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커피 같은, 그러나 결코 싸지 않은

싸구려 커피 같은, 그러나 결코 싸지 않은

장기하의 노래는 눅눅하고, 미적지근하면서 끈적끈적 달라붙는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송창식과 신중현을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산울림의 21세기 부활이라고도 하는데, 장기하의 노래는 자판기 커피 같은 싼티 속의 정교한 세련됨이 스타벅스의 천박한 고급스러움을 압도한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내공이 B급 위악스러움에 가려져 있다.

내 젊은 날의 초상은 김광석의 처연함이었다. 그가 읊조렸던 삶과 사랑에 기대어 청춘을 견디었다.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며 군에 다녀왔고,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서른을 넘겼다. 세상은 부조리했고, 정의는 패배했으며, 삶은 퍽퍽했다. 쓴소주를 눈물과 함께 마시던 그런 시절이었다.

우리 세대보다 한참 어린 장기하가 낯설지 않은 것은 그의 노래에서 우리 젊은 날의 정서를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장기하의 노래가 사회 담론을 다루지는 않지만, 그가 노래하는 구질구질한 일상의 적나라함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삶은 그렇게 반복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본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질 않다
수만 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뭐 한 몇 년 간 세수대야에 고여있는 물 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면은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비가 그쳐도 히끄무레죽죽한 저게 하늘이라고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건지
저거는 뭔가 하늘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낮게 머리카락에 거의 닿게
조금만 뛰어도 정수리를 꿍 하고 찧을거 같은데
벽장 속 제습제는 벌써 꽉 차 있으나 마나
모기 때려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 볼 때마다 어우 약간 놀라
제멋대로 구부러진 칫솔 갖다 이빨을 닦다 보면은
잇몸에 피가 나게 닦아도 당최 치석은 빠져나올 줄을 몰라
언제 땄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가 한모금
아뿔싸 담배 꽁초가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본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질 않다
수만 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장기하, 싸구려 커피>

4 thoughts on “싸구려 커피 같은, 그러나 결코 싸지 않은

  1. 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는 글을 쓰셔서 당연히 저보다 연배가 더 높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글을 보니 저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도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며 군대를 가고 서른즈음에를 들으면서 서른을 맞이했거든요. 반갑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소요유님에 비해 제 공부가 많이 모자른 것 같아 반성을 하게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1. 제가 너무 노땅 같은 분위기를 풍겼나 봅니다.^^ 김광석의 노래와 함께 20대와 30대 초반을 보냈습니다. BeeKim 님도 저와 비슷한 연배이신가 봅니다. 반갑습니다. 제 글이 많이 모자란데 좋게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2. 장기하씨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데, 매스컴엔 안나오는게 더 좋았지 않나 싶네요..
    인터뷰 하는 내용보니깐, 인터뷰 질문도 참 한심스럽고,
    (질문내용 : ‘싸구려커피라는 노래는, 패배자를 위한 노래입니까?’)
    뭐라 대답할지 망설이는 장기하씨 모습을 보니 좀 처량하더라고요.
    뭐랄까.인디의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것같아서요.ㅋ

    1.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는 언론에서 장기하를 접하지 못해 잘 몰랐습니다. “싸구려커피”를 loser들의 노래만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항상 보여지는 것만 보고, 들려지는 것만 듣는 사람들이지요. 그 너머에 있는 삶의 깊이를 외면하거나 알려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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