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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소요유

안철수 결산, 미완의 도전

안철수 결산, 미완의 도전

무소속 대선후보 안철수가 지난 주말 사퇴했다. 민주당 후보 문재인과의 단일화 협상이 결렬되자,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후보 등록을 하지 않고 물러났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사퇴를 아름다운 양보라 했고, 어떤 사람은 감동이라고 했으며, 어떤 사람은 실패라 했다. 단일화 과정은 지리멸렬했지만, 안철수는 끝내 자기가 한 약속을 지켰다.

안철수가 살기 위한 단 한 가지 선택지가 바로 사퇴였다. 하지만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하더라도 그런 결단의 순간에 그런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안철수 스스로 “영혼을 팔지 않았다”라고 했다지만, 그 결단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그런 선례를 남겼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그리고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지난 해 가을부터 안철수는 새정치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사람들은 그의 착한 성공을 보면서 그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을지, 대통령에 출마할지 많은 관심을 보였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출마하기도 전에 그는 여야의 유력 대선후보들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이른 바 “안철수 현상”이라 불리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었다.

두달 전, 안철수는 드디어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그의 출마 선언은 많은 이들에게 새정치의 희망을 주었다. 이렇게 그의 시작은 희망이었고, 그의 사퇴는 감동이었다. 하지만, 지난 두달 간의 과정은 전략 실패와 역량 부족이었다. 박근혜와 맞서기 위해서 문재인과의 단일화는 예선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출마 직후부터 사퇴 직전까지 제대로된 전략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문재인보다 훨씬 높던 그의 지지도는 두달 사이 많이 하락했다.

안철수는 조직이 없었기에 바람으로 승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그 승부를 뒤로 미루었고, 결국 제대로된 승부도 하지 못한 채 사퇴하고 말았다. 안철수가 처음부터 국민경선으로 승부수를 띄웠다면, 그는 지금쯤 문재인 대신 박근혜와 대결을 벌이고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이 100만 국민경선을 하자고 한다면, 안철수는 1000만 모바일경선으로 맞받아했었다. 통크게 바람을 일으키면서 문재인보다 먼저 제안하고 민주당을 압박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전형적인 전략의 실패와 용기 부족이었다. 이러한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그가 제대로된 캠프를 꾸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제대로된 사람들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철수 캠프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정치 낭인들이었거나, 실제 정치 경험이 전무한 교수들 또는 전문가 집단이었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제대로된 전략이 나올 리 만무했다. 안철수는 매순간 끊임없이 계산했고, 결정을 연기했으며,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목표는 명확하지 않았고, 색깔도 선명하지 않았으며,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도 못했다. 그는 스스로를 외통수로 계속 몰아갔다.

안철수는 늘 새정치를 주장했지만, 그와 그의 캠프가 보여준 것은 전혀 새정치가 아니었다. 참담했다. 안철수가 새정치의 바람을 일으켰지만, 역설적으로 안철수는 그 새정치를 감당할만큼 역량이 되지 못했고, 준비도 부족했다. 그리하여 그의 도전은 두달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단일화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퇴함으로써 그는 희망의 끈을 소진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정치적 역량에 대해 긍정적일 수 없다. 그는 청춘의 멘토로 남는 편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나는 독심술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다만, 그가 보인 행동과 선택으로만 판단할 뿐이다. 설령 안철수가 사람들이 얘기하는 충만한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정치라는 것이 그 선한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만약 정치인으로 계속 남길 바란다면, 그는 처음부터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역량과 내공을 키워야 한다. 승부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장삿꾼의 잇속을 버려야 한다. 계산하지 말고, 국민을 믿고 원칙과 상식을 부여잡고 뚜벅뚜벅 나아가야 할 것이다.

과연 안철수가 그럴 수 있을까? 그가 절실해질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건투를 빈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사람을 선택하는 세 가지 기준

사람을 선택하는 세 가지 기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선택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물론 아주 사소한 선택들도 있고 정말 중요한 선택들도 있지만, 그러한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우리의 삶을 완성한다.

