 강만수. 이 두 사람이 있는 한 우리나라는 위기를 피할 길이 없다. 한 나라에서 같은 인물이 두 번씩이나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네스북이 알면 얼마나 놀랄 것인가.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이명박의 당선은 결국 대한민국의 파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슬프게도 적중하고야 말았다. 결국 쓰레기 언론과 한줌도 안되는 수구세력(친일과 독재의 후예)들을 제거하지 못한 그 업보를 이렇게 다시 한 번 받게 되었다.

이제서야 뭔가를 깨달은 듯한 한나라당의 몇몇 의원이란 작자들이 “달러모으기 운동”을 시작하자며 국민들의 염장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런 작자들이 도대체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해진다. 어떤 사고를 하길래 저런 염장 만땅의 생각이 나올 수 있는지 의학적으로도 연구해 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아무튼 한나라당도 10년전 금모으기 운동으로 외환위기를 나름대로 극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역시 그들에게 국민은 봉이다.

나도 지갑에 100달러 짜리 지폐가 있기는 하다. 오늘도 환율이 50원이 올라, 앉은 자리에서 5000원을 벌었다. (리만 브라더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나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만족되면, 내 지갑에 있는 100달러를 기꺼이 기부하며 달러모으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다.

  1. 리만 브라더스의 사퇴
  2. 조중동 폐간
  3. 한나라당 해산
  4. 뉴라이트 해체 (A2 님의 제안으로부터)

이 정도 조건이면 국민들도 지난 번 금모으기 때처럼 기꺼이는 아니겠지만 달러모으기에 나서지 않겠는가.

어차피 리만 브라더스와 조중동, 그리고 한나라당이 지금처럼 정권을 잡고 있는 한, 위기를 피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즐겨야 될까? 아니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 우리 국민들이 밑바닥까지 철저히 깨져야 된다. 다시는 이런 아픔과 고통을 잊지 못하도록 뼈속 깊이 아니 국민들의 유전자에 새겨야 된다. 그래야만 저런 무리들이 권력을 다시 잡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이번 위기 속으로 들어가며 우리 국민들이 건질 수 있는 유일한 몫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통탄스럽지만, 그 길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런 기나긴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의 싹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총선, 네 가진대로 찍어라

이 글은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 “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조중동문 같은 후안무치한 우리나라 대다수 언론들에게 속아서 엉뚱한 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쓴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집도 없이 월세나 전세를 살면서 “세금폭탄”이라는 말 한마디에 “종부세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제발 정신 좀 차려”라고 얘기하기 위해 쓴 글이다. 지난 대선 때, 한 백수 젊은이가 나와서 취직이 안된다며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메가를 지지한다”는 그런 눈물겨운 코메디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쓴 글이다.

오래 전 김규항은 “비판적 지지”라는 투표 행위를 비판하면서 “네 이념대로 찍어라”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김규항은 그 글에서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비판적 지지했던 진보주의자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면서, “털끝만큼”이라도 진보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서는 “네 이념대로 찍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제 이념대로 순정하게 찍는 것, 그래서 한국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한국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동기화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것만이 한국인들이 제 처지에 가장 적절한 정치를 맞을 유일한 방법이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한국사회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면 가장 반동적인 보수후보를 찍어라. 한국사회의 표면적 악취라도 우선 덜고 싶다면 가장 개혁적인 보수 후보를 찍어라. 그러나 한국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바란다면 (당선 가능성을 절대 기준으로 한 이런저런 되지 못한 정치평론일랑 걷어치우고) 그저 가장 진보적인 후보를 찍어라. 진보에 외상은 없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김규항, 네 이념대로 찍어라]

언젠가 얘기했듯이, 나는 “비판적 지지”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정치적 위치를 규정하는 것은 “선택”이라는 “행위”이지, 누구를 지지한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에 민노당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실제 투표는 김대중이나 노무현에게 했다면, 그는 보수주의자다. 따라서 비판적 지지를 외치는 사람들은 대개 위선적이다. 자기의 진보적 이념과 보수적 행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선택과 행위를 해왔는지 더 주의깊게 본다.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은 현재의 그 사람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말로 하는 진보를 믿지 않는다. 그 말들이 아무런 달콤하고 장미빛 미래를 보여준다 해도 그 말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념대로 찍어라”는 김규항의 충고는 담백하기는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이념적 지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고 파악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념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바뀔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념을 잘 믿지 않는 이유는 자기 이념의 변절자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한때 대한민국 대표적 빨갱이였던 박정희는 빨갱이를 때려잡는 반공의 화신이 되었고, 극렬 좌파였던 이재오, 김문수는 수구 정당에 들어가 호의호식하고 있으며, 대학을 다닐때 노동자, 민중을 위해 투쟁했던 대다수 학생회장들은 보수 정당에서 궁물이나 빨아먹는 존재들이 되었다.

선거에서 우리는 “이념”이라는 추상적인 기준보다 보다 구체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잣대가 필요하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며 도덕적 파탄자를 지도자로 뽑는 국민들에게는 “이념”이라는 것은 씨도 안먹히는 얘기다. 하여 나는 주장한다. 당신들이 가진대로 찍어라. 당신들의 재산대로 찍어라.

당신이 고려대 같은 명문대를 나오고, 소망교회를 다니며, 강남에 십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살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다면 당신은 이메가와 한나라당을 찍는 것이 맞다. 이 말은 경제적 관점에서만 얘기한 것이다. 물론, 당신이 고소영 범주이면서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진보를 지지할 수는 있다. 그것을 말릴 생각은 없다.

당신이 월세, 전세를 살면서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아이들 사교육비를 걱정하며 제발 양극화가 해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메가와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는 안된다. 당신이 종부세 대상자도 아니고 억대 연봉자도 아니면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현재 처지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당신은 당신의 어리석은 정치의식 때문에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질 뿐이다.

총선에서 누구를 찍어야 될 지 모르겠다면 당신이 지금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헤아려 보시라. 그리고 당신이 가진대로 찍으면 된다. 이것이 서민이라 불리는 당신에게 드리는 기본적인 투표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