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영화 <관상>에서 김내경이 한명회에게 한 마지막 대사의 일부분이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당신들은 그저 높은 파도를 잠시 탔을 뿐이오.
우린 그저 낮게 쓸려가는 중이었소만,
뭐, 언젠가는 오를 날이 있지 않겠소.
높이 오른 파도가 언젠가 부서지듯이 말이오.”
영화 <관상>에서 김내경이 한명회에게 한 마지막 대사의 일부분이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당신들은 그저 높은 파도를 잠시 탔을 뿐이오.
우린 그저 낮게 쓸려가는 중이었소만,
뭐, 언젠가는 오를 날이 있지 않겠소.
높이 오른 파도가 언젠가 부서지듯이 말이오.”
오늘처럼 겨울 안개가 자욱한 아침에는 김승옥을 읽어야 한다. 사는 곳이 무진(霧津)은 아니지만, 아니 무진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지만, 겨울 안개는 바로 여기 이곳을 무진으로 만들었다.
안개는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들을 감쌌고, 건물 사이의 횡한 공간들을 채웠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오갔지만, 그들은 이내 안개와 섞여 버렸다.
시공간은 측량할 길 없었고, 존재하지만 동시에 사라져버린, 양립할 수 없지만 눈 앞에 존재하는, 그러나 모든 구별과 경계는 사라졌다.
판단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누군가를 사로잡았던 욕망과 두려움도 안개 속에 숨어 버렸다. 안개는 혼돈 속의 평화를 가져왔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는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김승옥, 무진기행, 1964>
라마 수리야 다스가 말하는 시간과 친구되는 10가지 방법이다.
<라마 수리야 다스, Buddha Standard Time, 2011>
이제 숨을 쉬고, 미소 짓고, 그리고 편히 쉬어 보자. (Now breathe, smile, and relax…)
당신에게 시간은 있다. (You have time.)
설레임으로 다가왔다가
어설픔으로 끝나버린다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아련하게 남아
잊혀지지 않는 것
첫
사
랑
<소요유, 첫눈, 2013>
영화 <V for Vendetta>에서 V가 런던의 중앙 형사 재판소(Old Bailey)를 폭파한 후, 방송으로 내보낸 연설이다.
Good evening, London. Allow me first to apologize for this interruption. I do, like many of you, appreciate the comforts of the everyday routine, the security of the familiar, the tranquility of repetition. I enjoy them as much as any bloke.
But in the spirit of commemoration – whereby those important events of the past, usually associated with someone’s death or the end of some awful bloody struggle, are celebrated with a nice holiday – I thought we could mark this November the fifth, a day that is sadly no longer remembered, by taking some time out of our daily lives to sit down and have a little chat.
There are, of course, those who do not want us to speak. I suspect even now orders are being shouted into telephones and men with guns will soon be on their way. Why? Because while the truncheon may be used in lieu of conversation, words will always retain their power. Words offer the means to meaning and for those who will listen, the enunciation of truth. And the truth is, there is something terribly wrong with this country, isn’t there? Cruelty and injustice, intolerance and oppression. And where once you had the freedom to object, to think and speak as you saw fit, you now have censors and systems of surveillance, coercing your conformity and soliciting your submission.
How did this happen? Who’s to blame? Well certainly there are those who are more responsible than others, and they will be held accountable. But again, truth be told, if you’re looking for the guilty, you need only look into a mirror.
I know why you did it. I know you were afraid. Who wouldn’t be? War. Terror. Disease. There were a myriad of problems which conspired to corrupt your reason and rob you of your common sense. Fear got the best of you and in your panic, you turned to the now High Chancellor Adam Sutler. He promised you order. He promised you peace. And all he demanded in return was your silent, obedient consent.
Last night, I sought to end that silence. Last night, I destroyed the Old Bailey to remind this country of what it has forgotten. More than four hundred years ago, a great citizen wished to embed the fifth of November forever in our memory. His hope was to remind the world that fairness, justice and freedom are more than words – they are perspectives. So if you’ve seen nothing, if the crimes of this government remain unknown to you, then I would suggest that you allow the fifth of November to pass unmarked.