이러한 선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 많은 지원자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배우자로서 지금 이 사람은 괜찮은가? 우리 모임의 회장은 누가 되는 것이 좋을까? 대통령 선거가 코 앞인데,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을 적용하여 사람을 선택해야 할까. 특히 어떤 조직이나 나라를 이끌 지도자를 선택할 때 적용할 만한 기준은 없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을 선택할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판단한다. 첫째, 이 사람의 삶의 궤적이 어떠한지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 주는 가장 좋은 지표는 그 사람의 주요 선택들을 살펴 보는 것이다. 특히, 절박한 상황에서의 선택들은 대체로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일제시대에 일본군 장교가 되기 위해 만주군관학교에 혈서를 쓰고 입학하였다면, 그 누구도 이 사람을 민족주의자나 독립운동가로 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정권을 잡기 위해 군사쿠테타를 일으켰다면, 아무도 그 사람을 민주주의자로 보지 않는다. 또, 죽을 때까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탄압했다면,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그를 독재자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런 사람에 대해 어떤 사람이 나와서 이런 독재자의 공과 과를 나누어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친일과 군사독재에 부역했거나 또는 그런 행위를 옹호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 기준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누구나 말은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한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특히 공허한 얘기들을 하지 않는다. 매일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고, 구체적이지 않고 뜬구름 잡는 얘기들만 하며, 증명될 수 없는 언술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기꾼이거나 기회주의자일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어떤 대통령 후보가 매일매일 정치혁신을 주장하고, 새로운 정치를 해야한다고 말한다고 하자. 물론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그럼 당신이 주장하는 새로운 정치가 무엇이요?”, 또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요?” 라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국민이 판단할 겁니다”라고 대답하는 후보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인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정치혁신에 기여한 바가 없는 사람이 말만 이렇게 하고 돌아다닌다면 그는 가짜다. 사람은 말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판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이(利)에 민첩한지 아니면 의(義)에 민첩한지를 살피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 이인편에서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라는 말을 남겼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어느 조직이든 자기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기회주의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조직의 장이 되었을 때, 그 조직이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대통령이 퇴임 후 살 집을 짓기 위해 아들 명의로 땅을 샀다고 하자. 그리고 아들 명의의 땅을 싸게 사기 위해 경호처 지분을 비싸게 사려 했다면 아무도 이런 대통령을 정상적인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조그마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자기의 아들과 자신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을 피의자로 만들고 범법자로 만드는 사람을 정상적인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은 행복할까, 아니면 불행할까?

이런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하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아니 참 쉽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콩이야 팥이야 얘기를 해 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기준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오류를 저지른다. 자기를 객관화시키기가 말처럼 쉽지 않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면 이 글에서 얘기한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선택해 보시기 바란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정의롭고 공정한 후보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거에서 선택이란 일단 최악의 후보를 피하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맥북에서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맥북에서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2006년 이후로 노트북은 계속 맥북과 맥북 에어만 사용하고 있는데, 최근에 몇 가지 이유로 맥북 에어를 다시 하나 구매했다. 맥북을 사용해 본 사람들은 다른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하기 쉽지 않다. 단순하고 유려하며 견고한 하드웨어와 편리하면서도 진보된 그리고 아름다운 OS까지. 하드웨어와 OS가 원래 그런 것처럼 일체되어 있어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것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다시 Windows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맥북에 (익숙하지 않아) 거부감을 갖던 아내도 이젠 Windows 기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번에 구매한 11인치 맥북 에어에는 2GHz Intel Core i7 CPU, 8GB 1600MHz DDR3 메모리, 128GB SSD가 장착되어 있다. 이 정도 사양이면 업무를 하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맥북 에어를 구매하고 다음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Google Chrome FileZilla Twitter Skype Daum Cloud avast! Free Antivirus CCleaner Battery Health TextWrangler VLC Flip4Mac Microsoft Office Adobe Acrobat Adobe Photoshop Hancom Office Hanword Viewer R RStudio
젊은 치매 급증, 올 것이 온 것인가?

