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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소요유

젊은 의학도, 김민섭 님의 댓글을 읽고

젊은 의학도, 김민섭 님의 댓글을 읽고

이 글을 쓸까말까 망설였다. 하지만 그가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그에게 나의 의견을 들려주고 싶었다. 이 글은 그를 비난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에 대한 관심과 기대, 그리고 삶을 조금 더 살아본 사람으로서의 주제넘은 충고라고 해 두자.

우선, 그를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답답한 의사협회”라는 글을 통해 복지부 의료법 개정안이 가지는 의료 시장주의 문제를 지적했다는 것이다. 의사협회에서는 의료법 개정안에 반대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추론해 보건대, 의사협회는 밑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언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복지부 안대로 하면 의사들의 수입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김민섭 님은 의료 시장주의가 가지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의사협회가 답답하다고 얘기했다. 당당한 그의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런데,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가 의사들의 시위를 옹호내지는 변호하면서 들고 나온 논리다. 내가 보기에 지금 의사협회에서 주장하는 반대 논리는 지극히 지엽적인 것이고, 국민의 건강 주권과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김민섭 님은 복지부의 개정안 특히, 투약이나 간호진단 같은 것이 의사의 직업적 자존심을 건드렸기에 의사들이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선 것이라 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특권의식이다. 젊은 의학도의 논리에서 묻어나오는 특권의식이 나를 씁쓸하게 만든다.

의사의 직업적 자존심. 이건 의사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환자들과 국민들에게 신뢰를 쌓아가면서 만들어지는 나가는 것이다. 투약이나 간호진단이라는 법률 용어가 의료법에 들어가고 안들어가고 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의약분업을 반대하면서 의사들이 보여주었던 행태들이 그들의 직업적 자존심을 깎아내렸다. 의사들 스스로 의사라는 직업을 단지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으로 격하시켰다. 지금 의사들이 자기들의 자존심이 상처받아서 할복한다고 할 때 몇명의 국민이 지지하고 공감할 것인가? 할복하면 뭉개진 자존심을 다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에서 약자는 환자들이다. 몸이 아픈 환자들의 처지에서 의사의 진단과 처방은 거의 절대적이다. 만약 의사들의 진단과 처방이 잘못 되어 환자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거나 환자가 사망하였을 때 환자나 유가족은 보상 받아야 하는데, 의료 소송을 해도 우리나라에서 환자가 이길 확률은 지극히 낮다. 잘못을 저지른 의사의 실책을 증언해 줄 다른 의료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어서 동료의사의 잘못에 대해 침묵하고 의료 기록 위변조 하는게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나?

또 하나의 문제는 의료서비스의 독점하려는 의사들의 태도다. 솔직히 얘기해 보자. 의사들은 한의학이나 자연의학 대체의학 등을 의학으로 인정하나?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직 현대 서양의학을 전공한 사람들만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나는 의료 서비스가 좀 더 다양화해야 하며, 대체의학과 자연의학 중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들은 제도권으로 편입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와 같은 주장이 의료법에 반영이 되었을 때, 의사협회는 또 사회주의 주사파 의료법이라 외치면서 할복할 것 아닌가.

의사들이 국민들의 불신을 극복하려면 먼저 겸손해져야 한다. 환자의 고통을 온몸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 죽도록 아파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없다라고 얘기한 어떤 의인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직업적 자존심 때문에 의사들이 거리로 나섰다는 말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왜 사람들이 그런 눈으로 보는지 먼저 반성해 볼 일이다. 물론 개인 면면을 보면 훌륭한 인격을 가진 의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집단이 어떻게 비춰지고, 인식되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권의식을 버리고, 좀 더 겸손하며, 환자의 손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그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의사. 김민섭 님이 그런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

안중근 의사가 되고 싶었던 의사 선생님

안중근 의사가 되고 싶었던 의사 선생님

“사회주의 주사파 의료법을 깨부수자”며 모인 의사 선생님들의 집회에서 한 의사 선생님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정말 훈훈한 미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비난 열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서울시의사회 소속 한 의사가 할복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서 경과보고를 하기로 돼 있던 좌훈정 서울시의사회 홍보이사는 연단에 오르지도 않은 채 즉석에서 테이블과 수술칼을 준비해 “혈서를 쓰겠다”며 할복했다.

