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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소요유

순례자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를 다시 읽는다. 그것은 산티아고 길을 걷기 위한 준비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 길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p. 31
“사도 야고보가 그대와 함께하여 그대가 발견해야 하는 유일한 것을 보여주기를.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느리게도 걷지 말 것이며, 언제나 길의 법칙과 요구를 존중하며 걸어가기를.”

pp. 41-42
“지혜로 향하는 길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합니다. 첫째, 그 길은 아가페를 포함해야 합니다. […] 그다음으로는, 살아가면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이죠. 써보지 못한 검이 녹슬어버리고 마는 것과도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길이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말이죠.”

p. 57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길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최선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건 언제나 길이기 때문이죠. 길은 언제나 우리가 걸은 만큼 우리를 풍성하게 해줍니다. […] 삶의 목표를 가질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와 그 길을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나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p. 98
“사자(使者)는 오직 물질적인 차원에서만 개입합니다. 그는 교회의 황금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황금은 땅에서 온 것이며, 땅은 사자의 영역입니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와 돈의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그는 자기 마음대로 흩어져버리고 맙니다. 또한 쫓아내버리면, 우리는 그가 가르쳐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잃고 맙니다. 그는 인간과 세상에 대해 두루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그의 권능에 현혹당하게 되면, 우리는 그에게 소유됨과 동시에 선한 싸움에서 멀어지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p. 103
사자, 즉 경멸적인 의미 없이 악마라고 불리는 존재는 땅의 힘을 지배하는 영이며 인간의 욕망에 기생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악마는 때로 마술적 작용에 쓰이기도 하고 때로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결코 일상적인 일에 관여하는 친구나 조언자는 아니었다.

p. 137
“은하수는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길을 안내해주죠. 어떤 종교도 모든 별을 한데 모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주는 거대한 빈 공간으로 변해버려 그 존재 이유를 잃고 말 겁니다. 각각의 별, 그리고 각각의 인간은 자신만의 공간과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지요.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하얀색, 혜성, 유성, 운석, 성운, 고리 모양의 각기 다른 별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똑같이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들도 실상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공간에 흩어져 있는 수없이 많은 각기 다른 존재들이죠.”

p. 156
“아가페는 소멸시키는 사랑입니다.”

pp. 157-158
“열정은 대개 우리 삶의 초반부에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시기에 인간은 아직 신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자신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커다란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인형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고 작은 장난감 병정들이 움직이기도 하죠.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한 예수의 말씀은, 열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아가페를 두고 한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예수께서 행하는 기적이나 지혜로움, 바리새인, 사도들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에게 곧장 왔죠. 오직 열정에 이끌려, 행복한 모습으로 온 것입니다.”

p. 179
“그럼에도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가장 확실한 사실인 자신의 죽음을 부인하려고 하죠. 바로 그 죽음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실현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준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말입니다. 인간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미지의 것에 대해 공포를 느낍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제한되어 있음을 잊어버리는 거죠. 죽음을 의식함으로써,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잃을 게 없기에 더욱 용감해지고 더 멀리까지 정복해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pp. 208-209
“제자는 자신을 이끄는 이의 걸음걸이를 결코 흉내내어서는 안 됩니다. 삶을 바라보고, 고난과 정복을 체험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는 것이니까요. 가르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운다는 것은 그 가능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고요.”

p. 338
그는 말했다. 우리를 신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닿게 해주는 것은 열정이지, 수백 수천의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고. ‘비밀 의식’이나 ‘심오한 교리를 따르는 입문식’이 아닌, 삶이 기적임을 믿으려는 의지가 기적을 낳는 것이라고.

당위의 고정관념들

당위의 고정관념들

너무도 당연하여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은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관념들이 있다. 예를 들면,

1.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법치국가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치인데, 사실 인류가 법을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한 적은 없다. 법은 지배계급의 통치 수단이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언술은 피지배계급을 기만하는 당위일 뿐이다.

2. 교회에는 신(神)이 있고, 구원이 있다.

어떤 교회에도 신은 없다. 교회에서 아무리 기도를 해도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이래, 교회도 역시 지배계급의 중요한 통치 수단이었다. 지금은  그저 사교나 비즈니스 공간일 뿐이다. 이 땅의 대형 교회들이 특히 그러하다. 그곳은 영성보다는 욕망이 지배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3. 학교에는 배움이 있다.

