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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세계 인권 선언

인간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세계 인권 선언

우리가 인간으로서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규정한 세계 인권 선언은 반드시 읽고 기억해야 할 문서다.

제 1 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제 18 조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종교 또는 신념을 변경할 자유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선교, 행사, 예배 및 의식에 의하여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제 19 조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간섭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없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으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제 30 조
이 선언의 어떠한 규정도 어떤 국가, 집단 또는 개인에게 이 선언에 규정된 어떠한 권리와 자유를 파괴하기 위한 활동에 가담하거나 또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

이 선언에 규정된 권리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권리이지만, 이러한 최소한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는 흔치 않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면서 북한 인권 운운하는 자들의 위선이 극악스럽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부자되기를 기도하고 축원하는 종교는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

부자되기를 기도하고 축원하는 종교는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물질적 축복을 기원하는 것은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 그것을 구하러 교회나 절에 다니는 사람은 진정한 종교인이 아니다. 예수나 부처도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행복해지는 것이다. 물질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물질이 많고 부자가 될수록 우리는 오히려 행복으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가진 사람들은 왜 나누기를 거부하는가. 왜 세금조차 낼 수 없다고 항변하는가. 지금 우리 사회의 가치 전도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법정 스님의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에 다다르는 길인지를 잘 알려준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애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법정, 행복의 비결>

예수님의 말씀 중에도 부자를 경계하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완전해지길 원한다면,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 후에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을 들은 청년은 매우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가진 재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매우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19:21-25>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씨애틀 추장의 편지

씨애틀 추장의 편지

미국 원주민 얘기가 나오니 자연히 씨애틀 추장의 편지가 떠오른다. 미국 정부가 인디언들에게 그들의 땅을 팔라고 강요했을 때 수쿠아미쉬 인디언 추장 씨애틀은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는 미국 원주민들이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신을 섬기며 정신적으로 훌륭한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증거다. 150여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들도 그들의 경지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이다. 좀 길지만 편지 전문을 여기에 싣는다. 이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의 물질에 찌든 삶을 반성해본다.
The President in Washington sends word that he wishes to buy our land. But how can you buy or sell the sky? the land? The idea is strange to us. If we do not own the freshness of the air and the sparkle of the water, how can you buy them? Every part of the earth is sacred to my people. Every shining pine needle, every sandy shore, every mist in the dark woods, every meadow, every humming insect. All are holy in the memory and experience of my people. We know the sap which courses through the trees as we know the blood that courses through our veins. We are part of the earth and it is part of us. The perfumed flowers are our sisters. The bear, the deer, the great eagle, these are our brothers. The rocky crests, the dew in the meadow, the body heat of the pony, and man all belong to the same family. The shining water that moves in the streams and rivers is not just water, but the blood of our ancestors. If we sell you our land, you must remember that it is sacred. Each glossy reflection in the clear waters of the lakes tells of events and memories in the life of my people. The water’s murmur is the voice of my father’s father. The rivers are our brothers. They quench our thirst. They carry our canoes and feed our children. So you must give the rivers the kindness that you would give any brother. If we sell you our land, remember that the air is precious to us, that the air shares its spirit with all the life that it supports. The wind that gave our grandfather his first breath also received his last sigh. The wind also gives our children the spirit of life. So if we sell our land, you must keep it apart and sacred, as a place where man can go to taste the wind that is sweetened by the meadow flowers. Will you teach your children what we have taught our children? That the earth is our mother? What befalls the earth befalls all the sons of the earth. This we know: the earth does not belong to man, man belongs to the earth. All things are connected like the blood that unites us all. Man did not weave the web of life, he is merely a strand in it. Whatever he does to the web, he does to himself. One thing we know: our God is also your God. The earth is precious to him and to harm the earth is to heap contempt on its creator. Your destiny is a mystery to us. What will happen when the buffalo are all slaughtered? The wild horses tamed? What will happen when the secret corners of the forest are heavy with the scent of many men and the view of the ripe hills is blotted with talking wires? Where will the thicket be? Gone! Where will the eagle be? Gone! And what is to say goodbye to the swift pony and then hunt? The end of living and the beginning of survival. When the last red man has vanished with this wilderness, and his memory is only the shadow of a cloud moving across the prairie, will these shores and forests still be here? Will there be any of the spirit of my people left? We love this earth as a newborn loves its mother’s heartbeat. So, if we sell you our land, love it as we have loved it. Care for it, as we have cared for it. Hold in your mind the memory of the land as it is when you receive it. Preserve the land for all children, and love it, as God loves us. As we are part of the land, you too are part of the land. This earth is precious to us. It is also precious to you. One thing we know – there is only one God. No man, be he Red man or White man, can be apart. We ARE all brothers after all. <Chief Seattle, Chief of the Suquamish Indians>
추수감사절에 읽은 Celebrating Genocide!