젊은 치매 급증, 올 것이 온 것인가?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30대~50대에서 치매 환자가 급증했다고 한다. 치매는 보통 노인층에서 나타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젊은 층의 치매 원인은 뚜렷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전적 요인, 심한 음주와 흡연 등에 의한 알콜성 치매, 뇌졸중 등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 그리고 알츠하이머 치매가 있다. 문제는 젊은 층의 치매 중 50~60% 이상이 알츠하이머 치매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알츠하이머 치매가 급증했다는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지난 5년간 젊은 층의 인구가 급격이 증가한 것도 아니고, 젊은 층이 음주와 흡연을 몇 배로 한 것도 아닌데, 젊은 치매 환자가 2배 이상 급증했다는 것은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여기서 잠깐 미국의 통계를 살펴 보자. 미국에서 1979년 알츠하이머로 죽은 사람이 659명인데, 2002년에는 58,785명이 같은 병으로 죽었다. 불과 24년만에 알츠하이머로 죽은 사람이 8,900%나 늘어났다.

알츠하이머와 인간 광우병은 증세로 보았을 때 매우 유사하다. 이것이 인간 광우병인지, 알츠하이머인지 확진을 하려면 죽은 사람의 두개골을 쪼개 확인해 보는 방법 밖에 없다. 예일 대학에서 알츠하이머로 죽은 환자 46명의 뇌를 쪼개 보았더니 그 중 6명이 CJD (Creutzfeldt-Jakob Disease)로 밝혀졌다. 즉, 알츠하이머로 죽은 사람의 13%가 CJD로 죽은 것이다. 피츠버그 대학에서도 알츠하이머 환자 54명의 뇌를 조사한 결과 5%인 3명이 CJD로 밝혀졌다.

미국의 알츠하이머 환자가 약 5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럼, 최소로 잡아도 그 중 5%는 알츠하이머가 아니라 CJD라는 얘기다. 20만명 이상이 인간 광우병이나 그와 유사한 질명을 앓고 있다는 얘기다. CJD도 자연적으로 백만명 당 1명 발생하는 sCJD와 인간 광우병인 vCJD로 나눌 수 있는데, 광우병(BSE,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에서 sCJD나 vCJD 모두 발병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와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로 볼 때, 확진은 안 되었지만, 우리나라 젊은 층의 알츠하이머 치매 급증에는 일정 부분 CJD가 기여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물론, 가설이긴 하지만 말이다.

2008년, 대한민국의 훌륭하신 이명박 대통령께서 국민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이시고자, 30개월 연령에 관계 없이, 살코기뿐만 아니라 각종 내장과 뼈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시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우리는 젊은 층의 알츠하이머 치매 급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소비가 젊은 층의 알츠하이머 치매 급증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최근 4~5년 사이 이 두 가지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앞으로도 젊은 층의 알츠하이머 치매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현재 이러한 추세를 막을 방법은 없다. 육식을 중단하고 채식주의자가 되면 이러한 위험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독히 운이 좋기를 매일매일 기도하든지. 대통령 선거일에 놀러가지 말고 투표를 해서 제대로 된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안철수 환상 깨기

안철수 환상 깨기

솔로몬 왕에게 두 여인이 와서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었다. 솔로몬은 칼로 아이를 나누어 두 여인에게 반 쪽씩 나누어 주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그 아이의 진짜 어머니는 아이를 죽이지 말고 다른 여자에게 주라고 애원하고, 가짜 어머니는 “우리 둘 가운데 아무도 그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그냥 나누어 달라”라고 말한다. 두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솔로몬은 진짜 어머니를 가려내어 아이를 돌려주었다. 구약 열왕기상 3장에 나오는 유명한 솔로몬 재판에 관한 이야기다.

안철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다. 그는 겉과 속이 다르다. 그는 영악하며 지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자기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고, 자기가 패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단일화에 쉽게 응할 이유가 없다. 그의 목표는 정권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솔로몬 재판에 나오는 가짜 어머니다. 아이가 둘로 나누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자기의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문재인이 포기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문재인이 포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안철수는 아쉽거나 답답할 것이 없다. 어차피 아이는 둘로 나누어질 것이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의 플랜 B로서 나쁠 것이 없다.

