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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자연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다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다

새벽 5시에 잠을 깼다. 운동을 하러 밖으로 나갔는데 오늘 따라 뭔가 다른 에너지를 느꼈다. 밤이 길어져서 아침 해는 날마다 늦게 뜨는데, 어제보다 더 밝아진 새벽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아파트 건물 사이로 엄청나게 큰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태어나서 본 보름달 중 가장 큰 달이었다. 그 달이 쏟아내는 빛에 한동안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저렇고 크고 밝고 아름다운 달을 볼 수 있다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왔다. 새벽 운동을 해야된다는 생각은 잊어버리고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았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오늘 뜬 이 달이 68년만에 가장 큰 보름달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슈퍼문(Super Moon)이라 불렀다. 달은 지구 주위를 타원으로 돌고 있는데, 지구와 가장 가까워졌을 때 볼 수 있는 보름달이란다. 달은 평소보다도 몇만 km나 지구와 가까워졌고, 30%나 더 밝은 빛을 지구로 보내고 있었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평생 가장 크고 밝은 달을 보다니 운이 몹시 좋은 날이었다. 자연에 대한 경이와 감사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68년만에 가장 큰 보름달
68년만의 가장 큰 보름달
삶에는 직선이 없다

삶에는 직선이 없다

지난 추석 물난리 때도 얘기했지만,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자연은 직선을 만들지 않는다. 직선은 인간들처럼, 욕망이 본능을 넘어서는 탐욕적인 생명체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선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직선을 추구하는 인간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의 삶도 직선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삶에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실패가 없었기에 너무 어린 나이에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고,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 그런 사람들에게는 삶의 향기, 인간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한 번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

많이 실패해 보고, 많이 넘어져 보고, 많이 아파 보고, 시련을 겪어 보고, 그 시련을 이겨도 보고, 그런 과정 속에서 삶은 깊어지고, 향기가 난다. 그러므로, 세상에 공짜는 없고, 삶은 공평하다. 누구나 어려움과 고난은 싫어하지만, 정작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간다면 그는 더 깊고 유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전직 교사이자 현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인 송인수 씨의 다음과 같은 말은 삶에 울림을 준다.

저는 인생에 직선은 없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샛길로 새지 않고 직선으로 달려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 생에는 직선이 없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4대강을 다 펴면 아름답겠습니까. 곡선이니까 유장한 거지요. 유장하려면 깊이 있는 물이 돼야 합니다. 깊이 있는 생각, 통찰을 품어야 합니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방해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로를 선택하고 다음 진로를 찾을 때 지금 있는 길과 전혀 다른 쪽으로 점핑을 하는 게 아니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다음 일의 실마리가 찾아집니다.

[시사IN, “우리 인생에 직선은 없다”]

깊이있는 물이어야 바다에 닿을 수 있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라. 때로는 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상처가 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뒤돌아볼 줄 아는 삶, 때로는 더디더라도 더불어갈 줄 아는 삶, 그리하여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지는 삶을 누리라.

설을 맞아 이제 11살이 되는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지 딸아이가 알아 들을까? ^^

이런 것은 “저주”라 부를 만하다

이런 것은 “저주”라 부를 만하다

만약 화성 표면에서 일직선으로 된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인간들은 화성에서 생명체가 산다는 또는 살았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자연과 우주는 일직선으로 된 무언가를 만들지 않는다. 어떤 생명체라든지, 아니면 초자연적인 존재의 의지가 들어가지 않는 한 그런 직선은 나타나지 않는다.

추석 연휴에 서울과 수도권에 물폭탄이라 부를만한 비가 쏟아졌다. 시간 당 거의 100mm의 비가 대여섯 시간 쏟아지니, 도시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기상 관측 이후 100여년만에 처음으로 광화문과 청계천 일대가 침수되었다.

이런 폭우를 가져온 비구름은 서울을 정확하게 조준한 폭탄처럼 보였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구름이 아니었다. 무언가의 의지가 포함된 듯한 그런 구름이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라 할만했다. 이런 현상을 전문 용어로 “저주”라 부른다.

이 구름 사진을 보면서 나는 문수 스님을 떠올렸다. 왜 그랬을까?

추석 연휴 첫날부터 방송에 나와 찌질거리는 자가 있었고, 광화문과 청계천, 그리고 수도권에는 물폭탄이 떨어졌다. 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서민들만이 폭우의 피해자가 되었다.

