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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언론

손석희, 노회찬, 조국

손석희, 노회찬, 조국

“노회찬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다.”

손석희는 세상을 떠난 노회찬을 추억하면서 이렇게 말했고,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면서 울먹였다. 동갑내기 정치인을 떠나보내면서 생방송 중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손석희의 모습은 큰 울림으로 남았다. 그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최근 두달 동안 조국과 그의 가족이 검찰과 언론에게 조리돌림을 당할 때 손석희는 짐짓 기계적 중립 또는 선택적 중립을 지켰다. 세월호 참사나 박근혜 국정농단 때의 보도와는 너무도 달랐다. 늘 저널리즘의 본령을 난해한 만연체로 설파하던 그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JTBC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노회찬의 부끄러움을 존중해주면서 그와의 작별에 목이 메던 손석희는 왜 조국을 외면했을까? 조국은 가난한 정치인 노회찬의 하나 밖에 없는 후원회장이었던 사람인데. 손석희는 노회찬과는 달리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립을 말하는 자는 앞과 뒤가 다르고, 처음과 끝이 다르며, 겉과 속이 다르다. 중립을 말하는 자는 기회주의자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목포는 호구다?

목포는 호구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손혜원이 목포 문화재거리 투기 의혹으로 연일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과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그의 투자가 문화재를 보호하고 목포 원도심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야당의 주장대로 시세차익을 위한 투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연일 수백건의 기사와 방송으로 도배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님에도, 언론과 야당이 이렇게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1. 손혜원이 민주당 국회의원이고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에 손혜원을 공격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질 거라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손혜원이 자유한국당 소속이었다면 기삿거리도 되지 않았겠지.
  2. 손혜원이 투자한 지역이 목포라는 데 문제가 있다. 한때는 아주 잘나가던 항구였지만 지금은 쇄락한 도시.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 광주와 더불어 호남의 상징. 호남 차별에 앞장서왔던 언론과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이런 도시는 그냥 그러다 없어져야 되는데, 손혜원이 옛모습을 되살리겠다니 밟아버리고 싶은 걸거야. 만약 문제가 되는 지역이 대구였다면 이렇게까지 공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되살리려면 아파트나 상가 같은 것을 지어 개발을 해야하는데 문화재거리를 만들고 박물관을 짓겠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구. 손혜원은 지역 재개발조합과 건설업자들의 눈엣가시였을 것이 분명하고. 그러니 지역방송에 꼰지른 거 아니야?
  4. 덮어야 할 게 있는 거야. 양승태 사법농단이나 스포츠 미투 같은 사건들을 덮어야 하니 깜도 안 되는 사안을 부풀려야 하는 거지. 그렇게 해서 선량한 국민들을 호도하는 거야. 아니라구?
  5. 손혜원이 독립운동가 자손인 것도 눈에 거슬렸을 거야. 그것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딸이니 얼마나 보기 싫었을까. 만약 박근혜처럼 일본 장교의 딸이었으면 영웅 대접해 주지 않았을까?

쓰레기 언론들이 자유한국당 등과 손잡고 이렇게 방방 뜰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김태우로도 안 되고, 신재민으로도 안 되니 이제는 손혜원을 공격하는 거야.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투기를 취재하려면 시세차익 13억을 남긴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을 파야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런 취재는 절대 안 해.

목포라는 도시의 옛모습을 되살려서 문화 도시의 가치를 높이면 안 되나? 사람들도 찾아오고 목포 시민들도 조금 더 잘 살면 어디가 덧나나? 나라에서 해야하는 일을 일개 디자이너 출신의 의원이 앞장서면 박수쳐줘야 하는 것 아니냐구. 왜 목포는 눈물로만 기억되야 하는지 모르겠네. 자유한국당 어떤 의원이 목포는 호구라고 하던데, 결국 목포는 눈물이든 호구든 그냥 슬프게 찌그러져 있어야 되는 거지? 감히 일개 국회의원 따위가 목포의 도심을 되살리겠다구 하니 얼마나 배알이 꼬이겠어. 안 그래?

근거 없는 자신감?