안철수는 역사의식도 없고, 정치에도 문외한인 데다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눈곱만큼도 기여한 바가 없다. 더구나 그는 이 나라의 0.01% 안에 드는 특권층이다. 그는 이명박 정권에 부역했던 사람이고, 그의 정치의식도 이명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철수 뒤에 이명박이 있다고 얘기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런 그가 서민을 위해 또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정권교체에 앞장서길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김칫국을 마시는 일이다. 그는 떡 줄 생각이 전혀 없다.

안철수는 연일 정치혁신을 주장하지만, 그건 그냥 해보는 이야기다. 구체적 각론에 들어가면 알맹이도 없고, 핵심을 찌르지도  못한다. 고민과 관심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밑천도 떨어진 데다가 언론 플레이로 만들어진 안철수 환상이 깨지기 때문에 토론을 기피한다.

문재인의 상대는 사실 박근혜가 아니고 안철수다. 그가 어떻게 해서든 안철수를 단일화 협상에 끌어들여 그를 주저앉힐 수만 있다면 문재인은 노무현의 유업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문재인 혼자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권교체를 원하면서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영악한 안철수도 국민을 두려워할 것이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안철수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 안철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진정한 정치혁신을 원한다면 우선 정권교체부터 해야 한다. 정권교체를 외면하면서 정치혁신을 외치는 자들은 모두 가짜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에게 솔로몬의 지혜가 벼락처럼 쏟아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절망을 대하는 자세

절망을 대하는 자세

살다 보면, 절망이 엄습할 때가 있다. 거듭된 실패와 시련으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 그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수천년 전부터 그 절망적 상황은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들의 이성으로 그 수천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논리적인 설명을 부여하기는 불가능하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라고 하늘을 원망하거나 삿대질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삶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 어쩔 것인가.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런 절망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은 이번 생에서 꼭 해야 할 숙제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절망적 상황은 또다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고, 그 상황을 극복하게 되면 사람은 한층 깊어지게 마련이다. 잘 알려진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을 보면 왜 절망이 축복인지 알게 된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일을 꾀하되 쉽게 되지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 데 두게 되나니,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나니,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써 원림을 삼으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덕을 베푸는 것을 헌 신처럼 버리라 하셨느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나니, 적은 이익으로 부자가 되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당하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보왕삼매론>
시련과 실패는 사람을 깊어지게 한다. 절망을 이겨내면 더욱 성숙해지기 마련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는 비오는 날을 몹시 좋아한다. 주룩주룩 싱그럽게 내리는 봄비도 좋고, 추적추적 쓸쓸하고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가을비도 좋다. 그런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포근하고 아늑해진다. 마치 엄마의 몸 속으로 다시 들어가 양수 속에서 유영을 하는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 비오는 날 파전이나 김치전을 먹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하고 담백한 칼국수 한 그릇도 괜찮고. 비오는 날, 고구마를 삶아 놓고 만화책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여름에는 열무김치를 좋아하고, 겨울에는 동치미를 즐겨 먹는다. 내가 더 늙기 전에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열무김치와 동치미를 담는 법이다. 아니면 마눌님께 배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가 맞는 수가 있다.^^

한때는 시를 꽤나 좋아해서 시집을 자주 들춰 보곤 했다. 백석이나, 신경림, 황지우 등의 시들을 많이 봤었다. 류시화를 오해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내공을 알고 나서 류시화의 책은 빠짐없이 본다. 지금도 책을 좋아해 줄기차게 사서 보기는 하는데, 소설이나 시를 예전만큼 보지는 않는다. 주로 건강 서적이나 종교 서적, 그리고 고전들을 보고 있다.

집에 오래된 기타 한 대가 있는데, 고등학교 때 조금 배운 기타 실력으로 반주를 하면서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긴다. 비오는 날, 기타를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 듯 노래를 부른다. 마눌님의 품평은 생긴 것에 비해 목소리는 괜찮다고 하는 편이다.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고, 어떤날과 루시드폴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이병우의 기타 연주도 좋아한다.

