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sed by
Category: Thoughts

우리나라에 언론은 있는가

우리나라에 언론은 있는가

정확하게 얘기해서 2007년 1월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언론이라 불리울 수 있는 집단이 존재하는가. 감히 단언하건대, 우리가 알고 있는 언론 집단은 없다. 다만 사주의 이익과 특권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언론을 가장한 집단과 진보임을 앞세워 진영논리를 재생산하는 집단들만이 존재한다.

어제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언론에 대해 한마디 한 것을 가지고 전체 언론이 일어섰다. 감히 대통령 주제에 언론에게 덤벼. 이런 분위기로 모든 신문들이 일어섰다. 그들의 비분강개는 마치 독립운동을 보는 것 같다. 이제는 조중동 뿐만 아니라 한겨레와 오마이뉴스까지 가세했다. 언론이 담합했다라는 대통령의 말이 그들의 심기를 몹시 상하게 한 모양이다. 자기들은 1년 365일 대통령의 말을 비틀고 왜곡하면서 한마디 들었다고 다들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하다.

이들은 언론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사실 전달조차 포기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정파적 이익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집단들을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 신문을 만드는 작자들이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며 더 나아가 정치권력을 창출하려 한다.

어제 대통령의 말 중 핵심은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참여정부가 87년 체제를 마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감하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소위 특권과 유착, 반칙과 뒷거래의 구조를 청산하는 것인데, 여기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언론 집단이다. 저는 아마 대개 87년 체제의 마무리가 되고 다음 정부에 정권을 넘겨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언론 분야 하나만은 제대로 정리가 안 될 것 같다.

개혁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이 언론이란 말이다. 이것에 논리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신문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도 자기들이 개혁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임을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참으로 한심하고 무치한 족속들이다.

나는 이들은 정상적인 “언론”이라 부를 수 없다. 그들은 언론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집단이다. 따라서 앞으로 나는 이들을 “얼논”이라 부를 것이다. 얼치기 논객들의 집단이라고.

이들 얼논 집단보다는 차라리 우리 블로거들이 더 진정한 언론인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사법부는 어떻게 화살을 피할 수 있을까

사법부는 어떻게 화살을 피할 수 있을까

판사 한 명이 소송 당사자가 쏜 화살을 맞았다. 다행히 화살 맞은 판사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사법부와 검찰이 발칵 뒤집힌 모양이다. 사건의 외양만 보면 정신 나간 전직 교수가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피격한 사건이다. 사법부 입장에서는 중대한 사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왜 우리나라 사법부가 화살을 맞을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성균관대에 재직했던 젊은 교수 김명호는 촉망받는 수학자였다. 그가 대학입시 채점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수학 시험 문제 하나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 하다 다른 교수들의 미움을 받아 재임용에 탈락하게 된다. 그는 사법부에 법적 판단을 요청하였지만 10년 훨씬 지난 지금까지 법원은 재임용에 관련된 사항은 학교의 재량이라며 학교의 편을 들어 주었다. 더 자세한 사항은 한겨레 21의 보도 ‘학문을 위한 양심의 수난’과 Mathematical Intelligencer 의 ‘The Rewards of Honesty?’ 를 참조하면 된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주류계층의 부도덕함과 그들의 끈끈한 연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직한 사람이 매장당하는 사회,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사법부가 그 정직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그 사람의 억울함을 배가시켜준 꼴이니 사법부는 화살을 맞아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 전직 교수가 날린 화살은 판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사법부 전체에 대한 경고로 해석해야 한다.

나는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위헌 판결을 보고 대한민국 사법부에 학을 뗀 사람이다. 전두환에 대해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고 얘기한 검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스스로 자정할 능력이 없는 집단들이다. 이들에게 정의를 바로 세우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기보다도 어렵다. 사회관과 가치관 정립이 안 된 사람들을 사법시험 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판사 검사로 임명을 하고 엄청난 권한을 누리게 했으니 그 집단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인적 구성에서 사법부 개혁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제도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앞으로 많은 판검사들이 화살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법고시를 없애고 법학대학원 도입을 빨리 하여 법조인의 수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배심원제를 두어 판사가 판결을 내리기보다 배심원들이 판결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사법부 고위직은 국민들이 선거로 뽑아야 하고, 고위직의 비리를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고위직 비리 수사처를 두어야 한다. 검찰의 권한도 분산시키고 부처들끼리 서로 견제하도록 해야 한다. 견제와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더 이상 법조인들이 화살을 맞지 않도록 국회에서 사법부 개혁에 관한 법률을 빨리 통과시키기 바란다.