좌훈정 의사 선생님은 할복한 후 손바닥에 피를 묻혀 흰 천에 도장을 찍었다. 혹시 안중근 의사를 본받기 위해 한 시도였을까. 안중근 의사의 그 의사는 좌훈정 의사의 그 의사가 아닐텐데 말이다. 진정 안중근 의사를 따라 할 요량이었으면, 어설픈 할복보다는 왼손 약지 한마디를 끊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가 도대체 흰 천에 쓰려고 했던 혈서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의사들이 국민의 건강권을 볼모로 밥그릇 지키려 하는 것, 지난 의약분업 때 신물이 나도록 보아왔다. 진정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는 의사들이라면 지금 현대의학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안중근 의사와 병 고치는 의사를 구분 못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의 기득권층이 보이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부끄러워 할 줄 모른다는 것. 이 집회에 참석한 의사 선생님들이 그렇고, IMF를 불러오고도 참여정부가 경제 파탄의 책임을 지라는 한나라당이 그렇고, 친일과 독재 부역으로 점철된 조중동의 적반하장이 그렇고,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는 전직 장성들이 그렇고…

한국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따지는 것만큼 공허한 일이 있을까.

입춘에 읽고 싶은 시

입춘에 읽고 싶은 시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봄>

올해는 봄이 더디게 오지 않았다. 겨울을 건너 뛰고 서슴없이 오고 말았다. 따뜻한 겨울을 좋아하긴 하지만 올 겨울은 좀 너무하단 생각이 든다. 그래도 봄이 오는 것을 마다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지랭이 피어오르는 들판이 아련하다.

박근혜, 피는 콜라보다 진하다

박근혜, 피는 콜라보다 진하다

인혁당 사건 유족들에게 위로할 생각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나라당 대선 후보 박근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안타깝다.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그러면 법 중 하나가 잘못 된 것 아니겠냐?”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는 안타깝단다. 단지 안타깝단다. 자기 아버지 박정희가 간첩 누명을 씌워 사형판결 후 18시간만에 죽인 사람들에게, 그리고 30년 넘는 세월을 눈물로 보냈을 유가족들에게 한마디 미안하단 말도 없이 단지 안타깝단다.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 수 있을까. 이런 천인공노할 여자(여자라고 하기에도 너무 잔인한 자)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

박근혜가 한 말의 의미는 유신시대의 법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인혁당에 연루되어 사형당한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지금의 법은 그리고 지금의 정부는 자기를 음해하기 위한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때 박정희에 의해 죽은 사람들은 죽어도 마땅한 사람들이었으며 그 사람들을 죽인 자기 아버지는 정당했다는 말이다.

박정희는 수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몇 십년 후퇴시킨 독재자일 뿐이다. 정말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이라면 아버지가 지은 죄를 평생 용서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살인범이자 독재자인 아버지를 더욱 욕되게 만드는 딸 박근혜.

무섭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할 것인가. 단 한 사람의 가슴을 어루만질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가. 박근혜의 대선 출마는 기네스북에 오를 적반하장이다.

박근혜에게는 독재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일본군 장교였던, 남로당 군총책이었던 아버지의 친일의 피가 기회주의자의 피가 그리고 배신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 피는 역시 콜라보다 진하다는 것을 박근혜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어찌 한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덤비는가. 대한민국이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정신차려라.

진도아리랑을 따라 멀리 간 친구에게

진도아리랑을 따라 멀리 간 친구에게

남도의 겨울은 하릴없이 따뜻했다. 바다 바람은 거셌지만 그 속에서 봄내음을 느낄 만큼 겨울은 저만치 멀어져 갔다. 동백은 좀 이르다 싶게 꽃을 피웠고, 그 꽃의 붉은 빛에 하늘은 높았다.

흔들리는 갈대와 푸른 배추밭 사이로 친구는 잠들어 있었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비석에는 그를 보내는 남편의 짧은 글귀가 서럽게 새겨져 있었다. 친구가 남기고 간 세 아이의 이름이 눈에 시렸다. 엄마 없이 살아야 할 녀석들의 시간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슬픔은 언제나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다. 친구와 함께 보냈던, 함께 나누었던 시간과 언어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두터운 봉분 속에 누워있는 친구가 그리웠고, 그 흙의 두께조차 감당하지 못한 우리들의 부질없음이 야속했다.

