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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금

비용을 말하는 자들에게

비용을 말하는 자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겨우 5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온나라가 순식간에 정상궤도를 찾아간다. 마치 못된 마법사의 주술에서 빠져나온 듯 동화같은 얘기들이 펼쳐져서, 지난 5일 동안 벌어진 일들이 무척이나 낯설고 초현실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이다 같은 지시 한마디에 국정교과서는 폐지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광주항쟁 기념식에서 제대로 불려지게 되었다. 인천공항의 1만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고, 세월호 참사 때 세상을 떠난 기간제 선생님들의 순직이 인정받게 되었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상식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지난 9년 동안 세상은 황폐했고 소모적이었으며 잿빛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펴겠다고 하니, 어떤 이들은 누가 그게 좋은 줄 몰라서 못했냐고, 돈이 없어서 못했다고 비아냥거린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5년간 4조원의 돈이 든다고 훈계한다. 물론 돈이 들것이고, 그것도 많은 돈이 들것이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항상 예산이나 비용부터 꺼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하기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속내는 그 일이 하기 싫은 거다. 어떡해서든 해야 할 일이라면 예산이나 비용은 부차적인 문제다. “돈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명박이 5년 동안 해먹은 국민 세금이 189조원이다. 4대강 강바닥 파는데만 22조원의 세금이 들어갔다. 왜 그들은 이런 천문학적인 세금 낭비에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데 드는 비용 4조원에는 그렇게 인색한 것일까.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고, 그들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연간 400조의 예산을 가진 나라에서 5년간 4조원의 돈은 큰 문제가 아니다. 189조의 세금을 날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문제는 의지다.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는 의지. 그런 의지로 충만한 문재인 대통령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원래 세금은 아랫것들이나 내는 것이었다

원래 세금은 아랫것들이나 내는 것이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을 아는가? 동학농민혁명의 근원지였던 고부의 그 유명한 탐관오리 조병갑. 그는 만석보를 쌓으면서 그 일을 한 농민과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그 만석보의 물을 이용하는 농민들에게 엄청난 수세를 거두었다. 농민들은 일년 내내 일을 하고도 가난에 허덕이며 끼니 걱정을 하는데도 그들은 무지막지한 세금을 거두어 갔다. 묵은 황무지를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갈아 먹으라고 해놓고는 추수 때가 되면 또 세금을 거두어갔다. 조병갑 애비의 공덕비를 세우겠다고 세금을 거두고, 대동미를 거두면 그 쌀을 하품으로 우겨서 그 이익을 몽땅 챙겼다.

조선시대 내놓으라하는 탐관오리가 어디 조병갑 뿐이었던가. 양반들은 세금도 면제였고, 군역도 면제였다. 오로지 힘없는 백성들만이 임금과 나라를 위해 일을 하고, 세금을 내고, 군역의 의무를 다했다. 한마디로 양반을 제외한 백성들만이 봉이었다. 동학농민혁명처럼 때때로 그 폭정에 항거하여 민란을 일으켜보기도 했지만, 엄청난 탄압을 받고 역적으로 몰려 참수되기 일쑤였다. 그것이 우리네 백성들이 살던 고단한 삶이었다.

“백성들만이 봉”인 그 유구한 전통은 봉건제가 사라지고 민주공화국이 들어서고도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서민의 아들들은 예외없이 군대를 가야했고, 1원이라도 탈세를 했다가는 국세청의 조사를 받아야했다. 주류 특권층들은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군역을 피했고, 설령 탈세가 걸려 법의 심판을 받았다해도 금방 사면복권되었다.

그 유구한 전통에 딱 한 번 금이 간 적이 있었는데, 2005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3년전 쯤 참여정부가 종부세를 만들었을 때였다. 우리나라 부유층 상위 2% 정도에 종합부동산세를 물린 것이다. 난리가 났다. 백성 수탈이라는 수천 년의 전통을 자랑하던 이 땅에 처음으로 잘사는 사람들은 세금을 더 내라고 하니, 주류들은 꼭지가 돌았다. 수구신문들은 연일 세금폭탄이라고 맞섰고, 위헌이니 뭐니 지랄을 했다. 집 한채도 없는 어리석은 백성들은 종부세 대상자도 아니면서 세금폭탄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류들은 종부세 대상자가 서민이라고 우겨댔다.

참여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정권이 바뀌자 이들은 종부세를 폐지하기 위해 안달했다. 국방의 의무도 다하지 않은 자가, 수백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의료보험료를 만몇천원 내던 자가, 위장전입을 밥먹듯이 하던 자가, 자식들 위장취업을 시켰던 자가 대통령이 되자 대놓고 종부세를 없애겠다고 공헌했다. 종부세가 폐지되면 그 대통령이라는 자는 공직자 중에서 가장 많은 종부세 감면 혜택을 본단다.

이것이 반만년 역사를 가졌다는 한반도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나라, 대한민국의 특권 주류층의 모습이다. 세금폭탄, 징벌적 과세, 위헌을 운운하며 “단 한 명이라도 피해를 입으면 바로잡는 것”이 시장경제체제에서 심판의 할 일이란다. 단 한 명이라도 피해를 입으면 바로잡겠단다. 그리고 종부세 폐지로 줄어든 세수는 재산세를 올려 공평 과세할 것이란다. 참으로 자비롭고 공정한 대통령 아닌가, 2% 특권층 주류들에게는.

“그래, 세금은 원래 아랫것들, 상것들이나 내던 거였으니까” 이렇게 자위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을 밖에. 예수가 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신지 알 것도 같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부자들이 다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고 교인이 된단다.

참으로 아스트랄한 세상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