근거 없는 자신감?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성과도 없는 경제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으려는 그 근거 없는 자신감(근자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캐물었다. 사실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아냥에 가까웠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질문을 커녕 두손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는 자들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정권이 바뀌자, 수준 낮은 질문과 비아냥으로 대통령을 조롱한다.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공범이나 앞잡이였던 자들이 민주 정부에서는 언론자유 수호의 첨병으로 변신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민주 정부에서도 머리를 조아려야 되냐며 되레 호통을 친다.

세상 좋아진 건 알겠는데, 조금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조금도 반성할 줄도 모르는 기레기들의 근자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국정 농단 당사자들보다 더 질이 좋지 않은 것은 쓰레기 언론이다. 이런 쓰레기 언론을 심판하지 않으면 적폐청산은 불가능하다.

보수 언론과 신기루

보수 언론과 신기루

한국의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스스로 보수라고 부르는 자들이 말하는 보수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언론의 탈을 쓴 사이비 정치집단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이 땅에 언론다운 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수도 없고 언론도 없는데, 보수 언론이 존재할 수 있을까? 보수도 아니고 언론도 아닌 집단이 스스로 그렇게 불려지기를 바랄 뿐,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신기루라 부른다. 정작 문재인 대통령을 홀대한 것은 중국이 아니라, 문재인을 홀대하고 싶은 이 땅의 신기루 같은 얼논들이겠지.
안철수의 진심, 상황이 바뀌면 입장이 바뀐다

안철수의 진심, 상황이 바뀌면 입장이 바뀐다

“상황이 바뀌면 입장이 바뀌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관훈토론회에서 안철수가 사드 배치에 반대하다가 찬성으로 돌아선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다. 이것은 안철수의 진심이다. 물론 북핵 문제를 둘러싼 외교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다. 이 나라 기득권층을 지켜야 하는 대표 선수로서의 본인 상황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드 배치를 국민 투표로 정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말하던 자가 하루 아침에 손바닥을 뒤집는다. “상황이 바뀌었다”라고.

상황은 끊임없이 바뀔 것이고, 안철수의 입장은 시시각각 변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 건 그가 기회주의자라는 사실뿐이다. 안철수는 이 나라 특권지배계층의 구원투수로 낙점된 사람이다. 모든 언론이 문재인 죽이기에 앞장서면서 안철수를 띄우고 있다. 따라서 이번 대선은 겉으로는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결이지만, 본질은 깨어있는 시민과 한줌도 안 되는 기회주의 특권층의 대결이다.

한국 언론은 세월호 선내 방송

한국 언론은 세월호 선내 방송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시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이 나올 때,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황급히 해경의 경비정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이 방송만 아니었어도 훨씬 더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살 수 있었다. 아니, 승객들을 제대로 안내하는 방송만 했어도 거의 모든 승객이 구조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뭔가 의도가 있지 않고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국민의당 경선이 시작될 무렵, 거의 모든 언론이 안철수 띄우기에 나섰다. 공중파와 조중동, 종편뿐만 아니라 소위 진보언론이라 알려진 한경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모든 기득권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어떡해서든 문재인 당선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99%의 언론이 대동단결하여 문재인 죽이기를 하고 있다. 일사분란하다. 그만큼 그들은 절박하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정말 적폐가 청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일과 독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나라의 지배계급에 치명타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조하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 때의 선내 방송처럼 국민들의 눈과 귀를 호도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조작되고 왜곡된 여론조사로 문재인과 안철수의 양자대결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만약 유권자들이 이런 언론에 또다시 속는다면, 이 나라는 세월호처럼 침몰할 것이고, 대다수 국민들은 영원히 지배계급의 개, 돼지로 살아갈 것이다.

촛불민심은 정권교체이고, 그것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문재인이다. 지금 이 나라의 언론들은 세월호의 선내 방송처럼 국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한국 언론은 민중의 적이다. 그들을 믿지 마라.

