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y Lives, Many Masters

Many Lives, Many Masters

Many Lives, Many Masters: The True Story of a Prominent Psychiatrist, His Young Patient, and the Past-Life Therapy That Changed Both Their Lives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던 내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Brian Weiss의 <Many Lives, Many Masters> 를 읽고 부터다. Weiss는 잘 나가던 정신과 의사였는데, Catherine이라는 환자를 치료하다가 그녀의 전생을 알게 된다. 그는 여러 가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Catherine을 치료하려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주류 의사로서 비주류 방법 – 여기서는 최면을 통해서 그녀의 과거로 돌아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는 방법, Regression 이라 한다 – 사용을 주저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최면을 통해 Catherine의 과거로 들어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Catherine의 어린 시절뿐 아니라, 그녀의 전생 그것도 수십회의 거듭남을 밝혀낸다. 그는 그 이후 다른 환자들의 전생을 볼 수 있었고, 미래에 일어날 일들도 알아낼 수 있었다. 전생의 삶의 궤적은 그 다음 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인과응보와 윤회를 깨달은 부처의 가르침이 수천년만에 한 정신과 의사에 의해 증거된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법정 스님의 오두막에는 <숫타니파타> 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붙어 있다 한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법정 옮김, 숫타니파타, 이레>

결국 삶은 거칠 것 없이 혼자서 가는 것임을 일깨워 주는 귀절이다. 숫타니파타는 초기 불교 경전 중 하나다. 이 경전을 읽다 보면, 진리는 그 옛날 이미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로지 문제는 실천일 뿐이다. 신약성경과 함께 곁에 두고 꾸준히 펼쳐 보아야 할 책이다.

지구를 지켜라

지구를 지켜라

최근 몇 년간 나온 한국 영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이다. 신인 감독의 영화답게 기발한 상상과 에너지가 충만하며, 신인 감독의 영화답지 않게 중첩의 메세지가 코믹한 설정에 담겨 있다. 주인공 병구의 삶 속에 투영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외계인들이 파헤치는 우리 인간들의 사악함이 하나로 응축되어 있는 영화다. 백윤식이라는 중견 배우를 재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신인 감독의 데뷰작으로는 가장 멋진 영화 중의 하나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영화는 아닌듯 흥행에는 실패했다.

고통은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거거든…

병구가 외계인인 강사장을 고문하면서 하는 말이 머리 속에 남는다.

북핵

북핵

보편적으로 판단해 보면, 북한의 핵개발과 핵실험은 반평화적이요, 비이성적이다. 자기 나라의 국민들이 굶어죽고 있는데도 핵무기 개발에만 몰두하는 정권은 부도덕하다. 하지만, 북한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면,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세계 최강의 나라, 세계에서 가장 핵무기가 많은 나라가 axis of evil 이니, regime change 니 하며 을러대는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더군다나 이라크의 후세인이 당하는 과정을 지켜본 그들이 핵으로 위협하며 그들을 옥죄는 나라에 대항하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들이 생존을 위해 핵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들이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준비한다고 한다. 적어도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 다섯 나라는 북한을 비난하거나 제재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이미 수백에서 수천 기의 핵폭탄을 개발해 놓고 있고, 지금도 개발하고 있다. 그런 나라들이 이제 북한의 핵실험을 비난하며 제재한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 아닌가. 북한의 핵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누가 가지고 있든지 모든 핵무기는 똑같이 극도로 위험한 것이다.

북핵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세계 모든 나라가 핵무기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미국이 북한과 평화 협정을 맺고 수교를 하든지 둘 중 하나다. 그렇지 않고는 북핵은 해결되지 않고, 해결될 수도 없다. 사실 북한의 핵실험보다 그것으로 파생되는 문제가 더 걱정이다. 하나는 일본의 핵무장이다. 일본은 이미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군국주의로 돌아가려 하는 일본의 무치족들에게 북한의 핵실험은 좋은 핑계가 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노무현 정부의 운신의 폭이 많이 좁아진다는 사실이다. 남한의 무치족들이 퍼주기 노래를 부르며 노무현 정부를 압박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북한의 자위 행위는 남한 정부를 궁지로 몰고 있는 것이다. 분단 국가의 답답함이다.

Wild Safari

Wild Safari

동물원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에 갇힌 동물들에 대한 연민이다. 저것들이 원래 여기 살면 안되는데 하는 안타까움이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동물원 가는 것을 즐기지 않지만, 때로는 아이의 성화를 이길 수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Six Flags Wild Safari 는 자기 차를 몰고 동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동물들이 좀 더 너른 초원에서 살 수 있어서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덜했다. 먹을 것을 얻어 먹으려 차로 다가오는 동물들이 신기하면서 측은했고, 맹수들은 여전히 유폐되어 있었다.