학교에 배움은 없고, 훈육과 조련만 있다. 대부분의 학교는 경쟁만을 가르치고, 아이들은 시험 잘 보는 기계로 전락한다. 중고등학교는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훈련소이고, 대학은 좋은 직장을 들어가기 위한 전진기지일 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교는 지배계급이 원하는 노예들을 생산한다.

4. 병원에는 치유가 있다.

많은 병원이 환자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본다. 환자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선호한다. 현대의학의 허와 실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환자들은 병원의 봉이 될 수 밖에 없다.

5. 언론은 진실을 보도한다.

진실을 보도했던 언론과 기자들은 모두 도태되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언론이라 불리는 것들 중에서 진실을 보도하는 것은 열에 하나도 안 된다. 모두들 지배계급과 권력에 빌붙어서 감시견(Watch Dog)이 아닌 경비견(Guard Dog)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 나라의 언론은 진실을 외면하고 호도하는 개다.

원래부터 당연한 것은 없다. 그냥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 공짜 점심은 없다. 어떡해서든 지배계급의 노예로 살아서는 안 된다.

여혐은 귀태다

여혐은 귀태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태어나지 말아야 할 생명은 없다. 따라서 귀태(鬼胎)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고귀하고 저마다의 동등한 존엄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스스로 귀태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여혐)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여성이기 때문에 죽어야 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맞아야 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욕을 먹어야 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아야 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무시당해야 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인가?

모든 인간은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예수도 어머니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생명의 근원이고, 고귀한 사랑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여성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여성은 인류의 기원이고 남성은 전쟁의 기원이라고.

여혐주의자들이 혐오하는 여성은 바로 그들의 어머니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자기를 낳아준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혐오하는 것이고, 스스로를 태어나지 말아야할 귀태로 전락시킨다.

여혐이 사회 문제로까지 발전하게 된 이유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열등감 때문이다. 신체적 완력을 제외하고 도대체 남자가 여자들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을 남자들이 심각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남자들의 찌질함이 집단적으로 분출하여 여성을 타자화하고 여혐을 부추긴다.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만큼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더군다나 여성을 혐오하는 것은 스스로의 자존감을 짓밟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스스로를 귀태로 만드는 일이다. 이 세상에서 혐오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 아니 이 우주를 지배하는 근본 원리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5월의 장미보다 더 아름답고 싱그러운 여성들을 어찌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은 이 세상을 더 평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과 모든 아내들과 모든 며느리들과 모든 딸들에게 사랑과 존경과 위로를 바친다. 그대들이 있기에 이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한 곳이 되었다고.

우리집 e서재

우리집 e서재

그동안 사모은 책들이 방안에 한가득이다. 가끔은 이 책들을 정리해서 조그마한 도서관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워낙 천성이 게을러서 엄두도 내지 못한다.

책목록을 만들 요량으로 엑셀을 열어 책의 이름과 저자, 출판사 등을 넣어 볼까 생각했는데, 책이 너무 많아 포기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국립중앙도서관 웹사이트를 가게 되었고, 우리집 e서재라는 서비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집에 있는 책의 목록을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인데,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이 국민들을 위해 이런 서비스를 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 기막힌 것은 국립중앙도서관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면 바로 바코드 스캔으로 책의 정보를 입력시킬 수 있고, 나중에 엑셀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시험 삼아 책상에 나뒹구는 책 몇 권을 바코드 스캔으로 입력해 보았다. ISBN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한국십진분류코드까지 생성해냈다. 스마트폰의 앱을 통해 책에 대한 서평까지 입력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서비스를 계획하고 개발한 국립중앙도서관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이런 서비스가 꾸준히 유지되어 우리나라 독서문화 발전에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집e서재

치킨공화국

치킨공화국

이 나라는 치킨공화국이야. 이 나라의 주권은 닭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닭으로부터 나오지.

이 나라의 인간들은 닭장 같은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닭공장 같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닭공장 같은 학교를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은 닭장 같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몸을 던지고, 어떡해서든 살아 남는 아이들은 닭공장의 닭들처럼 길들여지지.

이 나라의 인간들은 학교에서도 경쟁해야 하고, 닭장 같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그 회사에서도 살아 남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그 회사에서 쫓겨 나서도 치킨집을 차려서 경쟁해야 하지. 사는 것이 전쟁이지. 희미한 백열전구 밑에서 잠도 못자고 알을 낳아야 하는 닭들처럼 매일매일 그렇게 사는 거야.

그런데 이 나라의 인간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닭공장에서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머리들이 닭을 닮아가지. 이 인간들은 자기들이 닭을 닮아가는 줄도 몰라. 매일 종편을 켜놓고 치킨공화국의 우두머리를 찬양해. 그래서 이런 이들을 닭대가리라고 부르는 걸까?

