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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길을 떠나며

또다시 길을 떠나며

일흔을 넘긴 늙은 시인은 또다시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칠십 평생 수많은 길을 떠나 왔지만, 그 길들은 언제나 세상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고, 그 누군가를 스치게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길은 그가 떠나온 그 수많은 길과는 다른 길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관조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자, 시인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다. 젊었을 때의 그 혈기왕성한 힘과 날카로움,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가 사그러들었지만, 시인은 조용한 안식을 얻었다. 삶은 그렇게 공평한 것이었다.

세상은 전혀 평화로와지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시인은 그 악다구니 속에서도 평화를 보았다. 아니 그는 자기가 떠나야 할 시간을 알고는 더 이상 그 팍팍한 삶에 간섭하지 않으려는지도 모른다.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이제는 던져버리고 그는 그 원초적 기원으로 떠날 것이다.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있는 그 순수의 세계로.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신경림, 낙타>

한 평생 살고 나서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을 제대로 살아냈음을 이 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시는 신경림만이 쓸 수 있는 시다.

3월의 황사와 뼈아픈 후회

3월의 황사와 뼈아픈 후회

서쪽에서 온 바람에 모래가 실려 왔다. 사람들은 황사라고도 했고, 흙비라고도 했다. 숨쉬기가 버거웠고, 목이 아팠다. 모래알갱이가 서걱서걱 씹혔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사람들은 봄을 기다렸지만, 봄은 황사에 밀려 쉬이 오지 못했다. 서걱거리는 황사 속에서 왜 자꾸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라는 시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 끝없는 이기심들의 암묵적 합의로 태어난 거짓의 향연 속에 사막의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온다. 후회가 부질없기는 하지만 때로는 뼈에 새기는 아픔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이제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 황사 속에 끝없는 폐허가 아른거린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돌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황지우, 뼈아픈 후회]
달라이 라마에게도 용서할 수 없는 게 있을까

달라이 라마에게도 용서할 수 없는 게 있을까

달라이 라마의 <용서>를 읽었을 때, 나는 그에게 무한한 존경의 마음이 일었다. 그는 용서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고,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며,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 그가 의미하는 바를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가슴이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말한 것은 예수나 부처가 수천 년 전에 이미 가르친 것들이고, 그것을 몰라서 용서를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내게 늘 따라다니는 화두는 “도대체 내가 과연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와 “진정한 용서란 어떤 것인가”라는 그런 문제들이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과연 내가 그 상황에 맞닥드렸을 때 달라이 라마가 말한대로 그렇게 용서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훌륭한 성인들은 한 번도 분노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면서 용서할 수 있을까?

정호승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달라이 라마
당신에게도 용서할 수 없는 게 있지
용서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내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한 가지 용서하면
신은 나의 잘못을 두 가지나 용서한다고
살면서 얼마나 많이 남을 용서했느냐에 따라
신이 나를 용서한다고
불쌍한 내 귀에 아무리 속삭여도

달라이 라마
당신에게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슬픔이 있지
용서만이 인간의 최선의 아름다움이 아닐 때가 있지
내가 내 상처의 뒷골목을 휘청거리며 걸어갈 때
내가 내 분노의 산을 헉헉거리며 올라가
기어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때
아버지처럼 다정히 내 어깨를 감싸안고
용서하는 일보다 용서를 청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용서할 수 없으면 차라리 잊기라도 하라고
거듭거듭 말씀하셔도

달라이 라마
당신에게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분노가 있지
히말라야의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
설산에 홀로 뜬 초승달을 바라보며
문득 외로움에 젖을 때가 있지
야윈 부처님의 어깨에 기대어
용서보다 먼저 눈물에 젖을 때가 있지

<정호승, 용서>

나약하지만, 용서보다도 먼저 분노하고 슬퍼하고 눈물 흘리지만, 그렇게 불완전하기에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는 것이 인간일 거라는 사실. 정호승은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아내는 예뻤다

아내는 예뻤다

결혼 전 아내는 싱그러웠다. 화사한 복사꽃처럼 발그레한 그의 얼굴에서 향긋한 봄날의 냄새가 났다. 결혼 전의 여자들이 대개 그렇겠지만, 아내는 나의 눈에 햇살 비치기 전 풀잎에 달린 맑은 이슬처럼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다.