그 억울한 전직 교수의 인생이 측은하다. 한 때 촉망받는 수학자였던 그가 정직의 보상으로 우리 사회 주류의 이지메에 매장을 당했으니.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그는 살인미수에 대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의 삶을 보상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에게 수행과 용서의 기도를 권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처지가 씁쓸하다.

유영철을 죽인다면, 그럼 전두환은?

유영철을 죽인다면, 그럼 전두환은?

오마이뉴스가 유영철 사형 집행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보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범죄에 분노하고 그에 대한 사형 집행을 찬성할 만큼 그의 죄는 깊었다. 한마디로 그는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인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과연 유영철을 죽임으로써 우리 사회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 그의 죄는 그가 죽음으로써 용서가 되는 것일까, 피해자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보면서 위로받을 수 있을까, 사형은 또다른 흉악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까 등의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형이란 제도는 이러한 질문에 아무런 해답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사형은 흉악 범죄를 예방할 수 없을 뿐더러 때때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기도 한다. 범죄자가 사형당한다고 해서 그가 죄를 참회한다는 증거도 없고 그가 용서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더군다나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이 위로받기도 어렵다. 피해자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사형은 합법적 살인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죄를 지은 자들을 죽이기보다는 그들이 지은 죄를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형 집행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비가역적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유영철의 기사 옆에서 웃고 있는 전두환의 사진을 보았다.

유영철은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감옥에 있는데, 그보다 더 큰 죄를 지은 전두환은 유력 정치인들의 세배를 받으며 웃고 있다. 아무리 많은 유영철들을 죽여도 한 사람의 전두환이 살아있는 한 우리 사회의 법은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아직까지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여성부를 위한 변명

여성부를 위한 변명

여성부의 성매매 방지 연말 캠페인 때문에 말들이 많다. 회식 후에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면 회식비를 제공하겠다는 발상이 좀 웃기기는 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캠페인이 나라 망신을 시켰다며 여성부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영국 BBC 나 CNN 에 방송이 되었다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 남자들이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기사다.

성지미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산업경영학부 조교수는 4일 ‘맞벌이 부부의 시간 사용’이라는 보고서에서, 맞벌이 부부 중 부인의 가사노동 시간이 주당 21.4시간으로 남편의 4.6시간에 견주어 다섯배 정도 많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한국노동연구원의 ‘한국노동패널’ 7차 연도(2004년) 자료를 이용한 것으로, 맞벌이 부부 859쌍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다.

보고서를 보면 자녀가 있는 경우에 남성의 가사노동이 주당 5.1시간으로 조금 늘어났으며, 자녀가 2살 미만일 때 8.4시간으로 가장 많았다. 2~5살은 7.3시간, 6~11살 4.5시간, 12~18살은 3.9시간으로 나타났다. 여성도 자녀가 있을 때 23.2시간으로 가사노동이 증가했고 2살 미만일 경우 28.8시간, 2~5살 24.6시간, 6~11살 23.7시간, 12~18살 22.1시간이었다. 또한 남성의 고용 상태별로 가사노동 시간을 분석한 결과, 임금노동자일 때 5.3시간으로 가장 길었고 고용주와 자영업은 각각 3.5시간인 것으로 집계됐다.

[맞벌이 주부 집안일 주21시간…남편의 5배, 한겨레신문]

맞벌이를 하는 우리나라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평균 5배 정도 더 가사노동을 한다는 얘기다. 사실 직장에서도 여자들이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남편과 아이들 치닥거리에 쉴 틈이 없다.

이런 불평등이 계속되는 한, 여성부는 그 상징성 자체로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 집안 일은 여자들 몫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어머니, 아내, 딸들이 안쓰럽지도 않은가.

그렇다고 여성부의 웃기는 캠페인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여성부 책임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회식 후의 성매매를 걱정할 일이 아니라 시야를 좀 더 넓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회식 문화가 담백하지 않다. 이런 문화를 좀 더 가족적이고 담백하게 유도할 필요가 있다.

내가 여성부의 정책 입안자였다면, 직장의 연말 회식을 가족 중심의 모임으로 유도했을 것이다. 부부동반이나 더 넓게는 아이들까지 같이 즐길 수 있는 회식과 모임에 비용을 도와주는 이벤트. 이런 방법이 훨씬 세련되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시라.