진도의 개들은 허공을 보고 짖어댔고, 배추밭에 엎드려 있는 아주머니들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아리랑을 흥얼거렸다. 그 노래를 뒤로 하고 우리들은 기약 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약산 동대 진달래꽃은
한 송이만 피어도 모두 따라 피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나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
떨떨거리고 내가 돌아간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치어다보느냐 만학은 천봉
내려굽어보니 백사지로구나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만경 창파 둥둥 뜬 저 배야
저기 잠깐 닻 주거라 말 물어 보자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너무나 아쉬운 대통령의 신년 연설

너무나 아쉬운 대통령의 신년 연설

대통령의 신년 연설을 지켜 본 소감은 너무 안타깝고 아쉽다는 것이다. 한 시간 안에 그동안 이루어 놓은 것, 오해받고 있는 것을 다 얘기하려고 한 대통령이 안타까웠고,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웠다.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의 최후의 지지자로서 그 심정 백 번 천 번 이해하지만, 이번 연설은 너무 과욕이었다. 10시간도 넘게 얘기해야 할 분량을 단 한 시간 만에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답답한 마음 잘 알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국민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어차피 구체적인 자료는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개하면 될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한 두가지 문제에 집중해서 연설을 준비했어야 했다. 한 시간이면 그 한 시간을 어떻게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할지 연설 전략을 세워야 했다. 청와대 연설 비서진들이 이런 것도 모르지는 않았을텐데 참 아쉽다. 연설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대통령의 장점이 부각되지 못했다. 시간에 쫓기는 모습 또한 프로페셔널이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한 일이 너무 많지만 국민에게 알려진 부분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기획이 된 것 같은데, 오히려 전달이나 소통의 효과는 높지 않았다. 차라리 지난 번 민주평통 연설이 훨씬 짜임새있고 노무현다웠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선택과 집중으로 좀 더 전략적인 연설을 기획해야 한다. 할 말이 많으면 말 할 기회를 많이 만들면 된다. UCC는 네티즌만 만들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 강의 시리즈를 기획해서 청와대 홈페이지에 동영상으로 올리면 될 일 아닌가. 너무나 많은 일을 하고도 국민들에게 오해받고 핍박받는 대통령. 당신을 뒤에서 묵묵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힘내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하고자 했던 일들을 끝까지 마무리지하십시오. 누가 뭐라 해도 당신은 대한민국의 그리고 나의 대통령입니다. 할 말이 너무 많았던 대통령을 위로하며, 그의 노고에 감사한다.
WordPress 2.1 “Ella” 드디어 나오다

WordPress 2.1 “Ella” 드디어 나오다

기다리던 WordPress 버전 2.1 “Ella”가 나왔다.

이번 버전에는

  1. Autosave
  2. Tabbed Editor
  3. Lossless XML import and export
  4. Spell Checking
  5. New Search Engine Privacy Option
  6. Upload Manager
  7. New Akismet Plugin

등의 기능이 추가되었다.

그 밖에 어떤 페이지든 홈페이지로 위치시킬 수 있고, 많은 AJAX 기능 등이 추가되었으며, Login 화면 등도 새롭게 디자인 되었고, 데이타베이스 또한 더 효율적으로 설계되었단다.

그동안 블로그에서 사용하던 플러그인들이 2.1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호환되었으면 좋겠다. 끊임없는 개발팀의 노고에 감사하며, 얼른 사용해 봐야겠다.

연예인 자살로 본 우울증 치료의 허와 실

연예인 자살로 본 우울증 치료의 허와 실

젊고 예쁜 여자 (연예인)들의 자살은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고 안타깝게 만든다. 영화배우 이은주가 그랬고, 어느 재벌의 막내 딸도 그랬으며, 어제 가수 유니의 경우도 그랬다. 모두 우울증(depression)으로 인한 자살이란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렇게 젊은 여자들이 왜 세상을 등지고 있는가.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도 꿋꿋하게 살아가는데 나름대로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왜 그럴까. 우울증은 그렇게 무서운 병인가.