나는 아직도 큰 길 건너 저 멀리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키가 큰 아내가 겅정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의 뒤태는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도 빛이 났다.

아내는 참으로 발랄했고, 재치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덤벙댔다. 그것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그리고 내가 때로는 부러워했던 그런 것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애어른처럼 굴었던 나는 늘 맏이처럼 행동했고, 늘 느긋했다. 그런 내게 아내의 재기 발랄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글을 잘 썼고, 많이 썼다. 내게도 많은 메일을 보내 왔다. 그의 메일을 읽는 것은 그날 하루의 큰 기쁨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그 많은 글들이 다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며칠 전 아내는 그 당시 자기가 썼던 시 한편을 찾아 보내왔다. 그 시를 읽어 보니 우리가 결혼 전 만났던 그 순간순간들이 눈에 어렸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가슴 뭉클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잊지 말았으면 하는그 순간들. 아내의 시와 함께 고이 간직하고 싶다.

비가 오면

비가 오면
사람들은 빨래를 걷는다
나의 그는
비가 오면 방구석에 처박힌 빨래감을
주렁주렁 빨래줄에 내다 널 것 같은 사람

비가 오면
사람들은 우산을 쓴다
나의 그는
비어 젖어 제 색을 더해가는 녹음진 공원에 앉아
한 없이 함께 젖어 갈 것 같은 사람

비가 오면
나는
그가 보고 싶은 간절함이
맘 속에 빗물처럼 고여
열번이 넘게 간 신호에도
수화기를 놓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아내와 결혼한 지 벌써 10여년이 된다. 세월이 그의 싱그러움을 조금 가져가 버렸지만 여전히 내게는 예쁜 아내이고, 고마운 아내다. 사랑해, 당신.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다

새벽에 잠이 깨서 시집 한 권을 읽었다. 류시화가 엮어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름 모를 이들의 삶이 뚝뚝 묻어나오는 잠언에 나는 파묻혔다. 그들이 깨달은 진리와 지혜가 깨끗하지 못한 내 영혼을 씻어 주었다. 10여년 전에도 읽어 보았던 구절들이었지만, 읽을 때마다 다가오는 감동은 다르다. 삶에 대한 천착의 깊이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종은 누가 그걸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노래는 누가 그걸 부르기 전에는
노래가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도
한쪽으로 치워 놓아선 안 된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

A bell’s not a bell ’til you ring it,
A song’s not a song ’til you sing it,
Love in your heart wasn’t put there to stay,
Love isn’t love ’til you give it away!

[Oscar Hammerstein II,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한 번 더 얘기해 주자.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 더 안아 주자. 지금 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있는 이 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

오늘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 더 해 주어야겠다.

<덧글> 류시화의 번역 중에 세째 구절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식이면 어떨까?

당신 마음 속의 사랑도 거기 그냥 놓아둬서는 안된다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내가 철이 들기 시작한 것은 아마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어머니의 노동과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그때부터 나는 비로소 인간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사내들의 열등감을 깨달았다. 그것은 신이 사내들에게 내린 형벌이었다.