But if you see what I see, if you feel as I feel, and if you would seek as I seek, then I ask you to stand beside me, one year from tonight, outside the gates of Parliament. And together, we shall give them a fifth of November that shall never, ever, be forgot!
런던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선 방송 중에 불쑥 끼어든 점 사과드립니다. 저 역시 여러분들처럼 일상의 편안함이 좋습니다. 익숙한 것들이 주는 안도감, 반복되는 일과의 평온함. 저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런 것들을 즐깁니다.
하지만 오늘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고자 하는 정신에 의거하여, 주로 누군가의 고귀한 죽음이나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종결로 인해 생겨난 날이 단순한 휴일로서 지나가려하는 터에, 애석하게도 제대로 기억되고 있지 않은 이 11월 5일의 일상으로부터 조금의 시간을 떼어놓고 앉아서 잠시 얘기를 나눌까 합니다.
물론 우리가 얘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은 전화로 고래고래 명령을 내리며 총을 든 무리들을 여기로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왜일까요? 경찰봉이 대화를 대신해서 사용될 수는 있겠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지속적인 힘을 갖기 때문이죠. 대화는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을 제공하며, 들으려 하는 이들에게는 진실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하자면, 이 나라가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잔혹함과 불의, 편협함과 억압. 게다가 한때 이의를 제기할 자유가 있고 옳다 여겨지는대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검열관과 감시 시스템을 동원해서 순응을 강제하며 복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요? 누구 잘못이죠? 개중에는 다른 이들보다 좀더 책임이 무거운 사람들도 있겠고, 그들에게는 해명이 요구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진실로 돌아가서, 누가 죄인인지 찾고 계시다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왜 그러셨는지 저는 압니다. 두려웠다는 것을요. 누가 안 그렇겠습니까? 전쟁, 테러, 질병. 세상에는 여러분의 이성을 타락시키고 상식을 마비시키는 수많은 음모가 있습니다. 두려움이 여러분을 지배한 것이고, 여러분은 공황 상태에서 지금의 대법관인 아담 서틀러에게 의지했죠. 그는 여러분에게 질서와 평화를 약속했고 그 대가로 요구한 것은 여러분의 무언적, 순종적인 동의 뿐이었습니다.
지난 밤 저는 그 침묵을 끝내려고 했습니다. 지난 밤 저는 중앙 형사 재판소(Old Bailey)를 폭파시킴으로써 이 나라가 잊어버렸던 과거를 기억시키려고 했습니다. 400여년 전에 한 위대한 시민이 11월 5일을 우리의 기억에 영원히 새겨넣고자 했습니다. 그가 희망했던 것은 공정, 정의, 자유가 단지 말일 뿐 아니라 사상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아무것도 보시지 못하고 현 정부의 범죄가 여러분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면, 11월 5일을 그냥 흘러가게 두라고 제안드립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제가 보는대로 보시고, 제가 느끼는대로 느끼고, 제가 추구하는대로 추구하신다면, 오늘 밤으로부터 1년 뒤 국회의사당 정문 밖에서 저와 함께 서 주시기를 제안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함께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11월 5일을 그들에게 선사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어 번역 출처: http://iibewegung.blogspot.kr/2010/07/blog-post.html>
창의적인 사람들은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다. 로마 신화에서 야누스는 문의 신이기도 하지만, 시작과 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문을 여는 사람들이며, 기존의 것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사람들이다.<칙센트미하이, 창의성의 즐거움, pp. 69-91>
- 창의적인 사람들은 대단한 활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한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명석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장난기와 극기 또는 책임감과 무책임이 혼합된 모순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상상과 공상, 또 한편으로는 현실에 뿌리박은 의식 사이를 오고간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외향성과 내향성이라는 상반된 성향을 함께 갖고 있는 듯하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매우 겸손하면서 동시에 자존심이 강하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전형적인 성의 역할에서 벗어나 있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반항적이고 개혁적이면서 동시에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매우 열정적인 동시에 객관적이 될 수 있다.