풍성하고 즐거운 한가위가 아니라, 잊지 못할 슬픈 한가위가 되어버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고요함이다
산에 둘러싸인 작은 밭에서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플 때까지 괭이질을 하며
가끔 그 허리를
녹음이 짙은 산을 향해 쭉 편다
산 위에는
작고 흰 구름이 세 조각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고요함이다
산은 고요하다
밭은 고요하다
그래서 나는 고향인 도쿄를 버리고 농부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의견인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고요함이다
산은 고요하다
밭은 고요하다
흙은 고요하다
벌이가 안 되는 것은 괴롭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것은
고요함이다

[야마오 산세이, 고요함에 대하여]

야마오 산세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고요함이라 말한다. 수양이 부족한 나는 때로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때로는 가슴에 담아 둔 말을 참지 못한다. 때로는 말이 너무 많고, 때로는 밑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쏟아낸다.

산의 고요함을 닮아야 할텐데, 나무와 바위의 침묵을 배워야 할텐데, 아직은 갈 길이 너무 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고요함이다. 야마오 산세이가 말했다.

제발 강을 내버려두라

제발 강을 내버려두라

푸른 기와집에 살고 있는 대통령이 강을 살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들이 어떻게 강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다. 강이 인간에게 속한 것도 아니고, 인간이 강을 만든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강을 살리겠다는 것인가?

강을 살리겠다면 지금의 강은 죽었다는 말인데, 강이 자살을 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강을 죽였다는 것인가? 누군가가 강을 죽였다면 그것은 누구인가? 저 산속에 살고 있는 노루와 토끼, 멧돼지가 강을 죽인 것인가 아니면 물 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이 강을 죽인 것인가? 강이 죽었다면 그건 인간들이 죽인 것이다. 인간들이 강을 죽여놓고 인간들이 강을 살리겠다?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이다.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며 스스로 완전하다. 인간들은 마치 자연을 창조하고 소유한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인간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자연의 한 부분임을 잊고 있다. 인간들이 자연을 파괴해왔다는 역사는 있어도 자연을 살렸다는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스스로 사는 것이다. 인간들이 파괴만 하지 않으면 자연은 온전히 다시 살아난다. 그렇기에 자연은 완전한 것이다.

인간들이 이 땅에 생겨나기 전부터 강은 면면히 흘렀다. 강은 이 땅의 혈관이다. 저 강에 흐르는 물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의 젖줄이다. 저 강은 태고의 신비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강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이때까지 살아왔다. 강은 우리 민족에게는 성스러운 것이다. 강이 흘러 곡식이 자라고, 강이 흘러 나무가 자라고, 강이 흘러 꽃이 핀다.

강은 죽지도 않았을 뿐더러 설령 죽었다 하더라도 인간들은 강을 살릴 수 없다. 강바닥을 파고 보를 세워서 물을 가두면 과연 강은 사는가? 다시 묻겠다. 강바닥을 파고 보를 세우고 물을 가두면 강은 사는가? 엄청난 돈을 들여서 왜 강바닥을 파는가? 왜 보를 세우는가? 강은 흘러야 하는데 그렇게 물을 가두면 그것은 강인가, 호수인가?

인간이 생겨나고 역사가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인간들이 자연을 파괴하면 그 댓가는 반드시 인간에게 돌아온다고 했다. 이것은 진리이다. 인간들이 자연을 해코지하면 자연은 그것을 고스란히 인간들에게 되돌린다. 수십 조원의 세금을 퍼부어 강을 파괴하면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 수백 조의 돈을 들여야 할지 모른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들은 자연에 속해있다는 사실이다. 강을 살리겠다는 발상은 창조주에 대해 모욕이고 자연에 대한 모욕이다. 강은 단순한 물이 아니다. 이 땅에 속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을 살리는 핏줄이자 젖줄이다. 제발 강을 내버려두라. 다시 한 번 부탁하지만, 제발 강을 내버려두라. 돈이 필요하다면 그 수십 조의 세금을 그냥 당신들끼리 나누어 가지라.

하지만 강은 제발 내버려두라. 이것은 나의 부탁이자, 강의 부탁이자, 자연의 부탁이다. 그리고 창조주의 부탁이다. 제발 강을 내버려두라.

[이어 글쓰기] 소원을 말해봐

[이어 글쓰기] 소원을 말해봐

아침에 민노씨 님과 트위터를 하다가 “이어 글쓰기”를 하겠다고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지난 번에도 어떤 주제에 대해서 민노씨 님이 바통을 넘겼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냥 잊어버렸다. 나의 게으름과 결벽은 나도 어찌할 수 없으니 민노씨 님이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민노씨 님은 이런 일로 삐질 그런 밴댕이 같은 남자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김구 선생님은 “나의 소원”이라는 글에서 조선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그의 소원으로, 그것도 세 번씩이나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보다 나이가 더 적었을 때, 예를 들어 만약 작년에 이런 주제를 받았다면 나는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1) 조중동 폐간, (2) 정치 검찰 추방, (3) 한나라당 해산, (4) 이명박 퇴진 등등등, 이런 것이 나의 소원이라고.