추수감사절에 읽은 Celebrating Genocide!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가장 큰 명절 중의 하나이다. 그들의 선조인 청교도 이주민들이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 원주민들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칠면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음식을 그들과 나누었다. 이것이 약 400여년 전의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다. 그 후 청교도 이주민들이 원주민에게 어떻게 은혜를 갚았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학살하면서 그들의 피 위에 세운 나라가 미국이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그들 선조의 원죄이다.

4년전 Dan Brook은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Celebrating Genocide!라는 글을 counterpunch에 올렸다. Dan Brook은 Columbus가 미국 대륙을 발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미국인들이 저지른 학살들을 추억하면서 부끄러워한다.

We do not have to feel guilty, but we do need to feel something. At the very least, we need to reflect on how and what we feel. We should also review our history and what it means to us and others, while we must rethink our adopted traditions, including our Thanksgiving High Holy Day. My personal (and therefore political!) resolution for the new year is to stop celebrating genocide. American Thanksgiving may be sacred to some, but it’s utterly profane to me.

그들의 뒤틀린 역사를 되돌아 보고, 그 역사들이 그들과 또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 보면서 적어도 추수감사절이 부끄럽지 않게 되길 바라는 미국의 한 지식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Dan Brook의 글은 학살을 경축하는 미국인들이라는 제목으로 GEOreport에 번역되어 있다.

우리는 잘못에 대해 적어도 반성하고 회개하며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못을 왜곡하고 덮는다고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심을 피해갈 수는 없다.

미국인들은 그들 선조의 원죄를 (물질적으로) 갚기 위해 생존한 원주민의 후예들에게 카지노 운영을 허락한다. 그래서 몇몇 주에서 적어도 한두개의 카지노가 아메리카 원주민에 의해 운영된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원주민들의 후예 중 60% 이상이 마약과 도박으로 피폐한 삶을 산다고 한다. 정말 선조의 원죄를 씻기 위한 방법이 그것 밖에 없었을까. 그들의 정신적 빈곤이 안타까울 뿐이다.

깨달음의 경지

깨달음의 경지

달라이 라마의 용서를 읽을 때도 느꼈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분들이 주시는 말씀은 한결같다. 성철 스님의 법문 중 다음과 같은 말씀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한다.

천하에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은 남에게 질 줄 아는 사람이다. 무슨 일에든지 남에게 지고 밟히는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다. 나를 칭찬하고 숭배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수행을 방해하는 마구니이며 도적이다. 중상과 모략 등 온갖 수단으로 나를 괴롭히고 헐뜯고 욕하고 괄시하는 사람보다 더 큰 은인은 없으니, 그 은혜를 갚으려 해도 다 갚기 어렵거늘 하물며 원한을 품는단 말인가? 칭찬과 숭배는 나를 타락의 구렁으로 떨어뜨리니 어찌 무서워하지 않으며, 천대와 모욕처럼 나를 굳세게 하고 채찍질하는 것이 없으니 어찌 은혜가 아니랴? 항상 남이 나를 해치고 욕할수록 그 은혜를 깊이 깨닫고, 나는 그 사람을 더욱더 존경하며 도와야 한다. 이것이 공부인의 진실한 방편이다.

