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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소요유

아직도 유신시대를 살고 있는 한나라당

아직도 유신시대를 살고 있는 한나라당

정말 머리가 나쁜 건지 개념이 없는 건지 아니면 영원히 야당이 되기로 작정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정당이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이 한 네티즌이 올린 “한나라당을 빛낸 108명의 위인들’에 대해 발끈하며 선관위를 동원하여 탄압에 나섰다.

이 노래는 한나라당의 전현직 의원들에 대한 풍자다. 그들이 그동안 저지른 어처구니 없는 일들에 대해 빗대어 한 번 웃어보자고 만든 것이다. 물론 그 속에 그들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지만 재미를 공감할 수 없으면 풍자가 아닌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나 양반들의 언행을 풍자하여 많은 서민문학이나 광대들의 놀이가 있지 않았는가.

이 정도 풍자조차 용인하지 못하는 공당이 정권을 잡겠다고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하다니. 웃긴다. 국민들이 자기들을 좀 희화화해서 재미를 좀 본다고 다 고소할 작정인가. 법적 조치로 네티즌들의 입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가. 그러고도 올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한나라당이 만에 하나라도 정권을 잡는다면 우리 블로거들은 매일 국정원의 검열을 받아야 할 것 같다. 하루에도 수백 건의 글과 동영상이 삭제될 것 같다. 아니 인터넷 전체가 통제될 것이고, 연일 수천명의 네티즌들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그리워하고 찬양하는 박정희 시대에는 수 많은 문인들의 책이 판금되고 가수들의 노래가 금지곡이 되었다. 지금 한나라당은 그 시대의 어두움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한나라당에 충고한다. 정말 다시 정권을 잡고 싶다면 네티즌을 탄압하는 행위를 당장 중지하라. 그리고, 제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좀 탑재해라. 쿠데타가 아니면 정권을 잡을 수 없는 정당이라는 소리를 또 듣고 싶나.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한나라당, KIN!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억압하는 한나라당, KIN!!!

항생제가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진짜 이유

항생제가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진짜 이유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스웨덴 어린이보다 5배 이상 항생제를 많이 먹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겨레가 오늘 보도한 바에 따르면, 7살 미만 어린이 천 명당 약 46명의 어린이가 매일 항생제를 먹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우리나라 병원에서 항생제 처방률을 바탕으로 항생제 남용 통계를 내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항생제 사용량이 밝혀진 것이다.

항생제는 양면의 날을 지니고 있다. 항생제의 개발로 세균으로 인한 질병들이 많이 사라졌고,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약의 남용은 우리 인류에게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항생제로 치료가 되지 않는 수퍼 세균의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수퍼 세균 감염으로 병원 무균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 있다.

항생제 개발 속도보다 새로운 세균의 출현 속도가 빨라지면 인류 생존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 세균들은 우리 생각보다 더 지능적이다. 이것들은 생존을 위해 변이한다. 항생제에 견디기 위한 개체로 끊임없이 자가 변이하는 것이다. 이것이 항생제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위험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은 우리 피부에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항생제가 위험한 이유, 특히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이유는 항생제가 어린이들의 면역을 크게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어린이 아토피, 천식, 알러지 등 면역계 계통의 질환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항생제 오남용이다.

항생제를 먹게 되면 병을 일으킨 세균 뿐만 아니라 장에 있는 많은 세균들을 죽이게 된다. 알다시피 우리 장에는 1.5Kg이 넘는 세균들이 있다. 이 중에는 몸에 좋은 세균 (유산균 같은 것)과 나쁜 세균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항생제의 복용으로 이러한 균형이 쉽게 깨질 수 있다.

항생제는 특히 Leaky Gut Syndrome (LGS)이라는 ‘새는 장 증후군’의 주요 원인이 된다. 이 증후군은 장벽이 약해져서 몸 밖으로 나가야 할 독소와 불순물들이 몸 안으로 역류하여 생기는 모든 증상들을 말한다. 우리 인체에 있는 면역 세포 중 약 70%가 장에 있는데 이러한 물질들이 장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오면 몸의 면역은 과잉 반응을 하게 된다. 몸의 해독 작용을 맡은 간장 등에 과부하가 걸리게 되고, 피부나 폐가 간의 역할을 돕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게 되는 대표적인 증상 중의 하나가 아토피성 피부염이다.