여성부가 단지 성매매 방지만을 위해 일하는 곳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여성부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난 당신들 때문에 더 허탈하다

난 당신들 때문에 더 허탈하다

한겨레신문은 조선일보 따라쟁이가 되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안타깝고도 슬프다. 오늘 한겨레의 사설은 그들에게 가졌던 일말의 기대마저 무너지게 만든다.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항상 신중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취지가 좋고 내용이 옳더라도 정제되고 격식있는 언어가 아니면 괜한 상처와 대립을 낳을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민주평통 연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군대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 “그 많은 돈을 우리 군인들이 떡 사 먹었느냐”는 등의 품위 없는 표현 때문에 군복무 단축 검토나 튼튼한 국방 안보를 강조한 본디 뜻은 사라졌다. 대신 예비역 장성들이 모여서 공개 반박 성명서를 내고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하는 등의 불필요한 갈등만 초래했다. 맘속에 있는 말을 그때 그때 다 쏟아내는 대통령이 아니라 충분히 걸러서 국민을 편안하게 만드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어떤 국민도 대통령이 ‘동네북’이 되는 것을 진정으로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표현을 가다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있다. 국민과 소통하는 일이다. 부동산값과 교육 문제 등으로 시달리는 국민의 아픔을 절실히 깨닫는다면 대통령이 차기 대선 예비주자들과의 기싸움에 매달릴 여유가 없을 것이다. 임기 말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하려는 것은 정치인들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대통령 본인이 이런 데서 정치인들에게 느끼는 “서운하고 분한” 심정을 앞세우기보다는 국민들이 정부의 무능과 실정으로 느끼는 절망과 허탈감을 먼저 헤아리길 바란다.

<대통령의 서운함보단 국민의 허탈감이 우선이다, 한겨레>

나는 대통령의 민주평통 연설 중에 품위 없는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듣는 사람에 따라 거친 표현이라 할만한 부분은 있지만, 현장의 즉석연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대통령이 얘기한 조용한 안보, 작통권 환수 문제, 한미동맹 관계, 군 개혁에 관한 문제 등 어느 한 군데 사리에 맞지 않고 원칙에서 벗어난 구절이 없었다. 그런데 한겨레를 포함한 언론들은 말 한 두마디 꼬투리를 잡아서 대통령의 연설을 폄하하기에 급급하다. 어떤 언론도 논리적 해석이나 반박을 하지 않았다.

정말 한겨레는 몇몇 표현때문에 대통령의 본의가 다 사라졌다라고 믿는가. 본말이 전도되게 만든 것이 혹시 당신들이 아닌가. 정작 중요한 것은 다 제쳐놓고 꼭 말투만을 붙잡고 늘어져야 하는가. 어떻게 이렇게 비겁한가. 다른 신문들이 다 그렇다해도 한겨레만은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 아닌가.

사설의 점입가경은 다음 구절이다. 국민과 소통하는 일이 더 중요하단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기네스북 감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도록 만든게 누구인가. 4년 내내 대통령의 말을 왜곡하고 비방한 것이 누구인가. 한겨레는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가.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국민들 앞으로 편지를 쓰겠나.

나는 대통령에 관련된 말이 논란이 될 때 꼭 청와대 홈페이지에 가서 원문을 확인한다. 대통령의 말을 전달하는 언론들을 믿을 수 없어서다. 정말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한겨레도 이제 무치족 반열에 오르고 싶은 모양이다.

국민들이 실망과 허탈감의 느낀다면 그 책임의 9할은 언론의 몫이다. 나는 당신들 때문에 더 허탈하고 절망한다.

미안하지만 대통령은 필부다

미안하지만 대통령은 필부다

오늘 한겨레신문 사설을 보고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노 대통령의 발언에는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과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언어가 많은 게 사실이다. “난데없이 굴러온 놈” “별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것 아니냐” “미국 바짓가랑이 매달려 가지고” 등등의 표현은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입에 담기에는 썩 부적절하다. 연설 도중에 주먹을 흔드는 등 격한 모습을 보인 것도 그렇다. 대통령도 자연인으로서 쌓인 울분과 감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를 절제하고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이 필부들과 같아서야 되겠는가.

[절제되지 않은 노 대통령의 언행, 민망스럽다, 한겨레신문]

신문 이름을 제외하고는 조선일보의 사설과 한치 다를 바 없는 표현과 논조. 한겨레신문마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우리나라 언론, 특히 신문은 볼짱 다 본 것이다. 이제 대통령은 한겨레를 포함한 전체 언론과 싸워야 할 지경에 놓였다.