민중가요가 좋아 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적도 있었고, 복음성가가 좋아 교회에 다닌 적도 있었다. 젊었을 때 노래방에 자주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친구들이 “노래방집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예전에는 유행하는 노래들을 거의 모두 섭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를 먹었을 뿐더러 요즘 노래들은 듣는 이들을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한다. 쉬는 날에는 자주 산에 가려고 한다. 땀흘리며 산을 오르는 것만큼 몸을 정화시키는 것도 없을 듯하다. 제일 좋아하는 산은 계룡산인데,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태어난 곳이 계룡산 근처이다 보니 계룡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제주의 올레도 좋고, 지리산 둘레길도 좋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숲 속을 걷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혼자 걸어도 좋고, 마눌님과 같이 걸어도 좋다. 편백나무 숲도 좋고, 전나무 숲도 좋고. 숲 속을 걸으면서 나무와 바위와 얘기하는 것도 좋다.

딸아이와 같이 미야자키 할아버지의 만화영화를 자주 보곤 하는데, 토토로는 백 번도 더 본 것 같고, 나우시카도 거의 그 정도 본 것 같다. 제일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은 미래소년 코난. 그 녀석의 발가락이 너무 부러울 정도였으니까. 미야자키의 만화영화는 빠짐없이 즐겨 본다.

우리나라 영화로는 이창동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그의 첫작품인 “초록물고기”를 좋아한다. 그 당시 한석규라는 배우를 참 좋아했다. 한석규를 좋아했던 이유는 혹시 내가 (특히 내 목소리가) 한석규를 닮지 않았나하는 착각 때문이었다. 물론, 마눌님은 아니라고 하셨다. ㅠㅠ 이창동 감독의 최근 영화 “시”도 너무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외국 영화 중에는 “블레이드 러너”나 “매트릭스” 같은 SF영화들을 즐겨본다.

딸아이와 쎄쎄쎄를 자주 하는데, 요즘은 딸기아줌마 가위바위보를 배워서 놀고 있다. “딸기아줌마 딸기아줌마 주먹을 내세요 파송송 계란탁”하면서 상대방의 머리를 툭하고 치는 것이다. 가위를 내세요 하면, “파리모기 에프킬라 칙칙”하면 된다. 예전에는 공기놀이도 자주 했었는데, 딸아이는 우리동네 아빠 중에서 내가 제일 공기를 잘 할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딸아이가 나보다 공기를 더 잘 한다.

“이런 잡문을 쓰다 보니 한도 끝도 없네. 어떡하지, 지금 끝내면 아쉬워서.”

“이월해.” “이월~, 이월~, 이월~”

그래, 오늘은 그만 자고 다음에 짜투리 시간이 나면 또 쓰지 뭐. ㅋㅋ

네 가지 없는 안철수

네 가지 없는 안철수

이명박의 극악스런 사기질에 학을 뗀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는 안철수에 눈이 멀었다. 특히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 안철수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안철수의 언행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그는 결코 이 나라를 이끌고 갈 능력과 자질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말로는 역사의식이 있다고 얘기했지만, 그는 이 나라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말로는 정치혁신을 얘기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정치혁신이 무엇인지 얘기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정치혁신은 고사하고, 정권교체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는 야권 단일화에 대해 시종일관 외면하고 있다.

안철수가 정치지도자가 될 수 없는 이유, 아니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첫째 그는 색깔이 없다. 모호하다. 선명하지 않다. 도대체 누구 편인지를 밝히지 않는다. 언뜻 보면 야권 후보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다. 민주당과 비슷한 노선인 것처럼 말은 하지만, 새누리당과도 같이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민중의 편인 듯 하지만, 사실은 특권층에 공고히 발을 딛고 있다.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자신의 정치 철학과 노선을 분명히 하는 것이 우선인데, 안철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손석희의 말처럼 “정치인은 메세지를 투명하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는 늘 연막을 친다. 조금만 난처한 질문을 대하면 “국민이 판단”할 거라고 슬쩍 비켜 나간다. 사실 이런 사람이 제일 위험한 법이다. 냄새는 그럴 듯 하게 풍기지만, 결국에는 뒷통수를 치는 스타일이다.