따라서 항생제 오남용은 아토피성 피부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가끔 청국장이나 유산균이 아토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식품들이 장을 튼튼히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열이 나거나 가벼운 감기에 걸렸다고 병원에 데리고 갈 필요는 없다. 의사들은 부모가 빠른 회복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항생제와 같은 센 약으로 가벼운 증상을 치료하려 한다. 그러므로 의사들의 각성도 필요하지만 부모들의 의식 전환이 아이들 건강에 급선무라 할 것이다.

한겨레, 드디어 조중동을 넘어서다

한겨레, 드디어 조중동을 넘어서다

아침마다 한겨레가 내 기분을 더럽게 만든다. 한동안 조중동 프레임으로 사설을 쓰더니 오늘은 드디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조중동보다 더 조중동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한겨레의 목표라면 축하할 일이다. 그렇다고 한겨레가 수구세력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을 것 같지도 않고 돈도 많이 벌 것 같지도 않다. 오늘 성한용 선임 기자의 ‘참모’는 간데 없고 ‘비서’만 나부껴라는 소설은 한겨레가 드디어 조중동을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마치 변절한 이재오, 김문수가 정형근, 김용갑보다 더 수구스럽고 더러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소설의 제목부터 아주 염장을 지르고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의 한 소절을 따다가 청와대를 비꼬는 솜씨가 조선일보 김대중이 울고 갈 정도로 비열하다. 사진을 보면 더욱 더 가관인데 마치 3공 5공 시절 간첩단 사건의 조직도를 보는듯 하다. 대통령의 사진만 가운데 집어넣었으면 아주 훌륭한 반국가단체의 조직을 연상시킬 정도니까. 성한용 기자의 주장은 청와대가 섬이 되었고 민심의 바다위에 외로이 왕따를 당하고 있으며 그 책임은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들에게 있다라는 것인데 그 근거는 기자의 상상과 편견에서 나온다. 이런 것을 기사라고 할 수도 없고 칼럼이라고 할 수도 없어 나는 그냥 소설이라고 부른다. 기자는 이 소설에서 노무현의 즉흥성이 문제이며, 청와대 사람들이 집단 최면에 걸려 있고 책임을 지지 않으며, 비서진은 대통령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는 아부꾼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기자가 자기 꼴리는대로 청와대를 비하하고 있다. 이건 비판도 비난도 아닌 비하다. 대통령이 아무리 기자회견과 간담회를 통해 청와대 여론수집 점검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 있다라고 중언부언 설명해도 모르쇠다. 그냥 자기들이 쓰고 싶은대로 쓰고 까고 싶은대로 깐다. 아무런 분별력도 없고 그냥 증오만 보일 뿐이다. 이런 쓰레기 소설을 한겨레신문에서 보는 기분은 참으로 참담한 것이다. 대학시절 한겨레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성한용 기자나 편집부가 만분의 일이라도 안다면 이렇게 용기있게 이런 쓰레기를 인터넷판 톱기사로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가 보는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상이며 역대 어느 정부보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특권을 배격하고 상식과 원칙에 입각해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 민심을 호도하고 여론을 조작하며 국정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한겨레와 조중동을 포함한 언론 아니 얼논이다. 당신들의 편견이 민심이라고 우기지 말고 그냥 우리 솔직하게 얘기하자. 노무현의 개혁, 참여정부의 성공이 싫다고. 한겨레가 초심을 찾을 수 있을까. 이제는 선을 넘은 것 같다. 기대를 접고 한겨레를 북마크에서 지운다.
우리나라에 언론은 있는가

우리나라에 언론은 있는가

정확하게 얘기해서 2007년 1월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언론이라 불리울 수 있는 집단이 존재하는가. 감히 단언하건대, 우리가 알고 있는 언론 집단은 없다. 다만 사주의 이익과 특권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언론을 가장한 집단과 진보임을 앞세워 진영논리를 재생산하는 집단들만이 존재한다.

어제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언론에 대해 한마디 한 것을 가지고 전체 언론이 일어섰다. 감히 대통령 주제에 언론에게 덤벼. 이런 분위기로 모든 신문들이 일어섰다. 그들의 비분강개는 마치 독립운동을 보는 것 같다. 이제는 조중동 뿐만 아니라 한겨레와 오마이뉴스까지 가세했다. 언론이 담합했다라는 대통령의 말이 그들의 심기를 몹시 상하게 한 모양이다. 자기들은 1년 365일 대통령의 말을 비틀고 왜곡하면서 한마디 들었다고 다들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하다.