Giraffe

IMG_1179 Buffalo White Rhino Elephants Elephants

Gazelle IMG_1222 Brown Bears Siberian Tiger Dancing Ostrich

안도

안도

스무 살 안팎에는 누구나 한번쯤 연애 편지를 썼었지
말로는 다 못한 그리움이며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 외로움이 있던 시절 말이야
틀린 글자가 있나 없나 수없이 되읽어 보며
펜을 꾹꾹 눌러 백지 위에 썼었지
끝도 없는 열망을 쓰고 지우고 하다 보면
어느날은 새벽빛이 이마를 밝히고
그때까지 사랑의 감동으로 출렁이던 몸과 마음은
종이 구겨지는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리곤 했었지
그러나 꿈 속에서도 꿨었지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다고
그런데 친구, 생각해보세
그 연애 편지 쓰던 밤을 잃어버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타협을 배우고
결혼을 하면서 안락을, 승진을 위해 굴종을 익히면서
삶을 진정 사랑하였노라 말하겠는가
민중이며 정치며 통일은 지겨워
증권과 부동산과 승용차 이야기가 좋고
나 하나를 위해서라면
이 세상이야 썩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친구, 누구보다 깨끗하게 살았노라 말하겠는가
스무 살 안팎에 쓰던 연애 편지는 그렇지 않았다네
남을 위해서 자신을 버릴 줄 아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집안에 도둑이 들면 물리쳐 싸우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가진 건 없어도 더러운 밥은 먹지 않는 게
사랑이라고 썼었다네
사랑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한 발자국씩 찾으러 떠나는 거라고
그 뜨거운 연애 편지에는 지금도 쓰여 있다네

<안도현, 연애 편지>

십여 년 전 노트에 베껴 썼던 안도현의 연애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아직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도 되었던 나의 행운에 안도하며, 지금 다시 연애 편지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 생각해 본다. “집착하지 마라. 집착하지 마라. 집착하지 마라.” 하지만 이것은 연애 편지가 아닌데…… 이제 더 이상 연애 편지를 쓸 수 없단 말인가.

강풀의 26년

강풀의 26년

그해 봄, 나는 기숙사 방에 틀어 박혀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을 읽고, 울고 있었다. 가슴에 북받히는 분노와 슬픔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울고 있었다. 학살의 주역들은 권좌를 지키고 있었고, 우리들은 그들을 향해 돌과 꽃병을 들었다. 학교 교정은 붉은 진달래로 가득했고, 꽃들은 매캐한 최류 가스를 토해냈다. 우리들은 술마시고, 울며 노래했고, 그리고 싸웠다. 20여년 전의 일이다. 그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아무도 울지 않았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지 않았다. 용서받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아무도 그들을 용서하지도 않았다. 광주의 오월은 26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마침내 ‘그분’은 강풀의 26년에서 암살당한다. 아무도 연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지막히 오월의 노래를 불렀다.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 향기 머무는 날 묘비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이렇듯 봄이 가고 꽃 피고 지도록 멀리 오월의 하늘 끝에 꽃바람 다하도록 해 기우는 분숫가에 스몄던 넋이 살아 앙천의 눈매 되뜨는 이 짙은 오월이여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문승현, 오월의 노래>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8할은 광주의 몫이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audio:Nochatsa-Song_of_May.mp3]
“Our food should be our medicine.”

“Our food should be our medicine.”

현대 의학 (서양 의학) 의 시조로 추앙받는 그리이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Everyone has a doctor in him or her; we just have to help it in its work. The natural healing force within each one of us is the greatest force in getting well. Our food should be our medicine. Our medicine should be our food. But to eat when you are sick, is to feed your sickness.

모든 사람들에게는 스스로 병을 낫게 하는 힘이 있다. 병을 치유하는 주체는 환자가 되어야 하고, 의사는 환자를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자연치유력이 병을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우리의 음식이 약이 되어야 하고 약이 음식이 되어야 한다. 약과 음식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히포크라테스에 의하면, 병을 치유하는 것은 자연치유력을 복원하는 것이고, 복원의 수단은 음식이라는 것이다.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

현대 서양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되새겨 보아야 할 말이다.

너무 멀리 오다

너무 멀리 오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향수(鄕愁)]

내일이 추석이다. 고향의 정겨운 풍광들이 그리워지는 때다. 길가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뒷산 언덕배기에 떨어져 있는 밤송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그리고 연하게 푸른 하늘, 안부를 묻는 친척들의 느린 사투리, 할아버지 묘소의 고즈넉한 침묵, 끈질긴 생명력의 잡풀들, 앞 산으로 구불구불 사라지는 마을 길. 이렇게 그리운 것들을 떠나 나는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정지용의 향수를 이동원 박인수의 목소리로 들으며, 고향의 품 속으로 되돌아간다. 부모님이 보고 싶다.

반기문

반기문

나는 반기문 장관을 잘 모른다. 그의 인생의 궤적을 살펴본 바도 없고, 사실 그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가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외교 보좌관과 외교부 장관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보필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내 짐작으로 그는 전문 외교관으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인 것 같다. 그리 개혁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도와 묵묵히 일하는 것으로 봐서는 꽤 성실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같이 일한 상관의 뒷통수를 치고 자신의 영달을 추구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인다. 무치족들은 지난 4년간 노무현 정부의 외교를 “등신 외교” 또는 “왕따 외교”라고 끊임없이 폄하해 왔다. 그 등신 외교, 왕따 외교의 수장이 차기 유엔사무총장으로 내정되었다. 왕따 당하는 나라의 등신 외교를 책임지는 사람을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출한 다른 나라들을 무치족들은 무어라 부를까 궁금하다. 한 나라의 외교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왜곡하고 폄하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이 무치족인 것이다. 반기문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내정을 진심으로 축하한다.