둘째 안철수는 경험이 없다. 실패해 본 경험이 없고, 절망해 본 경험이 없다. 남을 위해 싸워본 경험도 없고, 공적인 일을 해 본 경험도 없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기업을 세워 성공했지만, 그것만을 가지고는 정치지도자가 될 수 없다. 그가 정치를 할 생각이 있었으면, 지난 총선에 출마했어야 했다.

유시민의 표현을 빌자면, “정치는 야수의 탐욕과 싸우기 위해 짐승의 비천함을 겪으면서 성인의 고귀함을 추구하는 것”이라 했다. 안철수는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야수의 탐욕과도 싸우려 하지 않고, 오로지 성인의 고귀함을 말로만 추구하고 있다. 안철수가 주장하는 무소속 대통령은 본인조차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반장 선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 투쟁”이다.

셋째, 안철수는 정치인으로서의 내용이 없다. 알맹이가 없다. 공허하다. 그의 대선출마선언문, 비전선언문 모두 읽어 보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정치혁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냥 좋은 말들일 뿐이다. 단일화의 조건으로 민주당에 요구한 정치혁신 또한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도대체 어떤 정치혁신을 해야만 단일화 협상에 응할 것인지 며느리도 모른다.

말이 힘을 가지려면 그것이 행동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는 행동으로 보여준 적이 없다. 그의 정치적 언술은 내용도 없지만 그의 행동과도 맞지 않는다. 물론, 그가 정치인이 아니었기에 실천을 요구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지만, 그가 출마선언을 하고 보여 준 박정희 참배, 국회의원 철새 만들어 빼오기 등은 결코 정치혁신이 아니다.

넷째, 이명박 비판이 없다. 노무현을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지만, 이명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다. 그가 미래기획위원으로서 이명박 정권에 부역했다는 사실도 얘기하지도 않는다. 노무현에 대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빈부격차의 심화는 굉장히 큰 과”라고 또렷히 얘기하는 사람이 이명박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재벌의 경제력 심화와 빈부격차로 말하자면 이명박을 당해낼 사람이 없는데, 혹시 이명박이 두려워서 말을 못하는 것일까?

이런 네 가지가 없는 안철수의 언행을 면밀히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안철수는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는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설령 단일화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안철수로의 단일화지, 문재인으로의 단일화는 아니다. 따라서, 안철수는 야권 후보가 아니다. 안철수는 오히려 (이명박을 포함한) 이 나라의 기득권층이 내놓을 수 있는 (박근혜보다도 훨씬 더) 매력적인 후보일 확률이 높다.

계산은 이미 끝났다. 안철수 입장에서 이번 대선출마와 완주는 전혀 밑질 것 없는 장사다. 다만 정권교체를 우선으로 바라는 사람들은 앞으로 전개될 답답한 상황 하에서 적어도 안철수를 지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 맑고 선한 기회주의자들

참 맑고 선한 기회주의자들

사람을 판단할 때 중요한 것 하나는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궤적을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사람의 말과 행동이 과연 일치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안철수는 기성 정치권 특히 민주당에 정치 쇄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새로운 정치라는 것은 여전히 모호하다. 지금 있는 민주당 지도부를 바꾸라는 것인지, 아니면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으로 탈바꿈하라는 것인지 구체적이지 않다. 그는 이렇게 모호한 정치 쇄신을 단일화의 조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그가 어떤 정치 쇄신을 얘기하는지 알기도 어렵지만, 설령 그것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민주당이 대선 전까지 과연 쇄신을 해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세우고 단일화를 말한 것이고, 그것은 곧 단일화에 별 관심이 없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연일 정치 쇄신을 요구하는 안철수가 어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송호창을 자신의 선거 캠프로 맞아들였다. 그러면서 이들이 했던 말들을 보면 개그콘서트보다 웃기다.