이들은 언론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사실 전달조차 포기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정파적 이익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집단들을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 신문을 만드는 작자들이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며 더 나아가 정치권력을 창출하려 한다.

어제 대통령의 말 중 핵심은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참여정부가 87년 체제를 마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감하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소위 특권과 유착, 반칙과 뒷거래의 구조를 청산하는 것인데, 여기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언론 집단이다. 저는 아마 대개 87년 체제의 마무리가 되고 다음 정부에 정권을 넘겨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언론 분야 하나만은 제대로 정리가 안 될 것 같다.

개혁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이 언론이란 말이다. 이것에 논리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신문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도 자기들이 개혁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임을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참으로 한심하고 무치한 족속들이다.

나는 이들은 정상적인 “언론”이라 부를 수 없다. 그들은 언론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집단이다. 따라서 앞으로 나는 이들을 “얼논”이라 부를 것이다. 얼치기 논객들의 집단이라고.

이들 얼논 집단보다는 차라리 우리 블로거들이 더 진정한 언론인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고건,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고건,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나는 그동안 고건을 과소평가했다. 그 점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사람들이 왜 당신을 ‘처세의 달인’이라 부르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당신은 적어도 이회창이나 이명박, 박근혜, 정동영, 김근태 보다는 한 수 위다. 주제 파악에 있어서 당신을 따라갈 대권 후보는 없는 것 같다.

당신의 불출마 선언은 아마 당신의 공직 생활 중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일 것이다. 이미 한 달 전에 나는 당신이 정리되었다는 글을 썼지만 이렇게 빠르게 당신이 포기할 줄은 몰랐다. 당신이 나의 허를 찔렀다. 존경한다.

어차피 당신은 대통령 감도 아니었고, 출마한다고 해서 대통령이 될 수도 없었다. 국무총리를 두 번씩이나 했으니 당신은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직책을 두 번씩이나 한 셈이다. 그 정도에 만족하고 내려가니 당신은 그나마 당신과 당신 가족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도 당신의 불출마는 정말 소중한 결정이다.

진정한 고수는 자기가 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당신을 높이 평가한다. 부디 건강하게 손자들과 함께 행복한 여생을 보내시라.

다른 후보들 특히 여권의 정동영, 김근태에게 당부한다. 고건의 처세를 본받으라. 처세에 관해서는 그를 당할 자가 없다.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정동영, 김근태로는 한나라당을 이길 수도 없고,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을 수도 없다. 고건처럼 신속한 결단을 부탁한다. 그럼 당신들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할 것이다.

사법부는 어떻게 화살을 피할 수 있을까

사법부는 어떻게 화살을 피할 수 있을까

판사 한 명이 소송 당사자가 쏜 화살을 맞았다. 다행히 화살 맞은 판사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사법부와 검찰이 발칵 뒤집힌 모양이다. 사건의 외양만 보면 정신 나간 전직 교수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피격한 사건이다. 사법부 입장에서는 중대한 사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왜 우리나라 사법부가 화살을 맞을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성균관대에 재직했던 젊은 교수 김명호는 촉망받는 수학자였다. 그가 대학입시 채점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수학 시험 문제 하나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하다 다른 교수들의 미움을 받아 재임용에 탈락하게 된다. 그는 사법부에 법적 판단을 요청하였지만 10년 훨씬 지난 지금까지 법원은 재임용에 관련된 사항은 학교의 재량이라며 학교의 편을 들어 주었다. 더 자세한 사항은 한겨레 21의 보도 ‘학문을 위한 양심의 수난’과 Mathematical Intelligencer 의 ‘The Rewards of Honesty?’ 를 참조하면 된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주류계층의 부도덕함과 그들의 끈끈한 연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직한 사람이 매장당하는 사회,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사법부가 그 정직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그 사람의 억울함을 배가시켜준 꼴이니 사법부는 화살을 맞아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 전직 교수가 날린 화살은 판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사법부 전체에 대한 경고로 해석해야 한다.

나는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위헌 판결을 보고 대한민국 사법부에 학을 뗀 사람이다. 전두환에 대해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고 얘기한 검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스스로 자정할 능력이 없는 집단들이다. 이들에게 정의를 바로 세우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기보다도 어렵다. 사회관과 가치관 정립이 안 된 사람들을 사법시험 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판사 검사로 임명을 하고 엄청난 권한을 누리게 했으니 그 집단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인적 구성에서 사법부 개혁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제도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앞으로 많은 판검사들이 화살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법고시를 없애고 법학대학원 도입을 빨리 하여 법조인의 수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배심원제를 두어 판사가 판결을 내리기보다 배심원들이 판결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사법부 고위직은 국민들이 선거로 뽑아야 하고, 고위직의 비리를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고위직 비리 수사처를 두어야 한다. 검찰의 권한도 분산시키고 부처들끼리 서로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 견제와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더 이상 법조인들이 화살을 맞지 않도록 국회에서 사법부 개혁에 관한 법률을 빨리 통과시키기 바란다.