친노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

친노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

노무현, 친노, 노빠, 문재인, 친문, 노무현, 노무현, 문재인, 친노, …

이 나라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친노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는 노무현이 죽어야 하는 이유와 같다. 재벌, 새누리당, 검찰, 언론 등으로 이루어진 지배계급에게 해방 이후 노무현만큼 불편하고 두려운 존재가 없었다. 감히 대학도 안 나온 고졸 출신 변호사 주제에 상식과 원칙이란 이름으로 지배계급의 권력을 위협하다니, 그리고 대통령이 되다니.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무현을 능지처참하고 삼족을 멸하리라. 그들은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것이다.

노무현은 죽었지만, 여전히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친노와 노빠라는 이름으로 노무현 정신을 얘기했다. 노무현의 죽음은 운명처럼 문재인을 정치로 이끌었고, 문재인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친노의 중심이 되었다. 이 나라 지배계급 입장에서는 몹시도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었다. 만약 문재인이 정권이라도 잡게 되면…, 아 그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야당의 기회주의자들에게도 문재인과 친노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이 권력을 쥐게 되면, 아 궁물은 어쩌란 말이냐. 문재인이 당대표가 되자, 하루가 멀다 하고 친노패권주의, 호남홀대론을 외치며 그를 끌어내리려 했다. 예전 후단협이 노무현에게 했던 것처럼, 예전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함께 노무현을 탄핵했던 것처럼. 그것이 예의치 않자, 그들은 당을 박차고 나갔다. 그 중심에 안철수가 있었다.

조중동과 종편에서 문재인과 친노는 북한의 김정은보다 더 흉악한 족속들로 그려진다. 그들이 얘기하는 종북이 친노고, 그들이 얘기하는 빨갱이가 친노고, 그들이 얘기하는 테러집단이 바로 친노다. 왜? 두려우니까. 지배계급에게 유일하게 위협이 되는 세력이니까.

친노와 노빠가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자발적이라는 점이다. 누가 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고, 돈이나 궁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노무현 정신으로 이 사회를 바꾸어 보겠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무서운 거다. 이것은 돈과 권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지배계급은 친노세력을 저주한다.

재벌, 새누리,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이 나라 지배권력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친노와 노빠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은 악마이고, 친노는 사라져야 한다. 노무현이 죽은 것처럼 친노도, 노빠도, 문재인도 사라져야 한다. 그들을 없애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정말 정의와 평화와 민주가 젖과 꿀처럼 흐르는 나라가 될 지도 모른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반기문, 아니 안철수라도 데려 와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야 한다.

오늘도 문재인과 친노에 대한 그들의 저주는 그렇게 계속된다.

democracy

한겨레가 부른 “놈현”이라는 애칭

한겨레가 부른 “놈현”이라는 애칭

2주 전쯤 한겨레신문은 “DJ 유훈통치와 놈현 관장사를 넘어라“라는 글을 올렸고,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정론지를 추구하는 언론이 서거한 전직 대통령을 두고 “놈현”, “관장사” 같은 표현을 쓸 수 있는지 분노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한겨레는 편집국장 성한용의 명의로 사과문을 올린다. 성한용이라는 자가 한겨레 편집국장으로 있는지 나는 이때 처음 알았으며, 성한용이라면 능히 “놈현”이라는 표현을 쓰고도 남을 작자임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내놓은 사과문에는 어떠한 진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한겨레에 대한 기대를 진작에 접은 터라 분노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글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 필화사건은 월드컵에 묻혀버렸고, 그런대로 마무리가 되는 듯 했는데, 한겨레는 꽤나 속히 뒤틀렸던 모양이다. 한겨레는 오늘 “놈현”을 “놈현”이라고 불렀는데 뭐가 잘못이냐, 오히려 사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식의 칼럼을 올렸다. 이 칼럼을 쓴 언론인 김선주는 자신은 “놈현”을 노무현의 애칭으로 부른다고 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이 여자도 성한용과 한통속임을 고백했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놈현’이라고도 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쪽에서 놈 자와 현 자를 합해서 악의적으로 만든 말이라 할지라도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았다. 나 나름의 애칭일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불편하고 길고 어감상 매끄럽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도 ‘명바기’ 혹은 ‘이명바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김선주, 말조심 글조심 … 어렵네]

이런 글은 한마디로 개같은 글이다. 아니 개만도 못한 글이다. 반노들이 만들어낸 악의적인 말이라고 해놓고도 따지지 않는단다. 나름대로 애칭이라고 버젓이 일간지 지면에 써갈긴다. 김선주는 더 나아가 “놈현 관장사”라는 제목이 정곡을 찌르는 적절한 제목이었다고 말한다.