송호창 왈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낡은 정치세력에 맡기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안철수 왈 “참 맑고 선한 힘이 더해졌습니다.”

도대체 뭐하자는 씨추에이션인가? 촉망받던 초선의원 송호창은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공천해 준 정당을 낡은 정치세력이라 일컬으며 비수를 꽂았다. 그리고 본인은 제2의 김민새가 되고 말았다.

물론 송호창이 안철수를 지지할 수도 있고, 안철수를 위해 선거운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송호창이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민주당을 탈당하고 안철수 캠프로 옮기기 전에 국회의원직을 먼저 사퇴했어야 했다. 그것이 국민들에 대한 예의이고,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정치의 시작일 수 있다.

안철수는 민주당 사무총장이었던 박선숙과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송호창을 빼내갔다. 그들이 민주당에 있으면 쇄신의 대상이고 낡은 정치 세력이지만, 민주당을 탈당하고 안철수를 지지하면 “참 맑고 선한” 사람들이 되는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결국 안철수 얘기하던 새로운 정치는 김민새 식 기회주의 정치였던 셈이다. 새로운 정치를 운운하려면 너희들의 기득권부터 버리는 것이 먼저 아닐까.

세상은 안철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식의 기회주의적 행태로는 정치 쇄신은 커녕 정권 교체도 이룰 수 없다. 안철수가 과연 정치 개혁은 고사하고, 정권 교체에 관심이나 있는지 그것조차 의문이다.

안철수가 위험한 이유

안철수가 위험한 이유

지난 해 서울시장 선거 직전부터 갑자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안철수가 드디어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그동안 그를 알기 위해 언론에 드러나 있는 그의 행적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여전히 그는 모호하고 불확실하다. 그는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회색이다. 그의 대권 도전이 희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뭔지 모를 불안감을 불러온다. 찝찝하다.

정치인이나 공인으로서 보여준 것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력 후보인 박근혜, 문재인과 충분히 겨룰만한 지지율을 보인다. 물론 이명박이 보여준 극악함의 반동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대권 후보로서의 첫번째 행보인 현충원 참배에서 그가 가진 역사의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박근혜, 문재인과 차별화된 전략을 보인다면서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박태준의 묘역을 참배했다. 그러면서 “역사에서 배우겠다”고 했다. 공은 공대로 계승하고 과는 과대로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 해 서울시장 선거 직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얘기를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의 물결이다, 저도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라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의 현충원 참배를 보면서 “그는 과연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 박정희 묘역을 참배하면서 공과를 운운하는 것일까? 정말 박정희의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박정희는 군부쿠데타의 주역이고, 군부독재를 18년이나 자행한 독재자다. 헌법을 유린하고, 종신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뿐인가.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장교가 되기 위해 일본왕에게 혈서를 썼던 자고, 해방이 되어서는 남로당의 군총책으로 활동하다 투옥이 되기도 했던 우리 현대사의 으뜸가는 기회주의자다.

도대체 박정희의 삶에서 무엇을 배우겠다고 그를 참배한단 말인가? 히틀러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히틀러의 묘역을 참배해야 하는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과오를 알기 위해 과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하는가? 박정희 참배는 히틀러 참배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다름없는 행위다.

인혁당 사건으로 하룻밤에 사형당한 고인들과 유가족이 과연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아직도 장준하의 혼이 구천을 맘돌고 있는데, 어디서 박정희의 공을 운운한다 말인가.

참배는 고도의 상징을 내포한 행위다. 더군다나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참배는 더욱 그렇다. 안철수의 박정희 참배는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의 행위는 아니다. 대권 후보 안철수의 첫번째 행보는 낙제점이다.

12월에 대선이 치뤄질 때까지 안철수에 대해 몇 편의 글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글들이 정말 기우였으면 좋겠다. 착한 안철수가 정말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 안철수가 정말 힘을 보탰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더욱 궁금한 것은 그가 출마선언을 하면서 “정권교체”라는 말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과연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지 않을까? 안철수는 민중의 편일까? 안철수는 정권교체에 힘을 보탤까?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