그 억울한 전직 교수의 인생이 측은하다. 한 때 촉망받는 수학자였던 그가 정직의 보상으로 우리 사회 주류의 이지메에 매장을 당했으니.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그는 살인미수에 대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의 삶을 보상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에게 수행과 용서의 기도를 권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처지가 씁쓸하다.

박종철은 용서할 수 있을까

박종철은 용서할 수 있을까

20년 전 오늘, 박종철 그는 남영동 대공분실 차가운 욕조바닥에서 저들의 고문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함성으로 이어졌고 독재의 임시 항복을 받아냈다. 그가 죽은지 10년이 지난 뒤 정권은 교체되었고, 2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 우리는 그에게 너무 많이 빚졌다.

나는 그가 죽은 후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그의 추모제가 열리는 명동성당에 갔었다. 해마다 추모객은 줄어들었고, 그에 비례하여 지키는 전경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올해는 명동성당에서 추모제가 열리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런 나를 그는 용서할 수 있을까.

그가 죽음으로써 지키고자 했던 선배 박종운은 지난 총선 때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아직 그 당에는 그가 타도하려 했던 독재의 하수들이 국회의원 뺏지를 달고 있다. 그 보잘 것 없는 선배를 목숨 다하여 지킨 박종철이 숭고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박종철은 그 선배를 용서할 수 있을까.

고문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정형근은 아직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은 채 국회의원이 되었고, 노무현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정형근은 정말 용서받을 수 있을까.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고, 박종철을 죽인 자들이 속한 한나라당은 하는 일 없이 반대만으로 최고의 지지를 얻고 있다. 가치관이 이렇게 전도된 우리 사회를 보고 박종철은 무엇이라 할까. 가치관 전도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우리나라 신문들을 박종철은 용서할 수 있을까.

우리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를 생각하자.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살려고 했는지 기억하자. 그러면 그가 조금이라도 위로받지 않겠는가.

그의 영전에 정희성의 시를 바친다. 그의 영혼이 위로받길 기도한다.

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아도
내 가장 가까운 곳
나와 함께 숨 쉬는
공기(空氣)여
시궁창에도 버림받은 하늘에도
쓰러진 너를 일으켜서
나는 숨을 쉬고 싶다.
내 여기 살아야 하므로
이 땅이 나를 버려도
공기여, 새삼스레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이름을 잘못 불러도 변함없는 너를
자유여.

<정희성, 너를 부르며>

그에게 너무 미안한 하루다.

참으로 저렴한 노회찬

참으로 저렴한 노회찬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인가.

나는 민노당원은 아니지만 민노당에 큰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민노당이 원내 정치권으로 들어온 것을 누구보다도 기뻐했고, 노회찬이라는 입심 좋은 민노당 국회의원을 신선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TV 토론에 출연한 노회찬은 나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다. 그간의 그의 언행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4년 연임제 개헌에 대한 그의 반대 논리는 참으로 저렴했다. 그가 내세운 논리는 첫째 되지도 않을 것을 왜 제안해서 시끄럽게 만드느냐, 둘째 개헌 때문에 모든 민생이 실종된다, 마지막으로 겨우 한 가지 사항 (대통령 임기 사항) 만을 고치려고 개헌하는 것은 안하니만 못하다 이 정도로 요약된다.

권력 구조에 대한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은 사실 민노당의 당론이고 노회찬도 예전부터 주장해 온 바다. 국회가 반대하니 되지도 않을 것을 대통령이 제안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언어도단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고 정당이라면 그런 식으로 얘기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정말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인지 아닌지 부터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은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제안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의 필요성을 먼저 논해야 하고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얘기해야 한다.

노회찬이나 민노당도 필요하다고 얘기하면서도 지금은 되지도 않을 것이니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이 논리는 그대로 비수가 되어 민노당에게 돌아간다. 국회 의석 열 개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민노당은 아무 것도 할 수도 없다. 비정규직 문제, FTA, 이라크 파병 등 민노당이 주장하고 있는 사항들 얘기해서는 안된다. 되지도 않을 것을 왜 떠들고 다니나.