모든 권력을 쥐고 계신 그분께서 치킨공화국을 언급하셨지. 치킨공화국이 되지 않기 위해 파견법이 필요하다고. 이미 치킨공화국인 나라에서 파견법을 통과시키면 치킨공화국을 벗어날 수 있다고 보시는 건지. 역시 치킨공화국의 우두머리다운 말씀이지.

치킨공화국의 국민들은 선거 때마다 닭에게 묻지마 투표를 하고, 닭을 찬양하며, 밤에는 치킨과 맥주를 시켜 먹지. 정말 완벽하지 않아? 이런 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치킨 런(Chicken Run) 따위는 꿈도 꾸지 말고, 퍼펙트 (치킨) 월드를 엔조이해야 하지 않을까? 이 사회 부적응자야!!!

친노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

친노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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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친노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는 노무현이 죽어야 하는 이유와 같다. 재벌, 새누리당, 검찰, 언론 등으로 이루어진 지배계급에게 해방 이후 노무현만큼 불편하고 두려운 존재가 없었다. 감히 대학도 안 나온 고졸 출신 변호사 주제에 상식과 원칙이란 이름으로 지배계급의 권력을 위협하다니, 그리고 대통령이 되다니.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무현을 능지처참하고 삼족을 멸하리라. 그들은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것이다.

노무현은 죽었지만, 여전히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친노와 노빠라는 이름으로 노무현 정신을 얘기했다. 노무현의 죽음은 운명처럼 문재인을 정치로 이끌었고, 문재인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친노의 중심이 되었다. 이 나라 지배계급 입장에서는 몹시도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었다. 만약 문재인이 정권이라도 잡게 되면…, 아 그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야당의 기회주의자들에게도 문재인과 친노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이 권력을 쥐게 되면, 아 궁물은 어쩌란 말이냐. 문재인이 당대표가 되자, 하루가 멀다 하고 친노패권주의, 호남홀대론을 외치며 그를 끌어내리려 했다. 예전 후단협이 노무현에게 했던 것처럼, 예전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함께 노무현을 탄핵했던 것처럼. 그것이 예의치 않자, 그들은 당을 박차고 나갔다. 그 중심에 안철수가 있었다.

조중동과 종편에서 문재인과 친노는 북한의 김정은보다 더 흉악한 족속들로 그려진다. 그들이 얘기하는 종북이 친노고, 그들이 얘기하는 빨갱이가 친노고, 그들이 얘기하는 테러집단이 바로 친노다. 왜? 두려우니까. 지배계급에게 유일하게 위협이 되는 세력이니까.

친노와 노빠가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자발적이라는 점이다. 누가 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고, 돈이나 궁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노무현 정신으로 이 사회를 바꾸어 보겠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무서운 거다. 이것은 돈과 권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지배계급은 친노세력을 저주한다.

재벌, 새누리,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이 나라 지배권력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친노와 노빠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은 악마이고, 친노는 사라져야 한다. 노무현이 죽은 것처럼 친노도, 노빠도, 문재인도 사라져야 한다. 그들을 없애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정말 정의와 평화와 민주가 젖과 꿀처럼 흐르는 나라가 될 지도 모른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반기문, 아니 안철수라도 데려 와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야 한다.

오늘도 문재인과 친노에 대한 그들의 저주는 그렇게 계속된다.

democracy

죽음 너머의 세계

죽음 너머의 세계

죽음을 체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은 대개 유사하고 일관되다. 임마뉴엘 스베덴보리, 이븐 알렉산더 등 이름난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소위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으로 불리는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그들의 증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자신이 공중에 떠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잠시 후 그는 암흑, 혹은 터널 속을 굉장한 속도로 지나간다. 그는 눈부신 빛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최근에 죽은 친구와 친척들로부터 따뜻한 영접을 받는다. 보통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리고 지상에서 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운 광경 – 구릉진 목장, 꽃이 만발한 계곡, 반짝이는 시냇물 등 – 을 본다. 이 빛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그는 아무런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으며 밀려오는 환희와 사랑과 평화의 느낌에 휩싸인다. 그는 무한한 자비의 느낌을 방사하는 ‘빛의 존재(혹은 존재들)’를 만난다. 그 존재는 그에게 자신의 지난 삶이 파노라마처럼 다시 펼쳐지는 ‘인생복습(life review)’을 경험하게 한다. 그는 이 광대한 현실의 경험에 압도되어 그곳에 한없이 머무르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 존재는 그에게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다시 육체로 들어가 지상의 삶으로 돌아가게 한다.