내가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아는가. 그가 필부이기 때문이다. 그가 내 아버지와 같은 보통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취임 초부터 당당하게 말했다.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필부가 대통령이라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것은 결국 나 같은 필부가 대통령이 된 것이며, 그것은 반세기동안 대한민국 위에 군림해 온 친일, 군부독재, 재벌, 족벌 언론 세력들에게 칼침을 날린 것이다.

그들은 안다. 노무현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를. 그렇기에 지난 4년 내내 그를 붙잡고 흔들고 끌어 내리려한 것 아닌가. 이제 한겨레가 그들과 같은 편에 서겠다 이건가. 나같은 필부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동안 한겨레의 불분명한 입장에 상당히 불만이 많았는데, 오늘에서야 그 실체를 보는 듯 하다. 미안하다, 한겨레. 하지만 지금은 필부가 대통령이 되는 시대다. 대통령이 필부들과 같아서야 되는 게 아니고, 이제 대통령은 필부이어야 한다. 그걸 한겨레가 몰랐다면 스스로 진보정론이라는 말을 쓰지 마라. 제발 등에다 칼 꽂는 짓을 하지 말란 말이다. 많이 묵었다 아이가.

민망하다. 한겨레가 조선일보와 같아서야 되겠는가.

당신들이 노무현을 이길 수 없는 이유 세 가지

당신들이 노무현을 이길 수 없는 이유 세 가지

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윤혜린은 강우석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떳떳하기만 하다면 한 없이 강해지는 사람”

나는 노무현을 보면 이 말이 생각난다. 그는 스스로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기에 한 없이 강해지는, 강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권에 그보다 진정성 있는 사람은 없다. 고로 그보다 더 강해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첫번째 이유다.

노무현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건다. 대통령직조차도 훌훌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대통령직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고 말하지만, 그는 대통령이란 직책보다 상식과 원칙 그리고 신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국회의원직조차 연연하는 그런 부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그런 부류들은 노무현을 이길 수 없다. 이것이 두번째 이유다.

노무현은 유능하고 가장 머리 좋은 정치인 중의 한 사람이다. 언론을 가장한 조중동 패거리들이 그에게 무능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다. 대안 없는 비난과 묻지마 반대를 뚫고 이만큼 나라를 이끌고 나오는 것을 보면 그는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추진력 있다는 이명박이 청계천이니, 경부운하니 하면서 떠들지만, 노무현의 행정 수도 이전 공약에 견주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그 공약이 계획대로 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부동산 문제, 양극화 등의 문제가 많이 사라졌을테지만, 기득권층의 저항을 물리치고, 이만큼 왔으면 정말 잘한 것이다. 노무현보다 유능하지 않고는 그를 이길 수 없다. 이것이 세번째 이유다.

노무현은 허허벌판에서 깃발 하나 붙잡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당신들이 그를 정말 탄핵으로 쫓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했기에 당신들은 노무현을 이길 수 없다. 그 때는 홀홀단신이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대통령이다. 그가 아무리 기득권층의 조롱과 멸시를 받는다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다.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권한과 정보는 4년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오늘 노무현 대통령은 전직 국무총리였던 고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제가 이것 한번 해 보자고 맨 처음에 고건 총리를 기용했었지요. 그래서 고건 총리가 다리가 되어서 그 쪽하고 나하고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랬는데, 오히려 저하고 저희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 왕따가 되는 그런 체제에 있는 것이지요. 중간에 선 사람이 양쪽을 끌어당기질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그런 결과가 되기도 하고요, 하여튼 실패한 인사다. 결과적으로 실패해 버린 인사지요.

링컨 대통령의 포용 인사가 제가 김근태씨나 정동영씨를 내각에 기용한 그 정도하고 비슷한 수준이다. 링컨 대통령 책에 오래 오래 남고 남들이 연설할 때마다 그 분 포용인사 했다고 인용했는데, 저는 비슷하게 하고도 인사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사니까 힘들다. 링컨 흉내 좀 내려고 해 봤는데, 잘 그게 잘 안 되네요. 재미가 별로 없다. 하여튼 그렇게 말씀드리고요.

[노무현 대통령, 민주평통자문회의 연설 중에서]

사실 전직 상관에게 이 정도 평가를 공개적으로 받았다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나도 아는 것을 고건 정도 되는 사람이 모른다면 정말 문제다. 대선이 1년 남은 시점에서 그는 일찌감치 정리되었다.