내가 고통과 절망 속에서 방황할 때도 어머니의 가슴은 늘 한결같았다. 따스함. 언제나처럼 그 가슴은 나에게 안도와 위로를 주었다. 나는 정말로 좋은 아들이고 싶었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욕심이었고, 어머니는 그 존재로서 사랑이었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만약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성경 말씀이나 맑스의 유물론이 아닌 바로 어머니의 따스한 가슴일 것이다.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비가 온다
어머니의 늙은 젖꼭지를 만지며 바람이 분다
비는 하루 종일 그쳤다가 절벽 위에 희디흰 뿌리를 내리고
바람은 평생 동안 불다가 드디어 풀잎 위에 고요히 절벽을 올려놓는다
나는 배고픈 달팽이처럼 느리게 어머니 젖가슴 위로 기어올라가 운다
사랑은 언제나 어머니를 천만번 죽이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웠으나
때로는 실패한 사랑도 아름다움을 남긴다
사랑에 실패한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늙은 젖가슴
장마비에 떠내려간 무덤 같은 젖꽃판에 얼굴을 묻고
나는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포기하고 싶다
뿌리에 흐르는 빗소리가 되어
절벽 위에 부는 바람이 되어
나 자신의 적인 나 자신을
나 자신의 증오인 나 자신을
용서하고 싶다

<정호승, 늙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원천적으로 어머니가 될 수 없는 남자들이 느끼는 사랑은 불완전하고 공허하다. 그리하여 나는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세상의 모든 것을 녹여낼 수 있는 그 넓고 따스한 가슴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

생신 축하드립니다, 어머니. 아! 나의 엄마…

아내가 보내 준 월요일을 여는 시

아내가 보내 준 월요일을 여는 시

결혼 전에 나는 시를 많이 읽었었다. 읽은 시들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내 생각과 함께 아내에게 (그 때는 애인이었었나?) 보내곤 했다. 아내가 시를 즐겨 읽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내 준 시를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빛이 바랬지만 따뜻한 난로와 같은 추억이다.

월요일 아침 나의 일주일을 기분 좋게 시작하도록 아내는 시를 보내 왔다. 아내의 마음이 고맙다.

그리움이란 것은
마음 안에 이는 간절한 소망과도 같이
한 사람에 대한 따스한 기다림의 시작입니다
그 한 사람에게 구비 구비 굽어진 길
그 길을 트는 마음의 노동입니다

그리움이란 것은
그렇게 마음을 잡고
한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일어나 밥을 먹는 습관보다
먼저 떠 올려지는 사람을
익숙해진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움이란 것은
또 그렇게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보고픈 한 사람을
침묵하며 참아내는 것입니다

그리움이란 그래서
영혼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마음입니다

[배은미, 그리움이란 것은]

이 시를 읽으니 류시화의 시가 떠올랐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곁에 있어도 그리운데 하물며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비에 실려 온 아내의 마음 한자락

비에 실려 온 아내의 마음 한자락

하루 종일 촉촉히 내린 비에 봄내음이 서려있다. 흙과 풀과 나무는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맞으며 소리없이 재잘대고 있었다. 이미 겨울에 와 버린 봄이 새삼스럽지 않지만, 비는 봄의 느낌을 몇 배 증폭시킨다. 비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가 시를 보내 주었다. 그 시 속에 아내의 마음이 봄비처럼 적셔 온다.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 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 비에 젖었습니다
젖는 마음과 젖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나희덕, 젖지 않는 마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는데, 부부로 만나 결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함께 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내와 나는 어떤 인연이 있었길래 이렇게 만나 사랑하게 되었을까.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고, 건강을 챙기고,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었을까.

봄비와 아내가 보내 준 시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내로 만들어 주었다. 아내의 마음이 고맙다. 시인 김남주가 감옥에 있을 때 자기 아내를 생각하며 시를 쓸 때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감옥 속의, 겨울 속의 나를 머리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가슴 가득히 뜨거운 피가 돌게 한다.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이 한밤 어둠뿐인 이 한밤에
내가 철창에 기대어 그대를 그리워하듯
그녀 또한 창문 열고 나를 그리고 있을까.

[김남주,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중에서]

지금은 다만 아내의 마음만을 만지고 싶다. 봄비 소리를 들으며 느끼고 싶다. 사랑해, 여보야.

해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시

해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시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들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고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두운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 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기다림 만나
얼씨구나 부등켜안고 웃어 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 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 눈 내리는 보리밭 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정호승,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이 깊어지면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겨울을 견딜 수 있다.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꼭 읽어보는 시다. 새해에는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