통계를 보니 전체 자살하는 사람의 66%가 우울증과 관계가 있고, 우울증은 여자가 남자보다 2배이상 많이 걸린다고 한다. 하긴 언론에 오르내리는 연예인들의 자살 중 남자의 경우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은 많이 나와 있는데, 이 약들이 그리 효과가 있지 않은 모양이다. Prevention & Treatment에 게재된 연구를 보면 우울증 치료하는 약이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지 플라시보 효과 (Placebo Effect) 정도의 효능만 보이는 모양이다. 유니의 어머니도 인터뷰에서 우울증 약을 먹어서 우울증이 다 나았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울증에는 오메가-3 지방산이 좋다는 연구가 있다. 따라서,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생선이나 기름을 많이 먹는 것이 좋다. Fish Oil 이나 Flaxseed Oil도 오메가-3를 많이 함유하고 있다. 그리고 규칙적인 운동이 약보다도 더 효과가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다. 따라서 음식으로 고칠 수 있는 질환은 먹는 음식을 조절해서 고치는 것이 낫다. 몸에 좋은 채소와 기름들은 대체로 몸을 건강하게 하고 대부분의 질병에 효과를 보인다. 그리고 지속적인 유산소 운동, 걷기와 자전거 타기, 수영 등이 우울증에 권할만한 치료방법들이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그리고 증명되지 않은 거지만), 규칙적인 봉사활동도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도와주면서 함께 희망을 찾아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한 번 연구해 볼 만한 과제인 것 같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면 우울증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우리 잘 먹고 잘 살자. 세상은 살아볼만한 곳 아닌가.

블로그의 힘, 인터넷의 힘

블로그의 힘, 인터넷의 힘

내가 블로그 하는 이유는 그냥 내 생각을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어쩌다가 내 블로그에 들른 지나가는 블로거들과 네티즌들에게 그냥 세상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 얘기들이 공감을 얻기도 하고 때론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글쓰기와 생각의 공유가 가져다 주는 매력이 제법이다.

내가 쓴 글 두 편, “아직도 유신시대를 살고 있는 한나라당”“나는 최후의 노무현 지지자”서프라이즈 대문과 울트라뷰에 올랐다. 나는 한 번도 서프라이즈에 글을 쓴 적이 없지만, 내 글에 공감하시는 어떤 분이 그 곳에 퍼다 놓은 모양이다.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고 공감을 해 주셨다. 특히 “나는 최후의 노무현 지지자”는 올블로그가 집계한 2006년 100대 포스트 중 1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서민이 저명한 지식인인 강준만이나 손석춘, 최장집처럼 어느 신문에 지면을 얻어 글을 올릴 수는 없다. 하지만 블로그와 인터넷이 있기에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고 때때로 공감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술이 가져다 주는 권력의 분산과 이동이라 생각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이제는 글을 실어주는 지면이 문제가 아니라 글이 가지는 논리의 단단함이 문제다. 글을 얼마나 더 세련되게 포장하느냐보다 글의 논조가 얼마나 상식과 원칙에 부합하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유명한 지식인들만큼 공부하고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당당하다는 면에서 그들에게 꿀릴 것은 없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언론들이 자기들 맘에 드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또 혈안이 될 것이지만, 블로거들과 네티즌들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예상은 블로거와 네티즌들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 같다. 기존 언론과 블로거들의 대결, 이것이 올 대선의 또다른 특징이 될 것이다.

나를 구토하게 만드는 사람들

나를 구토하게 만드는 사람들

이들이 쓴 글이나 인터뷰를 보면 구역질이 난다. 아주 똥밟은 기분이다. 드럽다. 차라리 수구꼴통으로 일관하는 정형근, 김용갑 등이 훨씬 담백해 보인다.

한 때 언론개혁에 누구보다도 앞장 섰던 강준만, 손석춘, 그리고 우리나라 진보학계의 거두 최장집. 이들이 최근 내놓은 글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비겁하고 위선적이며 이중인격자들인지 알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때까지만 하더라도 친정부적 성향을 보이던 이들이 노무현 등에 칼질을 해대는데 그 교활함과 논리의 허접함이 조중동을 능가한다. 반노도 이런 반노가 없다. 아주 비열하다.