<마이클 탤보트, 홀로그램 우주, p. 337-338>

사람들이 자기의 몸이 “참나”가 아님을 깨닫게 되면 이러한 증언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그리고 알고 있는 세계는 진리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다 보면 점점 더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천지간에는 자네의 지혜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있다네.

<세익스피어, 햄릿, 1막5장>

김성근, 김종인, 그리고 어버이연합

김성근, 김종인, 그리고 어버이연합

김성근. 올해 나이 75세. 한화 이글스 감독. 한때 야구의 신(야신)으로 불리며 한국 프로야구의 상징으로 떠오른 인물. 김성근 식 리더십으로 야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리더들의 본보기가 된 사람. 지난 해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만년 꼴찌 한화를 프로야구 최고 인기구단으로 만들어 놓았으나, 올 들어 김성근의 마법은 유통기한이 다 된 듯하다.

한화 이글스의 현재 성적은 3승 15패, 승률 1할5푼8리. 넥센의 신인 투수 신재영이 벌써 4승을 했으니, 한화 구단은 신재영보다도 적게 승리했다. 넥센 신재영의 연봉은 고작 2700만원.

김성근의 리더십은 특타와 야간 펑고로 대표되는 (될 때까지) “하면 된다”의 새마을 정신이라 할 수 있겠다. 송창식, 권혁 등의 투수들을 혹사시킨다는 평을 받으면서도 (단기간의) 성과를 위해 무리한 선수 교체를 감행한다. 김성근 식 야구는 단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화 이글스의 미래와 선수들의 장래를 보았을 때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한화 선수들은 가장 많은 훈련을 하지만, 가장 많은 실책을 범한다. 선수들의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고, 감독과의 소통이 어려우며, 시키는 대로만 하는 장기판의 말이 되었다. 급기야는 “김성근 감독과 야구하기 싫다”며 트레이딩을 거부하는 선수들이 나왔다. 지난 해, 김성근 감독을 연호하던 팬들은 “감독님, 나가주세요”라는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시위를 한다. 이쯤 되면 김성근 식 리더십은 끝난 것이 아닐까.

김종인. 올해 나이 77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경제민주화의 상징처럼 군림하는 사람. 처음 더민주에 올 때, 비례대표에 전혀 뜻이 없다 얘기했으면서도, 본인을 셀프공천하여 국민들의 빈축을 산 인물. 정청래, 이해찬 등을 공천탈락시키면서 정무적 판단이라고 얼버무린 노회한 정치인이다.

그는 더민주에 남아 있는 기회주의자들을 주저앉히는데는 성공했으나, 젊고 진보적인 유권자들을 끌어모으는데는 실패했다. 총선이 끝나고 그의 주변에서 당대표 추대론이나 전당대회 연기론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것으로 봐서 그는 계속 더민주에서 제왕적 당대표를 노리는 것 같다.

김종인도 소통에 문제가 있으며, 고집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경제민주화의 상징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노욕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버이연합. 어버이라는 고귀한 말을 욕보이는 자칭 어르신으로 구성된 극우단체. 박정희와 박근혜를 숭배하며 전경련의 지원과 청와대의 지시로 끊임없이 관제데모를 주도하는 사람들.

“하루 2만원이 어디냐”며 탈북할아버지들은 어버이연합 주도로 관제데모에 나선다. 생활고에 허덕이며 극우집회에 동원되어야 하는 그들의 처지가 불쌍하다. 칠십 넘게 세상을 살았으나 여전히 지혜와는 거리가 멀고 노욕덩어리가 되어 가는 사람들. 부끄러움도 모르고 무지가 죄가 될 수 있음을 모르는 어버이연합 노인들.

김성근, 김종인, 어버이연합 노인들께 드리고 싶은 말, 떠날 때를 아는 노인만이 지혜롭고 존경받는다는 것.

마음은 뇌의 산물인가

마음은 뇌의 산물인가

오늘날 많은 신경과학자(혹은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마음 또는 의식이 뇌의 활동으로 생겨난다고 믿고 있다. 뉴런과 시냅스의 패턴을 연구하면, 첨단 장비로 뇌 영상을 찍어 보면, 마음이나 의식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 수 있을까?

지난 번에 얘기했듯이, 과학자들은 생명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은 마음이나 의식에 대해서도 정의하지 못한다. 마음이나 의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그것이 뇌 활동의 산물인지는 어떻게 단정할 수 있을까?