- 창의적인 사람들은 개방적이며 감성적인 성향으로 인해 종종 즐거움뿐 아니라 고통과 역경을 겪는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한반도 대운하(4대강 사업)에 대해 용기있게 공개적으로 반대를 한 서울대 이준구 교수와 양심선언을 한 건기연의 김이태 연구원이 있었다. 판사의 기소청탁과 관련해 양심선언을 한 박은정 검사도 있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축소 은폐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서 권은희 수사과장의 용기있는 증언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권은희 과장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라는 질문에
“(경찰의 수사권 독립) 전에 제가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박은정 검사의 “제가 이렇게 저항하는 이유는 사람이고 싶어서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사람의 탈을 쓰고 있다 하더라도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청문회장 많은 증인들 중 권은희 과장이 빛난 이유는 그가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관심사는 창의성(Creativity)인데, 이것과 관련된 책들을 몇 권 읽었다. 과연 창의성은 배울 수 있는 것인지, 창의성이 발현되려면 어떤 환경이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그거 알아요?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걸. 나이가 들면 몸은 늙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일흔이 넘은 노인들도 언제나 마음은 이십 대라고 하잖아요. 그게 빈말이 아니에요. 세월의 가르침을 잘 간직한 사람들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지고 깊어질 뿐, 늙지는 않아요.
청춘은 물리적인 나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에요.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거예요. 마음이 늙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청춘으로 남을 수 있어요. 모든 건 깨달음과 선택이고, 그리고 그 선택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린 거예요.
세상은 욕심과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지만, 지혜로운 이들은 그것들에서 벗어나서 늘 청춘을 누려요.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단지 깨닫지 못할 뿐이지요. 회색 신사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여유를 가져야 해요. 시간이라는 관념은 환상이고, 바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회색 신사들에게 길든 걸 의미해요.
마음은 늙지 않고, 세상에 바쁜 일은 없어요. 욕심을 버리고 순간순간을 즐기기 바라요. 그러면 아무런 걱정이 없지요. 우리들은 언제나 청춘인걸요.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it is not a matter of rosy cheeks, red lips and supple knees; it is a matter of the will, a quality of the imagination, a vigor of the emotions; it is the freshness of the deep springs of life.
Youth means a temperamental predominance of courage over timidity of the appetite, for adventure over the love of ease. This often exists in a man of sixty more than a body of twenty. Nobody grows old merely by a number of years. We grow old by deserting our ideals.
Years may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s the soul. Worry, fear, self-distrust bows the heart and turns the spirit back to dust.
Whether sixty or sixteen, there is in every human being’s heart the lure of wonder, the unfailing child-like appetite of what’s next, and the joy of the game of living. In the center of your heart and my heart there is a wireless station; so long as it receives messages of beauty, hope, cheer, courage and power from men and from the Infinite, so long are you young.
When the aerials are down, and your spirit is covered with snows of cynicism and the ice of pessimism, then you are grown old, even at twenty, but as long as your aerials are up, to catch the waves of optimism, there is hope you may die young at eighty.
<Samuel Ullman, Youth>
청춘이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열정이다. 청춘은 인생이란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한 삶을 뿌리치는 모험심이다. 때로는 스무살 청년보다 예순살 노인이 더 젊을 수 있다. 나이 먹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꿈과 희망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에 주름이 진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된다.
예순이든 열여섯이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로움에 끌리는 마음, 어린이처럼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즐거움과 환희가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속엔 마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체국이 있다. 다른 사람과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의 교류가 끊기고 영혼이 비난의 눈에 덮여 슬픔과 탄식의 얼음 속에 갇힐 때 스무 살이라도 인간은 늙는다. 고개를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여든 살이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사무엘 울만,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