재론되는 것을 어느 쪽도 원하지 않겠지만 나로선 이 사건의 발단에서 마무리까지가 적절했다고 볼 수 없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정곡을 찔렀네…제목 잘 뽑았네’ 했던 것이 첫 느낌이었다.

요즘 한겨레는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한겨레를 “한걸레”라고 얘기한다. 나도 한겨레에 대한 비판 글을 많이 썼지만, 한번도 한겨레를 “한걸레”라고 표현한 적은 없다. “한걸레”라는 것이 결코 명칭이나 애칭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

지난 20여년간 진보 진영의 정론지라는 타이틀을 독점해 놓고, 그들은 아무런 성과도 업적도 내놓지 못하고 오로지 조중동 따라하기만을 반복한다. 그들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치졸함은 조중동 못지 않다. “놈현 관장사”라는 제목을 붙이고 성한용과 그 일당들은 얼마나 낄낄거렸을까. 그들의 비아냥 섞인 미소가 눈에 선하다.

그들은 노무현의 죽음을 “관장사”로 비하했다. 그런데 정작 노무현의 죽음을 팔아먹기 바쁜 족속들은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같은 자칭 진보 정론지들이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의 죽음을 그들은 “놈현 관장사”로 표현했다.

참여정부 시절 성한용과 그 일당들의 분탕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도 그들은 끝없이 노무현을 조롱했고, 노무현이 죽고 나서도 그들의 비하와 저주는 그칠 줄 몰랐다. 끝없는 횡설수설과 궤변도 그들의 위선을 감추지는 못했다.

김선주는 박정희는 “박통”으로 부를 수 있지만, 노무현은 “노통”이라고 부를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놈현” 또는 “노무혀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단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영어 이니셜이 아니라면 ‘박통’처럼 부르기 쉽고 적절한 이니셜을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쪽에서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바보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놈현’ 혹은 ‘노무혀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니까.

영어 이니셜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서도 그들은 김대중 대통령을 DJ라고 부르고, 이명박을 MB라 부른다. 김대중을 때중이라고 부른 적도 이명박을 쥐박이라고 부른 적도 없지만, 노무현에 대해서는 “놈현”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는 개만도 못한 족속들. 그들은 여전히 스스로 진보 정론지임을 자처한다.

이제 한겨레에 대해서는 분노할 필요도 비판하거나 비난할 필요도 없다. 분노나 비판이나 비난은 어느 정도 관심과 애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그들이 짖어대면 그냥 개만도 못한 족속들이 짖어대는구나 하고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다가 그들은 그냥 제 풀에 지쳐 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정론지는 이제 “딴지일보” 하나 남았다. 주간지로는 “시사인” 정도일 것이고.

<덧붙임>

참여정부 시절 한겨레의 분탕질을 정리한다. 아래 글들은 한겨레를 읽고 열받아 쓴 글들이다. 이제는 더이상 열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가슴 에이게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들

가슴 에이게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들

다음 아고라에 올라있는 안찬옥 님의 글 “노무현에 대한 단상”을 읽다가 가슴을 에이게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들이 눈에 들어왔다.

2000년 부산에서 낙선한 뒤, 한 술자리에서 지인들이 노무현한테 “참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자 노무현은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고 한다.

“똑똑하다 하시니 하는 말입니다만, 한국은 나 같은 이런 사람이 대학을 가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이 말을 들으니 2004년 탄핵 직전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학벌사회, 연고사회인데 일류학교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잘 짜인 사회 속에 제가 돛단배처럼 떠있지 않나”

대학을 못나온 사람이 일류학교를 나온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고 대통령까지 하니 일류학교를 나온 자들이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겠지. 그 주류들의 열등감이 결국 노무현을 죽였다.

임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노무현은 어린 아이처럼 행복해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다.

고시에 낙방했다면 이 나이 먹도록 여기서 즐기며 살았을 것을, 반백년 돌아 이제야 정착한듯 합니다. 인생 중에 지금이 제일 행복합니다.”