물리요법가이자 UCLA 신체운동학 교수였던 발레리 헌트(Valerie Hunt)는 인간의 두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두뇌를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 중요한 요소라고 너무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왔다고 생각한다. 두뇌는 단지 정말 훌륭한 컴퓨터일 뿐이다. 하지만 창조성, 상상력, 영성 등의 모든 것과 관계되는 마음의 측면들을 두뇌 속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마음은 두뇌가 아니다. 마음은 바로 이 에너지 장 속에 있다.”

<마이클 탤보트, 홀로그램 우주, 정신세계사, p. 273>

아무리 좋은 현미경으로 신을 볼 수 없듯이, 인간의 과학으로 뇌를 아무리 연구해도 마음이나 의식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몸이 ‘참나’가 아니 듯이, 우리의 뇌가 마음이나 의식은 아니다.

이인제, 불사조는 어떻게 사라지는가

이인제, 불사조는 어떻게 사라지는가

이인제는 충청이 낳은 걸출한 기회주의자다. 지금까지 13번 당적을 옮기면서 6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2번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13번의 당적 변경은 아마 기네스북 기록일지도 모른다. 그는 가히 김종필의 뒤를 이을만한 위대한 생존능력을 지녔다.

이인제는 숱한 당적 변경에도 총선에 출마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당선이 되어 인터넷 상에서는 불사조 피닉제(피닉스+이인제)로 통한다. 심지어 무소속으로 출마할 때도 당선되었다. 그런 이인제가 이번 20대 총선에서 더민주 김종민 후보와의 대결에서 져 1천여표 차이로 아깝게 낙선한다. 그들의 대결은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전과 같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혈투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인제가 보여준 어마어마한 생존능력을 비하하거나 조롱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 10년은 사실 이인제라는 인물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김대중, 노무현은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서 손꼽히는 위대한 정치가들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성공은 이인제로부터 시작되었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이인제가 국민신당을 만들어 대선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이다. 김대중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알려진 위대한 인물이었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 김종필과 DJP 연합까지 했지만, 이인제가 출마하여 신한국당의 지지를 갈라 놓지 않았다면, 15대 대선의 승자는 신한국당의 이회창이었다.

당시 신한국당(지금의 새누리당)이 IMF 외환 위기 아니라 그 할애비를 불러왔다고 해도 김대중은 이회창을 이길 수 없었다. 이인제의 경선 불복, 탈당, 국민신당 창당, 대선 출마의 일련이 과정이 없었다면 김대중은 이회창을 이길 수 없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정치와 언론 환경이 척박했다.

16대 대선도 마찬가지다. 이인제가 새천년민주당에 들어와 유력 대선후보가 되지 않았다면 노무현은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노무현의 대선 출마 결심을 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바로 이인제였다. 노무현은 이인제와 같은 기회주의자를 극도로 싫어했다. 이인제가 정통 야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대선 출마를 결심하게 된다.

노무현은 2007년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결정적인 것은 이인제씨 때문이죠. 이인제씨가 2002년 대선 전에 우리 민주당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였죠. 내가 그때부터 ‘이거 큰일 났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 나는 이회창씨 쪽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내 상대는 이인제씨였어요.”

“경선불복 했던 사람이 이번에는 우리 당으로 와서 여기서 또 후보하겠다고 하는데… 그  설명할 수 없는, 이치에 닿지 않는 현상, 그리고 그 현상에 영합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임과 세력을 보면서 이게 뭐냐, 이게 정치냐, 이대로 가도 되냐고 분노했지요.”

“내가 이인제와 끝까지 맞섰던 것은 그 사람의 정책이나 기능이나 역량이나 이런 것이 나보다 훨씬 더 처진다는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원칙을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3당합당 때 YS를 따라간 것이나, 경선불복한 것, 그리고 다시 보따리 싸고 당을 나와서 이전해 온 것, 이런 것들이 정치윤리상으로는 하나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죠.”

<노무현은 왜 대통령에 도전했나, 오마이뉴스>

이처럼 대한민국 민주정부 10년은 이인제의 결정적 역할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노무현의 대변인 중 한 사람이었던 김종민 후보에게 져서 낙선했다. 이 또한 그의 운명일지 모른다.

불사조 이인제. 그는 그렇게 정치 무대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가 정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아니면 다음 총선에서 70이 넘은 노구를 끌고 또다시 부활할지 알 수 없다. 그는 불사조 피닉제니까.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편안히 남은 생을 즐기시라. 이제 그만 쉴 때도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