노무현보다 진실되지 않고, 노무현보다 유능하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걸지 않는 당신들. 감히 노무현을 이기려고 덤비지 마라. 다친다. 당신들은 그를 이길 수 없다.

금메달은 은메달, 동메달보다 얼마나 더 가치있을까

금메달은 은메달, 동메달보다 얼마나 더 가치있을까

아시안 게임이 한창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 대항 종합 체육 대회에서 각 나라가 몇 등을 하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더우기 우리 선수들이 좋은 성적으로 입상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오늘은 우리나라 언론들이 이런 국제 대회에서 각 나라의 등수를 메기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언론들은 금메달의 가치를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은 금메달 한 개가 은메달, 동메달 몇 백개보다 훨씬 가치있는 것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항상 금메달이 많은 나라가 은메달, 동메달의 갯수와 상관없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금메달만을 귀하게 여기는 풍조는 우리나라 선수들을 주눅들게 만드는 것 같다. 비록 금메달은 아니더라도 세계대회에서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땄다는 것은 대단히 잘한 것이다. 하지만,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은메달,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은 자랑스러워하기는커녕 뭔가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한다. 은메달, 동메달을 아무리 많이 따도 금메달 하나만도 못한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또는 전국체전 같은 국내 대회도 마찬가지지만) 등에서 순위를 보도할 때, 메달 색깔을 우선시하는 것보다 전체 메달 갯수를 기준으로 보도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대부분의 외국 언론들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메달의 갯수가 같을 경우에만 색깔을 따지는 것이 합당하다. 이렇게 큰 대회에서 메달을 땄따는 것만으로도 (그 색깔에 관계없이) 똑같이 박수를 받아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의 공공의 적으로 떨어져버린 언론들에게 이런 세심한 배려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웃기지 마라, 다음 대통령도 우리가 결정한다

웃기지 마라, 다음 대통령도 우리가 결정한다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원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다. 대통령은 자신들이 만들어 내는 줄 아는 모양이다. 또 대선을 일년 앞두고 신당 창당이니 정계 개편이니 아주 법석을 떨고 있다. 한 가지 얘기해 줄께. 민주주의가 좋은 것이 뭔지 아나? 그건 당신들 같은 국회의원이나 나 같은 서민이나 똑같이 한 표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더군다나 우리 국민들은 지난 두 번의 대선을 통해 아주 잊지 못할 경험을 했거든. 평화적 정권 교체와 평화적 주류 교체. 더군다나 주류 교체는 민주주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도 없었던 일이지. 이런 경험은 정말 잘 안 잊혀진다.

대한민국의 주류 기득권 세력이 내놓을 수 있었던 최고의 후보 이회창을 일개 고졸 출신의 변호사가 이길 수 있었다는 사실. 이건 세계 정치사에 기록될 일이다. 국회의원들 중에 5년전 노무현이 대통령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 노무현을 처음 지지한 천정배조차 노무현이 대통령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노무현이 출마선언을 했을 때부터 그가 대통령이 될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한 순간도 그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신당 창당이니 어쩌니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당신들은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 생각같아서는 노무현을 한 번 더 대통령으로 하고 싶지만, 헌법이 허락하지 않으니 우리는 그와 비슷한 인물을 찾을 것이다. 아무리 지지율이 낮아져도 미안하지만 대한민국 정치는 노무현을 중심으로 돈다. 왠줄 아는가. 그보다 더 진실한 정치인이 없으니까. 그는 자기 원칙과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건다. 의원직에 연연하는 당신들하고는 수준이 다르다는 뜻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거지만,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다음 대통령을 결정할지 알려 줄테니 참고했으면 한다.

  1. 언론을 가장한 정치권력, 대한민국의 공공의 적 조중동 패거리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들은 선출되지 않은 견제받지 않는 유일한 권력이다. 언론의 가면을 썼기 때문에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뚜렷한 견제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들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패거리들을 감싸안고 타협하려는 사람은 안된다. 우리 사회의 악의 근원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그 청산의 중심에 설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2.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병역 문제, 돈 문제 등 어느 하나 흠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 사람은 조중동과 맞설 수 없다.
  3. 똑똑하고 학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잘 알 수는 없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김영삼의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을 빌릴 수 없다.” 그런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어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었나. 머리를 빌릴지언정 그 지식을 소화하여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4. 권위적이지 않고 겸손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유머 감각이 있으면 더 좋다. 국민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사람,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면 좋다. 그리고 국민을 무서워 할 줄 알아야 한다.
  5. 권력욕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 대통령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기준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노무현이다. 하지만 그는 다음 대선에 나올 수 없으니, 우리는 이 기준에 맞는 다른 사람을 찾을 것이다. 지금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명박이니 박근혜니 고건이니 정동영이니 김근태니 이런 사람들은 다 기준미달이다. 이 사람들이 다음 대통령이 되지 않을 것이니 국회의원들이여 괜히 그들 앞에 줄서지 마라. 불쌍해 보인다.