<원택, 성철스님 시봉이야기, 김영사>

이런 말씀을 접할 때마다 궁금해지는 것은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용서의 한계다. 무조건적인 용서를 말씀하신 것인지 아니면 내가 상식선에서 생각하고 있는 회개와 반성이 전제된 용서인지 그런 것들을 여쭤보고 싶다. 성철 스님이 1982년 부처님 오신날 주신 법어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세상은 본래 구원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범인들은 알지 못하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마음이 가난한 사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다. 의를 위해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자비로운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을 깨끗이 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의롭게 살려고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will be filled.
Blessed are the merciful, for they will be shown mercy.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will see God.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Blessed are those who are persecuted because of righteousness,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마태복음 5:3-10>

예수님의 가르침 중 여덟 가지 복에 대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말씀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부분은 늘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교회의 목사도 이 부분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법정 스님의 대표산문선집인 <맑고 향기롭게>를 읽으면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더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더 알려고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더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지식으로부터의 자유,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말하고 있다.

<법정, 맑고 향기롭게, p.104>

이것은 법정 스님의 해석이 아닌 13세기 독일 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풀이다.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 했다. 예수의 말씀을 스님의 책을 통해 깨닫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기실 진리는 한가지이며, 그것은 종교를 떠나 통해 있다.

고래가그랬어

고래가그랬어

한때 김규항의 글을 좋아한 적이 있다. 그의 간결하고 돌려 말하지 않음에 열광했었다. 그 후 그의 대안없는 비판과 민노스러움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는 <고래가그랬어> 라는 어린이 잡지를 만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 내 아이에게도 가장 읽히고 싶은 잡지이면서, 정작 나를 위해서라도 구독하고 싶은 책이기 때문이다. <고래가 그랬어>의 세 돌을 맞이하여 서른 여섯 번째 책이 공개되었다.

<고래가 그랬어>의 세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동안 책을 만드느라 고생한 김규항을 비롯한 일꾼들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앞으로도 이 책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고, 더 많은 아이들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Many Lives, Many Masters

Many Lives, Many Masters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던 내가 불교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Brian Weiss의 <Many Lives, Many Masters>를 읽고부터다.

Weiss는 잘 나가던 정신과 의사였는데, Catherine이라는 환자를 치료하다가 그녀의 전생을 알게 된다. 그는 여러 가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Catherine을 치료하려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주류 의사로서 비주류 방법 – 여기서는 최면을 통해서 그녀의 과거로 돌아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는 방법, Regression – 사용을 주저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최면을 통해 Catherine의 과거로 들어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Catherine의 어린 시절뿐 아니라, 그녀의 전생 그것도 수십 회의 거듭남을 밝혀낸다. 그는 그 이후 다른 환자들의 전생을 볼 수 있었고, 미래에 일어날 일들도 알아낼 수 있었다. 전생의 삶의 궤적은 그다음 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인연과보와 윤회를 깨달은 부처의 가르침이 수천 년 만에 한 정신과 의사에 의해 증거된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법정 스님의 오두막에는 <숫타니파타> 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붙어 있다 한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법정 옮김, 숫타니파타, 이레>
결국 삶은 거칠 것 없이 혼자서 가는 것임을 일깨워 주는 귀절이다. 숫타니파타는 초기 불교 경전 중 하나다. 이 경전을 읽다 보면, 진리는 그 옛날 이미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로지 문제는 실천일 뿐이다. 신약성경과 함께 곁에 두고 꾸준히 펼쳐 보아야 할 책이다.
강풀의 26년

강풀의 26년

그해 봄, 나는 기숙사 방에 틀어 박혀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을 읽고, 울고 있었다. 가슴에 북받히는 분노와 슬픔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울고 있었다. 학살의 주역들은 권좌를 지키고 있었고, 우리들은 그들을 향해 돌과 꽃병을 들었다. 학교 교정은 붉은 진달래로 가득했고, 꽃들은 매캐한 최류 가스를 토해냈다. 우리들은 술마시고, 울며 노래했고, 그리고 싸웠다. 20여년 전의 일이다.

그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아무도 울지 않았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지 않았다. 용서받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아무도 그들을 용서하지도 않았다. 광주의 오월은 26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마침내 ‘그분’은 강풀의 26년에서 암살당한다. 아무도 연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지막히 오월의 노래를 불렀다.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 향기 머무는 날
묘비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이렇듯 봄이 가고 꽃 피고 지도록
멀리 오월의 하늘 끝에 꽃바람 다하도록
해 기우는 분숫가에 스몄던 넋이 살아
앙천의 눈매 되뜨는 이 짙은 오월이여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문승현, 오월의 노래>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8할은 광주의 몫이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audio:Nochatsa-Song_of_May.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