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숲 속 참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나뭇잎들을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나무들이 솨아솨아 소리내어 바람을 배웅한다. 참나무 아래로 도토리들이 떨어지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할매들이 도토리들을 주어 담는다. 오늘 저녁엔 떫떠름한 도토리묵이 밥상에 오를 것이다.

가을은 깊어가고, 숲은 서서히 겨울 맞을 채비를 한다. 바람 부는 날에는 숲 속 참나무에 기대 앉아 시 한 편 읊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
바람에 감전된 나뭇잎들이 온몸을 떨자
나무 가득 쏴아 쏴아아
파도 흐르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 보자고
바람의 무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 보자고
작고 여린 이파리들이
굵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잡아당긴다
실처럼 가는 나뭇잎 줄기에 끌려
아름드리 나무 거대한 기둥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힌다

<김기택, 바람 부는 날의 시>

One thought on “바람 부는 날

  1. 가스통 바슐라르는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는 순간의 형이상학이다. 하나의 짧은 문장 속에서 시는 영혼의 비밀과 사물을 동시에 보여 주어야만 한다. 시가 단순히 삶의 시간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시는 삶만 못한 것이다. 시는 오직 삶을 정지시키고 기쁨과 아픔의 변증법을 즉석에서 실천함으로써 삶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다른 모든 형이상학적 글들은 끝없는 서론을 준비하는데 비해 시는 소개말과 원칙과 방법론과 증거 따위를 아예 거부한다. 시가 필요로 하는 것은 기껏해야 침묵의 서두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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