강준만은 한겨레21에 기고한 [한겨레의 기이한 침묵]이라는 글에서 한겨레가 지난 4년간 노무현 정부에 대해 거리두기를 실패했다고 질타한다. 아주 시리즈 기획을 만들어 노무현 정부를 까대라고 충고하는 글을 보고 첫 번째 오바이트가 쏠렸다. 조중동에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선전하고 다녔던 그가 조중동을 옹호하며 조중동에게 공격당할 꺼리를 제공하는 노무현이 문제라며 발끈하는 센스. 마치 성폭행 피해자가 (예를 들면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는 이유로) 성폭행 당할 꺼리를 제공했다며 성폭행한 놈을 변호하는 논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한겨레에 훈장질을 해댄다. 이 때문에 성한용이 조중동을 능가하는 웃긴 기사를 쓴지도 모를 일이다.

손석춘은 한겨레에서 짤렸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최근 오마이뉴스로 옮겨서 그의 허접함을 과시하고 있다. 대부분 진보진영의 진영논리가 그렇지만 손석춘은 신자유주의, FTA, 미군 기지 이전, 이라크 파병 아니면 할 얘기가 없는 모양이다. 오로지 노무현을 까기 위해 신자유주의와 미국을 들먹인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손석춘을 비롯한 진보들은 우리나라가 신자유주의를 거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미국과 대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그들이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대안이 뭔지 얘기하는 것을 들을 적이 없다. 미군을 당장 철수시키자고? 작통권 환수하자는 것도 난리치는 국민들이 한둘이 아닌데 지금 미군 철수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일은 다 때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작통권을 환수할 수 있을 만한 때지만 미군을 철수시킬만하게 우리 사회가 무르익지 않았다. 노동운동을 하는 노조라고 다 선이 아니다. 왜 손석춘은 노무현 정부가 노동운동을 탄압한다고 목청을 높이면서 왜 노조의 비리에는 침묵하는가. 최근 현대차 노조의 행위가 상식적이라고 보는가.

최장집의 한겨레 인터뷰는 화룡점정이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으니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것은 당연하단다. 이 정도 인식 수준으로 어떻게 논문을 쓰고 교수질을 하는지 어안이 벙벙하다. 일부러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냥 한나라당으로 입당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지지자의 신뢰를 잃었고 객관적 사회 경제 지표가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정부임을 증명한단다. 당신이 노무현을 지지한 때도 있었던가? 김대중 정부 때는 신자유주의 안 했나? 노무현 정부의 객관적 경제 지표는 역대 최고임을 정말 모르는가? 난 지난 4년간 한 순간도 노무현 정부에 대해 실망한 적이 없다. 그가 원칙과 상식, 신뢰를 저버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최장집에게 경고한다. 함부로 얘기하지 마라.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고? 우리 20년 아니 10년 후에 다시 한 번 얘기해 보자. 당신 얘기가 맞는지 내 얘기가 맞는지. 난 노무현 정부가 이룩해 놓은 정책과 비전이 적어도 10년 후에는 다시 평가받으리란 것을 안다. 내기할까?

지금 진보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아직 이념으로 사고하고 정치할 수 있을 단계가 아니다. 아직 친일과 독재 세력도 청산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아닌가. 이념 정당이라고는 민노당 밖에 없는데 이들의 수준이 한나라당과 대동소이하지 않은가.

친일 독재 세력이 정리되어야 하고 언론이 개혁되어야 한다. 그리고 통일이 된 연후에 우리도 유럽처럼 좌우가 균형을 갖춘 제대로 된 정치세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노무현이 얘기하는 가치들 상식, 원칙, 반지역주의, 실용적 경제 운용 등이 훨씬 유용하고 현실적이다.

강준만, 손석춘, 최장집. 그동안 당신들이 쌓아온 소중한 공적들을 제발 허물지 말라. 그리고 노무현을 도와달라. 지향이 달라 돕지 못하겠다면 제발 그 입이라도 다물라.

당신들의 입냄새 때문에 오늘도 구역질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