지금 나의 소원을 얘기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것, 그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나의 욕망을 버리고 자족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물처럼, 바람처럼, 나무처럼 그렇게 사는 것, 그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이런 얘기조차 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것, 그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자연은 스스로 완전하다. 자연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이미 완전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핀다. 그것들은 신이 내린 법칙 안에서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하다. 법정 스님은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인간만 제외하고 모든 것들은 행복하다.

한때는 자연의 한 부분이었던 인간들이 이제 자연에서 분리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불행하다. 그들은 욕망으로 가득차 있고,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매일매일 싸운다. 그 욕망이 이루어지면 또다른 욕망이 그들을 엄습한다. 그들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욕망에 겨워 시름한다. 인간들이 욕망을 버리고 자연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모든 것은 부질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궁금한 것은 과연 소녀시대가 이 소원을 들어줄까요? 민노씨 님. 😉

덧.

이어 글쓰기는 규칙이 있군요. 제가 이런 것을 해보지 않아서 서툽니다. 이번 이어 글쓰기는 추적해보니 김우재 님이 시작하신 것 같은데, 김우재 님이 다음과 같이 규칙을 적어 놓으셨네요.

간단하게 자신이 릴레이를 받은 주자와 릴레이를 전달할 주자 3명만 명기하고, 이 페이지로 트랙백을 건다. 기한은 소녀시대가 활동을 접을 때까지 하고 싶지만…7월 30일까지. 소녀시대를 사랑하고 가카를 혼내주고 싶은 블로거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바라며.

제 글을 보고 이어 글쓰기를 하고 싶은 분은 7월 30일까지 쓰시고,  http://heterosis.tistory.com/trackback/211 로 트랙백하시면 됩니다. 누가 하시려나? 미리내 님? 아거 님? 도아 님? 아니면 로망롤랑 님? 아니면 CeeKay 님?

부처님 오신날, 비가 내렸다

부처님 오신날, 비가 내렸다

부처님 오신날 비가 내렸다. 붓다의 가르침처럼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비는 대지를 적시고, 나무를 적시고, 내 방 창문을 무시로 두드리며 흘렀다. 그 비를 타고 붓다의 자비가 나에게도 흘렀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안에 있는 것처럼 고요와 평화가 나를 감쌌다. 적막했고 편안했다.

부처님 오신날 내리는 비가 나를 충만하게 하였다. 자연은 그렇게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자연이 바로 붓다였다.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없었다. 필요한 것도 없었고, 욕망도 없었고, 탐욕도 없었다. 봄이 되면 새 잎이 돋고 꽃이 피고 비가 내렸다. 자연은 그렇게 스스로 존재했다.

인간들은 언제나 갈구했다. 어떤 이들은 물질을 갈구했으며, 어떤 이들은 진리에 목말라했다. 부질없었다. 모든 것은 이미 존재했고 충족되어 있었다. 인간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인간들의 원죄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무지. 인간들은 스스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삶의 고통은 그 무지에서 시작되었다.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길은 욕망을 버리는 것이었다. 원한은 복수에 의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리고 비울 때만이 인간들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인간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붓다가 오신지 2500여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인간들은 어리석었고 고통에서 몸부림쳤다.

그리하여 부처님 오신날 비가 내렸다. 무지로부터 생긴 고통을 알리기 위해 비가 내렸다. 무지하기에 죄를 짓는 인간들은 그 무지를 깨닫게 되면 용서받을 수 있었다. 진리는 단순했지만, 깨닫기는 어려웠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모든 것은 본래부터 완벽했다. 그것이 신의 본성이었고, 자연의 본성이었다. 부처님 오신날 내린 비는 그것을 깨우쳐 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해서, 내가 세상에 집착한다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놓고 급전 300억 달러를 빌릴 수 있게 되었다고 환호작약하는 저들에게 해줄 얘기는 아무것도 없다. 한나라당이 1%만을 위한 정당인 줄 알면서도 선거만 있으면 한나라당을 찍어대는 국민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민주당은 우리의 대안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희망도 패기도 정열도 용기도 없다. 그냥 리만 브라더스와 한나라당에 질질 끌려다니는 무기력만 가득할 뿐이다. 비전도 없고, 대안도 없고, 그저 떡고물이나 쫓아다니는 궁물들과 386 떨거지들이 모여있는 노회한 정당일 뿐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사라진 정당에는 적막만 감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제대로된 정치 세력, 정당이 없다는 것이다. 수십 만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도 그것을 정치적 힘으로 묶어낼 세력이 없다. 아무리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깽판을 쳐도 4년 후에 그들을 딛고 일어설 세력이 있다면 그나마 위안이 될 수도 있을텐데 우리에겐 그것이 없다. 희망이 없다는 것만큼 견디기 힘든 것도 없다. 새로운 정당이 생겨야 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될 수 있으면 당분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침묵하고 싶다. 지쳤다. 아니 저들의 탐욕에 질려버렸다. 저들의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당분간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 탐욕의 극한에서 그 탐욕에 의해 저들이 쓰러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탐욕은 죄다. 그 죄의 댓가를 모두가 질 것이다. 같은 하늘을 이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그러거나 말거나.