노무현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면서 이미 목숨을 걸었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해본다. 제대로 임기를 마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철없는 지지자들은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축하 모임에서 이제 무엇을 할거냐는 노무현의 물음에 “감시! 감시!”라고 외쳤으니 그가 속으로 얼마나 쓸쓸했었을까.

기득권이라는 바다의 돛단배 같은 존재가 가장 훌륭하게 임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그는 정말로 기뻤을 것이고 행복했을 것이다.

지난 봄에 저 더러운 검찰의 칼끝이 그를 향하고 있을 때, 그의 행복은 1년도 되지 않아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현직에서 물러나 자연인이 되었지만, 그는 점점 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명박의 열등감이, 주류들의 시기심이 그를 가만 놔둘 수 없었다. 그때의 심경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려앉으려 하나 온통 바다뿐이고, 앉을 가시나무 한 그루 없습니다.”

조중동과 이명박의 검찰은 그를 그렇게 말려 죽이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나라에 노무현 대통령 5년은 기적과도 같은 역사가 될 것이다. 아니 너무도 현실감이 떨어져 단군신화와 같은 신화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나라에는 이명박이나 박근혜나 이회창 같은 자들이 훨씬 잘 어울린다. 노무현은 도무지 이 빌어먹을 나라에 걸맞지 않은 대통령이었다. 다시는 노무현과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그런 인물을 지도자로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 땅이 아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세찬 비가 내리고 있다.

비정규직 법에 대한 사기

비정규직 법에 대한 사기

비정규직 법을 유예하지 않으면 수십 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당할 것이라는 정부와 한나라당과 언론들의 “협박”이 과연 사실일까? 계약한지 2년이 지난 노동자들은 모두 다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과연 비정규직 법에 명시되어 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친히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방문하여 “비정규직 법”을 검색해 보았다. 검색결과는 없었다. 비정규직 법이라는 이름의 법안은 없었다.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노동부 소관 법령들 중에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있었다. 그러니까 언론들이 얘기하는 비정규직 법이 바로 이 법안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법이 아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하는 차별을 어느 정도 해소해 보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제1조 (목적) 이 법은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기간제근로자 및 단시간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의 목적 자체는 아주 훌륭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하는 차별은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이나 한나라당 그리고 대다수 언론들이 법을 유예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협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법의 4조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제4조 (기간제근로자의 사용)
①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기간제 근로계약의 반복갱신 등의 경우에는 그 계속근로한 총기간이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다.
1.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2. 휴직·파견 등으로 결원이 발생하여 당해 근로자가 복귀할 때까지 그 업무를 대신할 필요가 있는 경우
3. 근로자가 학업, 직업훈련 등을 이수함에 따라 그 이수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4. 「고령자고용촉진법」 제2조제1호의 고령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5.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와 정부의 복지정책·실업대책 등에 따라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
6. 그 밖에 제1호 내지 제5호에 준하는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

②사용자가 제1항 단서의 사유가 없거나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

이 법에 따르면 되도록이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4조 1항에는 2년을 초과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나열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년이 지났다고 해서 해고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했다고 해서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규정도 없다.

문제는 4조 2항의 경우인데, 특별한 사유없이 2년을 초과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는 비정규직이라 할지라도 기간이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본다라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정규직은 아니지만, 함부로 해고할 수는 없는 것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자본가들을 대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나 언론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정규직은 아니지만 함부로 자를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의무적으로 2년된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2년이 초과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함부로 잘라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지금 한나라당이나 언론이 얼마나 추잡한 사기를 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사기업도 아닌 정부기관과 공기업이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해고한다고 하니 정말 이들이 얼마나 서민(鼠民)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악어의 눈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전형적인 경우라 하겠다.

결론은 이렇다. 이 법의 목적과 취지는 전혀 문제가 없을 뿐더러 이 법에는 2년이 초과된 비정규직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 법 때문에 2년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른다는 자들은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이 법은 큰 문제가 없다. 이 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둔 것뿐이다. 지금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그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받아드릴 수 없다고 법을 유예하자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노동자들 중에서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서 향후 어떤 선거에서든지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