나는 한 사람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출마한다면 내가 노무현을 지지했듯 그 사람을 지지할 것이다. 그 사람이라면 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신념을 잘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도 그 사람을 마음 속에 두고 있을 것이다. 대개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좋아하는 것도 비슷해진다. 열린우리당이 통합신당이니 하며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눈치를 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김근태, 정동영에게 한마디 한다. 당신들이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난 지난 5년 동안 노무현과 맞짱떠서 살아남는 사람을 못 봤다. 역사는 당신들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당신들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조용히 찌그러져 있으시라.

나는 최후의 노무현 지지자

나는 최후의 노무현 지지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거지만, 이것은 일종의 커밍 아웃이다. 나는 최후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로 남을 것이다. 현재 그의 지지율은 10% 정도라 한다. 그렇다면 국민 열 사람 중 한 사람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는 말인데, 내가 바로 그 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설령 그의 지지율이 1%라 하더라도 그가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묵묵히 일해 준다면, 나는 그 100명 중 최후의 한 사람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사 영부인 권양숙 여사가 그를 버린다 해도 나는 그의 지지자로 남을 것이다. 내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므로, 그에 대해, 그리고 그가 하는 일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고 지지를 보낼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현직 정치인 중 가장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다. 청렴하고 정직하며 겸손하고 권위적이지 않다.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이 되었어도 그는 그 권력을 누리려 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가질 수 있는 권력을 다 내려놓고, 문자 그대로 법에 명시되어 있는 권한만을 행사할 뿐이다. 그만큼 원칙주의자이며, 상식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그의 말대로 그가 가진 것은 “당직과 대통령직” 밖에 없다. 그나마 남은 그 직책마저 국민이 원한다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사심 없는 사람이다.

또한,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일의 순서를 알고 어떤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안다. 수십 년간 지체되어 있던 일들도 지금 그의 참여정부에서 어느 정도 다 해결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참여정부 아래서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언론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대통령직은 제일 욕먹고 힘든 직업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그는 우리나라의 수준을 높여 놓았고,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욕하고 힘들다 해도, 10년이 지난 후에 우리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사실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의 수고에 머리 숙여 감사한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에 나는 내 아이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것이다. 네가 태어날 때쯤 이 아빠는 이 나라에서 제일 훌륭한 정치인을 지지했었노라고. 이 아빠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서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했노라고.

노무현 대통령이 많이 힘들어 보인다. 언론을 가장한 조중동 패거리와 무치족 정당 한나라당, 그리고 뒤에서 은근히 칼을 꽂는 무능한 열린우리당. 사방이 적이다. 내가 아니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듯, 그가 끝까지 책임지고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를 지켜야 한다. 그에게는 지금 우리밖에 없다. 우리가 그에게 힘을 주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 우리는 일당백의 지지자들 아닌가. 우리가 그를 통해 이룬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치 혁명이다. 이대로 그를 보낼 수 없고, 이대로 우리가 주저앉을 수 없다. 내년에 반드시 노무현 정부의 업적과 정책을 이어갈 정부를 만들어낼 것이다. 노무현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 것이다. 우리가 다시 승리의 역사를 쓸 것이다.

그가 퇴임하면, 아이의 손을 잡고 그의 고향 마을로 찾아갈 것이다. 그의 수고에 감사하며, 한바탕 신나게 놀아 볼 것이다. 새삼스러운 나의 커밍 아웃은 나의 그리고 우리의 결의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의 사랑과 존경을 담아 그에게 지지를 보내기 위해서다. 그가 조금이라도 기운을 냈으면 좋겠다. 그가 힘들더라도 꿋꿋이 견디어 나갔으면 좋겠다.

어렵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먼 훗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신념을 가지고 견디어 나가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공무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노무현 대통령님, 힘내십시오. 당신의 뒤에는 우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