단풍이 아름답다. 떨어지는 낙엽 사이로 가을은 깊어간다. 바람이 살랑거리고, 햇살이 따사롭다. 인간의 탐욕만 외면해버리면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자연의 품은 그렇게 넉넉하다. 밥 굶지 않고, 내 몸뚱이로 노동을 감당할 수 있을만큼 건강하다면 행복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사치인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을날의 행복

가을날의 행복

가을의 햇살이 정말 따사로웠다. 아파트 초입에 늘어선 여러 나무들이 저마다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은행나무는 노란색으로, 단풍나무는 붉은색으로, 메타 세콰이어는 오렌지색으로 물들었고, 소나무는 변함없는 푸른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구름 몇 점이 떠 있었다. 바람은 서늘하게 가을을 재촉했다. 놀이터에 아이들 몇이 재잘대며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평화로웠다.

불현듯 내 가슴에 행복이 밀려들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풍경이란 말인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아이들의 웃음소리, 푸른 하늘, 맑은 공기.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었다. 내가 이 지구라는 별에 와서 이렇듯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다니. 눈물이 나올만큼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누리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고, 존경하는 부모님이 계시고, 동생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내가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시를 보고, 영화를 보고, 때때로 운동을 할 수가 있는 여유가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욕심내지 않고 자족할 수 있는 가난한 마음을 갖게 해 준 신께 감사한다. 따스한 가을날의 햇볕 속에서, 아름다운 나무와 풀들 속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서 나는 한없는 행복을 누렸다. 이 나의 행복을 살아있는 모든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이제 이명박 대신 이런 사람을 얘기하자

이제 이명박 대신 이런 사람을 얘기하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들 하지만, 정치인이자 대선주자로서의 이명박은 이미 그 바닥을 드러냈다. 천박을 넘어 “명박”스런 그의 말과 행동 속에서 우리가 건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가 뿜어대는 비전이라는 것은 잿빛 콘크리트 속에서 싹을 틔우지 못하는 씨앗들의 절망 뿐이다. 청계천은 시멘트 어항으로 변했고, 펌프질로 길어올려지는 한강물은 숨을 쉬지 못해 허덕인다. 전 국토의 강들을 시멘트로 쳐발라 운하를 만들자고 떠들어대는 그의 억지에 이 산하와 이 땅의 생명들은 절망한다.

불구자 낙태, 동성애자들은 비정상, 바이올린 줄이 금속이기에 금속노조에 가입, 프라이드가 없으면 노조를 만든다, 중견 배우는 한물 간 배우 등등의 발언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느끼는가? 정치인, 기업인으로서의 이명박 인생 궤적에서 우리는 어떤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 자식들에게 이명박처럼 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럴 수 없다.

이런 철학 부재의 명박스런 인간에 대해선 그만 얘기하자. 그에게는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들려 줄 가치가 아무 것도 없다. 대신 이제 이런 사람을 얘기하자.

권정생. [강아지똥]과 [몽실언니]의 작가. 평생 자연과 어린이들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 자기의 거의 모든 수입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면서 자신은 안동의 골짜기 5평짜리 오두막에서 기거했던 사람. 몇 안 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 엊그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유서에조차 어린이를 위한 마음, 통일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인세는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굶주린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여력이 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서도 써달라.

남북한이 서로 미워하거나 싸우지 말고 통일을 이뤄 잘 살았으면 좋겠다.

강아지똥조차도 자연의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는 진리를 일깨운 선생의 글에게 우리는 자연과 생명, 인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권정생 선생의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글들이 힘이 있는 것은 선생이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실천의 힘. 그것이 선생의 글과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삼류 정치인의 잿빛 발언 대신, 권정생 선생의 어린이와 자연에 대한 소박한 사랑을 더 많이 얘기했으면 좋겠다. 이 사회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이명박의 경부운하가 아닌 권정생의 삶과 글과 그리고 그의 오두막임을 깨닫자.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한 선생이 계셨음을 말해주자.

권정생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편안하시길…

권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