민생 민생 떠들고 다니는데 정말 일을 하지 않은 것은 대통령인가 아니면 국회인가. 개헌 문제도 원래는 국회에서 먼저 공론화해야 되지 않나. 그것을 못하니 보다 못한 대통령이 나선 것 아닌가. 몇 천 건의 법안을 통과 시키지 말라고 대통령이 방해라도 했단 말인가. 솔직히 국회의원들은 할 말이 없다. 그들은 대통령을 욕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자기 일조차 제대로 못하는 족속들이 무슨 민생을 외치고 다니는가. 정말 부끄럽지 않나.

대통령이 한 가지 사항만을 고치자고 제의한 것도 최소한의 것을 얘기한 것이다. 정말 제대로 된 인간들이라면 이렇게 얘기해야 한다.

“대통령의 제안을 환영한다. 우리 국회에서는 대통령 4년 연임제를 포함하여 우리 헌법을 고쳐야 할 문제들을 심도있게 토론하고 수정 제안 발의할 것이다.”

지금도 못하는데, 다음 정부 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나는 아니라고 본다. 모든 정당의 이해관계,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당신들 수준에서 고친다? 이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 자기 임기를 1년씩 줄여 가면서 헌법을 고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얘기다.

제발 노회찬과 민노당 정신차려라. 민노당이 잘 되려면 노무현을 잘 이용해야 한다. 왜 멍석이 깔렸는데도 찌질대는가. 머리를 두었다가 어디다 쓰려 하는가. 우리 생각 좀 하며 살자. 안타깝다.

FireFox에서 깨져보이는 청와대 홈페이지

FireFox에서 깨져보이는 청와대 홈페이지

나는 주로 FireFox (불여우)를 브라우저로 사용하는데, 언제부턴가 청와대 홈페이지가 깨져보였다.

FireFox에서 깨져보이는 청와대 홈페이지

홈페이지의 가운데 부분이 코멘트로 처리되어 표시되지 않고, 그 덕분에 전체 테이블이 깨진 것이다. 소스를 확인해 보니,

<tr><!-- 
<td height="1" background="images/main/center_dotline.gif">
 --></td></tr> 

742번째 라인의 코멘트 처리가 잘못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세계일보가 왜곡한 평화의 바다 건에 대한 해명 부분 전체가 코멘트가 되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사소한 실수인데 FireFox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IE, Safari, Opera 등 다른 브라우저에서는 문제되지 않는 부분이 FireFox에서는 깨져보인다. FireFox가 너무 까다로운 것인가.

청와대 홈페이지 운영 담당자에게 부탁한다. 홈페이지를 수정한 후 꼭 여러 가지 브라우저에서 테스트해 보시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IE를 사용하고 있지만, 점차 FireFox나 Opera 사용자가 늘어나고 있으니 반드시 여러 가지 브라우저로 테스트를 해야 한다.

청와대 홈페이지마저 깨진다면, 어떻게 하이에나 언론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청와대 홈페이지 담당자의 분발을 기대한다.

유영철을 죽인다면, 그럼 전두환은?

유영철을 죽인다면, 그럼 전두환은?

오마이뉴스가 유영철 사형 집행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보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범죄에 분노하고 그에 대한 사형 집행을 찬성할 만큼 그의 죄는 깊었다. 한마디로 그는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인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과연 유영철을 죽임으로써 우리 사회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 그의 죄는 그가 죽음으로써 용서가 되는 것일까, 피해자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보면서 위로받을 수 있을까, 사형은 또다른 흉악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까 등의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형이란 제도는 이러한 질문에 아무런 해답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사형은 흉악 범죄를 예방할 수 없을 뿐더러 때때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기도 한다. 범죄자가 사형당한다고 해서 그가 죄를 참회한다는 증거도 없고 그가 용서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더군다나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이 위로받기도 어렵다. 피해자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사형은 합법적 살인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죄를 지은 자들을 죽이기보다는 그들이 지은 죄를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형 집행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비가역적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유영철의 기사 옆에서 웃고 있는 전두환의 사진을 보았다.

유영철은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감옥에 있는데, 그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전두환은 유력 정치인들의 세배를 받으며 웃고 있다. 아무리 많은 유영철들을 죽여도 한 사람의 전두환이 살아있는 한 우리 사회의 법은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아직까지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